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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4-17 19:37
[한국사] 간도를 위한 변명 2
 글쓴이 : 히스토리2
조회 : 3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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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1905년 을사늑약으로 대한제국의 외교권이 박탈되고, 이듬해인 1906, 참정대신 박제순이 일본 제국에 간도의 조선인들을 보호해줄 것을 요청함으로써 간도 문제에 일본 제국이 개입하게된다. 일제는 간도를 대한제국령으로 인식하고 있었으며, 간도를 잠재적 경쟁 대상이던 러시아나 청에 비해 이미 반쯤 속국화한 대한제국에 귀속시키는 편이 추후의 국제정세에서 유리하리라는 판단 역시 하고 있었다. 그러나 일제에게는 만주로의 군수물자 수송을 위한 행정력을 확보하는 역시 시급한 문제였으며, 철도부설권과 더불어 마침 해당 지역에 러시아가 남기고 간 철도 경영권을 손에 넣는다면 이를 해결할 수 있음은 분명했다.

 

만주철도와 간도를 저울질하던 일제는, 간도보단 철도 쪽이 더 중요하다는 판단하에 청으로부터 철도에 관한 이권을 보장받고자 했다. 일본과 대립하던 청은 일본이 간도 문제를 양보하면 철도 문제를 협조해주겠다고 전한다. 이에 청과 일본은 만주 철도 부설에 관한 협약과 그 유명한 간도 협약을 체결한다. 청은 어차피 조약 이후 15년만 지나면 일본이 부설한 철도를 국유화하기로 했으므로, "드디어 영토 문제도 확실히 매듭짓고, 철도도 나중에 우리 것이 되겠다, 별 손해가 없네?"라며 조약을 체결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그 '영토 문제'의 다른 당사자이던 대한제국의 입장이나 의사는 전혀 반영되지 않은 채로 말이다.

 

 

장쭤린 사후 아들 장쉐량이 군벌을 승계하였으나, 1931년 일제에 의해 만주사변이 벌어지면서 간도를 포함한 만주 전역이 일제의 손아귀에 넘어가게 된다. 이후 일제는 괴뢰국인 만주국을 설립하고 간도를 만주국의 간도성으로 편재하였는데, 이 지역이 오늘날 연변 조선족 자치주와 거의 일치한다. 간도성의 주민은 다수의 한국인과 소수의 일본인이었다. 이후 간도는 제2차 세계대전 기간 내내 간도특설대 등 만주국 관동군의 주요 무대가 되었다가, 8월의 폭풍 작전 당시 소련 붉은 군대에 의해 해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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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패망 이후 간도에 살던 한인들 중 일부는 귀국하였으며, 남은 사람들 중 다수는 북한으로의 편입을 희망하였다. 이후에도 간도는 짧게 주인이 바뀌곤 했는데, 실제로 연길·요동 일대를 북한으로 편입시키려는 프로젝트가 소련에 의해 진행되기도 하였고, 2차 국공내전 도중 한창 수세에 몰려 있던 중국 공산당의 기지 역할도 하였다. 그러나 국공내전 이후 스탈린이 마오쩌둥을 인정하였고 6.25 전쟁 이후 북한이 중국군의 원조로 겨우 살아난 이후 주민들의 독립론(북한 편입론)은 쏙 들어갔다.

 

이 과정에서 조선족들도 피해를 보았다. 국공내전 당시에는 중공군에 종군하여, 한국전쟁에서는 중화인민공화국의 우방인 북한군의 주력으로 참전하여 공산정권을 위해 숱한 피를 흘렸는데, 1952년 설립된 연변조선족자치구(延边朝鲜族自治區)가 전후 1954년 연변조선족자치주(延边朝鲜族自治州)로 격하된 것이다. 중국은 소수민족 자치구역으로 자치구가 1급이고 자치주가 2급이다. 비록 조선족자치구가 위구르나 티베트, 내몽골와 같은 동급의 자치구역은 아니었다고는 하나, (비록 명칭뿐일지라도) 내려앉았으니 그야말로 토사구팽.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인데, 해방 이후 소련의 정치적인 안배로 인해서 간도가 북한에 귀속될 뻔했다. 일본의 패망 이후 간도는 국공내전으로 중국 국민당 및 중공군과 그를 후원하는 소련군의 각축장이 되었으며 간도는 중공군이 점령하였다. 하지만 간도를 자국이 관리하려는 중국의 의도와는 정반대로 소련은 다른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간도를 북한에게 편입시키는 것. 소련은 비록 일면으로는 공산주의 맹방인 중국 공산당을 지원하였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후 자국의 패권을 위협할 수도 있는 중국의 영향력을 주의하고 있었으며, 음양으로 중국을 약화시킬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소련은 중국과는 별개의 민족이며 북한과는 동일한 민족이 다수 분포되어 있었던 간도를 중국에서 분할하여 북한에 편입시켜 중국을 약화시키고 북한을 강화하여 중국을 견제하게 함으로써 다소나마 중국과 북한의 균형을 맞추고 자국의 유일 패권 확립을 도모하였던 것이다.

 

국공내전으로 인하여 만주에 소련군이 주둔하고 있었던 시국을 이용하여 소련은 중국을 배제시킬 수 있었으며, 그로 인하여 북한과 소련이 참여한 이 제1차 평양협정(1947.5)에서 북한에게 랴오닝성(遼寧省), 안둥성(安東省), 현 단둥(丹東) 부근} 등 요동반도와 남만주 전체를 편입시키기로 협정하였다.

 

그리고 제2차 평양협정(1948.2)에서는 요동반도를 제외한 안둥성, 지린(구 만주국 행정구역), 간도(구 만주국 행정구역, 현 옌지 부근)3개의 자치구를 북한에 귀속시키기로 협의하였다. 사실상 전 간도를 북한의 영토로 귀속시키기로 하였던 것이다. 그에 따라 북한의 정규군이 옌지(延吉), 무단장(牧丹江), 무링(穆陵) 지역에 주둔(1948.7)하기까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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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소련의 옹호와 지지에 힘입어 북한은 고구려 이래의 고토이자 한민족 구성원의 다수까지 포함한 간도 영유는 물론이고, 남북 간의 관계에서 강력한 우세를 점할 수 있는 위치까지 가지게 되었다. 아마도 이같은 낙관적인 상황은 북한의 김일성으로 하여금 강렬한 공산통일의 야심을 품게 되는 이유 중의 하나로 작용하였을 것이라고 추측된다. 그 때문에 결국 2년 만에 6.25 전쟁이 발발하게 된다.

 

전쟁 초반은 북한이 우세하였다. 그러나 연합군의 참전으로 전세가 역전되었으며 북한은 중국의 구원에 의존하여 간신히 북진통일을 면하고 휴전을 체결하고 마는 패전이나 다름없는 상황에서 종전을 하게 되었다.

 

이 때문에 북한의 국력과 국가적 위신은 크게 추락하였으며, 뿐만 아니라 중국의 참전으로 인해북한에서의 중국의 영향력이 매우 커져서 중국에게 상당 부분의 지분을 양보할 수 밖에 없게 되었다. 당연하게도 간도의 북한편입은 말 그대로 종결되었다. 결국 간도는 명실공히 중국의 영토가 되어 옌볜조선민족자치구가 설치(1952)되었다가 옌볜조선족자치주로 변경(1955)되었으며 그 땅의 한민족은 중국의 소수민족인 재중교포(조선족)로써 현존하게 된다.

 

이후 조중변계조약(1962)으로 북한과 중국은 간도의 중국 소유를 인정하였으며 백두산을 천지를 경계로 하여 북한이 2/3, 중국은 1/3로 분할하기로 협약하였다. 이 조약은 비밀조약으로써 양국 경계에 관해서는 여전히 의문의 여지가 많았으나 최근 조약이 공개됨으로서 확인되었다. 이리하여 대한제국 이래로 간도를 한반도 국가쪽에서 먹으려고 했던 시도는 다시 한번 무위로 돌아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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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러브 18-04-17 20:12
 
본래 혼하와 봉집현을 경계로 했던 고려의 영역이

중국 중심 국제질서의 순응과
평화의 타성에 젖은
조선시대에 들어와
연산관 - 봉황성 - 압록강으로 축소되었고

동북 경계 역시 고려의 동북9성부터 조선 초 공험진, 선춘령 등을
직간접적으로 지배하였으나

조선 중후기에 들어와 두만강으로 영토인식이 축소되었습니다.

이런 식으로 줄어드는 영토인식의 작용으로 인하여 만들어진 결과가
바로 간도분쟁이죠.

무주지였던 땅을 우리가 욕심을 내서 먹으려고 한 것이 아니라
본래 우리 영토였던 지역을 자의-타의적으로 잃어버린 것입니다.
6시내고환 18-04-19 20:19
 
보기만해도 안타까워요..통일이 되다면 통일 한국 국력의 핵심이 될 지역이었는데..
조중변계 조약도 마찬가지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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