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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4-17 19:36
[한국사] 간도를 위한 변명 1
 글쓴이 : 히스토리2
조회 : 669  

間島, '사이 간''섬 도' , 직역하면 '사이섬(사잇섬)'. 널찍한 대륙의 일부를 '[]'으로 칭하는 게 어색하게 느껴질 수 있으나, 본래 '간도'는 조선의 도강자(渡江者)들이 처벌을 피하고자, '강을 건넌 게 아니라 강 사이의 섬, 즉 하중도(河中島)에 다녀왔다'라고 둘러대면서 붙은 호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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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우리가 말하는 간도는 두만강 북쪽 지역의 북간도(동간도)를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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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왕 때 명나라로부터 선춘령 이남을 국경으로 인정받으면서, 조선은 두만강 북쪽의 일부 지역의 여진족 거주지에 대한 종주권은 조선에 있다고 생각하였고, 여진족의 부족장에게 만호 등 조선의 무신에 해당하는 관직을 주었다. 조선 성종 때 훈춘강을 따라 축성하여 해당 지역을 직접 지배할 것이 추진되기도 했다.


간도에 거주하던 여진족들은 때로는 조선에 조공을 바치고 때로는 서로 싸우기도 하는 관계에 있었다. 여진족이 부족 단위에서 국가로 통일되어 후금이 되고 청나라가 되면서 만주 일대는 만주족의 발상지라 하여 신성시되었다. 조선 숙종(청나라 강희제) , 청의 출입 금지 지역에 조선인의 월경이 잦아지고, 백두산 일대의 국경이 불확실하자 1712년 오라총관 목극등과 접반사 박권, 함경 감사 이선부가 혜산진에서 회동하고, 조선인 군관과 목극등 일행이 백두산에 올라 백두산정계비를 세움으로서 국경을 확정했다. 비록 당대의 국경선 인식은 두만강이었다는 것이 정설이나, 청 측에서 백두산정계비의 비문에는 토문강[두만강]으로 명시했으나 실제 위치를 오도백하[송화강]로 확정하는 치명적인 실책을 저지르면서, 간도 전역이 중국의 땅인지, 연길이 조선에 귀속되는지, 연변이 조선에 귀속되는지 등 오늘날까지도 지속되는 논쟁의 여지를 남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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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근대화를 겪으며 양국 간 전통적인 '면의 국경'이 서구식 '선의 국경'으로 변환되는 과정에서 청의 통금정책은 유명무실해지고, 조선과 청나라 사람들은 경쟁적으로 간도로 이주하기 시작했다. 구한말 대한제국과 청나라 간 영유권 분쟁이 벌어졌다. 다만 백두산정계비 문제와는 달리 이때 논란이 되는 지역들 가운데 연길을 제외한 나머지 연변 지역에는 청의 행정력이 미치고 있는 상황이었으며, 따라서 조선 역시 연길 지역만을 분쟁의 대상으로 삼았다. 조청 간 간도분쟁은 몇 차례의 협상을 거쳤음에도 명확한 결론이 나지 않은 채 1909년 조선의 외교권을 강탈한 일제가 청과 불법적인 간도협약을 맺으면서 유야무야되었다. 후에 일본 제국이 패망하고 간도협약이 무효화되자, 북한과 중국은 조중변계조약을 맺고 현재의 국경선을 확정하였다.

 

백두산 정계비

 

청나라를 세운 만주족의 발상지인 만주 지역엔 현재와 달리 정축조약을 통해 봉금령으로 한족 주민이 아직 거의 없었고, 덕분에 인구밀도가 매우 낮아 농사짓기 좋은 빈 땅이 많은 상황이었다. 이에 두만강 상류의 국경을 명확하게 정하고자 조선과 청 양측의 합의에 의해 백두산정계비가 세워진다. 그런데 백두산 정계비 건립 당시 청 측 대표인 오라총관 목극동이 '西爲鴨錄, 東爲土門(서위압록 동위토문; 서쪽 국경은 압록강으로, 동쪽 국경은 토문강[두만강]로 한다)'고 기록했지만 실제로는 두만강이 아니라 오도백하[송화강]가 조청 간 공식적인 국경선으로 선언되게 된다. 이후 조선 측에서는 목극등의 요청으로 돈대를 쌓는 과정 중 홍치중이라는 인물이 이 사실을 파악하고 조정에 보고를 올리는 덕분에 정계비의 내용이 인식과 달랐음을 파악하였으나, 청에는 알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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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은 백두산정계비 축조 이후 두만강 하류인 훈춘에 훈춘협령을, 돈화현에 부도통을 세우는 등 봉금을 지키기 위한 실효적인 노력을 하고 만주족의 팔기를 보내는 등 일부 지역에 행정권을 행사하였으나, 두만강 상류 지역에는 청나라 사람들이 아예 살지 않았다. 전근대 국가들이 흔히 그러하였듯 조선과 청 역시 충돌을 방지하기 위한 완충지대로서 면의 국경을 유지하였는데, 조선도 정계비 건립시점에서는 두만강을 국경으로 인식하고 있었으며 청도 상기한 정치적·현실적 이유들로 행정력이 미치지 않았던지라 해당 지역은 백두산정계비의 오기에도 불구하고 한동안 분쟁의 대상이 되지 않았다.

 

조선 말기 영유권 분쟁

 

그러나 1869, 1870년 대흉년으로 조선인들이 두만강을 건너 간도에 터를 잡기 시작했고, 1881년부터 청에서도 만주로의 이주와 간도개척을 장려하기 시작한다. 더불어 서구 열강들의 영향력이 동아시아에도 미치면서 전통적인 면의 국경이 선의 국경으로 대체되기 시작했고, 이러한 와중에 간도를 두고 자연스레 조선과 청 간의 충돌이 벌어졌다. 이를 해결하고자 양국은 1885년과 1887년 두 차례에 걸쳐 간도지방의 소유권을 두고 감계회담을 개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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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입장을 보면, 본래 백두산정계비의 '西爲鴨錄, 東爲土門'을 그대로 해석하면 백두산에서 송화강에 도달하기 전까지의 토문강 본류를 두만강 선과 이은 범위 내에 있는 (둔화·안투 제외) 연변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연변 북서부에 대해서는 조청 영유권 분쟁 전부터 청의 실질적인 행정력이 미치던 상황이었고, 때문에 실질적으로는 백두산-오도백하 지류(해란강 or 분계강 or 포이합도하)-두만강 선을 국경으로 주장하고 그 사이 지역인 옌지, 투먼, 퉁징 일대를 주 논의 대상으로 삼게 된다.  이러한 맥락 속에서 조선 측 토문감계사 이중하는


1) 을유감계회담에서는 오도백하(송화강) 국경설을,


2)1887년 정해감계회담에서는 홍토수 국경설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두어 차례의 회담은 뚜렷한 결론 없이 결렬되었고, 양국은 경쟁적으로 해당 지역에 주민들을 이주시키는 등 분쟁을 본격화하게 된다.

 

1902년 대한제국은 임의적으로 간도 관리사를 파견해 현지인들에게 세금을 징수하기 시작한다. 당연히 대한제국과 청은 다시 외교분쟁에 돌입했는데, 이는 러일전쟁이 발발하면서 잠시 중단된다. 동해 대한제국은 러시아와도 공동통치협약안을 작성하여 간도에 영향력을 행사하고자 시도하였다. 이는 여전히 버거운 상대였던 청나라와의 외교분쟁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하려는 대한제국의 의도와, 의화단 사건 당시의 파병에서도 드러나듯 남하정책의 일환으로 만주 지역에서 영향력을 확장하려 노력하던 러시아 제국의 이해관계가 일치하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1904년에는 이범윤이 사포대라는 사병집단을 조직하여 간도에서 활동하다가, 대한제국과 청의 변계관리들이 '한중변계선후장정'이라는 약정을 체결하면서 국내로 소환되는 일도 있었다. 한중변계선후장정은 양국의 변경 관리들이 해당 지역에 대한 행정적 관리의 필요성을 인지하여 이루어진 합의로, -청간 국경을 확정짓지 않은 채 임시적으로 청의 관할을 허용하는 형태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이 조약은 중앙정부의 법적 승인이 결여된 채 지방관리들의 편의에 의해 맺어진, 국제법적으로 '조약'으로 승인되지 않는 '합의'였다. 이후 양국이 모두 혼란을 겪는 와중에 한청 국경은 확정지어지지 않은 채 잠정적으로 도문강(두만강)으로 인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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