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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4-15 18:45
[한국사] 한국역사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역사2
 글쓴이 : history2
조회 : 1,100  

8. 그들은 왜 고조선 역사를 없앴을까?

 

고조선 왕족은 해()씨였다. 왕조 국가에서 통치자의 성이 바뀌면 왕조도 끝장난다.

 

고조선이 '단군조선-기자조선-위만조선'으로 계승되었다는 도식은 기자가 도래한 때부터 정통성을 상실했다는 의미다.

 

1392717, 공민왕의 부인이자 왕대비인 정비 안씨의 승인으로 왕권이 공양왕에서 이성계로 넘어갔다.

 

국호가 조선으로 변경된 것은 1393년이지만, 군주의 성씨가 바뀐 날을 조선의 건국일로 잡고 있다.

 

마찬가지로 고조선 왕실의 주인이 해씨에서 기씨로 바뀌었다면 고조선은 이미 끝난 것이라 할 수 있다.

 

기자조선과 위만조선은 고조선의 정체성과는 무관한 것이다. 따라서 기자조선과 위만조선을 인정하게 되면 이런 문제가 생긴다.

 

그러나 三國史記三國遺事처럼 보편적으로 인정되는 역사서들만 놓고 봐도 단군-기자-위만의 구도는 역사적 사실과 일치하지 않는다.

 

단군조선은 기자와 위만 시대에도 쭉 이어졌다는 게 역사적 사실이다. 즉 기자와 위만이 단군조선의 명맥을 끊은 적이 없다.

 

단군조선 역사를 살펴볼 때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하는 것은, 이 시대에 관한 한국 측 자료가 공권력에 의해 집중적으로 파괴되었다는 점이다.

 

이는 파괴된 기록이 현존하는 단군조선 기록과 전혀 다른 내용을 담고 있었음을 뜻하는 것이다.

 

따라서 지금까지 살아남은 사료를 읽을 때는, 왜 다른 사료들과 함께 없어지지 않은 이유부터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분서갱유와 같은 사상탄압은 중국만의 일이 아니다. 한국에서도 심했다. 조선시대에는 특히 심각했다.

 

조선의 지배층인 유학자들은 자신들의 이데올로기와 다른 것에는 극단적인 거부감을 표출했다.

 

그들이 혐오한 것 중 하나가 바로 단군조선의 존재다. 유학자들이 단군조선을 싫어한 것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단군조선이 중국을 배척했다는 점과, 단군조선의 종교가 신선교였다는 점 때문이다.

 

조선의 분서갱유는 세조와 예종 두 부자에 의해 자행되었다.

 

"고조선비사》《大辯說》《朝代記》《주남일사기》《지공기》《表訓三聖密記》《안함노.원동중 삼성기》《도증기》《지리성모하사량훈, 문태산,왕거인,설업 등의삼인기록》《수찬기소1백여권,동천록》《마슬록》《통천록》《호중록》《지화록》《도선한도참기등의 서적은 마땅히 개인적으로 소장해서는 안되니, 만약 갖고 있는 자가 있으면 진상하도록 하라. 대신 원하는 책을 내줄 것이다." - <세조실록> 세조3(1457) 526일자.

 

고조선비사, 삼성밀기,삼성기 등은 고조선 관련 기록들이다.

 

그런데 위 목록에는 三國史記三國遺事는 해당되지 않는다. 위 책들의 상고사 기록이 三國史記三國遺事와는 상당히 다르다는 의미다.

 

세조 때의 정권과 유학자들은 관련서적을 수거하는 방식으로 고조선 역사를 은폐하려 했다.

 

세조의 아들인 예종 때도 상고사 은폐는 계속되었다. <예종실록> 예종1(1469) 918일자에 따르면, <주남일사기> <지공기> <표훈천사> <삼성정밀> <도증기> <지리성모하사량훈> <수찬기소> <호중록> <지화록> <명경수> 등의 서적들이 금서로 지정되었다.

 

예종 때는 상당히 과격해졌다. <예종실록>에 의하면, 정해진 날짜까지 금서를 바치라고 하면서 다음과 같은 상벌을 예고했다.

 

"책을 바친 자는 2품계를 높여 주고, 상을 받기를 원하는 자나 공노비,사노비에게는 면포 50필을 주기로 한다. 만약 숨기고 바치지 않는 자가 있으면 다른 사람이 고발하도록 하고, 고발한 자에게는 위와 같이 상을 주고 숨긴 자는 참수형에 처한다."

 

이것은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고조선 역사가 실제 역사와 상당히 다를 가능성이 많다는 것을 보여 준다.

 

三國史記에 따르면 고구려 시조 주몽이 고씨 성을 사용한 것은 고구려를 건국하기 직전이었다.

 

주몽의 원래 성씨는 해씨다. 해모수에게서 버림받긴 했지만, 주몽을 三國遺事에서 단군의 아들이라고 한 것은 북부여란 나라가 고조선과 관련이 있었기 때문이다. 애당초 북부여란 국호는 없었다. 해부루가 동쪽으로 가서 새로 세운 부여를 동부여라고 부르고, 이와 구분해 기존의 부여를 북부여라고 불렀다. 실제로 존재했던 것은 부여라는 명칭 뿐이다.

 

백제의 마지막 도읍이 부여였던 데서도 나타나듯이, 부여는 원래 국호가 아니라 도읍명칭이었다.

 

고조선의 중심지는 하얼빈이었다. 하얼빈의 옛 지명도 부여였다. 수도의 명칭이 국호처럼 불려, 부여라는 국호가 역사서에 등장하게 된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고조선을 부여라고 불렀던 것이다. 즉 부여는 고조선의 별칭이었다고 볼 수 있다.

 

동부여와 분리되기 이전의 부여, 즉 북부여는 원래의 고조선을 가리키는 명칭이라고 볼 수 있다. 해모수는 고조선의 군주였다.

 

이는 해모수의 아들인 주몽을 三國遺事에서 단군의 아들이라고 지칭한 이유를 설명해 준다. 또한 '단군-기자-위만'의 설정이 엉터리라는 의미다.

 

기자가 조선에 왔다고 말하는 기원전 11세기 이후에도 고조선에는 해씨 군주가 존재했다. 여전히 고조선을 통치했던 것이다.

 

 

9. 세속오계는 불교가 아닌 신선교 전통

 

우리 역사의 감춰진 수많은 진실 중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 중 하나가 신선교의 전통이다. 신선교(풍류도,仙敎)는 한민족 고유의 신앙 체계다.

 

신선교는 초월적 존재인 신선이 되기 위해 자신을 수행하는 종교다. 신선은 하늘과 인간이 하나가 되는 天人合一의 경지에 이른 상태다.

 

신선교 의식이 산에서 거행되는 것은, 산이 하늘과 인간세계를 잇는 상징적 장소라고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흔히들 도교와 혼동하지만 도교와는 별개다. 도교에도 신선 사상이 있지만 도교는 중국에서 생긴 것이다.

 

신선교는 桓因이나 檀君을 기원으로 인정한다. 그러나 우리 교과서에서 소개되는 민족 전통신앙은 외래종교인 불교다.

 

현대사회에서도 종교의 중요성은 여전하지만, 고대일수록 종교의 위상은 훨씬 더 중요했다.

 

과거로 거슬러 올라갈수록 정치지배자와 종교지배자의 차이는 가까워진다. 신선교를 이해하지 않고는 고대 한국을 이해할 수 없다.

 

우리의 전통 불교는 신선교와 가까운 경우가 의외로 많다. 그중 하나가 원광법사가 일러줬다고 하는 세속오계다.

 

事君以忠,事親以孝,交友以信,臨戰無退,殺生有擇의 세속오계가 원광법사의 작품이라는 근거는 없다.

 

불교에는 불살생계(不殺生戒)라는 계율이 있다. 그러나 臨戰無退,殺生有擇 등은 살상을 전제로 한다. 이런 것을 불교 승려가 만들 수 있었을까?

 

세속오계가 원광법사의 작품이라는 근거로 제시되는 것은 三國史記.

 

<삼국사기> 귀산 열전에는 신라 관료인 귀산이 추항이란 친구와 함께 원광법사에게 가르침을 청하는 대목이 나온다.

 

원광법사는 이들에게 "今有世俗五戒"라는 말을 시작으로 事君以忠,事親以孝,交友以信,臨戰無退,殺生有擇을 가르쳤다.

 

今有世俗五戒'지금 세속오계가 있다'로 번역하기보다는 '지금 세속에는 오계가 있다'로 번역하는 편이 훨씬 더 자연스럽다.

 

이 말은 당시 오계가 이미 사회적으로 규범력을 발휘하고 있었음을 반영한다. 원광법사가 창안자가 아니라는 말이다.

 

원광법사는 자신이 속한 불교계에서 나온 계율이라면 '세속'을 운운하지 않았을 것이다.

 

오계가 나온 것은, 불교가 보편화되기 이전에 신라 사회를 지배한 종교인 神仙敎에서 나온 것이다.

 

이 점은 최치원이 난랑이라는 화랑을 추모할 목적으로 작성한 <난랑비서문>에서도 나타난다.

 

"나라에 현묘한 도가 있으니 풍류라고 부른다. 이 교를 만든 기원은 <仙史>에 자세히 실려 있다."

 

불교 같은 외래종교가 들어오기 전에 신라인의 삶을 지배한 종교는 풍류도, 즉 신선교였다.

 

원광법사도 실은 신선교 성직자에 가까웠다. 이 점은 그의 가문이 전형적인 화랑 가문이었다는 사실에서도 드러난다.

 

신라 향가 <祭亡妹歌>는 죽은 누이를 제사 지내는 노래다. 지은이는 흔히 불교 승려로 알려진 월명사다.

 

그런데 8세기 때 사람인 월명사는 사실은 신선교 성직자였다. 이 점에 대한 증거는 명확한 편이다.

 

<삼국유사> 감통 편에는, 760년 경덕왕1941일 신라에서 태양이 두 개 출현하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졌다.

 

경덕왕은 월명사에게 혼란을 수습하는 행사를 위해 불교 노래를 지어줄 것을 부탁했다. 이때 월명사는 이렇게 대답했다.

 

"저는 國仙의 무리에 속해 있기 때문에 향가나 알 뿐이지, 불교 음악 같은 것에는 서툽니다."

 

즉 자신이 국선도, 즉 신선교에 속해 있다고 밝혔다. 이는 월명사가 불교 승렬를 겸한 신선교 성직자였던 것이다.

 

이런 모습을 우리는 고려시대의 승려인 묘청에게서도 발견할 수 있다.

 

<고려사> 묘청 열전에 따르면, 그는 평양에 팔성당이란 신선교 건물을 세운 뒤에 여덟 仙人八仙의 초상화를 안치했다.

 

불교 그림이 아닌 신선들의 그림을 안치한 것이다. 이는 그가 신선교 승려의 모습을 띠고 있었음을 보여 준다.

 

이렇게 신선교나 화랑도를 하면서 불교 승려를 겸한 사례는 원광법사,전밀,안상,범교,원효,도선,서산대사,사명대사 같은 승려들에게서도 발견된다.

 

신선교와 관련시키지 않고는 이해할 수 없는 사례로 고구려의 조의선인, 신라 화랑도, 고려 제가화상 등을 들 수 있다.

 

조선시대에는 정부의 집중적 탄압 때문에 신선교의 영향력이 크게 약화되었다.

 

종교를 빼놓으면 역사는 물론 문화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그런데도 우리 교과서에는 이런 점이 제대로 다루어지지 않고 있다


    --------------------------------------김종성 님 글 참조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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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드르 18-04-15 19:25
   
통치자의 성이 바뀌면 나라 이름도 바뀐다는 건 후대에 생겨난 관념 아닌가요? 춘추전국시대 제나라는 지배자가 강씨에서 전씨로 바뀌었어도 여전히 제나라였잖아요.
history2 18-04-15 22:35
   
님이 너무 박식하셔서,,,,,,죄송합니다.... 제나라의 경우도 있었군요
칼리S 18-04-16 08:33
   
너무 엉터리 같은 글이지만, 일단 가장 왜곡된것 중에 하나가 세조예종조에 무슨 금서지정한것처럼 왜곡하는데, 현실은 반대로, 천문지리음양과 같은 잡학에 대해서 정부가 관심을 가지고, 그에 관한 서적들을 국가가 직접 챙기는겁니다.

세조3년 3월15일 기사를 보면 판서운관사 양성지(이 사람은 집현전 출신으로 세조를 섬겼기에 좋은 평판을 듣지는 못하지만, 유학에 얽매이지 않은 사람임)가 세조에게 여러가지를 상언하면서 서적(특히 전조 고려에서 간직하지 못했던 비서들)들을 간직하라고 합니다. 즉 귀한 우리나라의 서적들이 훼손당하지 않도록 국가가 직접 간직하라고 한 겁니다. 즉 이후에 이뤄지는 건 위에서도 나오듯이 이를 참조한 것이겠죠.

세조나 예종조의 기사를 봐도 금서로 지정하고 그런게 아닙니다. 오히려 천문지리음양과 관련된 책들을 수집하는것이죠. 그리고 민간에 있는 걸 불태우거나 그런것도 아니고, 민간에서 충분히 취했으면 오히려 다시 돌려줍니다.

세조의 총애를 받았던 양성지만 해도 제가 언급한 시기의 직책은 판서운관사입니다.

조선왕조실록을 단편적으로 기사를 취해서 그것도 조작해서 언급하면 저런 오류가 생깁니다. 세조는 특히나 불교나 잡학에 대해 아버지 세종처럼 관대했습니다.
     
6시내고환 18-04-19 20:56
   
이래서 의견은 양쪽다 들어봐야해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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