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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4-15 16:04
[한국사] 전쟁에 대처한 임금들의 태도
 글쓴이 : 위구르
조회 : 907  

유형

1

1-1. 연개소문: 어차피 전쟁이 예고된 상황에서 당을 선제공격 함으로써 내부를 결속시키고 1차 고당전쟁에서

적군 50만명 섬멸한 뒤에 지금의 산동성, 북경까지 침공해서 반격함. 2차 고당전쟁때 사수대첩을 진두지휘(당군 20만명 전멸)


1-2. 영양태왕: 역시 전쟁이 사실상 예고된 상황에서 수나라를 선제 타격함.

적의 1차 침략때 기습작전으로 적군 30만명 섬멸(이덕일 주장), 혹은 강이식 장군 파견해서 임유관 전쟁에서 30만명 섬멸(신채호 선생 주장). 2차 전쟁에서 적의 130만 대군 맞아 승리를 이끌었음.


1-3. 현종: 거란의 침략을 두 차례나 맞아 국가 원수로서 모범을 보임.


2

2-1. 동천태왕: 두차례 위군을 무찌르고 공격을 하다가 오히려 대패하고 수도 환도성은 초토화, 대량의 역사서까지 탈취당하는 비극을 맞게됨. 장수들의 분전과 백제의 낙랑 침공(위군의 보급선 차단 효과)으로 위기를 넘김.

* 만약 이때 백제가 낙랑을 치지 않았다면?

이 싸움에 대한 기사는 김부식이 삼국지와 고기 ( 古記 ) 를 뒤섞어서 고구려 본기에 기록해 넣었으므로 앞뒤의 기사가 서로 모순되는 것이 많다. 이를테면 1) “관구검이 군사 1만 명으로 고구려를 침략하였다.” 하고 “왕이 보기 ( 步騎 ) 2만 명으로 거역해 싸웠다. ”고 하였으니 고구려 군사가 위의 군사보다 갑절인데, 그 아래 동천왕의 말을 싣되, “위의 많은 군사가 우리의 적은 군사만 못하다.”고 하였음은 무슨 말인가? 2)비류수에서 위의 군사 3천 명을 목베고, 양맥곡에서 또 위의 군사 3천 여 명의 위병이 이미 6천여를 목베었다고 하였으니, 1 만 명의 위병이 이미 6천여 명의 전사자를 내어 다시 군대를 이룰 수 없었겠는데, 그 아래에 “왕이 철기 ( 鐵騎 ) 5천으로 추격하다 크게 패했다.”고 한 건 무슨 말인가? 관구검 전에 그 결과를 기록하여 “논공행상 ( 論功行賞 ) 을 받은 자가 백여 명이었다.”고 하였으니, 그 출사한 군사의 많음과 싸움의 크기를 가히 미루어 알 수 있을 것인데, 어찌 겨우 1만 명의 출병 이었으랴?

                                                                                   -조선상고사-

위와 같이 위군의 숫자는 고구려군보다 많았고 고구려 역사상 적은 병력으로 대병력을 패배시킨 적은 있었어도 그 반대의 경우로서 대병력이 소수의 적에게 패한 경우는 거의 없었습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주력이었을 군대가 붕괴되고 수도가 함락당한 상황에서 고구려 장수 유유가 적을 찔러죽여서 기세를 흩뜨려 놓았고 그틈에 반격을 가해서 이겼다고들 하는데, 적의 총지휘관인 관구검도 아닌 일개 장수를 죽인것 가지고 이미 대패한 고구려군이 반격을 가해서 이겼다고 할수는 없습니다.

요점은, 백제의 고이황제가 위나라 군의 보급기지이자 후방 병참선인 낙랑(만주 서부에 위치)를 쳤기에 위군이 고립될것을 두려워해 관구검이 퇴각을 결정했다는 것입니다.


2-2 선조: 전쟁 전에는 일본군의 침략에 대비를 하지 않았고 전쟁 중에는 도망이나 다닐 궁리를 하다가 기어이 명나라로 피신하려고 하였으되 선전을 거듭하는 이순신을 증오하여 곤경에 빠트리고 (결국 이순신은 그로인해 노량 해전에서 조총도 막아내는 갑옷을 벗어던지고 맨 앞에 서서 사격을 유도했다는 주장도 있음) 전후에는 역시 맹활약한 태자 광해군을 핍박해서 정신적 고통을 주었다. 영리하였으니 비열했던 임금이었다.


*이순신은 자결을 택하였다?


이순신 장군이 전사한 노량 해전에서 장군이 자결을 택했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광주 목사였던 이민서는 임진왜란을 겪은 적은 없지만 광주 목사 재임시 이순신 장군의 업적을 현지답사를 통해 확인하고 명량대첩의 비문도 작성한 인물입니다. 그의 주장인 자결설의 근거는 일단 그 당시의 상황으로서 임금이었던 선조부터가 이순신을 핍박하고 질투하던 상황이었습니다. 선조는 명나라 장수 양호가 이순신에게 상을 내리라고 명하자 '그것은 왕인 나의 권리이다'라고 하여 묵살하는 전에 없던 대범한 태도를 보였고 원균이 수군을 대패시키고서 통제사로 이순신을 재임명 하는 것을 신하들이 만장일치로 결의하자 석상을 박차고 나가버렸습니다(중신들이 만장일치로 결정을 내리면 왕도 어쩔수 없었음).

그 와중에 그의 유일한 방패가 되어주었던 유성룡이 파직당하게 되자 장군은 결심을 하게 됩니다.


동업자였던 명나라의 장수 진린에게 평소에 자신이 죽을 것임을 암시하곤 했었던 장군은 마지막 전투에서

조총도 막아낸다는 갑옷을 포기하고 자신이 사령관임을 나타내는 적색 융복을 드러내고 맨 앞에 우뚝 섭니다.

적진의 4,5미터 앞에 우뚝 섰던 그분에게 일본군의 증오 섞인 조총탄이 기어이 흉부에 명중하게 되니

전후에 자신이 역적으로 몰려 가족까지 화를 입을 것에 대한 우려를 스스로 감싸안고 숨을 거두었습니다.

어쩌면 그때까지의 정신적 압박감 또한 그를 죽음으로 몰고 갔을지 모릅니다.


출처: 세계격전기 현장 답사기(노병천 지음)


2-3 고국원태왕: 고구려의 경쟁자로 부상한 모용황의 전연을 두려워하여 수도를 동쪽으로 옳기는 결정을 하였으나 막상 일어난 전쟁에서 실기를 범하여 적군이 실제로 몰려오게 되는 남로를 허술히 방어하여 수도 환도성이 또다시 치욕을 겪게 됨. 그 후 백제에 마처 패배하여 고구려는 그 역사상 가장 암울한 시기.


*북한 학계의 이견

고구려는 그후 연나라에서 큰 혼란이 조성된 기회를 리용하여 370년 10월 전연에 대한 총 공격을 개시하였다. 10여일만에 만리장성을 넘어 유주 지역까지 진출하여 악질 관료들을 처단하고 그 지역의 13개군을 차지하고 진을 유주 자사로 임명하였다. 고구려는 376년 초까지 유주 지역에 주둔해있으면서 전연 침략 세력의 잔여 분자들을 철저히 진압 소탕하였다.

                                                                                            -조선력사-

이북 학계 다운 직설적이고 거친 어투가 특징입니다. 의외로 나무위키에 이 대목이 기재되어 있어 거짓은 아닌것 같아서 가져왔지만 사실인지는 불분명합니다. 



3

3-1 성종: 거란이 호왈 80만 대군으로 쳐들어오자 당황하여 신하들과 함께 논의한 끝에 할지론을 결정하였으나 명신 서희가 반대하고서 나아가 직접 적장 소손녕과 담판을 지어 물러가게 함.

* 서희의 담판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이전에 대도수 장군과 낭장 유방이 이끄는 고려의 군대가 승리하여 거란군의 기세를 꺾어 놓았기 때문으로, 두 사건중 하나만 없었어도 고려는 대 위기를 맞았을 것입니다.



유형

1: 승리를 주도함

2: 한심한 태도로 패배를 자초 혹은 전쟁에 악영향을 끼침

3: 그리 현명하지는 못했지만 명신과 명장의 덕을 입어 승리함


-끝-


선조에 관한 글을 보고 생각나서 잠시 끄적여 보았습니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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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story2 18-04-15 16:22
   
좋은글 감사히 잘 읽어보았습니다. ^^ 좋은 나날 되세요
     
위구르 18-04-15 20:36
   
고맙습니다. 역사님이 쓰시는 유익한 글들 잘 읽어보고 있습니다.
6시내고환 18-04-15 20:40
   
선조는 언제봐도 한심
점퍼 18-04-15 23:40
   
선조를 제외하면 사료가 그리 풍부하지 못하고 결과에 맞춰 해석한 느낌이네요. 선조의 삽질과 찌질함은 자세한 사료가 남았기 때문인데 다른 역사서와 같이 대충 결과와 간략한 총평에 의지해서 평가한다면 달라질 수도 있겠죠. 연개소문 사후 바로 자중지란으로 고구려가 망한 것을 보면 결국 연개소문이 뿌려놓은 씨앗의 결과라고 볼수도 있습니다. 일본의 쇼군 처럼 왕을 제치고 장수가 정권을 좌지우지 했으니 전공은 화려해보여도 그 뒤에 숨은 온갖 부조리와 독단은 결국 고구려를 망하게 했다고 평가할 수도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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