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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4-14 20:29
[한국사] 일진회의 역사와 평가
 글쓴이 : history2
조회 : 522  

워낙 회원이 없어서 일제의 지원이 아니면 명맥을 유지못할 지경이었지만, 다행(?)히 곧 이용구가 이끌던 동학계 개화운동조직인 진보회가 일진회에게 흡수당했기 때문에 규모가 확대. 일진회는 일본인을 고문(우치다 료헤이 등)으로 채용하는 한편 일본군의 지원을 비밀리에 받아 활동했다. 일진회 회원은 창립당시 300명, 진보회와 통합한뒤 곧 수만의 회원이 되고, 1910년경에는 '전국에 100만명에 달하는 회원'을 가지는 거대조직이라지만, 실제는 10만명쯤 되었다. 4천명 미만이라는 견해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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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진보회와 통합한뒤 거대조직으로 탈바꿈되어 동학역사에 있어서는 뼈아픈 흑역사 이다. 덕분에 손병희는 이들과 연을 끊고 천도교로 이름을 바꿔버렸다. 이용구와 그 추종자들은 독립해서 시천교를 만들었는데, 사실상 일진회의 일반회원들은 거의 시천교도(구 동학도)였다. 그런데 교리상으로는 천도교와 시천교가 그렇게 차이가 있는 것도 아니어서, 분리 후에도 시천교였다가 천도교로 전향하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천도교였다가 손병희와 대판 싸우고 시천교로 가버리는 경우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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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진회는 진보회와 합치기 전까지는 명백한 어용단체였고, 합쳐서 민간단체가 된 이후에도 일본의 전폭적인 지원 하에 친일 선전에 전력했다. 우치다 료헤이 등 일진회의 고문직을 역임했던 사람들부터가 극우 일본인이었으니 이는 당연한 수순이었다. 당대의 조선 지식인들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본과 한국을 한 나라로 만들자는 주장을 지속적으로 펼쳤으며, 이를 통해 알 수 있다시피 일진회의 주 활동은 친일 선전 및 선동이었다. 대표적인 선전 사례로 위에 사진과 관련된 일화가 있다. 사진은 1907년 일진회가 일본 황태자 다이쇼의 조선방문때 남대문 앞에 세운 대형 아치로, 사진에는 일진회의 이름이 담긴 대형 아치위에 태극기와 일장기가 교차해있으며 아치의 중간에 '받들어 맞이한다'는 의미의 '봉영(奉迎)'이라는 문구와 함께 중앙에 일본황실을 상징하는 국화 문양이 새겨져 있다. 이런 친일세력이 무려 전 국민의 5%나 되었다.

이들이 주장하는건 아시아주의에 입각해 식민지가 아닌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헝가리처럼 양 국이 동등한 관계로 합병되자는 주장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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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우익에서 지어낸 '대동아국'의 이데올로기를 그대로 이식한 것이나 다름없다. 이용구가 나중에 합방청원하면서 쓴 표현으로는 '정합방(政合邦)'이라고 한다. 물론 이건 일본쪽에서는 전혀 먹히지 않을 소리였지만, 일본은 이들이 대한제국을 자진해서 비난하기 위해 겉으로는 이러한 '합방'을 지지하는척 했다.


한편 1907년에는 당시 대한제국 정부로부터 교수형 언도를 받은채 일본에 망명중이던 박영효가 일진회의 총재 자리를 권고받은 일이 있었다. 적어도 당시의 정부를 디스하려는 점에서는 일진회나 박영효나 생각이 같아서, 박영효는 일진회 당(?)의 총재가 되어 공화정의 대통령에 도전할 심산으로 몰래 귀국해 부산에 머무른다. 그러나 결국 합방에는 관심없었던 박영효이고 공화정에는 관심없었던 일진회이므로, 양자간의 접촉은 별 성과가 없었던 것 같다. 

이후 일진회는 그냥 일진회대로 마이웨이를 가고 박영효는 우습게도 대한제국 정부에 용서를 빌고 궁내대신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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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러니한건 일진회를 이끌며 내각에도 참여했던 송병준과 대한제국 총리였던,  이완용과 사이가 아주 나빴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나라가 망한 뒤 얻고자 하는 통치체제의 형태가 전혀 달랐기 때문이다. 송병준이 바랐던 (혹은 일본이 그렇게 해줄 것이라고 믿었던) 합방은 기존 조선정부의 해체 그리고 대아시아 주의에 기반한 일본으로의 완전한 통합이었던 반면, 이완용은 일진회의 대동합방신념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함을 잘 알고있었고 오히려 설령 합방을 하더라도 한국 황실의(격하되었지만) 명맥을 보존할 것과 조선에 대한 차별화된 정책을 시행할 것을 주장했다. 

그런데 이토 히로부미 사망 직후인 1909년 12월, 안그래도 이토 따라 죽고싶다는 말을 하던 이완용이, 이재명으로부터 칼을 맞고 잠시 사경을 헤매게 되면서 사태가 급변한다. 

같은 때에 일진회는 '한일합방 성명서'를 발표했고, 병탄 연착륙파의 수장이었던 이토가 사라진 일본 역시 본격적으로 한국을 합병하려는 움직임을 시작한다. 

수개월 후 병상에서 기적적으로 살아 돌아온 이완용은 비로소 피할 수 없는 멸망했다는 분위기를 깨달았고, 그나마 일진회 식으로 다 뒤엎자는 합방을 막고 기존 한국 기득권층(황실, 대신, etc)을 지키기 위해서는 자기가 직접 나라를 파는 것밖에 길이 없다고 생각하게 된다. 

결과적으로는 송병준과 사이좋게 매국경쟁. 결국 일본이 병탄의 그물을 슬슬 치려고 할까 하는 사이 물고기(대한제국 총리대신 이완용)가 먼저 뛰어든 꼴이 되어, 1910년 8월 22일 경술국치가 이루어지고 1주일 뒤 8월 29일 공표. 공식적으로 대한제국이 멸망하였다.

아무튼지간에 나라가 망한 것은 마찬가지이지만, 결과적으로는 이완용의 구상에 가깝게 온건한(?) 병탄이 이루어졌으므로, 급진적(?)이었던 일진회는 실컷 이용만 당하다가 '토사구팽'당한 꼴이 되었다.

일제는 병탄 직후 일진회에게 해산을 명령했고, 실제로 강제로 그렇게 되었다. 물론 일진회가 그간 5년여에 걸쳐 일제로부터 많은 활동비를 받아처먹었으니 보상은 이미 충분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당장 1910년의 시점에 일진회는 회원들의 대규모 만주이주를 구상하고 있었는데 그 이주자금을 호쾌히 약속했던 일제가 병탄 후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는 것이 문제였다. 

일진회가 만주로 이주하고자 한 이유는 회원들이, 대한제국 막판에 하도 친일짓을 하고 다녔던 고로 원래 살던 집들이 테러당해서 이기도 하고, 만주로 넘어가서 일-한-만을 관통하는 대동아공영권을 완성하려는 이상이 있어서이기도 했다. 

아무튼 일본은 일진회 명목으로는 돈 한 푼도 주지 않았고, 송병준에게 자작 작위를, 이용구에게는 작위 없이 10만원을 던져주고 끝이었는데, 이용구가 머리를 아무리 굴려봐도 자기가 10만원 받은 것을 100만 일진회원에게 나눠준대봤자 수지가 안맞았기 때문에 아예 안 받고 거절했다고 한다. 이후 송병준의 경우는 나름 친일경력을 발판삼아 재빨리 주류사회로 발돋움한것 같지만, 일진회원(=시천교도)들의 실질적 책임자이자 교주였던 이용구는 자기가 일제에 속고 배신당한 덕택에 2천만 민중을 일본의 2류국민으로 전락시켰다는 자괴감 속에 중병을 앓다가 1912년 일본 스마에서 사망한다. 

이후 시천교는 송병준계와 김연국계가 갈등하다가, 김연국이 교주가 되어서 교도들을 싹 데리고 상제교(=천진교)로 독립하는 바람에, 공식적으로 일진회나 시천교라고 하는 세력은 사라지게 되었다.

평가

이들의 평가는 말할 가치가 없다. 심지어 일본학계에서조차도 정론은 굉장히 부정적으로 평가한다. 그러나 일부 극우파에 해당하는 단체인 (우치다 료헤이를 계승하는) 흑룡회 세력은 이토 히로부미와 이완용을 부정하고 송병준, 이용구, 그리고 물론 우치다 료헤이를 높이 평가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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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룡회에 속한 일본인들 대다수가 일진회 고문에 있었고, 배후에서 조종했던 인간들인데 당연한거 아닌가?) 이 계열에 해당하는 사람으로서, 이용구의 아들인 오히가시 쿠니오(이석규, 1909년생)는 이용구를 변명하는 전기문《이용구의 생애》를 썼다. 이 책은 송병준을 까고 이용구가 훌륭했다고 주장했지만, 어차피 친일파인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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