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1. 함흥차사를 조선 태조 이성계가 죽였다는 이야기가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니며, 적어도 《조선왕조실록》에서 차사로 보내진 사람을 이성계가 죽였다는 기록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차사를 태종 이방원이 보내지 않아 섭섭하다고까지 이성계는 말하였다. 함흥차사 가운데 차사의 직분을 수행하다 죽은 사람은 박순, 송류(宋琉)이며, 모두 조사의의 난 때 조사의 일파를 설득하러 갔다가 그들에게 붙들려 죽었다.
2. 흔히 남대문은 일제가 붙인 명칭으로 알려져 있지만, 숭례문을 지을 때부터 불린 이름이다.
3. 흔히 세종(1397년생)은 태종의 셋째 아들이라고 말하지만, 이것은 엄밀히 말해 틀리다. 태종의 아들 가운데 장남, 차남, 삼남은 모두 어려서 죽고, 양녕대군은 1394년, 경녕군은 1395년, 효령대군은 1396년에 태어났고, 세종은 그 다음에 태어났다. 정확히 말해 세종은 태종의 일곱째 아들인 동시에 태종과 원경왕후의 여섯째 아들이다.
4. 독도라는 이름은 조선 세종 때부터 있던 말이 아니다. 적어도 《세종실록》〈지리지〉에는 독도라는 말이 나타나 있지 않으며, 우산도(于山島)라는 이름으로 나와 있다. 노래 〈독도는 우리 땅〉의 가사는 실제와는 다르다.
5. 흔히 황희는 청백리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와 대조적으로 《조선왕조실록》에는 그가 부정을 저지른 일이 기록되어 있다. 예컨대 세종 12년(1430년) 음력 11월 24일 태석균(太石鈞)이 제주감목관(濟州監牧官)으로 있었을 때 말 천 마리가 떼죽음을 당하자 이를 무마하기 위해서 황희에게 뇌물을 바쳤으며, 그로 말미암아 황희는 사헌부의 탄핵을 받게 된 일이 그것이다.
6. 사육신은 보통 하위지, 성삼문, 유응부, 박팽년, 이개, 유성원을 떠올리지만, 사실 여기에는 유응부가 아니라 백촌 김문기가 들어가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사육신은, 단종 복귀 운동에 가담한 사람 중 중요한 위치에 있던 사람 6명을 가리키며, 1977년 국사편찬위원회는 유응부랑 김문기를 둘다 사육신에 넣었다.
6. 흔히들 홍길동은 홍길동전에만 등장하는 상상의 인물로 많이 알고 있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다. 《연산군 일기》에 나타난 홍길동(洪吉同)은 조선 연산군 시대 큰 도적이라고 불린 강도 무리의 수괴(首傀)이며, 실존 인물이다. 즉, 지금으로 말하면 범죄단체의 두목 정도였다. 후대에 홍길동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허균이 《홍길동전(洪吉童傳)》을 지었는데, 그 주인공은 홍길동(洪吉童)으로 실존 인물이 아니다. 사람들은 이 둘을 자주 착각하지만 서로 다른 존재이다.
7. 조선 후기에 당쟁이 격심하여 셀 수 없이 많은 사람이 정치적 이유로 죽었다고 알려져 있으나, 사실 무근이다. 정치적 이유로 당쟁이 격심했던 기간(조선 숙종 때부터 영조 초기)인 약 50년 동안 79명이 죽었을 뿐이며, 다른 나라의 정변보다 훨씬 적은 수가 죽었다.
8. 〈대동여지도〉를 만든 김정호가 옥사했다는 말이 조선총독부에서 발간한 《조선어독본(朝鮮語讀本)》제5권 4과에서 처음 나왔지만, 사실과는 다르다. 1905년 이전에 편찬된, 김정호에 대해 기록한 문헌에는 김정호가 옥에 갇혔다는 기록조차 없다.
9. 한국에서 세워진 최초의 근대적인 병원은 1885년에 의사 앨런에게 세우게 한 광혜원으로 알려져 있으나, 실제로는 1877년 1월 일본이 해군 군의였던 야하라를 파견하여 부산에 세운 제생의원(濟生醫院)이다. 광혜원은 한국인이 한국에서 세운 최초의 근대적인 병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