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과 비교적 그리 멀지 않은 근세시기인 청나라시기까지도,
범 몽골 세력의 잔영이 끈질기게 광범위한 지역에까지 남아 있었다는 점입니다.
일단 후금의 부상과 대청제국의 성립자체가 만주북서부-내몽골 일대의 몽골부족들이
대거 후금~청의 판도에 포함됨으로 가속화되었으며....
이후 중원을 공략하고 대청제국을 유지하는데도 몽골인들 또한 중요한 일익을 담당했습니다.
티베트불교의 수장인 달라이라마-판첸라마를 제국의 '국사'급으로 대우하고
티베트를 청의 판도에 들어오게 만든 강한 동기부여 또한 그 근본배경을 살펴보면
몽골인들 대부분이 티베트불교를 믿었기 때문입니다.
청나라 만주족입장에서는 티베트불교를 우대함으로 몽골인들의 환심을 사는 것은 물론
장기적으로는 티베트불교를 몽골인들의 강한 야성과 무력을 약화시키는 도구로 활용했습니다.
(가가호호마다 한 명의 전사를 배출하는 분위기에서 한 명의 승려를 배출하는 분위기로
180도 전환되었으니.....)
또한 박지원의 열하일기나 서호수의 연행기에서도 분석했듯이... 청나라황제가 북경에서 수 백km
북쪽에 위치한(몽골지역에 보다 가까운) 열하에 머무는 것 또한 몽골부족들을 위무하고 또한 경계하는
양면의 목적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신강지역이 청나라-중국의 판도에 들어오게 된 배경 또한 위의 호톤노르 전투가 상징하듯이
강희제-옹정제-건륭제를 거치며 이 지역을 근거지로 한 몽골 오이라트계 부족인 준가르부를
평정하고나서 부터입니다. 청나라는 준가르부가 이후 다시 일어서지 못하게 아예 부족절멸 수준의
대학살을 감행하여 신강일대의 무려 60만에 달하는 준가르부와 동조하는 여타 소수민족들의
씨를 말려버렸습니다.
준가르부를 평정하는 과정에서도 이미 기존 청의 판도에 들어온 할하몽골부족(대체로 오늘날
몽골인민공화국)들이 결정적인 기여를 했음은 물론입니다.
따라서 18세기 중반까지도 몽골계가 강한 세력을 지니고 있었던 신강지역이
오늘날 몽골계보다는 다소 이국적으로 생긴 위구르를 포함한 투르크계가 다수를 점하게 된
계기가 준가르부의 절멸 이후부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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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결론적으로 청나라-그리고 현대중국이 명나라 시기와 비교하여
내몽골-신강-티벳이 새로이 판도에 편입되면서 영토면적이 배 이상 늘어난 근본배경에는
몽골-몽골계들이 필수적으로 깊게 관련되어 있었다는 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