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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4-11 23:21
[일본] 『양직공도』에 묘사된 왜국 사신의 복식에 대하여
 글쓴이 : history2
조회 : 1,143  

양직공도_왜인.png

위 사진은 북송대인 1077년에 모사된 양직공도의 일부이다. 양직공도6세기 경, 중국 남조의 국가 중 하나였던 양() 나라에서 제작한 것으로, 양나라를 찾아왔던 여러 외국 사신들의 모습을 그려놓은 후에 그 옆에 그 나라에 대한 간략한 정보를 써놓은 것이다. 현대에는 그 원본이 전하지 않으며, 다만 후대에 그려진 몇몇 모사본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양직공도_백제인.PNG


그림 속에 묘사된 백제 사신은 오늘날까지 회화를 통해 그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몇 되지 않는 백제인이기도 하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 그런데 백제국의 사신과 같은 화첩에 묘사된 왜국 사신의 모습이 유독 눈에 띈다. 그 이유는 아무래도 그림 속에 묘사된 왜국 사신의 옷차람이 그야말로 초라하다 못해 파격적인 행색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옷은 천을 몸에 동여매서 벌거벗은 몸을 가리는 수준에 가깝고, 신발도 신지 않은 맨발을 하고 있어서, 제대로 된 복식을 갖추고 있는 백제 사신의 모습과 강렬한 대조를 이룬다.

 

이와 비슷한 묘사는 바로 아래에서 소개할 그림에서도 볼 수 있다.

 

당염립본왕회도.jpg

                      당염립본왕회도에 묘사된 고구려·백제·신라·왜 사신의 모습


위 사진도 마찬가지로 양직공도모사본의 일부로, 당나라 때의 화가인 염립본이 모사한 것으로 알려져 있어 이른바 당염립본왕회도라 불린다. 이 그림에서 묘사된 왜국 사신의 모습은 이미 위에서 소개한 그림과 마찬가지로, 몸에 천으로 대충 두른 옷과 맨발 차림을 하고 있어 그 행색에 별다른 차이가 없는 편으로, 화려한 복식을 갖춘 삼국의 사신들에 비교해보면 굉장히 초라해보일 지경이다. 이와 같은 극단적인 옷차림의 대조는 지금까지도 한국의 네티즌들 사이에서 종종 회자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와 같이 그림 속에서 묘사된 6세기경 왜인들의 행색이 실제로 확인되는 당시 왜인들의 복식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는 점이다. 비록 당시 왜인들의 모습을 묘사한 회화자료는 거의 전하고 있지는 않지만, 그 대략적인 얼개를 추측해볼만한 유물은 존재한다. 바로 고대 일본인들의 모습을 묘사한 고훈시대의 하니와(埴輪)가 대표적이다. 하니와는 일본 고훈시대를 대표하는 유물 중 하나로, 주로 고분에서 발굴되는 일종의 흙인형이며, 사람과 동물의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 많다.


일본_고분시대_하니와2.jpg


이 하니와는 6세기 경 일본의 무인(武人)을 묘사한 것으로, 일본 군마현의 오타시(太田市) 이즈카정(飯塚町)에서 출토된 것이다. 이 인물은 보다시피 갑주로 무장하고 있으며, 하체에는 통이 큰 바지를 입고 있는데, 다리의 중간 부분을 끈으로 묶어 놓은 모습을 볼 수 있다. 몸에 천을 둘러 매기만 한 양직공도모사본에 묘사된 왜인들과 비교해보면, 실제 고훈시대 일본인의 복식과는 큰 차이가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일본_고분시대_하니와4.png


이 하니와 또한 마찬가지로 6세기 경의 것으로, 군마현 오타시 유라정(由良町)에 위치한 요쓰즈카 무덤에서 발굴된 것이다. 이 하니와는 6세기 경에 그 일대를 거느린 유력자의 모습을 묘사한 것으로 보인다. 이 하니와는 둥근 챙이 달린 모자를 쓰고 귀걸이를 하고 있으며, 또한 머리를 리본으로 묶어 장식한 후에 양쪽으로 늘어뜨리는 고대 일본 귀족의 헤어스타일인 미즈라(美豆良)를 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하의는 위에서 소개한 무인의 하니와와 크게 차이는 없으며, 리본이 달린 상의와 허리띠와 칼집, 뾰족한 신발 등을 착용하고 있다. 하니와를 통해 추론할 수 있는 고훈시대 일본인의 전체적인 옷차림을 보면 비록 중국이나 삼국과 같은 저고리·바지로 이루어진 복식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편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양직공도묘사도에 보이는 왜인처럼 헐벗은 몸을 대충 천으로 둘러매고 다니는 것과는 분명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볼 때에 양직공도에 묘사된 왜인들의 모습은 당시 양나라에서 이를 실제로 보고 그렸던 것 같지는 않다. 같은 6세기 경의 유물인 하니와에 묘사된 고대 일본인들의 복식과 비교해 볼 때에 상식적으로 너무 큰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특히 주목해야 할 점은, 양나라 대에는 왜국과 직접적인 교류가 거의 없었다는 점이다. 고대의 일본은 중국과는 국경을 접하지 않고 먼 동쪽 바다 한 가운데에 위치하고 있던 지리적인 요인 탓에 예로부터 중국과의 교류가 그리 잦은 편이 아니었다.


후한서에 따르면, 왜노국(倭奴國)의 왕이 건무중원 2(서기 57)에 광무제에게 조공하여 인장을 하사받은 이래로 한동안 제대로 된 교류가 없었으며, 꽤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엔 경초 2(238)에 야마타이국의 여왕인 히미코가 위나라에 사신을 보내 "친위왜왕"이라는 칭호를 받았다. 그러다가 히미코가 죽은 이후로 중국과 왜의 교류는 다시 단절되었고, 200년이 흐른 영초 2(421) 경부터 왜왕인 찬····무 등이 5대에 걸쳐 중국 남조의 송나라에 사신을 보내왔으나, 승명 2(478) 이후로는 또다시 교류가 끊어졌다. 다시금 왜와 중국 간의 교류가 활성화된 것은 꽤 시간이 흐른 후인 수·당시대 때 부터였다.

 

이후에 중국 남조의 남제와 양에서 각기 왜왕에게 관작을 제수하였는데, 사실 이는 형식적인 의례에 그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역대 중국의 왕조들은 왜가 사신을 보내올 때 마다 이를 상세히 기록했는데, 이는 중국 황제의 권위와 교화가 바다 멀리에 있어 그 소식을 알 수 없는 왜국에까지 미치는 것으로 여겨 매우 상서롭게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양나라의 경우에는 왜국에서 사신을 보내왔다는 직접적인 기록이 전하는 것이 없으며, 다만 황제가 왜왕에게 관작을 제수함으로써 그 국제적인 영향력을 과시하고자 했을 뿐이었다.

 

 

 

양직공도에서 보이는 왜인들의 모습이 6세기 경의 고대 일본인들의 모습과 큰 차이를 보이는 것 또한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양나라에서는 형식적으로 왜왕에게 관작을 제수하였지만, 실제로 왜인들은 양나라에 사신을 보낸 일이 없었다. 그런데 양나라에 조공을 바친 나라들이 보내온 사신들의 모습을 화첩에 담아 황제의 권위를 과시하려는 마당에 왜에서 보내온 사신을 그리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므로, 아마도 그림을 그린 화공이 직접 본 일이 없었던 왜인의 모습을 상상해서 그려넣었을 것이다.


특히 양직공도에서 묘사된 왜인들의 모습은 3세기 경의 기록인 삼국지동이전에 묘사된 왜인들의 복식을 상당수 참고했을 것으로 보인다. 삼국지동이전 왜조에 따르면, 왜인들은 바느질을 하지 않고, 그 폭을 묶어서 결속하거나 홑이불처럼 지은 천에 머리를 내놓는 구멍을 뚫어서 옷을 지었다고 하였는데, 양직공도에 보이는 허술한 옷차림의 왜국 사신의 모습을 묘사할 때에 이 기록을 참고했던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출처] 양직공도에 묘사된 왜국 사신의 복식에 대하여(지사지도님 블로그 참조)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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