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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4-06 08:15
[중국] 북방유목 민족과 농경지나(중국)과의 관계
 글쓴이 : history2
조회 : 1,948  

지나와 북방초원유목민족과의 관계는, 고대 중국역사에 영향을 미친 가장 큰 요소 중 하나였다. 이 관계를 이해해야 하는 것은, 쌍방의 관계가, 쌍방의 정치형태, 군사배치 그리고 재정구조를 만들어냈고, 양 농경과 유목 제국의 운명에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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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지금까지, 쌍방이 각자에게 미친 정치적 영향에 대하여 통일적이고 설득력있는 해석을 이론적으로 논증한 경우는 드물다.

 

그러나 보스턴대학의 인류학자 토마스 바필드가 1992년에 발표한 <위험한 변방>이라는 책은 이 주제에 관련한 중요한 사실을 제시한다.

바필드는 먼저, 통일되고 강대한 지나제국이 존재할 때 반드시, 동시에 통일되고 강력한 유목제국이 있었다는 것이다.

 

, 몽골이라는 특수한 사례를 제외하면, 중원을 정복한 것은 항상 만주에서 온 퉁구스어를 하는 어업수렵유목농경의 혼합민족이었고, 몽골초원에서 온 순수한 유목민족이 아니었다. 이러한 경향은 특히 초원과 지나제국이 모두 쇠퇴하고 와해되는 시기에 발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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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하여, 바필드의 해석은 유목민족은 권력의 개인화 경향(한명의 영웅에 의지하는)과 승계권의 불안정성이 있어, 장기간 정치적인 통일을 유지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는 점을 제사한다.

, 지나의 통일은, 동시에 유목인에게도 장기적이고 통일적인 유목제국을 형성한다는 것이다.

 

이에대한 첫번째 사례는, 초원제국 흉노는 바로 진나라가 통일제국을 건립한 후에 나타난다. 그 수명도 바로 진,한의 강성시기와 일치한다. 두번째유사한 장면은 돌궐과 대당제국의 관계에서도 다시 나타난다.

약탈 그리고 약탈위협에 기한 재물강요는, 쌍방이 모두 분열상태일는 기회주의적인 약탈이 우선되고, 지나왕조가 통일되어 있을 때는 유목제국도 통일을 이루어, 정착제국을 이상적인 재물 강요대상으로 만드려 한다.

 

이런 유목민족의 공갈과 위협을 동반한약탈은 통상적으로 화친이라는 겉옷을 입게 된다. 그리고 점차 지나의 유목민족에 대한 정기적인 공납으로 발전한다.

, 한 유목부락이 지나제국을 설득하여 그들이 변방을 약탈하지 않는 댓가로 재물을 바치게 하려면, 그 자신이 초원에서 충분한 권위를 가져야 했다.

그렇게 하여야만, 다른 부락의 지나에 대한 약탈행위를 효과적으로 제지할 수 있다. 일단 지나로 부터, 정기적인 봉공을 받는다면, 이 봉공관계는 다시 그의 초원에서의 지위를 강화시킨다. 결국 그가 초원을 통일하여 유목제국을 만들도록 하는 것을 도와준다.

 

이러한 쌍방관계가 가져오는 거대한 이익으로 인하여 유목민족은 여러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지나제국을 격패시키는데 열중하지 않았다.

농경지구를 통치하는데에는 더더욱 흥미가 없었다.

 

이 관계을 가장 잘 깨달은 것은 위그르족 이었다.

그들은 전력을 다하여 중원제국의 반란이나 침입을 막도록 도와주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단 지나가 혼란에 빠지면, 자신들은 거액을 뜯어갈 편리한 대상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진정 재미있는 것은 지나를 정복할 능력을 가진 곳은 만주의 퉁구스부락이라는 것이다. 선비, 거란에서 여진까지. 만주는 생태의 다양성으로 인하여, 장기간 어업수렵, 유목에서 농경까지 각양각색의 사회형태가 존재했다. 거기에서 굴기한 국가는 그 문명과 제도가 지나국가처럼 성숙되지는 않았지만, 서로 다른 사회형태간의 외교관계와 통치문제 및 조직능력등에서 장점이 있었다. 정복의 기회가 나타나면, 그들은 조직적으로 준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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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요동의 한인농경지구는 그들로 하여금 산해관을 넘어서 중원요지를 정복하기 전에, 그들의 이원적통치모델을 충분히 실험할 수 있게 해준다. 바필드씨의 삼각관계이론에 대하여, 징기스칸이 창건한 몽골제국은 현저한 예외이다. 이 예외는 또 다른 예외를 불러온다.

 

명왕조는 한왕조이래, 유목민족에 대해 봉공제도를 거절한 중원제국이다. 한때 변방무역도 전면 금지한다. 이 선택은 바로 몽골정복으로, 중국이 경험한 고통스러운 기억에 대한 반작용이다.

명왕조는 이로 인하여 거대한 댓가를 치른다. 반드시 북방의 변방에 대군을 주둔시켜야 했다. 이 군대가 황제의 통제를 벗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수도를 북경으로 천도한다. 이를 위하여 거대한 조운의 댓가를 치러야 했다. 또한 권력중심과 문화경제중심이 장기간 분리됨으로 인한 여러가지 곤란을 겪게 된다. 그러나, 이런 댓가는 수확이 없었던 것이 아니다. 봉공의 지지를 잃은 후, 몽골초원에서 다시는 분열상태에서 다시 통일을 이루지 못하게 된다.

 

위구르와 당나라) 위구르 제국에게 심각한 문제가 된 것은, 안사의 난 이전까지 조금 강력한 유목 민족 수준에 불과했던 그들이 안사의 난을 통해 당으로 부터 얻은 막대한 물자(주로 비단)을 마니교도나 소그드 상인을 통해 서역으로 보내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막대한 교역 이익을 바탕으로 제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 위구르 제국 입장에서 당나라에서 유입되는 물자는 그들이 초원의 패권을 잡을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재원이며, 단순히 당나라를 공격해 봐야 필요한 물자를 얻을 수 없으면 아무 의미가 없었다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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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당나라로 부터 물자 유입이 끊긴 위구르 제국은 초원에서의 패권을 유지할 물자를 확보하기 위해 주변 세력들을 족치기 시작하는데, 자잘한 세력들을 족쳐봐야 당나라만큼 막대한 물자를 제공할 수 있는 세력은 존재하지 않았고, 위구르 제국의 막대한 요구에 견디다 못한 온갖 세력의 반발을 경험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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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나 강하게 반발했던 세력이 훗날 위구르 제국을 멸망시키는 키르기스족. 이와 같은 사태를 통해 백날 위협만 하는 것은 자신들에게 독으로 돌아옴을 깨달은 위구르 제국은 그간의 강압적 자세를 버리고 당시 군사력이 필요했던 당나라에게 군사력을 제공하며 자신들에게 꼭 필요한 당의 비단을 얻는 상부상조 전략으로 전환하게 되고, 이후 당과 위구르 제국은 종종 반목하면서도 기본적으로 협력 관계에 접어들게 된다.

 

이후 과거 위구르 제국을 마구 비난하던 당나라가 위구르 제국에 대해 "위구르는 나라에 어려움을 구해준 공이 있고, 일찍이 조금의 땅도 침탈하지 않았는데, 어찌 후하지 않겠는가?"라는 말을 할 정도로 두 나라 사이의 관계는 개선됐으며, 위구르 제국 역시 제국이 부를 획득하는데 반드시 필요한 서역 경영의 라이벌인 토번이 당을 공격할 기미를 보이자 당에게 군사지원을 약속하고 실제로 움직였을 정도였다.

 

이런 당과의 협력 관계를 바탕으로 토번과 충돌하던 당이 최종적으로 서역 경영을 포기하던 8세기 말 ~ 9세기 초엽 무렵 위구르 제국은 이전까지 당이 운용하고 있던 서역 영토를 인수하며 더욱 많은 부를 축적할 수 있는 기회를 잡았고, 자신들에게 적대적인 토번을 견제한 당이 토번이 장악한 영토를 피해 협력관계에 있는 위구르 제국이 장악한 영토만을 이용해 서역 교역에 나서려는 시도를 하자 최대의 번영기를 누리게 된다. 당나라와의 친선관계를 통해 얻은 막대한 부를 바탕으로 주변 세력들을 포섭한 위구르 제국은 결국 짧으나마 지긋지긋할 정도로 충돌하던 키르기스족마저 완전히 제압하는데 성공한다.

 

이 과정에서 토번에게 군사적으로 패하기도 하나, 당과의 협력관계를 통해 확보한 교역루트에서 나오는 막대한 이익을 바탕으로 더한 번영을 누린다. 결국 당과의 협력정책은 라이벌 토번을 고립시키고 번영을 누릴 수 있게 된 신의 한 수였던 것이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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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story2 18-04-06 08:39
   
북방제국을 처음 성립한 흉노가 탄생하게 된 게, 몽염의 오르도스 점령이라는 이야기도 바필드가 주장했습니다..서양인의 관점이니 우리가 바라보는 것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history2 18-04-06 08:41
   
되도록 원 저자의 생각을 그대로 옮기느라, 좀 내용이 실제와 안맞는 부분도 있습니다. 근대 어느정도는 또 검토할 부분이 있다고도 느낍니다. 특히 위그루 부분은 참 신선했습니다...
history2 18-04-06 08:45
   
동호에서 선비, 오환, 거란,유연 이 나왔으니 이들이 퉁구스는 맞겟지요? 그리고 실위에서 몽골이 나았는데 이들도 퉁구스라고 해야 하는것 아닌지 하는 의문이 있네요(서양학자라 몰랐나?) 또, 돌궐, 위구르는 투르크가 맞는것 같구요....흉노는 투르크계 라고도 하는데, 좀 정체성을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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