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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4-02 16:30
[일본] 731부대의 진실(1)
 글쓴이 : history2
조회 : 1,9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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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시이 시로 중장은 키가 180cm나 되는 거인이었으며 교토제국대학 의학부 전체수석을 할 만큼 뛰어난 두뇌의 소유자이다. 또한 시골에서 농사짓던 형제들을 불러다 자신의 부대의 고등관으로 복무시켰으며, 조카 이시이 나가데에게는 대위의 계급으로서 판임관의 신분을 부여하고 마루타를 공급하는 부서의 총책임자로 임명했다. 우리가 아는 병약한 군의관의 모습이 아닌 이시이 시로 그는 괴물이었다.

 

1) 이시이 시로의 회고: 이시이 시로는 195512월 교토 대학 때의 지도교수였던 기요노 겐지의 장례식장에서 이시이 기관의 설립되기까지의 경위와 규모, 목적 등에 대해 술회하였다

 

이시이 시로의 육성: 그래서 육군이 여러 차례 회의한 결과 결정하여 기온의 변화, 환경이 다르므로··· 하나는 만주의 북단으로 가면 좋겠다는 것이어서 결국 연구소를 그곳에 두게 되었던 겁니다. 그리고 계속 발전하여 우선 전쟁터가 4천 킬로미터나 넓어져··· 1년 내내 동시에 계속 전쟁이 일어났기 때문에 그에 대한 대응책으로 우선 장병의 신체를 보호하고 사망률을 낮추려는 국가 백년의 계획을 세울 것을 정했습니다··· 그래서 우선 육군군의학교에 연구실을 만들었고 다음으로 만주는 하얼빈에··· 또 남지는 중산대학을 중심으로 그 외 수차 연구실을 만들어 실시하였고 결국 324개의 연구소를 만든 겁니다. 그 결과 염병 및 전염병 사망률이 낮아져 대장성이 매우 기뻐하여 그렇다면 계속할 수 있다는 결론이 났습니다. 그래서 하얼빈에 큰, 그러니까 마루 빌딩의 14배 정도의 연구소를 만들어 주었고 그 안에 전차도 있고 비행기도 있었습니다. 모든 종합대학에 연구소가 만들어지고 거기서 열심히 연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 때 선생님께서 가장 주력하신 것인 인적요소입니다. 각 대학에서 가장 우수한 교수 후보를 모아 주셔서 여기 계신 이시가와 교수, 그리고 도호쿠대학의 오카모토 교수 그 외 십여 명의 교수진이 있습니다. ···그리하여 마지막으로 대동아의 전면에 걸쳐 이 민족선 방어의 제1차 완성을 보게 되었습니다.··· 소련이 왔기 때문에, 패전 때문에 부대는 폭발하고 모두 태우지 않을 수 없었고 비운으로 끝난 것입니다.”

 


2) 이를 통해 정리해보면 대학 이상의 규모와 기동력을 가진 연구기관을 창설하여 운영하는 것이 그의 목적이었고 324개의 연구소를 갖추고 일본을 대표하는 의학자, 과학자들이 참가한 세계 최대의 생체실험센터를 만들었음을 알 수 있다. 패전으로 야망이 좌절되고 생체실험 등에 대한 것이 알려져 비판받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반성의 언급은 보이지 않고 오히려 패전으로 연구나 실험이 중단된 것에 대한 안타까움만 드러나 있다.

 


3) 731부대에는 일본의 최고학부를 졸업한 엘리트 의사나 과학자가 다수 있었고, 이들은 전쟁 후에 전범 기소를 받지 않은 채 각 대학으로 돌아가 일본 의학계의 중진으로 활동하였다. 특히 일본 녹십자 제약회사의 창시자는 시로의 최측근이었던 나이토 료이치이며, 그는 731부대장을 역임한 바 있는 기타노 세이지를 고문으로 두고 있어서, 731부대와 그 연속성을 찾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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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731부대가 행한 인체실험은 나치의 유태인 강제수용소에서 행해진 인체실험과 자주 비교되는데, 인체실험을 했다는 사실은 같으나 실험을 행한 주체는 차이가 있다. 731부대의 인체실험은 생화학전술의 효과적 운용을 목적으로 군 내에서 조직적으로 실시되었다. 반면 나치의 경우는 수용소 자체는 유태인의 근절을 목적으로 한 시설이었고, 실험도 독일인 의사의 개인적 연구 차원이라는 측면이 강하다. 731부대는 군 조직이고 도쿄의 방역연구소와 연계되어 정보를 공유했으며, 국가가 막대한 예산을 들여 진행했다는 점에서 매우 큰 차이가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5) 이시이 시로(石井四郞)1892625일 치바현(千葉縣)에서 태어났다. 그는 1920년 교토황실대학 의학부를 졸업한 후 1921년 군의관(소위)으로 황실친위대에 배치되었다. 젊은 시절 그는 극우주의자들의 반자본주의, 반부르주아, 반자유주의, 초국가사회주의 이념에 심취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세균학, 혈청학, 병리학, 예방의학 등에 관심을 가졌던 이시이는 우연히 한 군의관이 쓴 생물학전에 관한 보고서를 본 후 생물학무기(Biological Weapon, BW) 개발에 일생을 바치게 된다. 1925년 독가스와 생물학무기 사용을 금지한 제네바조약이 발효되어 있는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시이는 군 수뇌부로 하여금 생물학무기 개발에 나서도록 설득하였다. 일본의 생물학무기는 이시이를 빼고는 이야기하기 어려울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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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2년 이시이는 육군군의학교에 방역연구실을 개설하고 본격적인 생물학무기 연구개발에 착수하였다. 여기에서도 인간생체실험이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19897월 방역연구실 부지에서 약 100여구의 아시아계 외국인의 인골이 발견되었는데, 인골들은 인위적인 처리가 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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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인간이기를 포기한 그의 실험: 일본 내에서의 실험에 한계를 느낀 이시이는 보다 자유로운 실험장소로 만주를 선택했다. 그는 일본 정부와 군부의 적극적인 지원하에 하얼빈(哈爾濱) 시내에 백신을 연구하는 연구소를 세우고, 하얼빈 남동쪽 70킬로미터 떨어진 베이윈허(背蔭河)에 비밀실험시설을 만들었다.

 

베이윈허에서 이시이가 심혈을 기울인 분야는 탄저열, 비저, 그리고 페스트에 관한 연구였으며, 이와 관련하여 인간생체를 대상으로 한 실험이 자행되었다. 실험에 동원된 희생자들은 일본 헌병대에서 보내주는 사람들이었다. 중국인이 대부분이었지만 항일운동을 하다 체포된 한국인, 만주지역에 거주하던 러시아인, 몽골인도 포함되어 있었다.

 

193311월 일본 관동군 중장 엔도 사부로(遠藤三郞)는 베이윈허에서 직접 목격한 결과를 일기장에 썼다. 실험대상은 강도라고 불렸으며, 4차례 실험 모두 다른 사람들을 상대로 이루어졌다. 그 요지는 다음과 같다. “포스겐 가스를 주입하자 강도는 극심한 폐렴에 시달리긴 했지만 하루동안 살아 있었다. 강도에게 청산가리 15밀리그램을 주입하자 20분 후에 의식을 잃었다. 강도에게 2만 볼트를 흐르게 했지만 죽지 않아 독을 약간 주입했더니 죽었다. 5천 볼트를 몇 분 동안 계속해서 흐르게 하자 강도는 화염에 휩싸였다.”

 

동상에 관한 인간생체실험도 자행되었다. 실험대상들은 추운 날 저녁 11시에 밖에 끌려나와 차가운 물에 팔을 담근 다음 오랜 시간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물에 젖은 팔을 얼려야 했다. 때로는 옷을 전부 벗고 맨발로 얼어붙은 맨땅 위에 서 있어야 할 때도 있었다. 완전히 언 걸 확인하면 실험실로 데려가서 섭씨 5도의 물에 담근 다음 물의 온도를 서서히 높였다. 동상 치료에 적정한 물의 온도를 찾아내기 위해서였다. 1932년부터 1934년까지 관동군 부사령관을 지낸 오카무라 야스지(岡本寧次)는 상관에게 올린 보고서에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얼어붙은 사지를 녹이는 데 가장 좋은 치료법은 섭씨 37도의 물에 담그는 것입니다. 이 귀중한 자료는 생체실험에 쓰인 인간을 반복적으로 얼렸다 녹여본 결과 얻은 것입니다.”

 


7) 1935년에 콜레라가 발생하여 관동군 6천여 명이 사망하자 일본군은 천황 히로히토(裕仁)의 칙령으로 두 개의 부대를 만들었다.


a)하나는 이시이가 지휘하는 전염병 예방을 위한 수질 공급 및 정화부이다. 이 부대를 방역급수부라고도 하는데, 후에 731부대로 통칭되었다.


b)다른 하나는 와카마쓰 요지로가 지휘하는 관동군 말() 전염병 예방 수질 공급 분대이다. 이 부대를 군마방역창이라고도 하는데, 후에 100부대로 통칭되었다. 100부대는 731부대와 지휘체계가 달랐으나, 두 부대는 생물학무기 개발을 위해 협력하는 관계였다.

 

일본 관동군은 731부대뿐만 아니라 베이징(北京) 1855부대, 난징(南京) 1644부대, 광둥 8604 부대 등 여러 지역에 방역급수부를 설치하였으며, 점령지인 싱가포르에도 남방군 방역급수부를 만들었다. 이들은 모두 731부대와 긴밀한 협력관계를 유지하면서 인간생체실험을 하였다. 1998년에 난징 1644부대의 세균공장이 있었던 자리에서 인골 41구가 발견되었는데, 인골들은 검은색을 띠고 있었고 황산처리된 것으로 밝혀졌다. 유전자검사 결과 콜레라균 유전자가 확인되었고 세균 인체실험의 피해자라는 결론이 내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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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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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깃발 18-04-02 20:01
   
더러운 방숭이놈들
결승골 18-04-05 11:19
   
근대180이거인인가요?
history2 18-04-05 16:40
   
죄송요...제가 170이라
6시내고환 18-04-05 20:30
   
히로히토, 이 놈 다 전범 재판 받았어야했는데...진짜 731 관련 글만보면 손이 너무 떨리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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