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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4-02 11:31
[일본] 일본 최초이자 최후의 공화국 ... 에조공화국(1868~1869)
 글쓴이 : history2
조회 : 1,290  

1) 1868년에서 1869년까지 일본 홋카이도 일대에 존속한 정권이다. 일본 역사에서 등장한 최초이자 아직까지는 마지막인 공화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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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1867, 대정봉환으로 도쿠가와 막부가 막을 내리자 이에 불만을 품은 도쿠가와 막부 내 군인들이 일으킨 일종의 반란이었다.

도쿠가와 요시노부가 시즈오카로 낙향하는 것을 지켜본 도쿠가와 막부의 해군 부총재 에노모토 다케아키는 구 막부의 신하들을 보호하고 북방을 방어한다는 이유를 내세워 186889, 해군 기함 카이요마루를 비롯한 8척의 배를 이끌고 에도를 탈출했다

국장.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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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도중에 아이즈 전쟁에서 패한 a)전습대를 비롯, b)신선조와 c)창의대의 잔존세력들이 에노모토에게로 합류했고 이를 바탕으로 에노모토는 에조국 마츠마에 번을 침공한다. 당시 마츠마에 번주였던 마츠마에 노리히로가 급사하면서 그대로 마츠마에 번 전체를 정복한다.

이를 바탕으로 이들은 하코다테에 정청을 두게 된다. 이들은 스스로를 에조 공화국이라 칭한 건 아니었지만, 영국 공사관 서기관인 아담스가 하코다테 정청을 "공화국"이라 보고하면서 에조 공화국이라는 명칭이 생겨나게 되었다. 하지만 이들이 에조에 정식으로 나라를 세운 건 아니었기 때문에 "에조 도쿠가와 막부 무사대"라고 불러야 한다는 의견도 있긴 하다.



4) 1868114, 에노모토가 하코다테를 점령한 뒤에 영국과 프랑스의 공사를 태운 군함들이 하코다테를 방문했다. 이들은 에노모토와 회견을 가진 뒤, 다음과 같은 사항을 적은 각서를 보내왔다.


a)일본 국내 문제에 우리는 중립을 지킨다

b)교전 단체로서의 권리는 인정하지 않는다,

c)그러나 '사실상의 정권(Authorities De Facto)'으로는 인정한다.

라는 것이었다.



5) 이 '사실상의 정권'이란 말은 이후 에조공화국을 논할 때 정체성에 대한 근거로 제시되었다하지만 '사실상의 정권'이라는 말은 말장난에 불과했다.

사실 에노모토를 만나고 호감을 가진 영국과 프랑스 군함의 함장들이 본국의 훈령도 무시하고, 멋대로 쓴 것에 불과한 것이었다.

사실상의 정권이란 영국이 신정부만을 유일한 정권으로 인정하기 위한 구실이었다. 그러나 에노모토는 이 '사실상의 정권'이라는 말에서 국제법의 헛점을 찾아내고 이용하여 하테다코 정권을 교전단체로 인정하게 만든다.



6) 이후 125, 일본 최초의 선거(입찰)을 통한 정부 조직 구성이 이뤄졌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투표권은 에노모토를 따라온 군인들에게만 있었고 현지 주민들에겐 투표권이 주어지지 않았다그래서 사실상 요식 행위에 불과한 것이었다는 지적이 있기도 하다.

어쨌든 856명이 투표하여 156표를 받은 a) 에노모토가 총재(대통령)으로 임명되었고 b) 120표를 받은 마츠다이라 타로가 부총재가 되었다. 그리고 이후 득표순대로 주요 각료들을 선임했다.



7) 하지만 에조 공화국은 기반 자체가 빈약하다 보니 애초에 오래 갈 나라가 절대 아니었다. 당연히 일본 정부가 가만히 놔둘 리가 없어 즉시 진압군을 보내 공격에 나섰다정부군과의 전쟁으로 재정 상태가 악화되자 심지어는 매춘부들에게까지 세금을 징수하고, 관문을 설치해 통행세를 받으려 드는 등 현지 주민들을 동요하게 만드는 일들이 벌어졌고, 결국 현지 주민들이 에조공화국 에게 불만을 품고 은밀히 정부군을 돕는 일까지 생겨났다.



8) 이런 가운데 18681228, 사실상 이들의 핵심 전력이라 할 수 있는 군함 카이요마루가 풍랑으로 좌초, 침몰하고 말았다. 기다렸다는 듯이 프랑스는 그동안 판매를 유보하고 있던 최신예 군함들을 일본 정부 측에 팔았고, 해군 전력에서 에조 공화국보다 정부 측이 더 우세해지게 되었다.



9) 설상가상으로 서양 각국이 '일본은 오로지 덴노제를 시행하는 메이지 유신 정부가 정통'이라고 공언해버리면서 에조 공화국은 서양의 도움도 받을 수 없는 처지가 되는 그야말로 사면초가에 빠져 버렸다.

결국 정부군에게 밀리던 에조 공화국 측은 1869511, 최후의 결전에서 주력군이 궤멸당하자 517, 에노모토와 및 각료들이 에조 공화국의 최후 본진인 고료가쿠 성의 문을 열고 정부군에 항복, 5개월여의 역사를 마감하게 되었다.



10) 현재 에조 공화국의 수뇌부였던 고료가쿠는 하코다테를 대표하는 관광지로 각광받고 있다.


Fort Goryokaku Hakodate.png


에노모토는 반역죄로 감옥에 수감되었지만
1872년 석방된 뒤, 메이지 덴노 밑에서 각종 요직을 두루 거치고 자작 지위에까지 올랐다.


* 기타

에조 공화국의 주요 인사 중 한국사와 관련이 있는 인물이 하나 있는데, 바로 오오토리 케이스케(大鳥圭介)라는 사람이다. 에조 공화국에서는 육군 봉행(총사령관)을 지내며 하코다테 대사관의 프랑스군과 함께 하코다테 남부를 지킨 인물. 그러나 메이지 정부에 항복한 뒤 여러 직책을 거치다가 조선으로 온다. 이 사람이 바로 조선 주재 일본 공사였고 근현대사 관련 자료에서 '오토리 공사'라는 이름으로 자주 나타나는 그 사람이다.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날 때 군대를 이끌고 경복궁에 들어가 고종을 압박하기도 했으며, 갑오개혁 때에 큰 영향을 행사하기도 한 인물이다 그리고 이 오토리 케이스케의 후임으로 온 조선 주재 일본 공사가 바로 이노우에 가오루이며, 이어서 을미사변의 주역인 미우라 고로가 공사로 연이어 오게 된다.

 

국기.png

      에조 공화국의 국기라고 알려진 깃발인데, 실제로 쓰였는지는 불분명하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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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story2 18-04-02 13:31
   
에미시(일본어: 蝦夷) 또는 에비스(えびす) 또는 에조(えぞ)는 일본 혼슈의 간토 지방, 도호쿠 지방과 홋카이도 지역에 살면서 일본인(야마토 민족)에 의해 이민족시 되었던 민족집단을 일컫는 말이다. 시대에 따라 그 지칭범위가 다른데, 일반적으로 근세의 에조는 특히 아이누민족을 일컫는다. 에조는 일본 동부, 북부 지역 뿐만 아니라 쿠릴 열도, 사할린, 심지어는 캄차카 지방까지 정착해 살았다.
     
촐라롱콘 18-04-02 16:59
   
조선 숙종시기의 하급무관이었던 이지항이 부산에서 영덕을 향해 가다 동해상에서 폭풍을 만나

표류하여...... 북해도 아이누족들의 영역까지 흘러들어가 여러 날을 헤메다가 북해도 남단

마쓰마에번 소속 일본인들을 만나 구조되어 마쓰마에번-에도-오사카-대마도를 거쳐 부산으로

귀환했던 대략 10개월 간의 여정을 담은 [표주록]에 당시 이지항이 접촉했던 아이누족들에 대한
 
생활상이 담겨 있습니다.
history2 18-04-02 13:32
   
'와타리토우'(홋카이도 오시마 반도로 근세의 마쓰마에 번의 전신), '히노모토(日の本, 홋카이도 태평양측과 치시마. 근세의 히가시에조東蝦夷)', '가라코(唐子, 홋카이도 동해측과 가라후토. 근세의 니시에조西蝦夷)'로 나뉘어, 와타리토우는 카즈토와 언어가 서로 통해 혼슈와의 교역에 종사했다는 문헌(《스와대명신에코토바諏訪大明神繪詞》)이 남아 있다. 또한 가마쿠라 시대 츠가루 지방의 호족이었던 안도(安東) 집안이 바쿠후의 싯켄 호조(北條) 가문으로부터 에조간레이(蝦夷管領, 또는 에조다이칸蝦夷代官)에 임명되어 이들 세 종의 에조를 통괄하고 있었다는 기록도 있다.

무로마치 시대(15세기~16세기)에 이들 와타리토우를 통일하고 오시마 반도 남부의 영주로 성장한 카키자키(蠣崎) 집안은 도요토미 히데요시·도쿠가와 이에야스로부터 에조치의 지배 및 교역권을 공인받고 명실공히 안도 집안으로부터 독립했다. 에도 시대에 들어 카키자키 집안은 성을 마츠마에로 개명하고 다이묘의 반열에 들어, 와타리토우는 명확하게 카즈토로 여겨졌다.
     
촐라롱콘 18-04-02 17:09
   
우리의 조선후기에 해당하는 중국 청나라와 일본 에도막부 시기에.....

비록 간접교역형태이기는 하지만 만주족 - 흑룡강유역과 사할린 북부의 퉁구스계 소수민족 -

사할린남부와 북해도의 아이누족 - 마쓰마에번 등을 거치는 북방루트를 통해

궁극적으로는 청나라와 일본간의 간접교역루트가 유지되기도 했습니다.
history2 18-04-02 14:06
   
에조 공화국의 성립

혼슈에서 도쿠가와 막부가 신정부군에게 패배함에 따라 에노모토 다케아키는 막부 함대를 이끌고 프랑스 군사 관계자들과 함께 홋카이도로 달아났다. 이들은 홋카이도의 발전에 전념하고 독립국가 수립을 목표로 정부를 수립했다. 공식적으로 12월 25일에 에조 공화국을 건국했으며, 이는 일본 역사상 유일의 공화국이었다. 에조 공화국은 미국, 프랑스, 러시아등 하코다테에 있는 외국공관들에게 도움을 요청했으며 프랑스는 이에 화답했으나, 메이지 정부는 끝까지 에조 공화국을 부정했다. 초대 대통령 에노모토 다케아키는 홋카이도를 개발하여 자체적인 정권을 유지할 수 있도록 허락해 줄 것을 요청했으나, 이는 곧바로 메이지 정부의 국회에 의해 거절되었다.
history2 18-04-02 14:06
   
1868년 겨울 동안에 에조 공화국은 고료카쿠 요새를 필두로 하코다테의 남쪽 반도에 대한 방어를 강화했다. 군대는 프랑스와 에조 공화국의 공동지휘하에 조직되었다. 총사령관은 오토리 케이스케(大鳥圭介)였다. 이들은 군대를 4여단으로 나누어 각각 프랑스군 장교의 지휘를 받도록 했으며, 군대는 다시 8여단으로 나누어 에조 공화국 장교의 지휘를 받도록 했다.

결전과 항복

하코다테 해전
신정부군의 함대는 3월 20일에 미야코 항구에 도달하지만, 지원 함대가 도착하기까지 정박하고 있었다. 이때 에조 공화국은 신정부군의 군함인 코테츠(Kotetsu)를 포획하겠다는 대담한 계획을 세웠다. 기습 공격을 하기위해 신선조 사령관 히지카타 도시조의 주도로 세 척의 전함이 미야코로 보냈졌다. 그러나 이 계획은 열악한 날씨로 인해 에조측 전함에서 엔진 고장이 발생했고, 전함에 탑승해 있던 에조군에 대한 신정부군의 막강한 신무기로 결국 에조 공화국의 패배로 허무하게 끝났다.
history2 18-04-02 14:07
   
에조 공화국의 상황이 절망적이라는 것을 파악한 프랑스의 군사 고문관들은 하코다테 만에 주둔해 있던 프랑스 선박을 타고 도망쳤으며, 요코하마를 통해 프랑스로 수송되었다.

5월 13일, 신정부군의 참모 구로다 기요타카는 다카마쓰 료운(高松 凌雲)의 중개로 에노모토 다케아키에게 항복을 권고했다. 에노모토는 이에 응하지 않았지만, 회진(灰塵)되기에는 아까울 것으로 여긴 「만국해율전서」라는 책을 구로다 기요타카에게 전해 주었다. 이는 해사(海事)에 관한 국제법과 외교에 관한 책으로 에노모토 자신이 번역한 책이었다. 이를 본 구로다는 에노모토가 국제법에 정통(精通)하다는 것에 감명하였고, 그 후, 에노모토의 목숨을 구제 해줄 것에 분주했다.
history2 18-04-02 14:08
   
한편 벤텐 다이바는 신정부군의 함포 사격과 상륙 부대의 맹공에 잘 버티고 있었지만, 식량이 바닥나 5월 15일에 나가이 나오유키(永井尚志)를 비롯한 무리들이 신정부군에게 항복했다.

구로다는 「만국해율전서」의 답례로, 편지와 함께 술통 5통, 참치 5마리를 고료카쿠에 보내었다. 에노모토는 이 호의를 배수(拝受)하였고, 답례로 군사를 파견해 다음 날 아침 7시까지 휴전을 부탁했다. 신정부군은 그것을 인정하고 고료카쿠에 대한 총공격 개시의 일시를 통보했다. 휴전 동안에 에조 공화국 지도자들은 합의 후, 항복과 고료카쿠 개성이라는 결정을 내리게 된다. 에노모토는 패전의 책임과 패잔병들의 구명 탄원을 위해 자결하려다 우연히 근처를 지나가던 오쓰카 카쿠노죠우(大塚 霍之丞)에 의해 제지되었다.

5월 18일 새벽, 에노모토를 비롯한 간부들은 계획에 따라 출두하여 고료카쿠를 개성했다. 이 날 국권을 포기하였던 에조 공화국은 무장 해체도 완료했다. 이에 따라 하코다테 결전을 마지막으로 보신 전쟁은 종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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