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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4-01 18:50
[일본] 사무라이의 실체 혹은 추태
 글쓴이 : history2
조회 : 3,197  

さむら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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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봉건시대의 계급을 일컫는 말. 그 일컫는 범위와 위상을 생각하자면 유럽의 기사에 해당된다. 그들은 양민들보다 높은 신분으로서 칼을 차고다닐 권리를 가지고 있는 특권 계급을 의미한다.

 

전쟁에서 활약하는 무사(부시, 모노노후)와 일치하는 개념이 아니다. 문관도 사무라이를 자처하며 도를 차고 다녔다. 그런 면에서 무사(부시 武士)계급과 사무라이()는 구분해야 된다. 무로마치 시대에 무사(부시)는 귀족 계급이었고, 이들 귀족들을 시종드는 일종의 경호원 겸 군인 장교들이 사무라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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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국시대로 접어들면서 이들 무사 귀족 계급이 몰락하고, 하급계층들이 하극상을 일으키면서 다수의 평민 출신들이 무사 계급('센코쿠 다이묘')이 되었지만, 이들 대부분은 평민 출신이었다. 신분 체계가 혼란스러워지면서, 관리들을 칭하는 용어가 사무라이가 되었고, 전쟁을 업으로 삼는 무관들은 모노노후로 불렸다.

 

사무라이는 문관과 무관의 총칭이 된 것이 전국 시대의 상황이었다. 그리고 에도 시대에 들어서는 전쟁을 업으로 삼는 부시, 모노노후는 의미가 없어지고, 평민을 다스리는 지배계급 사무라이만 남게된다.

 

이들의 일대기를 다룬 것으로는 추신구라(忠臣藏)와 하가쿠레(葉隱) 이야기가 대내외적으로 특히 유명하다. 일본도와 화려하게 장식된 일본식 갑주 및 뿔 장식이 달린 투구는 사무라이를 상징하는 요소이기도 하다.

 

닌자와 함께 일본 문화의 상징으로 손꼽히는 존재이기도 하며, 흔히 서양의 관점에서 중국에 쿵푸가 있다면, 일본에는 이 사무라이가 있다고 한다.

 

일본에서도 전국시대를 그린 역사물이 늘어나고 관심이 증가하면서, 점차 모노노후와 사무라이를 분리해서 받아들이는 이들이 많아졌다.

전국 시대의 모노노후는 칼을 도구로 여기는 실용주의적 모습을 보여주는 반면, 에도시대의 사무라이는 칼을 명예로 여기고 목숨보다 소중히 여기는 형식주의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일본 역사에서 사무라이는 귀족이 왕을 제치고 중앙권력을 장악한 10세기 전후에 등장하였다. 항상 칼을 차고 다니는 이미지가 강하지만 헤이안 시대(794~1185)만 해도 사무라이는 승마와 활을 중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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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 나면 말에 올라 활을 쏘았고, 승부가 나지 않을 때에만 칼을 썼다.

사무라이들이 칼 두 자루를 갖고 다닌 것은 전국 다이묘(영주)들이 영토전쟁을 벌이던 센고쿠 시대(15~16세기).

 

불순물이 많은 모래 속 철(사철)을 주원료로 삼은 탓에 부러지기 쉬워서 실전용 칼 외에 비상용으로 한 자루를 더 휴대한 것이다. 평민도 사무라이가 될 수 있었으나 1592년 임진왜란을 일으킨 도요토미 히데요시 집권 이후에는 신분 이동이 제한된다.

 

이때부터 사무라이는 신분 대물림은 물론, 막대한 특권까지 누린다.

부녀자를 겁탈해도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은 것은 물론, 평민을 멋대로 죽일 수도 있었다.

일반인은 사무라이 비위를 거스르면 목숨을 부지하기 힘들다는 두려움에 허리를 연신 굽히며 살아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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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이 늘 웃으면서 친절을 과도하게 베푸는 습관은 이런 죽음 공포 때문에 생긴 것으로 보인다. 무소불위인 사무라이도 주군인 다이묘에게는 고양이 앞에 선 쥐와 같다.

다이묘가 홧김에 죽으라고 하면 죽는 시늉이라도 하는 게 아니라 실제로 할복을 한다.

 

이렇게라도 해서 충성심을 입증해야만 하사받은 농지와 사무라이 특권을 자식들에게 물려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전투에서 지거나 주군에게 밉보여 영지를 빼앗기면 가족 전체 밥줄이 끊겨 하루아침에 평민 신세가 된다.

 

사무라이는 낭인이 돼 굶주리고 헐벗어도 좀처럼 칼을 내려놓지 않는다.

농업이나 상업 등 다른 일자리를 찾지 않고 구걸로 연명하거나 전쟁 용병, 살인청부 등으로 생계를 이어간다. 전쟁터 등을 기웃거리다가 새로운 주군을 만나 공을 세우면 옛 지위를 되찾을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떠돌이 깡패로 살아가는 낭인은 일본 폭력조직 야쿠자의 전신이다. 임진왜란 이후 천하를 통일한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에도(도쿄)에 군사정권을 수립한 1603년 이후에는 사무라이 역할이 크게 달라진다. 장기간 평화가 유지되면서 경제가 성장하고 평민 지위가 향상되자 사무라이 위세는 상대적으로 위축된다.

 

기분 내키는 대로 사람을 살해하는 권리도 박탈당한다. 사무라이는 다이묘 밑에서 특정 지역을 다스리는 공무원 노릇을 한다.

무예는 꾸준히 수련하지만 전쟁할 일이 없어져 칼 솜씨는 크게 둔해진다.

현대인이 기억하는 멋진 사무라이 이미지는 에도 시대에 형성된다.

 

일본도를 옆구리에 차고 화려하게 장식된 갑옷과 투구를 착용한 모습이다.

군사정권을 무너뜨리고 정치·사회·경제 시스템을 서구식으로 바꾼 메이지 유신(1867) 체제에서는 사무라이가 사라진다. 총과 대포로 무장한 신식 군대에 맞설 능력이 없는 데다 군과 경찰을 제외한 민간인 칼 소지가 금지됐기 때문이다.

 

2004년 개봉된 영화 '라스트 사무라이'나 일본 만화 등에서는 사무라이가 국가와 주군을 위해 기꺼이 목숨 바치는 정의의 사도로 묘사된다명예를 중시한 나머지 할복도 서슴지 않는 지조 높은 무사로 미화되기도 한다.

 

그러나 실제 사무라이 모습은 그렇지 않았다. 오직 힘 있고 도움을 주는 사람에게만 의리를 지키고 충성했다.  강한 적을 만나면 목숨 걸고 끝까지 싸우는 게 아니라 일찌감치 투항하거나 주군을 배신하는 사례가 많았다.

 

맞대결을 선호한 미야모토 무사시(1584~1645)가 일본 최고 사무라이로 추앙받는 것은 배짱 있는 무사가 그만큼 없었다는 반증이다.  대다수 사무라이는 상대가 방심할 때 기습으로 죽이는 것을 선호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기는 게 중요했기 때문이다.

 

무릎을 꿇고 앉았다가 비호같이 칼을 빼 들어 찌르거나 베는 동작을 수시로 익히고 손자병법을 공부한 것도 선제공격 능력을 키우기 위해서다. 손 자병법 가운데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는 '지피지기 백전불태' 구절은 행동강령으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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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를 철저히 파악하고서 승산이 있다고 판단되면 선제공격을 거침없이 감행한 것이다.

명성황후 살해, 청일전쟁, 러일전쟁, 중일전쟁, 진주만 공습, 태평양전쟁 등은 하나같이 비겁한 기습공격이었다.

 

힘이 약한 곳을 선택해 집중적으로 때리는 것도 사무라이 특징이다.

약자를 떼 지어 괴롭히는 집단 따돌림(이지메)이 일본 사회에 만연한 것도 비열한 사무라이 전통과 무관하지 않다.

 

사무라이 정신으로 무장한 일본군이 국가와 민족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친다는 선전은 허구였다. 전쟁터에서 구슬처럼 부서진다는 옥쇄작전을 입버릇처럼 외쳤지만 1945년 일왕 항복 이후 자진해서 죽음을 택한 일본군 장교는 독일 나치 장교와 비슷했다고 한다.

 

소련 강제수용소에서는 비겁한 사무라이 실체가 그대로 드러난다. 포로가 된 일본 관동군 약 60만명은 목숨을 구걸하기 위해 소련에 앞다퉈 충성을 맹세한 것이다.

 

사무라이는커녕 시정잡배만도 못한 삼류 칼잡이가 그들의 본모습이었다.

가미카제를 강요한 도조 히데키 총리는 살아보겠다고 발버둥 치며 전쟁 책임을 천황 등에게 떠넘기는 추태를 보였다.

 

동부 헌병 사령관 오타니 게이지로는 가짜 유서를 남기고 자진으로 위장하고서 가족과 함께 지방으로 도주했다가 체포된다.

 

생체실험을 주도한 이시이 시로 731부대 사령관은 실험자료를 미국에 몽땅 넘겨주고서 처벌을 피하는 추악한 뒷거래를 한다.

 

일본인이 평소 친절하고 부드럽다가도 일단 국가 권위 아래 뭉치면 야수로 돌변하는 데는 비겁한 칼 문화의 영향이 크다. 아베 총리가 교전권을 부인하는 평화헌법 제9조를 바꾸려고 개헌 분위기를 꾸준히 조성하는 것은 이러한 국민성을 잘 알기 때문이다.

 

우리는 임진왜란이나 식민지배와 같은 참변을 다시 겪지 않으려면, 분노만으로는 안되고 일본의 숨겨진 웃음 속에 감춰진 섬뜩한 칼을 찾아내야 한다.

 

지금 중국은 동북공정으로, 일본은 평화헌법을 개정하겠다고 이래저래 동북아 정세를 묘하게 꼬고 있다. 결국 그 와중에 우리의 대외전략은 너무나 중요한 지경에 이르렀는데, 지난 5년을 포함하여, 지금까지도 제대로 된 외교 아젠다 하나 정하지 못하고, 상황에 그저 순간순간 위기에만 대응하는 전략만을 피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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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도우폰 18-04-01 19:17
   
왜 역사 상 최고의 검객으로 추앙받는 미야모도 무사시의 검법을 분석한 현대 왜인이 있는데...지금 검도 기준으로 2단~3단 사이라고....왜의 검도는 그냥 중국 무협지보다는 조금 더 사실적인 듯하지만...무사시를 포함하여 왜의 검도 역시 뻥이 심하기는 매일반 ^^
history2 18-04-01 19:28
   
음 미야모도 무사시도 그정도면 .......많이 슬프네요...일본도가 얼마나 엉망인지에 대한 유튜브 영상도 참 슬픈 눈으로 보았는데요
     
셀틱 18-04-01 22:31
   
미야모토 무사시에 대한 이야기는 하나의 헤프닝입니다.
미야모토 무사시 전설(?)은 그가 무자수행을 했다는 사실도 사실인지조차 명확하지가 않습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최인호 작가 소설을 보고 한국사를 공부했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죠.
"<소설> 미야모토 무사시"의 서문이나 책 추천사 역시, 무사시의 역사적 행적이 아니라,
개백정과 같던 미개한 주인공이 수행을 거쳐 인간완성에 이른다는, 진부하고 전형적인 성공 스토리의 전범을 만들어 일본인들의 마음속에 깊이 각인하게 된 데에 의의가 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무사시 이후 출판되는 거의 대부분의 저작물들이 이 무사시(소설)에서 만들어진 플롯을 따라가는 것을 보면 알 수가 있습니다.  비근한 예로, 일본의 다양한 분야의 성공 스토리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그들의 망가 문화인데, 이 망가, 특히 열혈소년물이라고 하는 것들의 플롯들이 이 무사시의 진부한 플롯을 벗어나지 않고 그대로 답습하게 됩니다.  왜냐구요? 무사시로 형성된 한 인간의 성공스토리에 대한 일본사람들의 신념이 그만큼 깊이 각인되었기 때문입니다.  최근에 이노우에 다케히코(슬램덩크 작가)가 미야모토 무사시의 이러한 플롯을 극명하게 강화하여 작화한 예가 "배가본드" 라는 작품입니다., 이 작가의 대표작이라고도 할 수 있는 "슬램덩크" 역시 이 플롯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죠. 주인공 사쿠라기(강백호)의 캐릭터가 전형적인 무사시의 캐릭터이고, 이 모습은 그대로 후속작 배가본드로 이어지게 됩니다. 아주 노골적이죠...)
촐라롱콘 18-04-01 20:04
   
[[소련 강제수용소에서는 비겁한 사무라이 실체가 그대로 드러난다.
포로가 된 일본 관동군 약 60만명은 목숨을 구걸하기 위해 소련에 앞다퉈 충성을 맹세한 것이다.
 
사무라이는커녕 시정잡배만도 못한 삼류 칼잡이가 그들의 본모습이었다.
가미카제를 강요한 도조 히데키 총리는 살아보겠다고 발버둥 치며 전쟁 책임을 천황 등에게 떠넘기는 추태를
보였다.
 
동부 헌병 사령관 오타니 게이지로는 가짜 유서를 남기고 자진으로 위장하고서 가족과 함께 지방으로
도주했다가 체포된다.

생체실험을 주도한 이시이 시로 731부대 사령관은 실험자료를 미국에 몽땅 넘겨주고서 처벌을 피하는
추악한 뒷거래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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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패망 이후 식민지와 점령지에서 철수하게 되는 일본인 민관군 어느 조직이나 계층을 막론하고....
패망 이전까지는 국가와 조직의 안위를 우선시하고 개인의 안위는 뒷전으로 여긴다는 일본인들의
그간의 이미지와는 180도 다르게...

그동안 식민지-점령지에서 축척했던 재산을 조금이라도 더 가지고 귀국하려는, 또한 남들은 잘못되도
자기 가족들만 무사히 귀국하면 된다라는 이기심이 극도로 만연했던 모습이 일본패망 이후
아시아-태평양 각지에서 일본으로 철수하던 일본인들에게서 볼 수 있는 일반적인 풍경들이었습니다.

더구나 소련의 일본에 대한 선전포고로 인해 고양이 앞에 놓인 생선과 같이 당장 소련군들에게 노출된
만주와 북한지역에서는.... 오히려 권력층이라 할 수 있는 고위급 관료와 장교들이 현지 일본민간인들에게는
소련의 침공사실을 숨기고.. 은밀히 권력계층들의 가족과 재산을 우선적으로 철수시키는데 급급하느라
수많은 대다수 일본민간인들과 하급병사들은 소련군 앞에 놓인 고기덩이 신세로 전락시켰습니다.

이는 남한 지역도 전혀 예외는 아니어서 히로히토의 공식항복선언 이전부터 총독부 고위관료들은
그들의 가족과 재산을 일본으로 빼돌리는데 우선적으로 몰두하였습니다.

심지어 조선총둑부의 최고수장인 아베총독의 아내와 손자 2명은 45년 8월 말 부산에서 80t짜리 배에다가
짐을 잔뜩 싣고 일본으로 달아나다가 폭풍을 만나 물건을 다 버린 뒤 겨우 부산으로 돌아온 해프닝을 연출,
재조선 일본인들의 반감을 샀습니다.

조선에서 철수하던 일본인 그룹들은 위의 사례처럼 오직 자기와 자기가족들만 살겠다고 수많은 일본인들의
재산과 안전을 내팽개친 마지막 총독인 아베 노부유키와 정무총감인 엔도 류사쿠를 포함한 총독부
고위관리들을 두고두고 원망했습니다. 

또한 총독과 정무총감이 치안유지권을 서둘러 여운형을 비롯한 조선인들에게 양도한 것이
재조선 일본인들이 재산의 대부분을 몰수당하고 무일푼으로 일본으로 귀국하게 되어 두고두고
고생을 자초하게 되었던 원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사정으로 아베와 엔도는 일본에서도 재조선 철수민 그룹으로부터 두고두고 따돌림을 당했던 것입이다.
.
.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패망 이후 수 십년이 지난 이후.....

울 나라에서 어느 미친 또라이가 유포시켰는지는 모르겠지만...

또한 이런 어설픈 또라이 논리에 부화뇌동하여 '아베총독의 마지막 저주'같은

말같지도 않은 유언비어가 넷상에서 아직까지도 떠돌아다니고 있으니....

오히려 울 나라의 일부 정신나간 미친 넘들이 저렇게 형펀없는 마지막 총독과 같은 일본인들을

오히려 무슨 대단한 존재인 양 띄워주고 있는 꼴이라니.....^^  정말 어이가 없어서 말이 안 나올 지경입니다!
history2 18-04-01 20:38
   
촐라롱콘 님의 지식의 경지는 참! .....댓글보고 항상 더 배우게 됩니다...재미있는 일화인데요....주제로 올려주시면 더 많은 공유가 될 듯 합니다...
6시내고환 18-04-05 23:07
   
사무라이는커녕 시정잡배만도 못한 삼류 칼잡이가 그들의 본모습이었다  펙트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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