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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3-31 17:36
[일본] 아베신조의 역사의식 비판 2
 글쓴이 : history2
조회 :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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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8월 자민당(自民黨)의 장기집권체제가 무너지고, 호소카와 모리히로(細川護熙, 1983-현재)를 수반으로 하는 연립정권이 발족하였다. 호소카와는 기자회견에서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각국을 침략한 사실을 인정하였다. 이에 위기감을 느낀 자민당은 같은 달 역사인식의 재조명을 목적으로 하는 역사검토위원회를 발족하였다


여기에 국회의원 105명이 연명하였는데, 후에 수상이 되는 하시모토 류타로(橋本龍太郞, 1937-2006)와 모리 요시로(森喜郞, 1937-현재) 등이 참가하였다.

사무국장 이타가키 마사시(板垣正)는 만주사변 당시 관동군 대령으로 근무했던 이타가키 세이시로(板垣征四郞, 1885-1948)의 아들이다. 이타가키 세이시로는 관동군 핵심참모로서 만주사변과 만주국 건설에 깊이 관여한 인물이다. 자민당 국회의원이었던 아베 신조도 여기에 위원으로 참가하였다.

이 위원회는 정기적으로 아시아 침략전쟁을 긍정하는 입장에 서있는 지식인들을 초청해서 연구회를 열었다. 위원회는 19958<대동아전쟁의 총괄>이란 책을 발간하였는데, 태평양전쟁은 침략전쟁이 아니라 아시아 제민족을 해방시키기 위한 전쟁이었으며, 난징대학살 같은 것은 없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입장에서 현행 역사교과서의 왜곡을 바로잡기 위해 새로운 역사교과서 전쟁을 개시한다고 선언했다. 이 위원회에 참가했던 젊은 국회의원들이 이 위원회를 계승하는 형태로 일본의 장래와 역사교육을 생각하는 젊은 의원들의 모임을 결성하였는데, 아베는 사무국장의 중책을 맡아 적극적인 활동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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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의 이러한 움직임에 호응하여 후지오카는 19951월에 자유주의사관연구회를 조직하였다. 여기에는 교수, 변호사, 기업인 등이 참가하고 있다. 이 연구회는 <회보(월간)>와 기관지 <근현대사의 수업 개혁(계간)>을 간행하였다. 나아가 산케이신문에 교과서가 가르쳐주지 않는 역사를 연재하여 제국주의적 식민지 지배와 침략전쟁을 긍정하는 견해를 전파하였다. 이 연구회는 19967월 종군위안부에 관한 기술을 중학교 교과서에서 삭제하라는 긴급호소문을 발표했다.


후지오카는 전기통신대학 교수 니시오 간지(西尾幹二)와 함께 새로운 역사를 만드는 모임(새역모)’을 만들기로 하고 199612창설에 임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성명은 중학교 교과서 7종의 근현대사 기술이 일본의 근현대사 전체를 범죄의 역사로 단죄하는 자학사관에 근거하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고 일본의 역사를 회복해야 한다고 호소하면서, 이를 위해 차세대들에게 자신있게 전해줄 수 있는 양식있는 역사교과서를 만들어 제공하기 위해 새역모를 만들게 되었다고 강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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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따라 19971월에 니시오를 회장으로 하는 시민단체 새역모가 출범하였다. 이들은 일본군 위안부(성노예)에 관한 증언은 모두 지어낸 것이며, 일본의 정신적 해체를 도모하려는 안팎의 반일세력들의 네트워크에 의해 준비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이들이 만든 역사교과서는 20014월 검증을 통과했다. 니시오는 황국사관에 근거한 <국민의 역사>라는 책으로 논란의 중심에 서있는 인물이다. 그는 한국사람들에게 보내는 편지라는 형태의 글에서


우리 일본인은 전후에 미국과 소련의 틈새에서 역사를 박탈당해왔다. 그 아픔을 한국사람들은 조금이라도 상상한 적이 있을까? ” “우리야말로 피해자다. 어째서 동정해주지 않는가?”라고 호소한 인물이다. 이상한 피해의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새역모에 참여한 주요인물로는 망언 제조기라고 할 수 있는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愼太郞) 전 도쿄도지사가 있으며, 일본 유수의 기업들이 새역모를 재정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일본의 장래와 역사교육을 생각하는 젊은 의원들의 모임소속 국회의원들은 새역모와 협력하여 역사교과서 개정운동을 전개하였으며, 새롭게 만든 역사교과서가 많은 학교에서 채택될 수 있도록 노력하였다. 사무국장이었던 아베는 이러한 움직임의 중심에 서서 자유주의사관 전파, 역사교과서 왜곡에 힘써온 인물이다.

 

아베는 1990년대에 힘을 얻게 된 자유주의사관에 깊이 경도되어 그 전파를 위해 적극적인 활동을 해왔다. 

그리고 침략전쟁을 정당화하고 미화하는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들고 배포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다. 아베의 역사인식은 일시적인 정치적 포퓰리즘에 기인한 것이 아니라, 그 뿌리가 깊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는 앞으로도 아베 내각이 존속되는 한 아베의 역사관련 행보는 멈추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동아시아의 평화와 협력체제 구축을 위해 대단히 우려되는 상황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아베의 개인적인 가계(家系)도 그의 역사인식에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보인다. 아베의 외조부(外祖父)는 기시 노부스케(岸信介, 1896-1987).

도쿄대학 법학부를 졸업한 기시는 상공성(商工省)에서 근무하다가 1936년 만주국으로 전보되었다. 그는 19393월 총무청 차장으로 승진하였는데, 총무청은 만주국에서 인사, 예산, 조달 등 핵심업무를 관장하는 실질적인 통치부서였다.

기시는 당시 관동군 참모장으로 있던 도조 히데키(東條英機, 1884-1948)와 친분을 쌓게 된다. 기시는 여기서 만주국 산업개발 5개 년계획을 실질적으로 지휘하였는데, 이는 만주국을 군수중공업화를 통해 일본의 전쟁 수행을 위한 병참기지로 만드는 일이었다.

기시는 1941년 도조 내각의 상공상(商工相)이 된다. 도조 내각이 194112월 진주만 공습을 결정함으로써 태평양전쟁이 발발하였다. 1944년 사이판이 함락된 후 내각 개편을 두고 기시와 도조가 대립하면서 도조 내각이 무너졌다. 기시는 실각한 후 고향인 야마구치현(山口縣)으로 돌아갔다.


기시는 패전 후 A급 전범 용의자로 체포되어 1945128일 스가모구치소에 수감되었다. 이때 고등학교 은사로부터 천고에 남을 이름을 애석해한다면 자결하라는 단가(短歌)를 받은 기시가 이름 대신 성전(聖戰)의 정당성을 만대에 전하리라라고 답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1948년 스가모구치소에서 출소한 기시는 공직에서 추방되자 사업가로 재기한다. 1952년 공직추방에서 풀려난 기시는 자주헌법 제정, 자주군비 확립, 자주외교 전개를 슬로건으로 일본재건연합을 결성하여 총선에 임하였으나 실패하였다.1953년 자유당 의원으로 당선되었으나, 당시 자유당을 이끌던 요시다 수상의 정책에 반대하다가 1954년 자유당에서 제명되었다. 제명된 기시는 하토야마 이치로(鳩山一郞, 1883-1959)와 함께 민주당을 만들었다. 그러나 사회당이 좌우 분열을 극복하고 통합되자, 위기위식을 느끼고 1955년 자유당과 합당하여 자유민주당(자민당)을 만들었다(55년 체제). 

기시는 1957년에 수상이 되었으나, 1960년 미일안보조약 개정에 대한 시민과 야당의 격렬한 반대의 여파로 수상직에서 물러났다.


기시는 자주헌법 제정, 자주군비 확립, 자주외교 전개를 목적으로 활동해 온 일본 극우세력의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기시는 평화헌법을 개정하여 자주적인 헌법을 새로 제정해야 비로소 점령정치의 굴욕을 씻을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기시는 정계에서 은퇴한 후에도 자주헌법 제정의 기수역할을 계속해서 맡았다. 기시가 1987년 사망하였을 때 아베는 33세였다. 기시의 정치적 신념이 외손자 아베 신조에게 충분히 전해졌을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아베의 성장배경과 활동경력에 비추어 볼 때 아베가 자신의 생각을 바꿀 가능성은 없을 것이다. 또한 아베가 물러난다 해도 제2, 3의 아베가 뒤를 이을 것이다. 일본과의 역사문제는 단거리경주가 아니라 마라톤경주와 같다. 하루이틀에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 먼저 역사문제에 대해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제국들과 공동으로 연구하는 작업을 시작하여야 할 것이다. 공동의 역사연구를 통해 일본 제국주의의 실상을 파헤치고 국제사회에 널리 알려야 한다. 역사를 왜곡하는 일본의 실상을 국제사회에 알려 아베 내각에 대한 국제적 비판여론을 제고시켜야 한다


또한 일본 내에는 극우세력의 움직임에 제동을 거는 양심세력들이 존재한다. 양식을 가지고 아베의 행보에 반대목소리를 내고 있는 지식인들과 시민단체들에게 힘을 실어주면서, 이들과의 연대를 통해 일본 내에서 아베를 비롯한 극우세력의 정치적 입지를 축소시켜 나가는 노력 또한 병행해야 할 것이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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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story2 18-04-01 21:30
   
일본에서 아베 수상의 장기집권에 가장 큰 도움을 준 계층은 바로 10, 20대 젊은층이다. 그 이유는 아베노믹스와 "동일 노동, 동일 임금"을 위시한 여러 중산층 위주의 경제정책이 크게 성공했고, 이에 대한 최대 수혜자가 10~20대 계층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저출산 고령화로 인해 연 150만명씩 은퇴하는데 반해 신규로 노동시장에 진입하는 청년층은 70만명 수준인 상황이라 일자리가 넘쳐나 아베의 장기집권에 득이 되는 상황이다. 그뿐만이 아니라 아베 정권은 연금 수령 연령을 상향하고 노인 복지 규모를 축소하는 등 비록 증세에는 적극적이나 노인층 부양으로 인한 재정 부담을 줄이기 위해 적극적이고, 당연히 젊은 계층이 좋아할 수밖에 없다

일본 야당의 상황도 이해를 할 필요가 있다. 일본에서 야당들은 현실 정치와 경제 상황과 괴리되어 '반대를 위한 반대' 또는 이상적인 정치 이념을 주장하는 등, 집권당인 자민당에 대한 효과적인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일자리 창출, 일본의 국제적 위상 회복, 불황 탈출 등 현실적인 정책을 제시하고 점진적으로 성과를 내고 있는 자민당과 아베 총리를 지지하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아베 총리는 방송 출연, SNS 이용 등을 통해 젊은 층과의 소통을 중시하는 모습을 보인다.
history2 18-04-01 21:49
   
아베가 보수이지만,,,이러한 동일 노동, 동일 임금이라는 측면은 저도 보수이지만, 반드시 우리나라에서도 정착이 되어야 할 과제 중 가장 시급한 문제라고 생각을 합니다.

이 문제가 해결되야....1)고용시장의 문제 2)저출산 등 현재 당면한 많은 문제가 봇물처럼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하며, 아베의 정책 중 그나마 본 받을 만 해서 적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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