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티
스포츠
토론장


HOME > 커뮤니티 > 동아시아 게시판
 
작성일 : 18-03-31 10:37
[일본] 일본경찰의 러시아황태자 테러사건(1891년) -오쓰사건
 글쓴이 : history2
조회 : 1,735  

3001.jpg

오쓰사건2.jpg

1891년 오쓰 사건은 일본의 이중적인 모습을 잘 보여주는 사건이다
.

 

당시 러시아 황태자 니콜라이 2세는 그해 5월 일본에서 칼부림을 당한다.

 

시가 현 오쓰 시에서 경찰관 쓰다 산조가 휘두른 칼에 머리를 다쳤다.


20170426090112253iwpi.jpg
                                              러시아 황태자를 공격한 '쓰다산조'순사 

일본 왕자가 안내하고 철통 같은 경호를 폈는데도 황태자는 속수무책이었다.

 

느긋하게 관광을 즐기다가 경호 경찰관이 허리에 찬 칼을 갑자기 뽑아 휘둘렀

 

기 때문이다.

 

황태자는 인력거에서 급히 뛰어내려 골목길로 달아난 덕에 목숨은 건졌다.

 

러시아 함대를 이끌고 블라디보스토크로 가는 길에 일본에 잠시 들렀다가 변

 

을 당했다. 칼부림이 난 지역 이름을 따 오쓰 사건이라고 부른다.

 

사건 소식이 전해지자 일본 황실과 정부는 발칵 뒤집힌다.

 

강대국 러시아가 무력으로 응징할 것이라는 염려 때문이다.

 

1904년 발발한 러일전쟁이 앞당겨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당시 일본은 근대화 초기 단계여서 러시아와 전쟁할 힘이 없었다.

 

거액 배상금이나 영토 할양을 요구할 가능성에도 촉각을 곤두세웠다.

 

일본은 신속하고 전방위적인 대응에 들어갔다.

 

·관이 총동원되고 천황까지 합류해 사태 수습에 나선 것이다.

 

메이지 천황은 아들 3명을 데리고 황태자가 묶은 호텔로 서둘러 찾아가 머리

 

를 조아린다. 러시아 제국의 마지막 황제 니콜라이 2세는 1891년 일본에서 칼

 

부림을 당한 것이다. 모든 국민은 일사불란하게 사죄 모양새를 갖췄다.

 

전국 학교가 일제히 휴교에 들어갔다. 강력한 근신 의지를 보여주기 위해서다.

 

신사나 사원, 교회는 쾌유를 비는 기도를 이어갔다. 니콜라이에게 보낸 문안

 

전보만 1만 통을 넘었다. 게이오대학 학생들은 프랑스어로 사과편지를 썼다.

 

일부 지역에서는 작명 때 쓰다''산조'를 넣지 못하도록 하는 규정했다.

 

경찰관 쓰다 산조를 떠올리게 한다는 이유에서다.

 

Eww54fea19b452e2.jpg
                                               (오쓰사건을 사죄한다며 자결한 여인)

한 여성은 '죽음으로 사죄한다'는 유언을 남기고 자진하는 일도 생긴다.


20170426090112482bdae.jpg
                                             뜬근없이 테러를 당한 황태자 니콜라이 2세

 

한 사람이 저지른 우발 사건에 온 나라가 호들갑을 떨며 치욕을 자처한 것이

 

. 현재 한국인의 여러 문제들 즉 위안부나 징용자 문제에는 오리발을 내미는

 

것과 전혀 딴판이다.

 

사건 동기는 단순했다. 천황을 알현하지 않은 채 관광하는 데 화가 나 혼내주

 

려고 했을 뿐 살해 의도는 없었다는 것이다.

 

일본 정부는 범인 쓰다를 처형하려고 안간힘을 쓴다


한반도 침략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가 가장 강경했다.


법률 미비로 사형 선고가 안 되면 계엄령을 내려서 라도 처형하라고 압박했다


쓰다를 납치해 권총으로 암살하자는 의견도 나왔

 

. 러시아도 사형을 강하게 압박했다.

 

주일 러시아 공사관은 죽이지 않으면 어떤 사태가 날지 모른다고 협박했다.

 

대법원만 달랐다. 실정법상 살인을 선고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일본 왕이나 왕족에게 위해를 가한 범죄에만 사형이 가능했다.

 

계엄령 선포로 재판권을 회수하겠다는 법무부 위협에도 대법원은 잘 버텼다.

 

결국, 사건 발생 16일 후 살인미수 혐의로 무기징역 판결을 한다.

 

러시아 반응은 의외로 차분했다. 전쟁은커녕 배상 요구도 하지 않았다.


일본은 13년 뒤 어느정도 힘을 기른, 일본은 러시아의 뒤통수를 친다.

 

이른바 러일전쟁이다. 1904년 일본이 선전포고도 없이 러시아 극동 함대를 기

 

습 공격해 전쟁에 돌입한 것이다.


6070622.png

그로인해, 쓰다를 검거할 때 도운 인력거꾼은 러일전쟁을 계기로 날벼락을 맞

 

는다. 국민 영웅에서 매국노로 바뀌어 집단 괴롭힘 이지매를 당했다.

 

이러한 이선은 1937년 중일전쟁 당시 발생한 파나이호 사건에서도 드러난다.

 

일본 항공대가 민간인을 태운 미국 함정 파나이호를 격침했다.

 

일본은 중국 군함으로 오인해 실수했다고 해명했다. 그런데도 서둘러 사과하고

 

배상했다. 일본 함대사령관이 현장에서 사죄하고 본국 정부도 사과성명을 발표

 

했다. 당시로써는 거액인 221만여 달러를 배상하고 항공대 사령관은 경질했다.

 

미국도 15년 후 일본으로부터 등에 칼을 맞는다.

 

1941년 일본 전투기들이, 역시 러시아 때와 마찬가지로, 하와이 진주만 미군기

 

지를 선전포고도 없이 공격한 것이다


다운로드.jpg

images.jpg


그런 일본이 또 지금은 돌변했다.

 

아베 총리는 지금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앞에서 입안에 혀처럼 굴고 있다.

 

본은 미국의 푸들이라는 비판에 귀를 닫은 모양새이다.

 

그러나 우리 한국에겐 더욱 얄미운 모습만 보이고 있다. 결국 일본에게 대우받

 

는 길은 국력의 신장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듯 해서 씁쓸하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가생이닷컴 운영원칙
알림:공격적인 댓글이나 욕설, 인종차별적인 글, 무분별한 특정국가 비난글등 절대 삼가 바랍니다.
촐라롱콘 18-03-31 11:03
   
오쓰사건 당시 일본 사법부가 일본정계로부터의 직접적인, 러시아로부터의 간접적인

온갖 외압에도 굴복하지 않고 범인인 쓰다 산조에게 사형이 아닌 무기징역을 선고한 것은....

당시까지만 해도 서구열강들에 비해서 후진적인 사법체계를 갖추었다고 인식된

일본 사법체계의 이미지를 180도 전환시킨 계기가 되었습니다.

비교적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사건을 통해 일본이 사법부의 독립이 확립된 근대적 사법체계를 갖추었다고

인식되면서... 향후 일본이 서양열강들과 맺었던 불평등조약을 개선시키는 데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
.
사실 엄밀하게 오늘날 양형의 기준으로 본다면 무기징역도 과한 판결이지요!

중상해와 살인미수를 중복 적용한다고 하더라도 물론 죄질에 따라서 형량이 다르기는 하지만

무겁게 선고한다고 하더라도 각각 촤대 5년 이하의 형량을 구형하는 것이 일반적인 경우인데

그렇다면 최대 10년 이하 정도의 형량이 쓰다 산조에게 합당한 형량이라 하겠습니다.
     
사랑투 18-03-31 12:58
   
윗글은 일본의 이중성을  말한 글이잖아요? 요점이 어긋나네요.
조선시대에는 노비도 소송하고 했는데 조선의 판결문들이 불평등조약으로 개선 시키는데 도움 되나요?

  저 당시 국제사회는 강육약식의 세계죠. 근대산업화가 늦은 나라는 무기에서도 사고방식에서도 밀리니 불평등조약을 하는 것이고...
설령 산업화를 했어도 대량생산의 수요와 공급의 균형 을 맞추기 수월하기 위해 식민지가 있고 없는 차이는 어마어마해서  경제규모나 안정성에서 밀리고...

또 저런 판결 때문에 영향을 미쳤다는 건 너무 비약이 아닐까 싶네요.
또 오늘날 사법의 잣대로 이 시대를 보는 것도 우습잖아요?
history2 18-03-31 12:05
   
아 좋은 댓글 너무 감사합니다...님의 댓글로 더 배우게 되는 것 같습니다
Shifteq 18-03-31 12:22
   
나는 이 글을 보면서 일본의 이중성도 이중성이지만,
그들 정부와 민간의 일치된 행동력에 혀를 내두르게 됩니다.
온 국가가 힘을 합쳐 나라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행동과 메시지를 발신하는 모습에 경외감마저 느껴지네요.
물론 전근대적인 전체주의적 특성이겠지만은 저런 단결력은 여전히 일본에 남아있고 그들이 가진 가장 무서운 무기입니다.
     
사랑투 18-03-31 13:07
   
그래서 관동대학살도 일어났죠. 유언비어에 일치된 단결력으로 대학살도 해버리 잖아요?
참 경외감이 느껴지겠네요.
          
Shifteq 18-03-31 16:33
   
그런 부작용도 있지만 위의 예시 같은 좋은점도 있죠.
     
인생사 18-03-31 13:12
   
일본은 국민을 우민화 시키는데 성공한 국가죠.
history2 18-03-31 13:22
   
그래서 제가 일본이 산업화에 비해 근대화에는 실패한 나라라고 항상 주장을 합니다...이들은 서양의 사회진화론의 배설물만 받아드리고는, 자신들이 근대화에 성공했다고 믿는 족속입니다
history2 18-03-31 13:25
   
history2 18-03-31 13:28
   
history2 18-04-02 01:00
   
국화와 칼을 보면, 정말 일본이란 족속을 어떻게 그렇게 잘 묘사했는지 놀라게 됩니다
 
 
Total 408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354 [일본] 【동경 올림픽 똥물문제】오다이바 해변공원의 수질… (3) 독산 12-06 2170
353 [일본] 일본 국회에 평화의 소녀상을 세우자 (1) mymiky 12-05 1611
352 [일본] 수요집회 옆 매국단체 "소녀상은 우상숭배" (4) mymiky 12-05 2040
351 [일본] 일제패망후 일본으로 귀환한 일본인들의 삶.jpg (4) 소유자™ 11-27 3344
350 [일본] 일본인들은 자신들이 백인종에 가깝다고 여깁니다 (10) Korisent 11-12 2248
349 [일본] 호사카 유지 ㅡ 신친일파의 한국 침식이 심각하다 (2) mymiky 11-09 1445
348 [일본] 지난번 똘박이 찬양하면서 올린 이토 히로부미의 추… (1) 하늘치 11-03 1505
347 [일본] 일본 정부 서랍속 잠자는 소송장 "전달도 안해" mymiky 10-31 1453
346 [일본] 일본에서 NO 아베를 외치는 사람들.youtube (3) 스콜쓰 10-23 1264
345 [일본] 일본은 「입 냄새 대국」이었다! 의사가 말하는 일본… (6) 독산 10-09 8360
344 [일본] 통일교와 일본 자민당의 유착관계 mymiky 10-09 2964
343 [일본] 일본 규슈 이름이 생각해보니 요상하네요? 원래 독립… (5) 아비요 10-03 5558
342 [일본] 일본의 역사에 무슨 일이 있었나? 유전자가 새긴 큰 … (4) 독산 10-03 4251
341 [일본] 호사카 유지 ㅡ 일본,극우 군대 생기면 첫 희생양은 … (9) mymiky 09-27 5202
340 [일본] 일본거주 언론인 유재순이 전하는 일본의 밑바닥 본… mymiky 09-22 3029
339 [일본] 식민지 근대화론 (5) 떡국 09-02 3262
338 [일본] 3억불 팩트 (2) fymm 08-28 2940
337 [일본] 일본 경제상황 알기쉽게. 월수입 100만원인데 (7) 반스업 08-21 6347
336 [일본] 일본을 추종하는 교수들 면상 ( 마지막에 도망가는 … (8) mymiky 08-21 4290
335 [일본] 히로히토 일왕 ㅡ 패전 7년뒤, 재군비와 개헌 필요성… mymiky 08-19 2314
334 [일본] 박정희 군대 동원해 시민들 짓밟고 엉터리 한일협정… (4) mymiky 08-17 2344
333 [일본] 아베는 협정 위반 운운하기 전에 식민지 불법부터 고… mymiky 08-17 1532
332 [일본] 일본 우경화의 본질 천황제와 한국 상고사 왜곡 두번… (2) 풍림화산투 08-14 1666
331 [일본] 65년 한일청구권 협정 abettertomor.. 08-09 1940
330 [일본] 일본 우경화의 본질 천황제 그리고 한국 상고사 왜곡 (1) 풍림화산투 08-06 3705
329 [일본] 일본의 산업 근대화 완성 시기 (16) 행복찾기 07-30 4594
328 [일본] 만철은 왜 도서관을 운영했나? <2> mymiky 07-25 2069
 1  2  3  4  5  6  7  8  9  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