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고려 전기 서북계를 고찰하며
살수는 혼하 지류로서 혼하 아래에 흐르는 북사하로
당시 압록은 혼하로 비정하였습니다
정안국으로 추정되는 여진족은 혼하 상류에서 범하 지간으로
그런데 고려는 이미 압록의 중류지대를 점유하고 있어서 그 개척 방향을 상류로 잡으며 여진족과 갈등을 겪었습니다
그리고 거란이 이들 여진족을 정벌하는 970~980 년대 사이에 거란에게 길을 터주어서 여진족이 송나라한테 꼬발르는 일이 생깁니다
고려가 요동에 진출한 것은 고려사 서희 열전에서 993 거란 침입 당시 서희의 발언으로 확인되는 바 "거란 동경에서 안북부까지 수 백 리"는 고려 광종 때인 940~950 년대로 보이고
거란 침입 이전인 991 에 압록강 성보 축성 작업을 완료합니다
그러면
고려는 이미 이 시기에 태자하를 넘어 혼하까지 진출한 것인데
제가 고구려 말기 평양을 이 두 강 사이의 본계 지역으로 추정하는 것과 상충이 됩니다
서희가 담판에서
"국호를 고려라 하고 서경(평양)을 도읍으로 삼았다"
본계 지역이었으면
고려는 이미 고구려 평양지역을 영토로 삼고 있었던 것이죠
그러나
고려 서경은 개성과 거리가 가깝고
아무리 따져봐도 현 평양이 맞는데
꼬여버리는 것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