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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3-24 09:24
[일본] 후쿠자와 유키치 비판, 일본 파시즘과 사회진화론의 원류
 글쓴이 : history2
조회 : 1,3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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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파시즘의 근원 후쿠자와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 1835-1901년)는 a)서양문명의 적극적 수용을 주장한 계몽사상가이고, b)게이오의숙(慶應義塾, 게이오대학의 전신)을 설립 · 운영한 교육자이며, c)지지신보(時事新報)를 창간하고 수많은 평론을 쓴 언론인이다. 

19세기 말의 격동기에 그는 a)서양사정, b)학문의 권유, c)문명론의 개략을 저술하여 일본의 문명개화와 독립을 주장하였다. 
정치학자 마루야마 마사오(丸山眞男)는 후쿠자와를 전형적인 시민적 자유주의자로 높이 평가하면서, 일본의 볼테르라고 명명하였다. 
(마루야마 마사오는 쇼와 시대 일본의 정치학자이자 사상사가이다. 저널리스트인 마루야마 간지의 차남으로 오사카에서 태어나 도쿄대를 졸업했으며, 도쿄대 법학부 교수를 역임하였다. 일본의 정치사상, 일본의 파시즘 사상과 운동 등에 관한 다양한 논문을 발표하여 전후 민주주의의 대표적 논객으로 활약하였다. 그의 학문은 마루야마 정치학, 마루야마 정치사학 등으로 불리며 후대의 많은 학자들에게 영향을 끼쳤다)

후쿠자와는 현재 일본 근대화 과정의 총체적 스승으로 일본인의 추앙을 한 몸에 받고 있는데, 1만엔 지폐의 초상인물로 되어 있는 사실이 그의 위상을 말해준다. 한편 그는 지지신보를 통해 많은 평론을 발표하였는데, 조선과 중국을 비하하고, 일본의 탈아시아를 주장하였으며, 군비확장과 아시아 침략 등 대외강경책을 강력하게 지지하였다. 이 때문에 한국과 중국에서는 후쿠자와를 인종주의자이며 제국주의적 침략 지배의 원형으로 평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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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후쿠자와의 사상이 자유주의자에서부터 파시즘에 이르기까지 너무 다양하다는 것이다. 그가 발간한 저서들과 발표한 평론들의 내용은 일관성이 없고 모순되는 것이 많은데, 그에 대한 평가에 대해 여러 이야기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특히 관심을 가져야 할 부분은, 후쿠자와의 '아시아에 대한 인식'이다. 후쿠자와는 일본의 문명이 조선과 중국에서 유래한 것임을 인정하였다. 일본은 조선으로부터는 기술과 공예의 가르침을 받고 중국으로부터는 도덕과 인륜의 가르침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조선에 대해서는 ”신공황후(神功皇后)의 삼한정벌은 1700년 전의 옛이야기이고, 토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의 조선침략도 이미 300년을 경과하고 있지만, 일본 국민은 아직도 그것을 잊지 않고 있다면서,  
현재에 와서도 정한론(征韓論)이 있는 것은 일본 국민이 수백 년의 옛이야기를 기억하고, 그 영광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즉, 조선은 현재(고종 무렵)는 정치와 군사면에서 일본에 열등하며, 또한 고대에는 일본의 속국이었다는 인식을 가지고 "정한론"을 주장했던 것이다. 

1874년 5월 일본 정부는 타이완에 출병하였다. 표류한 류큐인들을 타이완인들이 공격한 데 대한 보복이었는데, 그리고 청국이 일본에 배상금을 지급하기로 하고 종결되었다.  후쿠자와는 청국으로 하여금 배상금을 지불하게 한 것은 국가를 위해 축하할 일이라고 하면서, 이번의 승리로 일본 국민의 기풍을 일변시키고, 민족주의적 국체의 기반을 굳건히 함으로써 서양 제국과 함께 우뚝 솟을 수 있게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타이완 침략으로 일본이 서양 제국과 함께 제국주의 침략국의 반열에 오른 것을 축하하고 있는 것이다. 후쿠자와가 일찍부터 제국주의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1875년 강화도에서 조선군과 일본군의 충돌이 발생하자 메이지 정부에서는 정한론이 부상하였다. 후쿠자와는 '조선은 아시아 중에서도 하나의 조그만 야만국'이므로 조선을 정벌할 이유가 없다고 주장하였다. 당장 조선 정벌에 나서는 것은 일본의 외채만 늘게 할 뿐 이익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1880년대에 접어들면서 후쿠자와는 서양 제국의 침략에 대해 위기감을 느끼게 된다. 만국공법(국제법)은 서양 열강들 사이에서는 제대로 적용되고 있으나 아시아 국가들에는 아무런 효용이 없다고 생각을 하였다. 

서양 열강들은 아시아 국가들과의 관계에 있어서 만국공법보다는 '철과 피'에 의지하고 있으므로 아시아 3국은 연맹하여 이에 대항해야 한다고 주장을 하였다. 그러나, 결국 그의 속 생각은, 아시아에서 문명의 중심으로서 맹주가 되고 서양 열강에 대응하고 아시아를 보호(?)하는 것은 일본의 책임이라는 모순된 제국주의적 주장을 하였다(동양맹주론). 

즉, 일본은 조선과 중국의 문명화를 책임지는 지도국으로서, 무력을 통해서 중국과 조선을 문명화시켜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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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자와의 충실한 계승자 도조

나아가 “사정이 급박하게 돌아갈 때는 거리낌 없이 그 조선과 중국영토를 탈취하여 우리 손으로 판을 새로 짜는 것도 가능하다.”고 하였다. 
후쿠자와가 주장한 동양맹주론 속에는 아시아에 대한 침략론에 대하 정당성이 주 내용이었던 것이다.

일본이 아시아의 맹주가 되기 위해서는 부국강병으로 국권을 굳건하게 하여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된 이념이었다. 
각국이 본국을 지키고, 자신의 땅을 잃지 않는 것은 병력이 있기 때문이라 강조했다. 다시말해서, 국제세계는 약육강식의 논리만 지배되는 곳으로, 일본의 군비를 엄중히 하는 것이 긴요하다는 것이다. 

군비는 국권을 유지하는 근본이므로 외국에 뒤지지 않도록 국위를 선양하고 외국에 포함(砲艦)과 같은 이기(利器)가 있으면 일본도 그것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결국, 일본의 부국강병은 후쿠자와의 평생 일관된 소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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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2년 조선에서 임오군란이 발생하였다. 신식군대 군인들에 비해 차별대우를 받던 구식군대 군인들이 난을 일으켜 흥선대원권을 옹립하였다. 청국군은 6월 27일에, 일본군은 6월 29일에 각각 인천에 도착했다. 
7월 13일 청국군이 대원군을 납치하여 텐진으로 끌고 감으로써 군란이 종결되었다. 후쿠자와는 군란을 일으킨 폭도를 문명의 적으로 규정하고 이들을 진압하기 위한 일본의 출병과 무력 행사를 정당화하였다. 

청나라에 대해서도 강경한 대처를 주문하였다. 만약 청나라가 일본의 행동을 방해한다면 무력을 행사하더라도 그 방해를 없애야 하고, 전쟁이 벌어지면 청나라의 수도인 북경을 점령하여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군란이 평정되자 후쿠자와는 조선은 이미 독립국이라고 말할 수 없으므로 일본 공사로 하여금 조선 국무를 감독하는 감독관을 겸임하게 하고 그의 감독하에 개국주의자들에게 정부를 맡길 것을 제안하였다. 
무력을 배경으로 조선을 속국 내지는 보호국화하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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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종주의의 피해자와 가해자의 탈을 모두 쓴 일본  

후쿠자와는 조선의 개화파들과 활발하게 교류한 것으로 유명하다. 1880년 이동인과 접촉한 것을 시작으로, 1881년 어윤중, 유길준, 김옥균, 박영효와 알게 되었다. 1884년 12월 조선에서 김옥균 등 급진개화파의 주도로 갑신정변이 발생하였다. 일본 군대를 동원하여 일단 정권을 잡았으나, 청국의 개입으로 3일만에 진압되었다. 후쿠자와는 처음부터 갑신정변에 깊숙이 개입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사건과의 관련성을 부인함과 동시에, 일본이 피해자이고 청국이 가해자라고 주장하면서 청국과의 개전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나섰다. 후쿠자와는 '조선에서 일어난 사변이야말로 행운'이라고 하면서 병력을 파견하여 조선 경성에 주둔 중인 청국 병사를 몰살시키고 곧바로 북경을 함락시키라고 촉구하였다. 일본이 청국을 정복하면 구미 열강을 감탄시켜 불평등조약의 개정과 치외법권의 철폐가 용이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하였다. 청국과의 전쟁을 통해 일본의 국위를 높일 수 있는 기회로 생각하고 전쟁을 선동한 것이다. 

그렇다면 후쿠자와는 조선의 개화파 인물들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을까? 10년이 지난 1894년 10월 16일 후쿠자와는 이들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평가하였다. “저 개화당이라 칭하는 신진관리 무리와 같은 자들은 기실 타국에서 놀거나 혹은 타국민과 면식이 있다는 이유로 우연히 때를 만나 나선 것에 지나지 않는다. 원래 일개의 견식이 있는 것이 아니며 결코 붕우로서 의지할 만한 사람도 못된다. 일본의 목적은 오로지 그 국사를 개혁하여 문명으로 나아가게 하는 일 한 가지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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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쿠자와 유키치' 에게 훗날 혹평당한 개화당 

후쿠자와는 국가가 야만→미개→문명의 3단계로 발전한다고 보았다. 그에 따르면 일본은 반개에서 문명의 단계로 넘어가고 있는데 반해, 조선과 중국은 야만의 단계에 머물고 있다. 조선은 수백 년 간 중국의 유교에 시달려 이미 정신의 독립을 잃어 명목상 자주독립국이라 칭한다 해도 사실 나라라고 할 수도 없다고 폄하하였다. 
중국도 조선에 비해 나을 것이 없다. 중국은 수천 년 전부터 음양오행의 망상에 빠져 문명이 그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단언하였다. 

특히 중국인은 최근 문명의 기본적인 관념조차도 모르고, 부패하며, 겁약하고 비굴함이 그 유례가 없다면서, 중국인의 심사는 그저 돈을 얻는 것 하나에 집약되기 때문에 타인에게 노예시 당하고 또한 정말 그 노예가 되어도 돈만 얻을 수 있다면 굳이 꺼리지 않는다고 평가하였다(중국은 지금도 마찬가지 아닌가!...기소르망 중국이라는 거짓말 인용)

조선과 중국에 대한 극단적인 실망과 멸시의 감정은 1885년에 탈아입구론(脫亞入毆論)으로 표출되었다. 일본은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문명화에 성공한 국가인데 반해, 조선과 중국은 서양의 문명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유교의 구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서양 열강들은 두 나라와 이웃하고 있다는 이유로 일본을 평가절하하는 경향이 있어 일본 외교에 지장을 초래하는 것이 적지 않으므로 일본에게 불행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제 일본은 두 나라의 개명을 기다려 함께 아시아를 발전시킬 여유가 없으므로 아시아의 연대를 벗어나 서양의 문명국과 함께하여야 한다. 조선과 중국을 대하는 데 있어서 이웃나라로서의 특별한 배려는 필요없으며 서양 열강들이 대하는 방법에 따라서 대처해야 한다고 하면서, “악우(惡友)와 친한 자는 함께 악명(惡名)을 면할 수 없다. 나는 마음속에서 아시아 동방의 악우를 사절하는 것이다.”라는 말로 끝을 맺는다. 이제 아시아와의 연대를 포기하고 서양 열강과 함께 아시아 침략의 길로 들어가야 한다고 선언했다.

마루야마는, 후쿠자와의 이러한 파시즘적 발언에 대해, 조선 개화파의 개혁 실패에 실망한 나머지 실의에 빠져 쓴 예외적인 문장으로 치부하면서, 탈아입구론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는 견해를 밝혔지만, 탈아입구론은 후쿠자와 개인의 일회성 발언이라고 볼 수 없다. 

서양 열강은 일본을 포함하여 아시아인종을 서양인에 비해 열등한 것으로 보고 있었으며, 일본은 조선, 중국과 함께 열등한 인종으로 대접받는 것에 불만을 느끼고 있었다. 한편 일본은 서양의 인종주의를 그대로 받아들여 조선과 중국에 대해 적용하고 있었다. 즉 조선인과 중국인은 일본인에 비해 열등한 인종이라고 보고 있었다. 즉 이미 후쿠자와는 사회진화론에 푹 빠졌다는 말이다. 

이러한 인종주의적 사고방식은 일본에게 딜레마를 안겨주었다. 일본이 인종주의의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조선과 중국에 대해 우월한 인종인 일본이 서양 열강에 대해서는 열등한 인종이 되어 있는 것이다. 

이러한 딜레마에서 벗어나기 위한 궁여지책으로 일본을 아시아에서 분리시켜 서양 열강에 편입시키고자 하는 생각이 나오게 된 것이다. 따라서 탈아입구론은 후쿠자와 개인의 일회성 발언이 아니라 당시 일본이 처한 딜레마를 반영한 일본 지도자들의 보편적인 생각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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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파시즘의 원흉 후쿠자와.....그의 정체는 일본의 볼테르가 아니라, 파시즘과 사회진화론의 찌거기다 


1894년 7월 일본의 주도로 청일전쟁이 발발하였다. 후쿠자와는 청일전쟁을 '문명과 야만의 전쟁'이라고 규정하고 일본의 승리는 청국을 문명화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청국의 군함을 격침시키고 그 병사를 몰살하는 것은 쉬운 일이므로 바로 국경을 넘어 들어가 성경(盛京), 길림(吉林), 흑룡강(黑龍江) 3성을 점령해 일본의 판도에 편입시켜야 한가 주장하면서, 일본은 이미 대국(大國)이 되었다고 선언하였다. 즉 중국에 새로운 영토를 열거나 조선을 보호하여 감시하는 등의 사업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등 영토에 대한 야욕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이 무렵 후쿠자와는 조선의 내정과 제도 개혁의 필요성과 방법에 관해 많은 제안을 한다. 즉 a)청일전쟁은 조선의 독립을 방해하는 청국을 제거하고 b)조선이 스스로 독립을 유지하게 하기 위한 전쟁이다. c)조선은 오랫동안 유교주의에 시달려 완고하고 어리석어 스스로 개혁을 수행하기 어렵다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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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질적인 일본 파시스트의 근원 후쿠자와 


따라서 일본은 아시아문명의 선진국으로서 조선을 문명으로 인도하여야 한다 주장하였다. 또한 조선이 일본의 권유를 받아들이지 않을 때에는 무력을 사용해서라도 그 요구를 받아들이게 하여야 한다. 
이것은 세계문명의 풍조(사회진화론)가 일본에게 요구하는 것이라고 주장하여 제국주의적 침략과 식민지화를 노골적으로 촉구하였다. 

후쿠자와는 청일전쟁의 승리에 대해 일본의 명예를 세계에 빛나게 하였다고 기뻐하였다. 나아가 조선은 '문명의 관점에서 사지가 마비되어 움직일 수 있는 능력이 없는 병자'와 같으므로 일본은 거리끼지 말고 조선에 간섭하여 문명의 혜택을 입게 하여야 한다고 주장하여 조선의 내정에 대한 적극적인 간섭을 촉구하였다. 

아울러 일본의 승리는 군비확장의 결과에 다름없으므로 방심하지 말고 더욱 군비강화에 힘쓰라는 충고도 빠트리지 않고 있다(러시아와의 일전준비 강조)
사회진화론자, 제국주의자에 불과힌 후쿠자와를 일본 최고의 계몽사상가, 자유주의자, 민주주의의 원리를 제공한 위대한 사상가로 그려낸 사람은 사실 마루야마였다. 패전 후 일본인들은 미국의 일방적인 주도로 이루어지고 있는 민주주의에 깊이 좌절하고 있었다. 

그들에게는 민주주의가 일본의 내적인 발전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이라는 신화가 필요하였고, 마루야마는 이러한 시대적 요구에 따라 민주주의의 선각자라는 후쿠자와의 이미지를 만들어낸 것이다. 
나고야대학의 야스카와 주노스케(安川壽之輔)는 마루야마의 후쿠자와 평가에 대해 과도하게 영웅시하려는 감정이입 등 마루야마의 후쿠자와에 대한 학문적 자세를 결여하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야스카와가 후쿠자와에 대한 발언을 분류한 바에 의하면, 아시아 멸시(79회), 대외강경책(74회), 문명론에 의한 합리화(45회), 부국강병 및 군비확장(38회), 힘이 곧 정의라는 국제관계인식(31회), 강권적 식민지 지배(31회), 비합리적 내셔널리즘(29회) 등의 순으로 되어 있다. 결국 그의 사상은 아시아 멸시와 침략을 선동하고 합리화한 사회진화론자, 인종주의자, 그리고 전체주의자(파시즘) 였었다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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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일성, 이문호씨 글 참조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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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발라마 18-03-24 11:29
   
아시아의 악당은 너거 쪽국이잖아 ㅋㅋㅋ  걍  아시아에서 꺼져 
그리고 저  후쿠자와 녀석은 사상가도 이론가도 아니고 그때그때  시대상황에 따라  변조하고
대응하는 모략가 일뿐이지 사상가는 개뿔...
history2 18-03-24 12:10
   
정치학자 마루야마 마사오(丸山眞男)는 후쿠자와를 전형적인 시민적 자유주의자로 높이 평가하면서, 일본의 볼테르라고 명명하였다. 그러나 후쿠자와의 진짜 본 모습은 아시아 멸시와 침략을 선동하고 합리화한 사회진화론자, 인종주의자, 그리고 전체주의자(파시즘) 였었다생각을 한다.
독산 18-03-25 14:12
   
모처럼의 좋은 글이었네요!

감사!
history2 18-03-25 20:33
   
독산님 너무 감사합니다....선생님도 글 올려주세요...너무 좋던데요 ^^
history2 18-04-01 21:41
   
“조선의 멸망이야말로 그들의 행복을 확장할 수 있는 길이다.” “조선 인민은 소와 말, 돼지와 개다.”

혐오로 점철된 이 발언의 주인은 일본에서 가장 존경받는 근대 계몽사상가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ㆍ1835~1901)다. 물론 1만엔권 화폐 속 인물인 그는 일본에서 근대화의 아버지, 천부인권론자이자 시민적 자유주의자로 통한다. 가장 사랑받는 그의 언명은 “하늘은 사람 위에 사람을 만들지 않고 사람 밑에 사람을 만들지 않는다” 는 것. 이 같은 괴리는 어디서 비롯됐을까.

마루야마 마사오가 만들어낸 후쿠자와 유키치라는 신화

일본의 양심적 지식인 야스카와 쥬노스케(安川壽之輔)는 전후(戰後) 일본의 사상사 연구 과정에서 인위적으로 미화된 후쿠자와의 실체를 집요하게 파헤쳐온 연구자다. 그는 이 허구적 신화를 구축한 장본인으로 마루야마 마사오(丸山眞男ㆍ1914~1996)를 지목한다.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야스카와의 저서 ‘마루야마 마사오가 만들어낸 후쿠자와 유키치라는 신화’는 2003년 일본에서 출간돼 학계에 충격을 안겼다.

야스카와는 철저한 사료분석과 고증을 통해 일반 국민을 ‘병 신’으로 칭했던 후쿠자와의 맨 얼굴을 드러낸다. 후쿠자와는 “일본 국민의 유순함은 집에서 기르는 비쩍 마른 개와 같다”며 이런 노예적 습관이 추후 자본주의 발전에 기여할 것이라는 논리를 폈다. 후쿠자와야말로 제국신민 형성에 선구적 역할을 한 근대 일본 최대의 보수주의자였다는 것.

일본의 두 정신을 정조준한 도발에 일본 여론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저자가 이런 주장을 처음 펼친 1970년대엔 냉담했지만, 마루야마가 세상을 떠난 지 7년 만인 2003년 이 책이 출간되자 마루야마의 제자들로 포진된 학계는 어떤 반박도 내놓지 못했다.

한국어판 역자 이향철 광운대 교수는 “이 책은 패전 후 도대체 일본 지성이, 학계가, 정부가 어떤 허상을 추앙했고 학교는 무엇을 가르쳐왔는지에 대한 대답”이라고 했다.

야스카와가 이토록 후쿠자와 신화를 집요하게 해체해온 것은 일본에서 후쿠자와 유키치를 찬양하고 이용하는 세력이 아베 신조 수상 등 우익이기 때문이다. 야스카와는 여전히 후쿠자와를 민주주의 신봉자로 보는 시민사회의 오해를 기회 삼아 우익들이 전쟁국가로의 회귀를 꿈꾸고 있다고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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