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요한 것은 평양 말고 낙랑군 유물이 발견된 곳이 있냐는 것이다. 일부 사람들은 요동이나 요서에 낙랑군이 있었다고 하는데 요동이나 요서에서 낙랑군 유물이나 유적이 발견된 적이 없다. 역사학에서는 기록보다도 유물⋅유적을 더 중요시한다. 마치 삼국사기에는 마한이 서기 9년에 멸망했다고 나오지만 마한 관련 유물⋅유적 때문에 마한이 5세기까지도 존재했다는 게 인정 받는 것처럼 말이다.
즉, 요서나 요동에서 낙랑군 유물이나 유적이 발견되지 않는 한 그 지역에 낙랑군이 있었다고 인정될리가 없다. 이에 대해 낙랑 요서설을 주장하는 대한민국의 역사학자들 중에선 평양을 방문하여 낙랑군 조사를 한 사람이 없다는 이유로 한국 역사학계를 평가절하 하는데, 물론 평양이 북한의 수도가 되어버린 지금 방문 조사 및 현지 발굴이라는 귀중한 기회를 얻을 수 없는 것은 사실이지만 현전하는 문헌 자료 및 발굴 자료 만으로도 사료적 적합성을 확인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는 주장이다.
어찌됐든 북한의 발굴 조사 자료가 남한 학계에 보고되는 것 자체는 사실이며 전근대에 보고된 문헌 자료는 대부분 한국에서도 확보하고 있으므로 연구에 결정적인 지장까지는 없는 상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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