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8-03-21 11:16
[한국사] 광개토대왕 비문분석....최신해석 정리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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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김덕중 : 백잔과 신라는 예전부터 이곳에 살던 권속과 동족이니 전통적으로 조공을 거래하였고 왜는 신묘년부터 해마다 바다를 건너 조공을 가지고 왔다. 백잔이 안라를 파(破)하고 신라를 신민을 삼으려 하므로
d) 광개토태왕광장 : 백제와 신라는 옛 속민인데도 아직까지 조공을 바치지 않고, 왜는 신묘년(381년)부터 [바다를] 건너왔다. 그래서 ㅁ은 백잔과 ㅁ를 공파하고, 신라는 ㅁ하여[복속시켜] 신민으로 삼았다. e)이형구 : 백잔과 신라는 예로부터 (고구려의) 속민으로서 조공을 바쳐왔는데, 그 후 신묘년(391)부터 조공을 바치지 않으므로 (광개토대왕은) 백잔··신라를 파하여 이를 신민으로 삼았다. f) 박시형 : 백제(百濟)와 신라(新羅)는 우리 고구려의 오랜 속민(屬民)들로서 이전부터 조공(朝貢)을 바쳐 왔다. 왜(倭)가 신묘년(辛卯年)에 침입해 왔기 때문에, 우리 고구려는 바다를 건너가서 그들을 격파하였다. 그런데 백제는 [왜를 끌어들여] 신라를 침략하고 그들을 저희 신민으로 삼았다. g) 왕건군 : 백제(百濟)와 신라는 과거에 우리 고구려의 속국이었다. 계속해서 우리에게 조공을 해왔던 것이다. 그러나 신묘년이래(辛卯年以來)로부터 왜구가 바다를 건너 백잔과 신라를 쳐서 그들을 신민으로 삼았기 때문에 [그때부터 백잔과 신라는 우리에게 稱臣□貢을 하지 않았다.] h) 정인보 :“백제와 신라는 예로부터 고구려의 屬民으로 계속하여 朝貢을 쳐왔다. 倭가 辛卯(391년)에 일찍이 고구려를 침략하여 왔으므로 고구려는 한 일찍이 바다를 건너가 (倭)를 攻略하여 서로 쳤다. 백제가 倭와 통하여 신라에 침해하였으므로 신라는 大王의 臣民으로 여기고 있는데 백제가 이를 背叛하여 신라를 침해할 수 있는가 怒하여 六年 丙申(396년)에 王이 몸소 수군을 이끌고 백제를 討伐하여 新羅를 保護하였다.” i) 김인배, 김문배: 백잔과 신라는 예부터 (고구려)의 속민으로 조공을 바쳐 왔는데□, 신묘년(391)에 □□□하므로써, 백잔 □□ 신라를 파하여 이를 신민으로 삼았다. j) 문정창: 백제와 신라는 지난날부터 우리의 속민으로 그때부터 조공해왔다. 털이 많은 왜인이 그로 말미암아 신묘년에 백제에게(?) 불려오다. (고구려가) 바다를 건너가 그것을 파했다. 백잔이 신라를 隨破하고 臣民으로 삼았다.
3) 6년 백잔 기사 정리 ‘破百殘’의 주어는 광개토태왕 : 일본인들은 ‘그 일(조공하는 일)’이라는 의미의 ‘以’를 의식적으로 무시하고 해석을 하지 않으며, ‘破’의 주어를 倭로 보아 ‘왜가 백제와 신라를 파하고 신민으로 삼았다’는 ‘왜의 정복행위’로 왜곡한 엉터리 해석을 마무리 짓는 단락이다. 우리나라 학자들도 각각 나름대로의 비판을 하고 있지만 통일된 의견은 나오지 않았다.
‘破百殘’부터는 앞의 조공 관련 문장과는 다른 문장이다. 앞의 조공과 전혀 무관하지는 않지만, 이어지는 6년 기사가 호태왕이 백잔을 공격하는 내용이므로 여기서의 ‘破’자의 주어는 당연히 호태왕이라야 한다. 따라서 그 다음의 “破百殘□□□(隨破新)羅以爲臣民”은 호태왕의 출병 동기이지 일본인들이 말하듯이 ‘왜의 행동’일 수 없다. 따라서 이 단락의 해석은 윤명부처럼 ‘신라를 침략하여 신민으로 삼으려는 백잔을 파(破)하려고’라고 해석하면 이어지는 6년의 백잔 정벌 기사와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지금까지 검토한 내용을 종합해보면, 이 기사의 전문(前文)은 “고구려와 가까운 곳에 살면서 고구려를 따르던 백잔ㆍ신라의 백성들은 예전부터 지금까지 조공을 바쳐왔다. 그리고 왜는 신묘년부터 해마다 바다를 건너 조공을 가져왔다. 신라를 침략하여 신민으로 삼으려는 백잔을 파(破)하려고” 호태왕은 6년 백잔을 공격했다는 공격 이유가 되는 것이다.
4) 현재까지의 비문 연구의 문제점을 요약 첫째, 주인공에 대한 호칭과 비의 성격조차 하나로 정립되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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