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년(서기 494) 여름 4월, 홍수가 났다.
가을 7월, 장군 실죽 등이 살수(薩水)의 벌판에서 고구려와 싸웠다. 이기지 못하고 물러나 견아성(犬牙城)을 지키고
있었다. 고구려 병사가 그곳을 포위하자 백제왕 모대(동성왕)가 병사 3천 명을 보내 포위를 풀고 구원해주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소지 마립간 [炤知⿇⽴⼲] (원문과 함께 읽는 삼국사기, 2012. 8. 20., 한국인문고전연구소)
우문술은 하루에 일곱 번을 싸워서 모두 이겼다. 그들은 여러 번을 이겼다는 사실 때문에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고, 또한 여러 사람들의 의견에 밀려서 곧 동쪽으로 진군하여 살수(薩水, 청천강???)를 건넜다. 그들은 평양성 30리 떨어진 곳에 이르러 산을 의지하고 진을 쳤다. 을지문덕이 다시 사람을 보내어 거짓으로 항복을 하는 척 하면서 우문술에게 청하였다.
“만약 군사를 거두어 돌아간다면, 임금을 모시고 황제가 계신 곳으로 가서 예방하겠다.”
우문술은 자신의 군사들이 피로하여 다시 싸울 수 없음을 알고 있었고, 또한 평양성이 험하고 견고하여 조기에 무너뜨릴 수 없다고 생각하여, 마침내 우리의 거짓말을 곧이듣고 돌아갔다. 우문술은 방진(方陣)을 치면서 행군하였다. 그때 우리의 군대가 사면으로 공격하였다. 우문술 등은 한편으로 싸우며 한편으로 행군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영양왕 [嬰陽王] (원문과 함께 읽는 삼국사기, 2012. 8. 20., 한국인문고전연구소)
문 교수는 "살수의 위치는 고구려 평양성, 압록강의 위치와 긴밀한 관계가 있다"며 "그동안 인하대 고조선연구소에서는 이 평양성, 압록강의 정확한 위치를 찾기 위한 연구 작업을 꾸준하게 진행해 왔다"고 전했다.
이어 "그 결과 평양성은 현재의 중국 요녕성 요양지역으로, 압록강은 현재의 요하 유역으로 비정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덧붙였다.
"이를 바탕으로 살수의 위치를 추적한 결과 살수가 현재 중국 요녕지역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하고, 국내외의 각종 문헌기록들을 분석한 결과 명나라 때 문헌에서 살수가 현재의 요녕성 중부지역에 존재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 기록의 출처는 당시 명나라 조정의 최고 학자들이 공동으로 편찬한 관찬 지리서와 병서이다. 그 지리정보의 신뢰도가 상당히 높다는 뜻이다."
문 교수는 "보다 구체적이고 심층적인 연구를 통해 추가검증이 이뤄져야겠지만 현재로서는 대단히 설득력이 높은 주장이라 할 수 있다"며 "살수위치 문제제기는 조선총독부에서 편찬한 '조선사'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이고, 그동안 지리고증 과정에서 많은 의문점이 제시됐던 고대사와 중세사 사이의 '잃어버린 연결고리(missing link)'를 찾는 데에 획기적인 단서가 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