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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3-20 07:36
[일본] 반드시 알아야 할 신라의 왜 정벌(유례왕, 진평왕, 성덕왕)......(1)
 글쓴이 : history2
조회 : 1,593  

유례왕 기사 1 신라의 일본정벌(진평왕, 성덕왕 때 정벌포함 정리)

 

유례 이사금(儒禮 泥師今, 재위: 284~ 298)은 신라의 14대 임금이다(석씨). 아버지는 혹은 할아버지는 조분 이사금이며, 어머니는 나음(奈音) 갈문왕의 딸 박씨이다.

 

286년 백제와 화친했다. 287년에는 왜인들이 일례부(一禮部)를 쳐 일천 명의 주민을 잡아갔다. 289년 음력 6월 왜인이 다시 쳐들어 온다는 소문이 돌자 선박과 병기를 수리하고 전쟁 준비를 했는데, 이 해 왜인이 쳐들어 오지는 않았다. 292년 음력 6월 왜인이 다시 쳐들어 사도성(沙道城)을 점령하자, 일길찬 대곡(大谷)으로 하여금 구원하게 하였다. 293년 음력 2월에는 사도성을 다시 개축하고, 주민 80여 호를 옮겨 살게 하였다. 294년 여름 왜가 다시 쳐들어와 장봉성(長峰城)을 쳤으나 격퇴되었다.

 

을묘년 신라 유례왕 12, 고구려 봉상왕 4, 백제 책계왕 10(진 혜제 원강 5, 295)

봄 계림이 왜를 정벌하려 했으나 이루지 못하였다.

신라 왕(유례왕), 왜인이 자주 침범하고 백성을 편안히 살지 못하게 함을 분히 여겨, 백제와 함께 동시에 바다를 건너 왜국에 들어가 칠 것을 도모하니, 서불한(舒弗邯) 홍권(弘權)이 간하기를, 우리 나라 사람이 수전(水戰)에 익숙하지 못하여 험난을 무릅쓰고 왜 원정(遠征)을 하면 생각지 않은 위험이 있을까 두려운데, 하물며 백제는 속임수가 많고 항상 병탄할 욕심을 가지고 있음에리까? 더불어 도모할 수 없습니다.”

하니, 왕이 좋은 말로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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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다양한 사서에서 유례왕 시대, 일본 오사카를 정벌했다는 기사가 나온다.

정리하면 1)유례왕8, 응신22, 291년 신라군은 일본의 오사카(명석포)를 공격하였고, 이에 일본이 화친하기를 원하여, 오사카에서 100리 떨어진 적간관에 백마분을 만드니, 곧 백마를 죽겨 화친을 맹세한 후 묻은 구릉 이라고 한다.

 

(일본사기 응신천황 22년조에는, 어우별[御友別] 세력에게 응신왕이 여섯현을 떼어주었다 는 기사가 사실은 신라에게 할양한 일본영토라는 의견도 있다- 반론도 제시)

 

또한, 2)진평왕 5, 달민천황(達敏天皇) 계묘년(583)에 신라가 서비(西鄙)를 쳐들어왔다고 되어 있는데, 3)성덕왕 19년 원정천황(元正天皇) 경신년(720)에도 신라가 서비를 쳐들어왔다고 했는데, 그 사실이 이 동사에는 다 빠지고 없다 라는, 기사를 통해 신라의 일본에 대한 3차례 대규모 원정이 있었음을 볼 수 있다. 지금 동래(東萊) 바다 절영도(絶影島)에 옛 진지가 있는데, 세상에 전해 오는 말로 신라 태종이 왜국을 정벌할 때 쌓은 것이라 하여, 이에 태종대(太宗臺)라고 불린다(부산의 태종대)

 

관련기사 정리)

 

1. 동명(東溟) 金世濂(1593-1646) 김세렴의 해사록(海槎錄) 聞見雜錄. 유례왕 정벌기사

 

일본은 극동에 멀리 떨어져 있고 사면이 큰 바다로 둘려 있어, 외국의 군사가 들어갈 수가 없다. 단지 그 연대기(年代記)를 보면, 왜황 응신(應神) 22년에 신라 군사가 명석포(明石浦)에 들어왔다고 되어 있는데, 명석포는 대판(大阪)에서 겨우 1백 리 떨어져 있다. 적간관(赤間關)의 동쪽에 한 구롱(丘隴)이 있는데, 왜인이 이를 가리켜 이것이 백마분(白馬墳)인데, 신라 군사가 일본에 깊이 쳐들어오니, 일본이 화친하고 군사를 풀어 주기를 청하여 백마(白馬)를 죽여서 맹세한 뒤에 말을 이곳에다 묻었다.’ 한다.”

하였다. 상고하건대, 응신 22(291) 신해가 바로 유례왕 8년에 해당되니, 東史에는 보이지 않는 것은 글이 빠진 것이다.

 

(일본은 극동에 멀리 떨어져 있고 사면이 큰 바다로 둘러 있어, 외국의 군사가 들어갈 수가 없다. 단지 그 연대기를 보면, 왜황 응신 22년에 신라 군사가 명석포에 들어왔다고 되어있는데, 명석포는 대판(오사카)에서 겨우 1백리 떨어져 있다. 적간관의 동쪽에 한 구릉이 있는데, 왜인이 이를 가리켜 이것이 백마분인데, 신라 군사가 일본에 깊이 쳐들어오니, 일본이 화친하고 군사를 풀어 주기를 청하여 백마를 죽여서 맹세한 뒤에 말을 이곳에다 묻었다.')

 

2. 동사강목 제3. 진평왕 정벌기사

 

계묘년 신라 진평왕 5, 고구려 평원왕 25, 백제 위덕왕 30(() 후주(後主) 지덕(至德) 원년, 583) 2월 신라가 왜()의 서변(西邊)을 토벌하였다. 왜사에서 보충

 

해동기(海東記)에는,

 

왜황(倭皇) 민달(敏達) 12년 계묘(癸卯)에 신라가 서변을 토벌하였다.” 서력 583년임

고 적혔으나 신라와 백제가 왜와 접경하여 그 환()을 자주 입었는데 교빙과 정벌에 대하여는 사적(史籍)에 드물어서, 바다를 건너서 왜국을 정벌하였다는 일은 듣지 못하였다. 왜사(倭史) 연대기(年代記)에는, 응신천황(應神天皇)이 신라의 유례왕(儒禮王) 때를 당하여, 신라 군사가 명석포(明石浦)에 와서 흰 말을 죽여 맹서를 받아 간 일이 있었는데 지금도 그 나라 적간관(赤間關) 동쪽에 백마총(白馬塚)이 있다.”하고, 신라가 토벌하여 온 일이 두어 곳이 있었다.” 적혔으나, 우리 역사에는 전하여지지 않는다고 한다.

 

지금 동래(東萊)의 절영도(絶影島)에 태종대(太宗臺)가 있는데 속전(俗傳)하기를 신라의 태종(太宗)이 대마도(對馬島)를 토벌할 때 주필(駐蹕)하였던 곳이라 한다. 신라는 조그마한 한 구석진 땅이로되, 육지로는 능히 고구려와 백제에 대적하고, 바다로는 왜국을 정벌하였으니, 그 병력의 웅대함이 삼국을 통일할 만한 것임을 생각할 수 있겠다. 후세에 해동의 온 땅덩어리가 섬나라 오랑캐[島夷]들에게 곤욕을 당한 것은 반드시 까닭이 있을 것이다. 위정자(爲政者)들은 의당 그 방어책을 생각하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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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부상록(扶桑錄) 석문(石門) 이경직(李景稷). 유례왕 정벌기사

 

정사년(광해 9, 1617) 1018(기묘)

일본은 아득하게 하늘 동쪽에 있어 사방이 큰 바다이므로 외국 군사가 들어가지 않았다. 다만 그들의 연대기를 보니, 소위 응신천황(應神天皇) 22[서력 291]에 신국(新國) 군사가 왔다.’ 하였고, 딴 본()에도, ‘신라 군사가 명석포(明石浦)에 들어왔다.’ 했다. 명석포는 대판까지 겨우 1백여 리다.

적간관(赤間關) 동쪽에 구롱(丘壟) 하나가 있는데, 왜인들이 가리키면서, ‘이것이 백마분(白馬墳)이라는 것인데, 신라 군사가 일본에 깊이 들어왔으므로 일본 사람이 화친하기를 청하여 백마를 잡아 맹세하고 말을 여기에다 묻은 까닭이다.’ 하였다.

 

이세(李稅)의 일을 추적(追跡)해 알았으나 밀교(密敎 임금의 비밀 전교(傳敎))에 관계된 것이므로 별도로 계초(계본(啓本)의 초고)를 만들고 여기에다 다시 갖추어 기재하지 않는다.

 

日本邈在天東四面大海外兵不入但見其年代記其所謂應神之二十二年新國兵軍來一本則曰新羅兵入明石浦石浦距大坂纔百有餘里赤間關之東有一丘壟倭人指之曰此是白馬墳新羅兵深入日本日本人請和解兵刑白馬以盟埋馬於此故云跟尋李稅之事係是密敎故別具啓草不復具載於此하였다.

 

4. 안정복/ 순암선생문집 제1권 진평왕, 성덕왕 정벌 기사

 

()

 

우리 역사를 보다가 느낌이 있어 악부체를 본떠 읊다[觀東史有感 效樂府體]

 

백마총행(白馬塚行) 동명(東溟) 김세렴(金世濂)의 사상록(槎上錄)에 이르기를, “일본의 연대기(年代記)를 보면, ‘왜황(倭皇) 응신(應神) 22년에 신라 군대가 명석포(明石浦)에 들어오니 대판(大阪)과의 거리가 겨우 1백 리 정도였다.’라 하였다. 적간관(赤間關) 동쪽에 무덤이 하나 있는데 왜인들이 그 곳을 가리키며 말하기를 저기가 바로 백마(白馬)의 무덤인데, 신라 군대가 쳐들어왔을 때 일본 사람들이 화의를 청하여 군대를 풀고 백마를 잡아 맹약한 후 그 말을 저 곳에 묻었다.’고 한다.” 하였고, 보한재(保閑齋) 신숙주(申叔舟)의 해동제국기(海東諸國記)에 의하면, 응신 22년은 신라 유리왕(儒理王) 8[유례왕 8년이 맞음]에 해당하고, 중국으로는 진()의 혜제(惠帝) 원강(元康) 원년이 되는 해[서력 291]인데, 그 사실이 동사(東史)에는 실려 있지 않다. 해동기(海東記)에 의하면, 달민천황(達敏天皇) 계묘년[서력 583]에 신라가 서비(西鄙)를 쳐들어왔다고 되어 있는데, 그 해는 신라 진평왕 5년에 해당하고, 또 원정천황(元正天皇) 경신년에도 신라가 서비를 쳐들어왔다고 했는데, 그 때는 신라 성덕왕 19[서력 720]이지만 그 사실이 이 동사에는 다 빠지고 없다. 지금 동래(東萊) 바다 절영도(絶影島)에 옛 진지가 있는데, 세상에 전해 오는 말로 신라 태종이 왜국을 정벌할 때 쌓은 것이라 하여, 이에 태종대(太宗臺)라고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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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달천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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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story2 18-03-20 20:44
   
유례왕, 진평왕, 성덕왕 3차례나 일본정벌이 있었는데, 삼국사기에 나오지 않은걸 보면(또한 공격의 지점이 오사카이고요) 열도의 분국간의 전쟁이라고 생각을 하는 입장도 있지만, 유례왕조는 신라 본국이 직접 준비를 해서 한 것 같구요, 진평왕조는 열도에 있던 임라를 제거하기 위한 목적성이 명확합니다...성덕왕 때는 발해와 왜가 합동 공격을 하려해서 진행한 선제공격일 수 있고요.... 암튼 삼국유사에 나오지 않은 부분이 너무 아쉽지만, 여러사서의 기록과 태종대라는 지명의 유래 및 일본서기의 기록등을 보면, 충분한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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