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야쿠쟈의 시조 이자 극우의 시조 격 두산만-도야마 미쓰루는
1) 명성황후 시해의 배후조종자 이자 2) 쑨원과 김옥균의 후원자로 3) 현양사(겐요샤), 흑사회 등등 낭인단을 조직, 일본 정계에서 막후거물로 실력 행사하였다.
구일본의 내각총리대신들이 취임할때는 한국의 역대 대통령이 당선발표후 문안을 올렸던 밤의 대통령 조선일보 사주 방일영, 방우영처럼 그에게 반드시 인사를 했다고 한다.
<정한론과 우익>
이토 히로부미 · 야마가타 뒤에는 항상, ‘암흑의 권력’ 현양사(겐요샤)가 있었다
100년 전 일본은 두 개의 흐름으로 조선을 공략해 왔다. 하나는 공식 라인, 다른 하나는 비공식 라인이다.
1) 공식 라인: 정한론(征韓論)의 정신적 지주 '요시다 쇼인'의 두 제자인, 이토 히로부미와 야마가타 아리토모는 동지이자 라이벌로서, 두 사람은 공식 라인을 책임진 자들이었다.
이토는 초대 총리를 포함해 총리를 네 번이나 지냈고, 일본군을 근대화한 야마가타는 이토에 이어 두 번의 총리를 지내며 조선 침략의 발판을 다졌다.
이들의 출신지는 일본 서부 야마구치현(요시다 쇼인 고향)이다.
2) 비공식 라인: 일본 특유의 대륙낭인들이다. 그들은 정한론이 대두된 1873년부터 조선을 병합한 1910년까지 공식 라인에 앞서 모든 궂은일을 책임졌다.
그들의 명분은 항상, 서구로부터, a)일본의 독립 b)동양평화를 지킨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대외론에서 이 비공식적 라인은, 일본의 해외 진출을 호소해 구미 열강 제국과의 불평등 조약 개정문제해결과 '대 러시아 동지회에 참가'해 러일전쟁 불가피론을 주장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