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혁명군 깃발-독립기념관)
https://www.i815.or.kr/kr/news/press.php?code=bodo&mode=V&no=95438
1938년 9월 6일 조선혁명군 총사령 김활석이 체포되면서 조선혁명군의 역사도 끝이 났는데 사실 조선혁명군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 일 거다.
사실 들어봐도 이름 정도거나 잘 알아봤자 양세봉 정도일 거다. 근데 지금부터 쓸 내용은 조선혁명군이 어떻게 끝이 났나 이런 이야기라서 그 전에 조선혁명군의 역사를 대충 훑고 들어가는 게 좋을 거 같고, 글을 음슴체를 쓰려고 함
조선혁명군의 역사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1920년부터 쭉 이름은 계속 바꾸지만 약 18년 정도의 역사를 지닌 독립군 부대임
만주 사변 당시 양세봉을 중심으로 일본군경이랑 열라게 총질하면서 암것도 모르는 중국 민병대 훈련 시켜서 같이 일본과 싸우는 등 그 당시 일본군경이 양세봉이 이끌던 조선혁명군보고 극혐 할 정도 였음
아무튼 그러다 양세봉이 암살 당하고 조선혁명군은 몰락하기 시작했음 병력이 최소 500명 이상이었던 조선혁명군은 100~200명 정도로 줄어들었고, 일본군경 토벌 때문에 남만주에 있던 많은 한인 마을에 대한 영향력을 잃게 됨
양세봉이 암살 당한 이후 총사령(총사령관)은 김활석이 되었고, 당시 점점 몰락하는 걸 막기 위해서 당시 당, 군, 관을 다 군인 조선혁명군 중심으로 조선혁명군정부로 재편함
그러나 조선혁명군의 몰락을 막을 수는 없었음 34년 양세봉이 사망한 이후 36년에 정신적 지주이자 당을 이끌던 고이허가 잡히면서 조선혁명군의 상황은 더 안 좋아짐
그러자 총사령이었던 김활석은 한인들이 많았던 공산주의부대인 동북항일연군이랑 연대해서 일본군경에 대항 하면서 근근히 버팀
그러다가 37년 3월 조선혁명군은 어떻게든 쥐어짜서 평안북도 건너편에 튼튼한 산채를 구축하고 국내로 진공 하려는 계획을 짜는데 이걸 일본군경이 알아차림
알아차린 일본군경은 이참에 조선혁명군을 뿌리 뽑으려고 경찰, 관동군 정보기관, 군용기까지 투입하면서 본부를 공격함
김활석이 이끄는 조선혁명군은 1000미터 고지에 있던 요새로 들어가 저항했으나, 결국 일본군과 만주군의 화력에 밀려 10시간 동안의 전투 끝에 퇴각함
이러한 공격에 조선혁명군은 본부와 그동안 구축했던 산채, 요새들을 잃었고 결국 떠돌이 생활을 하는데 1사 사령인 한검추와 그의 병사들에게 일본경찰이 회유 문서를 보내서 50여명이 결국 항복하는데 그 회유 문서 내용이 어떻냐면
“그대여! 그대들은 마땅히 민족을 위한다고 생각하지만, 이제 크게 눈을 떠보라! 정치적 투쟁이나 혁명이라고 말하는 것은 결국 무력으로 승부를 결정짓는 것이다. 숙고熟考해보라! 중국인의 소작으로써 그날 그날의 생활을 영위하고 있는 조선농민으로부터 군량미를 징수하고 매호每戶년 3원圓50전錢의 군자금을 강요하여 조선혁명의 재료가 되는 비행기·고사포·야포·기타 화학병기를 꿈이나 꿀 수 있는가? 몇 억 몇 천만원을 요하는 것이다. 조선인의 경제력으로 이러한 거액의 자금을 갹출醵出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가령 자금을 조달했다고 해도 오늘날과 같은 국제적 감시하에서 어떻게 이러한 병기를 구입할 수 있을까? 만약 구입했다고 해도 그 병기를 누가 사용하고, 누가 싸운다고 생각하는가? 작전계획과 전투지휘를 하는 인재가 몇 사람이나 있다고 생각하는가? 아아 그대여! 이것은 지자智者가 하는 업 아니라 우자愚者의 악희惡戱이다. 자기동포를 살육장으로 이끌고 고혈膏血을 짜는 것은 기생충이 하는 일이다. 각성하는 바 있어 원대한 장래를 생각해보라! … 한군이여! 그대의 문제는 가장 빨리 당지當地헌병분대장과 협의하여 봉천奉天헌병대장에 상신할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절대로 안심해도 좋다. … 그대의 처에 대한 생활과 보호의 건件은 절대 안심하여 달라. 당지當地헌병대와 함께 극력 보호할 것이다. 그리고 그대 장모의 병도 완전 나았기 때문에 그 점도 안심해 달라. … “
이러한 내용이었음
아무튼 50여명이 항복 한 이후 약 150명 정도로 줄어든 조선혁명군은 당시 사람들이 광간사령이라고 불렀는데 이 뜻은 가지 없는 나무로 병사 없이 간부만 있는 조선혁명군을 지칭하는거였음
아무튼 이후 조선혁명군은 70명 정도의 병력이 조선혁명군이 워낙 상황이 안 좋으니깐 동북항일연군으로 들어가기도 하고, 몇몇 인사들이 임시정부 측으로 가기도 하는 등 이제 150명 중에서 많아봤자 70명 정도 밖에 안 남았음
그러나 총사령인 김활석은 조선혁명군을 떠날 수 없었음...
왜냐하면 조선혁명군의 역사를 포기 하고 싶지 않았기 땜시 결국 교전 끝에 일본군에게 항복함
그러면서 조선혁명군은 끝이 났음
조선혁명군 토벌이 끝난 후 일본경찰은 이러한 글을 남겼는데
“이에 따라 20여년의 오랜동안 조선독립을 꿈꾸며 용맹무쌍하게 활동, 치안의 암이라고 일컬었던 조선혁명군도 드디어 재기불능에 빠졌다”
참고는
http://search.i815.or.kr/subContent.do
독립기념관.한국독립운동의 역사.제51권 1930년대 만주지역의 항일무장투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