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호도를 묘도군도 끝 남황성도에 비정하고, 도리진을 요동반도에 비정했을 시의 상식적 문제점
1. 당 태종은 2차 침략에서 래주를 수군 본진으로 삼고 오호도, 대사도 등의 섬에 수를 설치하고 특히 오호도에는 군량을 비축케 하였다. 통상 당 태종 3차 침략으로 거론하는 2-3차 침략에서는 오호도에 무려 30만 대군의 군량을 비축케 하였다
2. 지도를 보라. 학계 통설에서도 광개토대왕 말기 후연을 격파한 후로 현 요서 지역에 진출하고 장수왕 대부터는 고구려 강역이 대릉하 일대까지 이르렀다
3. 오호도로 비정된 묘도군도의 남황성도는 요동 남단, 즉 고구려 본진의 코 앞이다 그 요동 반도 일대에는 학계 통설에서도 비정한 안시, 건안, 비사성 등이 포진해 있다
4. 학계 통설에서 도리진으로 비정한 여순/대련 지역은 통설에서 비사성을 비정한 곳이다 그곳이 고구려 후방인가 아니면 국경지대인가?
5. 고구려와 백제는 4 세기에 환서해 해상권을 두고 다투었고 광개토대왕은 강력한 수군을 동원하여 백제의 수십 성을 공파하고 백제를 멸망 직전까지 만들며 해상권을 장악했고 장수왕 대에는 고구려 주도로 중국 남조와 북조 사이에서 삼각외교를 벌이며 북위와 송/남제도 고구려를 어찌하지 못 했다
6. 왜가 송에 보낸 표에도 고구려가 방해하여 사신을 보내지 못 했다 하였고 백제 역시 가로 막혔으며 북위가 백제에 사신을 보내고자 했으나 고구려가 바닷길과 뭍길을 열어주지 않아 무리하게 원양항해를 시도하다 사신선이 난파되기도 했다
7. 수ㆍ당의 잇따른 침략에 고구려의 경비가 삼엄해진 상황에서 고구려가 해상을 장악한 그 지역인 요동 근해인 오호도에, 고구려 본진 코 앞에, 그것도 당나라 연안도 아닌 육지에서 260리니 300리 떨어진 남황성도에 당 태종이 무려 30 만 명 분의 군량을 비축케 했다는 게 납득이 가는가?
8. 더욱이 고구려 본진인, 학계 통설에서도 비사성이 비정된 요동반도 끝에서 가까운 오호도에서 출군한 당 수군이 당 태종 2-1차의 100여 회, 오호진 수장 고신감이 싸운 역산까지 모두 고구려 국경지대였다고 삼국사기, 그리고 독사방여기요는 적고 있다
9. 비사성이 있는 요동반도 남단의 연안인 남황성도가 오호도고 이 오호도에 고구려 원정의 엄청난 량의 군량을 비축케 했다는 것도 납득이 안 가는데 거기서부터 다시 연안을 따라 현 학계 통설에서 말하는 고구려 서쪽 국경지대인 대릉하~현 요하 지역까지 적진을 수백 리 거슬러 가서 그곳을 공격한다는 게 납득이 가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