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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3-11 11:05
[한국사] 감방친구님의 의문에 대한 답글(2)
 글쓴이 : 독산
조회 : 723  

감방친구님의 의문에 대한 답글(2)

 

(1)감방친구 18-03-10 16:49

요사 지리지 해당 내용은

동경요양부를 설명하는 것이지 동경을 설명하는 게 아닙니다

동경요양부, 부의 연혁을 설명하고 있고

'요나라 동경이 이곳이다'는 고구려 평양을 서술하는 것이죠

 

기자조선, 위만, 한무제, 한사군, 공손씨, 모용씨, 광개토태왕~~ 이렇게 동경요양부의 연혁을 설명하다가

 

요 동경=고구려 장수왕 평양=위 사신이 방문한 그 평양

 

이렇게 설명하는 것이죠.”

 

답변; 요사<지리지>의 내용은 요나라의 동경이 본래 이곳이다(遼 東京本此)는 앞의 광개토왕이 거주하던 곳이오(李敖)가 방문한 곳을 통틀어 말한 것입니다.

以勾麗王安爲平州牧居之. 元魏太武遣使至其所居平壤城, 遼 東京本此.

 

그러나 요사편찬자가 말하는 요지(要旨)는 양쪽이 같은 1곳으로 보고 양평이 고구려의 치소인 평양성이라고 했던 것입니다.

 

감방친구님은 요 동경=고구려 장수왕 평양=위 사신이 방문한 그 평양라고 하셨는데, 그렇다면 구태여 앞에서 광개토왕 거소(居所;양평)을 언급할 필요가 없죠.

 

요사편찬자가 양 곳을 동일지역으로 본 것(비록 잘못이기는 하더라도)은 다음의 내용에서 확인 할 수 있습니다.

 

광개토왕비문에 비려(碑麗) 정벌을 마치고 귀환 길에 양평도를 거쳐 왔기 때문에(因過襄平道)

동쪽으로 역성(力城북풍(北豐)을 거쳐 ( 평주목의 치소인 양평에 도착합니다.)라고 해석되어야 할 곳을,

 

왕건군1985, 국역본 廣開土王碑硏究, 역민사, 301.호태왕은 그곳(비려;독산 주)으로부터 돌아오면서양평도가 가깝기때문에 양평도를 거쳐 동으로 왔다. 力城·北豐에 이르러 자기 국경에 들어섰다운운하고 있는 것이다.

 

멋대로 因過襄平道를 의역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잘못된 해석이다.

 

因過襄平道양평도를 거쳤기 때문에 동행(東行)하여 역성·북풍을 지나 최종 귀환처인 양평에 이르렀다는 의미이다.

 

더구나 왕건군은 요양을 옛날에 양평이라 칭했음. 양평도는 요양에서 고구려에 이르는 길. ………역성·북풍은 지금의 집안 서북일대. 북풍은 그 뒤 발해의 서경 압록부 소속의 풍주.”(왕건군 앞의 책, 301쪽 주10·11.)라고 엉뚱한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

 

양평도는 양평으로 향하는 길이지 양평에서 집안으로 향하는 길이 아니다.

 

당시의 광개토왕은 망우하 북쪽에서 내려오며 동쪽으로 방향을 틀어 양평도인 역성·북풍을 거쳐 양평에 도착하였다는 의미이다.

왕건군에 있어서는 양평의 동쪽에 역성·북풍이 위치하지만 비문이 말하는 실질적 의미는 양평의 서쪽(아마도 요하 서쪽)에 역성·북풍이 있다는 것이 된다.

 

왕건군은 또 망발을 퍼붓는다.

 

고구려 호태왕 때에는 아직은 요동을 점거하고 있지 않았으며 혼강(지금의 환인과 집안 사이를 흐르는 강; 독산 주)을 경계선으로 하여 서쪽 경계를 삼았다.

따라서 역성과 북풍은 혼강의 동쪽에서 찾아야 한다.

 

어떤 이는 개별적인 사서의 오기(誤記)를 근거로 하여 보지도 않고 억지로 자기 논리에 맞추어 ……양서(梁書)삼국사기의 개별적이고 확실치 않은 조목을 근거로 해서 고구려가 4세기 말 요동을 점거하였다고 하나 그 시기는 빨라야 5세기 30년대를 초과할 수 없다.”운운 하고, 계속해서 삼국사기(광개토왕 14년조)를 모용희 부부의 요동성 공격 때의 과 관련된 기사를 트집 잡아 이는 후제(後齊)의 고위(高緯)가 진주(晉州)를 공략할 때 생긴 이야기인데 어찌하여 모용희의 기록에 끼어들어 갔는지 알 수가 없다.”(왕건군, 앞의 책, 229.)운운 하며 스스로의 지식이 천박함을 드러내고 있다.

 

주지하듯이 삼국사기의 모용희 관련 기사는 자치통감에 그 연원을 가지는 것이며 그 이전으로 소급하면 진서(晉書)<慕容熙載記>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모용희가 요동성(양평)을 공격했던 것은 양평이 고구려의 수중에 있었음을 반영하는 것이다.

억지를 부리지만 이미 중국 측 사서가 이를 확인시켜 준다.

 

(2)고구려 광개토왕의 치소가 양평에 있음을 확인시켜 주는 기사는 또 있다.

 

송서<고구려전>高句驪國, 今治漢之遼東郡. 高句驪王高璉, 晉安帝義熙九年, 遣長史高翼奉表獻赭白馬.”라는 내용이다.

 

고구려의 지금의 治所는 한의 요동군(양평)이다. 고구려왕(즉 장수왕)이 진() 안제(安帝) 의희(義熙) 9(, 413. 장수왕 원년)에 장사(長史) 고익(高翼)을 보내 봉표하고 자백마(赭白馬)를 바쳤다.

 

비록 장수왕 원년에 해당하는 기사이지만, 선왕(先王; 광개토왕)의 치소인 양평에 있었을 때이다.

때문에 今治漢之遼東郡이라고 한 것이다.

 

이는 삼국지<한전(韓傳)>辰王治()支國과 같은 용법이며, 진왕은 목지국을 다스린다.가 아닌 진왕의 치소는 목지국이다로 해석해야 할 개소이다.

 

요사의 편찬자로서는 장수왕(15)의 한반도 평양 천도를 확인할 수 없었기에 북위의 사자 이오(李敖)가 방문한 평양성을 광개토왕이 치소로 하였던 양평과 같은 장소인줄 오해하였던 것입니다.

 

감방친구님은, 평양성=요나라의 동경이라는 주장이지만,

앞서 설명한대로 북위의 사자가 방문한 곳은 한반도의 평양(장수왕 15년에 천도)이 요나라의 동경이라는 성립할 수 없는 주장이 됩니다.

 

물론 장수왕이 천도한 평양이 요동의 평양이라고 하는 국내 일부의 주장이 있음은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주장입니다.

 

관련하여 북위 역도원의 수경주<패수편(浿水篇)>에 실려 있는 내용이 있습니다.

 

其地今高句麗之國治. 余訪番使, 言城在浿水之陽.

그 지역(왕험성)은 지금 고구려의 치소(평양성)가 있는 곳으로, (역도원)가 고구려에서 북위로 들어온 사신에게 물어보니 평양성은 패수의 북쪽에 있다고 말하였다.

 

이 내용은 많은 혼란을 일으킨 것으로 나중에 따로 자세히 설명하겠지만, 결론만 말하면 역도원의 말에도 역시 오해가 섞여 있습니다.

 

즉 당시 고구려의 번사가 방문하였을 때, 역도원이 물어본 결과 당시의 도읍인 평양(한반도)이 패수(, 대동강) 북쪽에 있었던 것까지는 옳게 설명한 것입니다.

 

그러나 역도원이 오해한 것은 이 한반도의 패수(대동강)를 낙랑군 내를 흐르는 요동지역의 패수(고구려의 薩水, 혼하), 또 위만이 건넌 요서지역의 패수(지금의 대릉하)와 모두 같다고 본 것입니다.

 

이러한 오해는 신찬의 설(패수의 남쪽, 혹은 동쪽=조선현=왕험성)을 신봉하는 양수경으로 하여금 역도원이 말하는 패수의 북쪽(패수지양)에 있는 평양이 왕험성이 될 수는 없다(패수의 남쪽=조선현=평양)고 주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요컨대 양수경의 주장은 괄지지후한서·()평양성=왕험성이라고 말하여 후인들 모두가 이를 무분별하게 전거(典據)로 하는 것은 잘못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장님 코끼리 귀 만지기와 마찬가지로 선학의 주장에 대한 시비가 확실치 않은데서 온 비극이다.

 

이와 관련하여 왕험성=험독이라는 응소·응소설을 독단이라고 비판한 신찬의 설에 손을 들어준 안사고·이도 저도 아닌 중립설색은·그리고 당대(唐代)의 많은 주자(注者), 그리고 그들의 주장을 정확히 헤아리지 못하고 아전인수 격으로 그 시비를 논하는 청대(淸代)의 학자들,

 

그 주장을 일일이 논박하기에는 허락된 지면이 아쉽다.

 

다만 이곳에서는 역도원이 수경주를 편찬할 당시의 고구려의 수도 평양성은 한반도의 평양성이 틀림없음을 밝혀둔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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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통일 18-03-11 11:11
   
公姓泉, 諱男生, 字元德. 遼東郡平壤城人也.-천남생묘지명
번역-공의 성은 천이고 휘는 남생이며 자는 원덕이다. 요동군 평양성 사람이다.
丙戌十二月中漢城下後小兄文達節自此西北行步之 -평양 성벽각자 제 4석
이 유물은 어찌 설명하실건가요?
그리고 5번이나 읽었는데 님 글이 잘 이해가 안가요
남북통일 18-03-11 11:12
   
그리고 평양성은 산을 따라 구불구불해야 하는데,
대동강 평양성에 산이 있나요?
감방친구 18-03-11 11:20
   
이 글은 무슨 말씀이신지 이해가 갑니다
성의 있는 설명의 답변 감사드립니다
저는 탐문 초심자이기에 다양한 부대 배경에 대한 견식이 적습니다

저는 아직은 고구려 말기 압록강을 혼하로 보는 것을 최선안으로 요하를 압록으로 보는 것을 차선안으로 보는 입장이라서 평양을 본계를 중심한 지역에, 살수는 북사하로 일단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전에도 밝혔지만 평양을 현 평양으로 보는 안 역시 차안으로 염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가능성은 가장 낮게 봅니다
감방친구 18-03-11 11:21
   
그리고 개인적으로 수경주는 취급을 안 하려합니다
history2 18-03-11 11:40
   
수경주: 수경주의 주요 내용은 고대 중국의 수로를 기술한 것이다. 추가적으로 지역의 특색을 기술하였다. 본문의 내용에 주석을 붙어있는 형식으로 되어있다. 《수경주》는 북위 시대에 역도원에 의해 편집되었다. 《수경》의 원래 분량에서 40배 크기로 방대해 졌다. 10세기 무렵 책의 일부 내용이 유실 되었다. 그리고, 책의 내용도 경문(본문)과 주석이 뒤죽박죽이 되었다. 《수경주》를 복원하려고 명나라. 청나라의 유명한 학자들이 조사하여 조합한 결과, 여러 종류의 복원이 이루어졌다. 그중에서 가장 상세한 고증본은 명나라의 주모위(朱謀瑋)가 1615년에 복원한 《수경주소》(水經注疏)이다. 《수경주소》를 토대로 하여 전조망과 대진 등이 문장을 추가한 《수경주》가 나왔다.
history2 18-03-11 11:40
   
윤내현 박사님은 수경주를 아주 책 취급도 안하시던데요?
     
남북통일 18-03-11 11:43
   
헐..........
그정도였나요?
     
꼬마러브 18-03-11 13:19
   
수경주에 대한 윤내현 교수의 주장은,
패수라는 지명은 시간에 따라 그 위치가 바뀌었는데, 역도원이 이 사실을 확인하지 않고는 "패수 북쪽에 평양성이 있다"는 고구려 사신의 말을 토대로 "낙랑군이 평양에 있다"고 뒤에 덧붙였다는 것입니다.

( 고구려 후기의 패수는 대동강을 말하고 고조선 때의 패수는 난하, 혹은 난하의 지류를 말함 )

그런데 아래의 댓글에서도 말했지만

애초에 수경주는 한사군 문제를 고증하는데 있어서 사료적 가치가 낮습니다.

1차사료도 아니고 해석도 여러가지로 나올 수 있으니까요.
history2 18-03-11 11:41
   
문제가 많은 책인지요? 궁금했었습니다....
history2 18-03-11 11:58
   
노태돈 님은 수경주를 신주단지 모시듯 하시고ㅡ 윤내현 교수님은 역도원이 틀렸음을 주장했는데, 여전히 수경주가 많이 인용은 되고 있습니다...근대 정확한 사정을 몰라서 ....
도배시러 18-03-11 12:19
   
수경.주는 주류와 재야사학이 모두 싫어해야 합니다.
고구려의 위치를 소요수 발원지에 두는게 수경이고, 유수를 요수라고 하는게 수경주입니다.
꼬마러브 18-03-11 13:04
   
『수경주』에서 문제가 되는 문장 전체를 보면 이렇죠.

其地今高句麗之國治余訪番使言城在浿水之陽其水西流逕故樂浪朝鮮縣即樂浪郡治漢武帝置而西北流.

주류의 해석 : 그 지역(왕험성)은 지금 고구려의 치소(평양성)가 있는 곳으로, 내(역도원)가 고구려에서 북위로 들어온 사신에게 물어보니 "평양성은 패수의 북쪽에 있다. 그 강물은 서쪽으로 흘러 옛 낙랑군 조선현 곧, 낙랑군치를 흐른다. 한무제가 설치하였다."고 했다.

재야의 해석 : 그 지역(왕험성)은 지금 고구려의 치소(평양성)가 있는 곳으로, 내(역도원)가 고구려에서 북위로 들어온 사신에게 물어보니 "평양성은 패수의 북쪽에 있다."고 했다.  그 강물은 서쪽으로 흘러 옛 낙랑군 조선현 곧, 낙랑군치를 흐른다. 한무제가 설치하였다.

- 주류의 해석은, 고구려 사신이 "평양성은 패수의 북쪽에 있으며 낙랑군이 있었던 곳이다" 라고 말했다는 것이고
재야의 해석은, 고구려 사신이 "평양성은 패수의 북쪽에 있다"고 말하고 나서 역도원이 "그곳은 낙랑군이 있었던 곳이다"라고 덧붙였다는 것입니다.

즉, 낙랑군이 평양에 있었다는 역사 인식을 고구려 사신이 가지고 있었는지? 아닌지의 차이이죠. 이게 한자의 재미있는 점이에요. 여러가지 해석이 가능하거든요. 둘 다 문법적으로는 문제가 없습니다.
     
꼬마러브 18-03-11 13:10
   
그런데 애초에 수경주는 한사군 위치를 고증하는데 있어서 1차사료가 이닙니다. 왜냐하면 수경주는 한사군이 폐지된 이후에 만들어진 사서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후한서』와『삼국지』처럼 한사군이 존재했던 당시의 사서들과 비교할 때... 학술적 가치가 낮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자에 대한 해석도 서로 엇갈리고요.

이러한 까닭에 "교차검증"이라는 것이 필요한 겁니다. 특히 한자의 해석이 여러가지로 나올 수 있는 동아시아 역사에서는 더더욱 그렇고요.

그러나 교차검증 따위는 거치지 않고 수경주의 저 기록을 금과옥조로 여기면서 한사군한반도설을 옹호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역사를 탐문하는 기본 자세부터가 글러먹은 겁니다.

실증사학? 자기 입맛에 맞춰서 사료를 편취하는 집단이 어떻게 실증사학일 수 있나요? 그냥 유사사학이지!
독산 18-03-11 13:33
   
조금 오해가 있는 것 같군요!
저는 낙랑군 조선현=고구려 장안성(현 요양지역)이고, 수경주의 역도원이 밝힌 한반도의 평양성은 왕험성이 아니라는 입장입니다.
장안성은 고구려 후기의 도읍으로 낙랑군 조선현이었고, 장수왕이 (양평에서) 천도한 한반도 평양은 낙랑군 조선현이 아니라는 입장입니다.
따라서 역도원이 말한 평양성은 한반도의 평양을 말한 것이되, 왕험성은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신찬이 왕험성=낙랑군 조선현은 안사고가 손을 들어주었으나, 안사고를 포함한 당대의 학자들은 낙랑군 조선현=장안성(고구려 후기수도)이라는 인식하에 신찬설을 찬성한 것입니다.
그러나 신찬의 왕험성=낙랑군 조선현 설은 잘못입니다.
응소의 왕험성=조선현 설이 옳은 설입니다(이에 대해서는 따로 설명).
남생 비문의 '요동 평양=조선'은 고구려 후기의 장안성(지금의 요양, 후일 고려가 도호부설치, 원나라의 동녕로 치소, 또 쌍성(요심)총관부,  명나라의 도사성, 청나라의 성경으로 이전하기 전의 수도.)입니다.

이에 관한 자세한 설명은 따로 올려 드리겠습니다.
history2 18-03-11 16:46
   
독산님의 말씀 이제야 이해합니다....항상 감사히 글 잘 읽고 있습니다. ^^
history2 18-03-11 16:51
   
위만조선의 도읍지 왕험성에 세운 요동군 험독현에 대해서 ‘한서’의 다른 주석자인 신찬(臣瓚)은 “왕험성은 낙랑군 패수의 동쪽에 있다”고 말했다.
신찬이 틀린말을 했는데,,,그래도 방위에 대한 정보는 주었네요
독산 18-03-12 10:55
   
앞에 '응소의 왕험성=조선현 설이 옳은 설입니다(이에 대해서는 따로 설명).'는
응소의 '왕험성=험독'의 잘못이기에 바로 잡습니다.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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