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정할 부분)
1. 목적론에 근거하여 가설을 제시하였다
양심적으로 이 부분에 대한 지적은 옳습니다...저는 정안국이라는 실체를 규명해 보이고 싶었고, 정안국의 986년에 멸망하였다는 점을 인정하기가 힘들었습니다.
왜냐하면, 1018년 정안국 사람 골수가 도망쳐 왔다는 기사 한 줄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면 1018년에도 정안국이 비록 서경 압록부를 빼앗겼더라고, 어딘가에 반드시 존재하고 있었구나 라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그래서 사실 삼별초와 오키나와의 문제에 대해 글을 적는 이유도 되었습니다
* 그러면 왜 이러한 목적론을 가지게 되었는가?
1)정안국을 여진의 일파로 생각하는 강단 및 일부 사람들에 대한 반발
2)정안국의 역사를 짧아서 민족사로 인정 못한다(겨우 48년 남짓)라는 견해에 대한 반발로 80년 이상을 주
장하고 싶었습니다.(48년이라 해도 그 역사는 후백제나 후고구려 보다 길다는 점도 말씀드리고 싶네요)
3)발해의 유민이, 금나라의 '동조동근론'에 속아 그렇게 금나라를 위해 협조했지만, 철저히 배신을 당해 북인(황하 이북의 한족)들과 동일한 취급을 받거나, 더 못한 취급을 당하고, 카자흐스탄에 강제로 끌려간 고려인 처럼, 쓰레기처럼 산동에 버려졌음에도, 이같은 사실이 알려지지 않은체, 여진과 한민족의 동조동근을 주장하는 입장의 글이 넘쳐난다는 것 등의 이유로, 목적론을 가지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이러한 생각이 기저에 있었다는 의미이지 이러한 이유로 사서의 내용을 왜곡하려는
의도는 없었습니다)
2.신주 부분은, 감방친구, 이하 친구님의 제시글의 내용이 맞습니다. 신주(信州) ≠ 신주(神州)
제가 보는 책이 역주다 보니, 신주에 대한 한자적 고찰이 부족했고, 또 살펴보니 신주에 대한 통찰이
친구님의 견해가 제가 본 책의 저자의 견해보다 옳다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사실 이 부분에 대해 대항할 기사도 다소 있었지만, 비겁하다 생각이 들고, 또 객관적으로
친구님의 견해가 더 합당합니다)
고민)
3,그리고 여러 문제들, 현 통구지방의 여러 고구려 유적지의 문제(이건 강단과의 문제입니다)와 또
동요하가 압록일 경우 '친구님'이 걱정하는 부분들은 (동요하가 압록이면 보주성, 내원성은 어디에 두실
겁니까?-이 부분은 너무 마음에 남습니다) 사서적으로는 분명히 합당한 말씀이지만,
지리적으로 고찰할 필요는 있다고 생각은 여전히 합니다.
단, 이 경우 강단에게 불필요한 '요동 압록설'에 대한 반론의 증거를 주는 댓가가 따릅니다.
저는 요하-압록설이 강의 유량을 봐서는 합당하다고 생각을 합니다.
제가 타워팰** 근처에 사는데, 제 방에서 양재천이 항상 보입니다..그러다보니 참 거짓말하기도 어렵습니다....태자하와 혼하의 원류가 딱, 양재천 느낌이거든요....대능하는 더 작습니다.
그러니 저도 고민이 되는거지요...지금은 그나마 태자하나 혼하의 원류의 수량이 예전보다 더 많아진거랍 니다(수로공사로).....그리고 현재 태자하나 혼하의 물길도 지도상의 모습은 1950년대 바꾼거고, 원래는 이 물길도 아니었는데, 좌에서 우로 흐르다, 요하에 합류가 됩니다.
혼하의 물길이 너무 작더라고요....태자하도 그래서, 도저히 여기는 압록강의 후보가 될 수 없구나 생각을 했습니다.
이상입니다......좀 더 적고 싶은데,,,,여전히 머리 속에서, 정리가 안된부분도 있고, 집중하기엔 주위 사람들이 너무 귀찮게 하네요(업무 중이라 ^^) 암튼, 친구님과 오해는 풀고,,, 인정할 것과 제가 가지고 있는 선입관 들 등 나름 정리해 보았습니다.
ㅡ 압록이 동요하가 되면, 동요하~요하가 압록이 되는데 그러면 고려 북방 영토가 무지막지하게 커지는데 어쩌실 겁니까
ㅡ 보주ㆍ내원성은 어디에서 찾으실 겁니까 ㅡ 수많은 유적, 유물은 어떻게 재검토하고 검증하실 겁니까 ㅡ각 시대별로 수없이 고증한 위치, 거리, 유적, 지형지물 등의 사서 기록은 또 어떻게 비판하실 겁니까
이 부분에 대한 답변은 솔직히 현재는 감당하기가 어려운 문제입니다.
제가 더 준비하는 수 밖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