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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3-08 13:46
[한국사] 압록강을 동요하에 비정하면 생기는 문제
 글쓴이 : 감방친구
조회 : 912  

무지 많습니다

 ㅡ수ㆍ당이 요택과 요수를 건너서 압록강 서쪽에 주둔했습니다 요택이 어디입니까(요택 지형 변천 과정을 거의 유일하게 연구하신 여자 박사님이 계십니다 제가 이곳에 소개하기도 했는데 유튜브에 발표 영상이 있습니다)

ㅡ 요동성, 안시성, 건안성 등을 어디에서 무엇을 근거로  찾을 겁니까

ㅡ 압록이 동요하가 되면, 동요하~요하가 압록이 되는데 그러면 고려 북방 영토가 무지막지하게 커지는데 어쩌실 겁니까

ㅡ 보주ㆍ내원성은 어디에서 찾으실 겁니까

ㅡ 수많은 유적, 유물은 어떻게 재검토하고 검증하실 겁니까

ㅡ각 시대별로 수없이 고증한 위치, 거리, 유적, 지형지물 등의 사서 기록은 또 어떻게 비판하실 겁니까

이게 다가 아닙니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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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산 18-03-09 07:01
   
압록수는 3곳 있습니다.
고구려가 치소를 옮겨 다니면서 그 천참(天塹)이 되는 곳을 '압록'이라 이름한 것입니다.
후세의 기록자들이 마구 뒤섞어 놓아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수당이 건너는 압록수는 청하 입니다. (예; 평양에서 30리 못미친 지점에서 압록수까지 하루낮 하루밤 450리)
물론 한반도의 압록강을 건너는 경우도 있습니다(예;설만철, 설인귀?).
안시성과 건안성(평곽; 모용인의 치소)은 요하-유하 사이에 있습니다. 좀더 정확히는 수수하(秀水河) 서쪽에 있었습니다.
구당서(고구려전)에서 고구려 고연수 군(軍)이 당나라 군을 핍박할 때 고구려 병사가 건너온 동천(東川)의 교량을 치워 후미를 끊는데, 이 동천이 바로 수수하일 것입니다.
 
오늘날의 비정처럼 요동반도(개주 부근지역)에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보주와 내원성 문제는 다음에  따로 언급하겠습니다.
     
감방친구 18-03-09 08:49
   
말씀 감사합니다
실은 저도 압록강이 여러 곳이었다고 생각해 왔으며
독산님의 견해ㅡ청하, 수수하 등 ㅡ에 공감하며 깊은 흥미를 느끼는 바입니다

그리고 저 역시 마지막 평양, 고구려 멸망기 마지막 평양이 현 압록강 안팎에 위치했을 가능성을 염두하고 있습니다
독산 18-03-09 12:11
   
고구려의 수도
소제 이후의 현토군(왕망에게 縣侯로 강작되기 전까지)-국내성(무순시 북, 고구려 서부가 공손씨에게 투항할 때까지)-환도(환인현)-평양(한반도 평양)...환도와 평양을 오고감... 양평(지금의 철령시 노성 북쪽, 광개토왕과 장수왕 초기)-평양(한반도, 장수왕 중기 이후)-장안성(지금의 요양시, 수당과의 전쟁을 맞은 수도)
수나라의 일차 침공 시 장안성으로의 천도를 미처 알지못한 수나라 수로군은 한반도 평양으로 들어오는 뻘짓을 벌임.
2차부터는 요동반도 남단의 비사성으로 상륙, 북진하여 장안성(요양시-옛 조선현)으로 향할 계획이었음.
우문술이 건넌 압록수는 지금의 청하로 평양 30리 못미치는 지점부터 살수를 거쳐 450리를 도주하는데 그 살수는 지금의 혼하 상류인 소자하(蘇子河)로 비정됨.
이곳은 명청교체기에 싸르허 전투로 유명한 곳이며, 당시 둑을 막았다가 터트려 명나라 군사와 물자가 수장되기도 하였음.
을지문덕의 살수대첩이 정확한 기록은 남아있지 않으나 야사(野史)나 시문(詩文)에 전해지는 바로는 살수의 둑을 막았다가 터트리는 양상과 매우 흡사함.
고대의 도하(渡河)는 평상시에는 하류로도 배를 이용하여 건널 수 있으나, 대규모 군사작전은 대안(對岸)의 저항을 감안해야 하기 때문에 폭이 좁고 수심이 낮은 상류쪽을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
요하는 고대에도 동서로 많은 지류들이 유입되고 있었기 때문에 철령시 이남은 요해(遼海)로 불릴 정도로 넓고 깊었음(명사지리지 삼만위 참조).
<지리지>에 보이는 '..入海'의 '海'는 반드시 바다로 들어간다는 의미는 아님.
서안평에 이르러'..入海'를 안평(단동시 부근)에 이르러 바다로 들어간다고 해석하기도 하지만 안평이 서안평과 같을 수는 없고, 역시 이곳의 海는 고대의 요해(遼海)로 보아야 함.

따라서 고대 도하처로 유명한 요대(遼隊, 遼隧)도 동요하와 서요하가 합류한 지점에서 조금 내려오는 곳(철령시 통강구 부근, 通海口라고도 함)이 될 수밖에 없고 그 이남은 청하, 혼하, 서쪽에서는 유하 등이 쏟아져 들어와 수심이 깊어지고 강폭이 넓어져 대규모 군사의 도하처가 될 수 없다.
또한 요양시를 옛 양평으로 비정하지만 양평은 상류에 있는 도하처(遼隧) 북쪽에 있으므로  어울리지 않는다.
이에 대해서는 많은 증빙자료가 있으나 모두 밝힐 수수는 없고, 대체로 지금의 철령시 노성(老城)북쪽에 있엇다는 점만 밝혀둔다.

덧붙이고 싶은 점은 집안시를 국내성으로 비정하는 점에 관한 것인데.
'단단대령'은 지금의 천산산맥이며 그 이서의 영동7현 중의 '불내'가 집안 지역에 있었습니다.
낙랑군 조선현을 한반도로 비정하는 양수경은 무구검비의 쌍비(雙碑)설을 주장하여 이를 인용한 이병도를 비롯한 후세의 학자들을 오도하고 있으나, 위진(魏晉) 시대나 신라의 금석문을 보면, '刻而書'(깎고 적는다)는 일반적인 서법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무구검비는 '환도산의 돌을 깎아 불냉내에 새김'이란 의미 외의 것이 아니다.
즉, 무구검비가 발견된 곳이 불내인 것이다.
집안이 불내인 방증은 그밖에도 무수히 들 수 있으나 생략한다.
낙랑군 한반도설은 동천왕의 평양 천도(遷導)기사 자체만으로도 이미 부정되어야 했으나, 자국의 기록을 거들떠보지 않는 사이비 학자들에 의해 아직까지 연명되고 있을 뿐이다.
     
감방친구 18-03-09 12:40
   
아주 훌륭한 견해입니다
저는 탐문 초심자로서 한계가 있는데
연구를 계속할 시간 여유가 없는 투잡, 쓰리잡 인생이 돼버려서 답답하고 제 자신이 원망스럽네요

좋은 견해 계속 들려주시길 바랍니다
history2 18-03-09 17:12
   
정말 대단하십니다 .... ^^ 제가 너무 작게 느껴집니다. 어디서 사서를 구하시는지 정말 궁금하고, 또 개인적인 연구의 결과이신지도 궁금합니다
history2 18-03-09 17:15
   
양평위치는 철령이 너무 바뀌어서, 현 철령이라 하심은 지도상으로는 고민이 약간 됩니다.
history2 18-03-09 17:18
   
독산님 죄송한데,,,이 정도 글은 주제글로 올려주심이 맞을듯 합니다.....암튼 인상이 깊은 식견의 글입니다
history2 18-03-09 17:26
   
양평에 대하여: 요동성이나 양평성이 같은 성이었다는 사료는 의외로 <삼국사기>에서 찾을 수 있다
위.진시대에 고구려가 수복하고 양평성을 요동성으로 이름을 바꾸고 고구려 최대의 성이 되었으나 수.당과 싸워 패한 후 당나라시대에 평양성에 있던 안동도호부를 옮긴곳이 이곳이다.
연암 박지원은 요동을 지나가면서 요동성의 연혁에 대한 아래와 같은 설명을 남겼다. “고구려의 요동성은 남북으로 길게 뻗은 요동벌 중간에 있다. 원래 조선의 땅이었다.
중국 전국시대(BC 5세기-221) 7웅 중 하나인 연(燕)나라가 장수 진개(秦開)를 보내 이곳을 차지한 후 양평(襄平)성을 축조하고 요동군부(遼東郡府)의 중심지로 삼았다.
서한(西漢) 왕망(王莽) 시기에 이 성을 창평(昌平)성으로 고친 적이 있지만, 이후 600년 동안 양평성으로 불려왔다. 404년 고구려가 요동을 차지한 후 그 성을 요동성이라 불렀다.”
history2 18-03-09 17:30
   
부신시 청하문 요동성은 전한시대 양평이 옮겨온 곳으로 왕망은 창평(昌平)이라고 불렀고, 후한시대 요동속국이 되었던 창려국(昌黎國)이 있던 곳입니다. 또한 요동국왕 공손탁의 도성인 것입니다. 238년 위나라에 포위당하여 3개월 동안 함락당하지 않고, 성의 기아로 인하여 손자인 공손연이 도망 나가다가 잡혀서 멸망했습니다. 

청하문 요동성은 당나라 요동성주를 거쳐 발해 동평부 이주 관할이었고, 요나라 때는 이 양평성에 탕주를 두었다가 요동반도로 옮기고, 대신 성주 동창현(同昌縣)을 둡니다. 현재, 청하문시를 흐르는 강이름이 탕두하인데 탕주하(湯州河)에서 비롯된 말입니다. 삼한비기(三韓秘記)에 당나라 요동성은 창료(昌遼)였다고 했습니다.
history2 18-03-09 18:18
   
『광개토왕비』 영락 5년(395)조에 보이는 길 이름이다. 요양(遼陽)을 한나라 때에 양평이라 불렀다. 따라서 양평도는 요양에서 고구려에 이르는 길이다. 당시 국내성(國內城)에서 서쪽으로 가는 길이 두 개 있었다.

하나는 북도로서 북으로 노령산 입구에서 서쪽으로 환인을 가로질러 가는 것으로 이 길은 지세가 평탄하여 왕래가 비교적 용이한 곳이다. 또 하나는 남도로써 순판분령을 따라 남하하여 패왕조산성을 거쳐 환인에 이르는 길이다. 이 길은 산길로 험하여 넘기 힘들다.

두 길은 모두 환인을 거친 이후 다시 남북으로 갈린다. 북도는 현재의 무순에 이르게 되며 남도는 현재의 요양에 이르게 된다. 북도를 현도도라 하며 수나라가 고구려를 쳐들어 올 때 좌군(左軍)의 진군로였다. 양평은 오늘날의 요양이다.

따라서 양평도란 남도를 가르키는 말이며, 수양제가 고구려를 쳐들어 올 때 우군(右軍)이 이 길로 진군했다. 광개토왕과 비려(碑麗)의 싸움은 태자하(太子河) 상류에서 벌어졌고 이곳은 바로 두 길의 중간지점으로 양평도에서 몇 십리 밖에 안 된다.

양평도는 비교적 평탄하여 전쟁 후 호태왕과 군대는 그 많은 생구(生口)와 수를 셀 수 없이 많은 우마군양을 데리고 이 길로 귀환하였다.

환인에 이른 후에도 같은 이유 때문에 반드시 북도를 통과했다. 그 많은 소와 양을 끌고 우마가 넘기 힘든 준령, 즉 남도를 광개토왕의 군대는 이용하지 않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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