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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3-02 15:39
[한국사] 당의 백제정벌의 이유2(윤충의 월주진출)
 글쓴이 : history2
조회 : 1,040  

이런 점을 근거로 하여 당이 백제를 정벌 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당시 당은, 고구려에 당태종의 원한을 반드시 갚아야 하는 국가적인 과제가 있었다. 그러나 수,당 전쟁을 통해, 보급선의 원할한 도움이 없이는(요하지대의 진흙탕 지대와 촘촘한 고구려의 수비망)절대로 고구려 정벌이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 때문에 한강유역을 통해 고구려 정벌을 위한 제2보급선이 필요했다.
2)당시 한강유역은 신라가 점유하고 있었으나, 신라가 고구려 원정을 협조한다고 해도, 백제가 후방에서 공격하면 당은 말 그대로 제2 보급로가 그대로 무너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3)당시 신라는 당항성(현 합천)까지 점령을 당한 상태로, 백제 의자왕의 공격 앞에 속수무책 망국의 위기에 처해있었다. 신라의 멸망 후 고구려 와 백제가 동맹하여, 당을 공격한다면, 당 역시 존립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4)특히 당시 백제의 장군 윤충은 당나라의 월주에 진줄하여, 강남을 도모를 준비하고 있었기 때문에, 당나라 입장에서 백제의 존재는 더욱 신경이 쓰였을 것 이다(조선 상고사에 따르면, 윤충은 대야성 싸움에서 크게 이기고 월주로 파견 되었다고 한다)

즉, 신라와 함께 백제를 도모하지 않으면, 백제의 강남공격과 동쪽 고구려 연개소문의 서방공격 거기다 북쪽의 돌궐의 삼각공격을 염려하지 않을 수 없었고, 실재 그러한 상황은 단순한 염려가 아니라, 현실화 될 수 도 있는 상황이었다(설상가상으로 점차 서쪽의 토번마저 그 형국이 예사롭지 않게 돌아갔다) 이에 전 당나라의 역량을 총 동원한 전쟁이 '당나라의 백제공략'이었다. 백제의 공략을 위해 1)당나라는 13만 대군을 준비하야 했는데, 사실 이 같은 병력은 고구려의 연개소문의 공격과 돌궐(+토번)을 대비하던 상황이라, 공격의 실패는 곧 망국으로 이어질 수 있었으며 2)백제를 공격하기 전에 먼저 중국 동해안(발해만 연안~항주)의 독립적 해상세력을 정리해야만 했다. 그러한 상황에서, 백제는 한반도에서 신라에 대한 우위를 바탕으로, 월주에서 강남을 도모하려한 행동은 당나라를 크게 당혹케 만들었을 것이다(원래 전통적으로 백제는 어려울 떄는 전,선에 만족하다가, 조금만 국력이 쌓이면 면을 확보하는 정책을 써 왔다) 

당시, 친 당파 였던 고구려 영류왕이 무참하게 연개소문에게 죽임을 당한 상황에서, 연개소문의 행동을 항상 주시하던 당으로서는, 백제의 월주진출을 고구려-백제-돌궐의 삼각작전의 일환이 아닌가 하는 염려를 해야 했을 것이다. 또 그러한 움직임이 당시 1)성충의 고구려 연개소문과의 만남과 2)고구려-돌궐의 반당 연맹으로 엿보이고 있는 상황 이었다. 
(고구려 전쟁의 패배로, 당은 백제 무왕이 붕어했을 때, 당태종이 소복을 입고 슬퍼하는 쇼를 해야 했다. 즉, 당은 백제세력과 관계 개선없이는 고구려에 대해, 공격은 고사하고 방어전략도 힘들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과거를 돌이켜 볼 때, 백제의 월주 진출은 당에게 엄청난 충격을 주었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을 비추어 볼 때, 당시 상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고구려-백제-돌궐의 대당 삼각동맹을 당나라는 염려했다(특히 백제는최고의 장수 윤충을 월주로 파견하여, 강남을 도모함이 명백해 보였다)
2)한강유역이라는 제2 보급선이 없으면 고구려 공격이 실패할 수 밖에 없는데, 신라를 통한다 해도, 백제가 후방을 공격할 수 있었고 당시 신라는 백제의 파죽지세의 공격 앞에 망국의 위험을 느끼고 잇었다. 
3)당이 백제를 치는데 동원한 13만 대군이 무너진다면, 당 역시 존립을 장담할 수 없을만큼 당 역시 위기의 상황이었다. 
4)당 역시, 신라가 백제에 했던 이간계를, 고구려에 써야 할 만큼(남생,남건,남산 사이의 갈등) 당시 위기는 넘기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즉, 당나라의 백제원정은 신라를 위한 것도 아니고, 김춘추의 외교술에 기인한 것도 아닌, 당 스스로의 급박한 상황인식 때문이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코 앞에 연개소문을 놓고, 13만 대군을 동원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실재 고구려 원정의 성공은, 신라의 군량미 보급과 당의 이간계를 통한 요동방어선의 붕괴(남생의 투항)가 결정적인 요인이었다.

만약, 1)백제가 월주의 진에, 윤충을 보내어 강남을 도모하고 자 함을  잠시 미루고, 신라먼저 도모했더라면, 그리고 2)연개소문이 조금 더 장수를 했더라면 마지막으로, 3)백제에 임자가 아닌 성충이 그대로 상좌평에 있었더라면 역사가 어떻게 바뀌었을지 모르겠다.    


1.단재 선생의 조선 상고사 中

근구수가 기원 375년에 즉위하여 재위하여 재위 10년 동안에 고구려에 대하여는 겨우 1차 평양의 침입만 있었으나 바다를 건너 지나대륙을 경략하여, 선비 모용씨(鮮卑 慕容氏)의 연(燕)과 부씨( 氏)의 진(秦)을 정벌, 금 요서.산동.강소.절강(今 遼西.山東.江蘇.浙江) 등지를 경략하여 광대한 토지를 장만 하였다.
의자왕이 이를 좇아 제장에 명하여 변경을 고수하더니 익년에 과연 당(唐)이 30만 대병을 들어 고구려에 쳐들어와 안시성에서 싸워 누차삭 동안 승부가 나지 않고 신라는 13만 대병을 들어 고구려 남방에 들어 그 후방(後方)에 요란(擾亂)을 도모 하거늘, 
왕이 계백에 명하여 신라의 뒤를 襲(襲)하여, 성열(省熱)등 7성을 회복하며, 윤충을 보내어 부사달 등 10여성을 점령하고, 선병(船兵)으로 당(唐)의 강남(江南)을 습(襲)하여 월주(越州) 등지를 점령하여 착착 해외의 척지(拓地)를 경영하다.

2.남제서 백제전 中

<牟大>又表曰: /$按[牟大]《通志》及《元龜》 作[牟太]. 又《元龜》九百六十三:[<齊武帝><永明>八年正月, <百濟王><牟太>遣使上表, 遣謁僕射<孫副>策命], 知上此表
在<永明>八年正月也.$/[臣所遣行建威將軍·<廣陽>太守·兼長史臣<高達>, 行建威將軍·<朝鮮>太守·兼司馬臣<楊茂>, 行宣威將軍·兼參軍臣<會邁>等三人, 志行淸亮, 忠款夙
著. 往<泰始>中,/$[泰始]原 [太始], 各本 , 今改正.$/ 比使<宋朝>, 今任臣使, 冒涉波險, 尋其至 , 宜在進爵, 謹依先例, 各假行職. 且玄澤靈休, 萬里所企, 況親趾天庭, 乃不
蒙賴. 伏願天監特愍除正. 達邊 夙著, 勤勞公務, 今假行龍 將軍·<帶方>太守. <茂>志行淸壹, 公務不廢, 今假行建威將軍·<廣陵>太守. (萬)<[邁]>執志周密,/$據南監本·殿本·
局本改. 按<邁>卽上所云之<會邁>也.$/ 屢致勤 , 今假行廣武將軍·<淸河>太守.] 詔可, 竝賜軍號, 除太守. 爲使持節·都督<百濟>諸軍事·鎭東大將軍./$按此句上有奪文.$/ 使
兼謁者僕射<孫副>策命<大>襲亡祖父<牟都>爲<百濟王>. 曰: [於戱! 惟爾世襲忠懃, 誠著遐表, 滄路肅澄, 要貢無替. 式循 典, 用纂顯命. 往欽哉! 其敬膺休業, 可不愼歟! 制詔
行都督<百濟>諸軍事·鎭東大將軍<百濟王><牟大>今以<大>襲祖父<牟都>爲<百濟王>, 卽位章綬等玉銅虎竹符四./$按此句疑有脫誤.$/ [王]其拜受,/$據南監本·殿本·局本
補.$/ 不亦休乎!] 

'모대'가 또 표를 올려 말하길 신이 행건위장군 광양태수 겸장사인 신 '고달'과 행건위장군 조선태수 겸사마 신 '양무', 행선위장군 겸참군 신 '회만'등 삼인을 사신으로 보
내니 뜻과 행동이 맑고 충성스러움이 분명합니다. '태시'중에 '송조'에 사신으로 가고, 이제 신의 사신으로 험한 바다를 무릅써, 그 지극함으로 찾으니, 마땅히 작위를 내
리시어, 삼가 먼저의 법칙대로 각각 행직을 수여하시옵소서. 또한 현택영휴(?)하여 만리를 가는데도 이에 조정의 입음이 없었습니다. 업드려 원하옵시는 하늘을 살피어 
근심을 바로 잡아 주시옵서서 '달'은 일찍이 본받을 만 함이 뚜렸하고, 부지런히 공무에 노력하니, 이제 행용양장군 대방태수를 삼으시고, '무'는 뜻과 행실이 맑고 공무에 
그침이 없으니 행건위장군 광을태수로 삼고, '만'은 뜻을 지킴이 두루 그윽하고, 부지런함과 본받을만 함이 있은니 행광무장군 청하태수로 삼으시옵소서 하니, 조서를 내
려 가히 옳다 하고 군호를 내리시고 태수를 제수하였다. 사지절 도독 백제 제군사 진동대장군으로 삼고 부알자인 복사 '손부'에게 명하여 '대'를 죽은 조부 '모도'를 계승
하여 '백제왕'으로 삼았다. 이에 말하길 오호라! 너의 대를 이은 충절을 생각하니 정성이 분명하고 멀리서도 나타나니 바닷길이 맑아졌다. 공물을 받침에 버릴것이 없다. 
떳떳한 법을 잘 지키고 나타난 명령을 받들도록 모두 힘쓸지어다. 공경히 아름다운 사업을 지킬 것이니 어찌 삼가할 일이 아니냐 조서를 내려 행도독 백제제군사 진동장
군 백제왕 '모대'로 하니 이제 '대'는 죽은 조부 모도를 계승하여 백제왕을 삼는다. 자리를 나타내는 글과 인수등과 옥,동,호,죽부 네 개를(뒤는 탈자)보내니 왕은 이것을 
절하고 받도록 하라. 이 어찌 아름다운 일이 아니겠느냐! 했다. 


是歲, <魏虜>又發騎數十萬攻<百濟>, 入其界, <牟大>遣將<沙法名>··<解禮昆>·<木干那>率衆襲擊虜軍, 大破之. <建武>二年, <牟大>遣使上表曰: [臣自昔受封, 世被
朝榮, 荷節鉞, 剋攘列酸. 往<姐瑾>等竝蒙光除, 臣庶咸泰. 去庚午年, < >弗悛, 擧兵深逼. 臣遣<沙法名>等領軍逆討, 宵襲霆擊, <匈>梨張惶,/$[梨]南監本作[ ].《漢書》[匈
奴傳], 其國稱單于曰 ?孤塗單于. <匈奴>謂天爲 ?, 謂子爲孤塗, 單于者, 廣大之貌也. <匈>?猶言<匈奴>單于, ??通.$/ 崩若海蕩. 乘奔追斬, 尸丹野. 由是 其銳氣, 鯨暴韜凶. 
今邦宇謐靜, 實<名>等之略, 尋其功勳, 宜在 顯. 今假<沙法名>行征虜將軍·<邁羅王>, 爲行安國將軍·<酸中王>, <解禮昆>爲行武威將軍·<弗中侯>, <木干那>前有軍功, 
又拔臺舫, 爲行廣威將軍·<面中侯>. 伏願天恩特愍聽除.] 又表曰: [臣所遣行龍 將軍·<樂浪>太守兼長史臣<慕遺>, 行建武將軍·<城陽>太守兼司馬臣<王茂>, 兼參軍·行振武將
軍·<朝鮮>太守臣<張塞>, 行揚武將軍<陳明>, 在官忘私, 唯公是務, 見危授命, 蹈難弗顧. 今任臣使, 冒涉波險, 盡其至誠. 實宜進爵, 各假行署. 伏願聖朝特賜除正.] 詔可, 竝
賜軍號. 

이 해에 '위노'가 기병 수십만으로 '백제'를 공격하여 그 경계에 들어가니, '모대'가 장수 <사법명>·<찬수류>·<해례곤>·<목간나>를 보내어 '노'군을 공격하여 크게 이를 깨뜨렸다. '건무'이년 '모대'가 사신을 보내어 표를 올려 말하길 신은 옛부터 봉함을 받아 대대로 조정의 영화를 입고, 절과 부인 분에 넘치는 것을 받아 오랑캐를 물리치었습니다. '저근'등이 가서 광택을 입고, 신은 두루 평안합니다. 경오년에 가서 '험윤'이 깨닫지 못하고, 병사를 내어 깊이 쳐들어 오니, 신이 '사법명'등 군사로 토벌하고, 야간에 번개같이 엄습하니 '흉'의 이장이 두려워 하고 무너저 바다로 쓸어버렸다. 달아나는 것을 베어 죽은 시체가 들을 붉게 물들였다. 이로말미암아 그 예기를 꺽으니, 흉폭함을 잡았다. 이제 나라가 조용해지니 실로 '명'등의 다스림이니, 그 공훈을 생각하여 칭찬함이 마땅하다. 이제 '사법명'을 행정로장군 매라왕으로 삼고, '?수류'는 행안국장군 벽중왕으로 삼고, '해례곤'은 행무위장군 불중후, '목간나'는 전의 무공이 있고 또한 대방을 빼앗으니 행광위장군 면중왕으로 삼으소서. 업드려 원하니 하늘의 은혜로 청을 들어 주옵소소 하였다. 또 표에 말하길, 신이 행용양장군 낙랑태수 겸 장사인 신 '모유', 행건무장군 성양태수 겸 사마인 신 '왕무', 겸 참군이고 행진무장군 조선태수 인 신 '장색', 행양무장군 '진명'은 관직에 있어 사사로움을 버리고, 오직 공무에만 힘쓰며, 위급함에 명을 받들어 어려움을 물리치고 스스로를 돌아보지 않스니다. 이제 신이 사신으로 보내어, 험한 물결을 무릅쓰고 나아가니 정성이 지극합니다. 실로 작위를 내림이 마땅하니 각각 베풀어 주십시오. 업드려 올바른 제수가 있기를 원하옵니다 하니 조서를 내려 옳다 하고 군호를 내리었다. 

3. 송서 백제전 中

<百濟國>, 本與<高驪>俱在<遼東>之東千餘里, 其後<高驪>略有<遼東>, <百濟>略有<遼西>. <百濟>所治, 謂之<晉平郡><晉平縣>. 

백제국은 본래 '고려'의 무리로, 요동의 동쪽 천여리에 있다. 후에 '고려'가 '요동'을 다스리자, 백제가 '요서'를 다스렸다. '백제'가 다스리는 곳을 '진평군', '진평현'이라고 일컷는다.

북사 백제 中

<隋><開皇>初, <餘昌>又遣使貢方物, 拜上開府·<帶方郡公>·<百濟王>. 平<陳>之歲, 戰船漂至海東<牟羅國>. 其船得還, 經于<百濟>, <昌>資送之甚厚, 幷遣使奉表賀平<陳>. 
<文帝>善之, 下詔曰: [彼國懸隔, 來往至難, 自今以後, 不須年別入貢.]使者舞蹈而去. 十八年, <餘昌>使其長史<王辯那>來獻方物./$諸本無[十]字,《隋書》有. 按上文言昌
遣使賀平陳, 平陳在開皇九年, 則此不得在八年. 下云[屬興<遼東>之役], 指<開皇>十八年<楊諒>·<高 >攻<高麗>事. 知脫[十]字, 今據補.$/ 屬興<遼東>之役, 遣奉表, 請爲
軍導. 帝下詔, 厚其使而遣之. <高麗> 頗知其事, 兵侵其境. <餘昌>死, 子<餘璋>立./$《隋書》作:[<昌>死, 子<餘宣>立. 死, 子<餘璋>立.] 此當脫五字.$/ <大業>三年, <餘璋>
遣使<燕文進>朝貢. 其年, 又遣使<王孝隣>入獻, 請討<高麗>. <煬帝>許之, 命 <高麗>動靜. 然<餘璋>內與<高麗>通和, 挾詐以窺中國. 七年, 帝親征<高麗>, <餘璋>使其臣<
國智牟>來請軍期. 帝大悅, 厚加賞賜, 遣尙書起部郞<席律>詣<百濟>, 與相知. 明年, 六軍度<遼>, <餘璋>亦嚴兵於境, 聲言助軍, 實持兩端. 尋與<新羅>有隙, 每相戰爭. 十年, 
復遣使朝貢. 後天下亂, 使命遂絶. 

'수' '개황' 초에 '여창'이 또 방물을 밭치고 '상개부 대방군공 백제왕'을 하사받았다. '진'을 평정한 해에, 전선이 떠돌다 바다동쪽의 '모라국'에 이르렀다. 그배가 돌아 왔는데, '백제'를 경위하자, '창'이 두터훈 재물을 보내고, 아울러 사신을 보내어 '진'을 평정함을 경축하는 표를 받들었다. '문제' 이를 선히 여기어 조서를 내려 말하길, 너의 나라는 멀어 오고 감에 어려움이 있으니 이후로는 마땅히 공물을 받침에 해마다 하지 않아도 된다. 하니 사자가 춤을 추며, 떠났다. 십팔년 '여창'이 사신 장사 '왕변나'를 보내어 방물을 받쳤다. '요동'에서 전투가 일어나자, 표를 받들어 보내길, 군사를 이끌수 있도록 청하자, 제가 조서를 내려, 후이, 그 그렇게 하라 하니 이에 보냈다. '고려'가 이 사실을 알고, 병사로 그 지경을 침범하였다. '여창'이 죽자, '아들 여장'이 섰다. '대업' 삼년 '여장'이 사신 '연문진'을 보내어 조공하고, 그해 도 '왕효린'을 보내어, 헌납하며 '고려'를 치길 청하였다. '양제'가 이를 허락하고, 명하여 '고려'의 동정을 엿 보았다. 그리하여 '여경'이 안으로 '고려'와 화통하면서, 그 사이에서 거짓말 하며 중국을 엿보았다. 칠년, 제가 친히 '고려'를 정벌하자, '여장'이 신하 '국지모'를 보내어 군사를 보내기를 약속하자, 제가 크게 기뻐하며, 후하게 상을 하사하고, 상서기부랑 '석률'을 보내어 '백제'에 이르르자, 서로 무리됨을 알았다. 다음해, 여섯군대가 '요'를 건너고, '여장' 역시 병사가 지경에 이르러 군사를 돕는다 맹세하니 실로 양단에서 지켜야 했다. 평소 '신라'와는 틈이 있어, 매양 전쟁하였다. 십년 다시 사신을 보내어 조공하였다. 후에 중국이 어지러워지자, 사신이 끊어졌다. 

4.남사 백제편 中

<百濟>者, 其先東夷有三<韓國>: 一曰<馬韓>, 二曰<辰韓>, 三曰<弁韓>. <弁韓>·<辰韓>各十二國, <馬韓>有五十四國. 大國萬餘家, 小國數千家, 總十餘萬戶, <百濟>卽其一
也. 後漸强大, 兼諸小國. 其國本與<句麗>俱在<遼東>之東千餘里, <晉>世<句麗>旣略有<遼東>, <百濟>亦據有<遼西>·<晉平>二郡地矣, 自置<百濟郡>. 

'백제'의 그 먼저는 동이로 세 개의 '한국'이 있었다. 하나는 '마한'이요, 둘은 '진한'이요, 셋은 '변한'이다. '변한''진한'은 각기 십이국이요 '마한'은 오십사국이 있다. 큰 나라는 만여가 이고, 작은 나라는 수천가로 총 십여만호이다. '백제'는 곧 그 하나이다. 후에 점점 강대해지더니, 여러 소국을 겸하였다. 그나라는 본래 '구려'와 함께 '요동'의 천여리에 있었느느데, '진'때에 '구려'가 이미 '요동'을 다스리자, '백제' 역시 '요서''진평' 이군의 땅에 거하여 스스로 '백제군'을 두었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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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배시러 18-03-02 15:59
   
대방태수를 신하로 보유햇던 유일한 삼국이 백제
도배시러 18-03-02 16:00
   
그리고 강단사학이 빼먹는게 백제의 대만 거점.
수나라 전쟁전 수나라 병사가 머물렀던 백제강역, 남북 1천리의 섬 대만.
제주도는 남북 1백리 동서 2백리
     
가난한서민 18-03-02 16:38
   
고작 그 기록 하나만으로 백제가 대만을 지배했다고는 절대 볼수 없죠
새로운 증거나 자료가 나오면 증명되겠죠
          
도배시러 18-03-02 16:40
   
강단사학이 원하는 지배는 아니겠죠. 무역 항구거점이라고 봐야 한다는거죠.
그런데 수나라는 그것을 당시의 백제 부용국이라는 개념으로 접근.

오늘날의 평가방식과 그 시대의 평가방식이 다르니... 해석은 그때그때 달라도 되죠
남북통일 18-03-02 21:17
   
아무래도 대만, 필리핀에는 백제가 상업적인 거점만을 부분 부분 가지고 잇을거고,
요서~산동반도 일대까지는 군사력까지 행사하는 백제 땅이라고 봐야죠.
6시내고환 18-03-03 19:13
   
거점은 충분히 있을만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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