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본이 근대화 사회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이유는, 눈에 보이는 부락민, 세습제 국회의원 때문이 아니다. 그들은 a)사회진화론적 체제를 일본에 성립하기 위해 인공적으로 만든 천황체제와 b)합법적 일당독재 시스템인, 55년 체제를 극복하지 못한, 여전히 비근대적 사고(일당독재 용인 & 사회진화론적 사고)를 가진사회이기 때문이다.
2. 켄델의 근대화의 조건인, 계량적인 측정방법인 산업화, 도시화는, 중국에게 안내서는 될 지언정, 진정한 근대화로 이끌지는 못한다. 왜냐하면 근대화는 경제하부체제의 변혁 뿐 아니라, 민주주의와 개별가치 등의 존중에서 시작이 된다(켄델의 이론으로는, 바레인과 카타르가 근대국가가 될 수 있는 이유이다)
3. 그런 이유로 근대화에 대한 이론(특히 계량적)은 많지만, 사회가 그 이론대로 전면적인 변화를 겪은 예는 전혀 없다.
4. 일본은 전 국토가 서울같고, 중국은 몇몇 극소지점이 세계 최첨단이지만, 근대화 사회가 아니다. 두 체제 모두 일당독재(자민당, 공산당) 체제로 다양한 사회가치를 대변할 사회구조가 형성되지 못했다
5.근대화를 위한 시도로 경제하부구조를 전면적으로 개편하려 한, 스탈린식 개발계획과 파시스트의 개발계획(히틀러, 만주국 개발 같은) 이 있었다. 그들의 추구하는 이념은 달랐으나, 그들이 행했던 행태는 결국 같았다
한국의 박정희식 경제개발 계획이 파시스트식 경제개발(자본주의의 쇼윈도우라 불리웠지만)이라면, 중국의 스탈린식의 공산주의 경제개발은, 근본 이념은 완전히 상이하나, 방식과 형태은 크게 다르지 않은 압축성장모형이다.
그리고, 역사는 파시스트(일본제국)와 공산주의의 이러한 시도를 근대화라 부르지 않고
개발독재라 말한다.
즉 극우와 극좌는 통한다(극좌와 뉴라이트도 역시 통한다) 그러한 경제성장은 중국을 근대화 대신, 시진핑만 황제로 만들었다(즉 경제성장과 근대화는 상관이 없다) 또한 이러한 이유로 뉴라이트와 극좌는 자신들의 정체성을 종종 서로 헷갈린다.
6. 일본보다 한국이 근대화 된 이유는, 을사늑약에 있다. 한국이 내정개혁을 하면서 전제군주정인 대한제국을 만들었다, 그런데 이 제국의 헌법은 황제의 전제군주정이 핵심이었다.
이토 히로부미가 을사늑약을 강요할 때, 황제는 신민과 인민의 의견을 물어야 한다고 했지만, 묵살 당했다 왜냐하면 대한제국은 고종의 결정으로 모든 것이 결정되는 전제군주정이었기 때문이다. 한 인간의 결정으로 나라의 운명이 결정되는 것을 보며, 비록 나라는 상실했지만, 임시정부는 '군주정인 대한제국'이 아닌 '민주주의 대한민국'으로 결정되고, 임시정부 운영기간, 다양한 체제실험을 통해 민주주의의 기본 지향점을 찾아 나갔고, 해방 후 그 가치는 온 국민에게 전달되어(헌법전문에 수록), 경제발전과 상관없이 극빈한 국가에서 4.19 시민혁명을 가능하게 했고. 결국 89체제를 완성할 수 있었다.
89체제도 불완전한 것이지만, 일본의 55체제에 비하면 훨씬 개별가치를 보장하는 헌법적 내용을 담고 있으며, 또한 정권교체가 가능한 유일한 동아시아 국가가 되었다.
7.유럽의 서구사회의 3대 혁명 즉 명예혁명, 미국독립전쟁, 프랑스 혁명은 로크의 '사회계약론'과 토마스 페인의 '상식'에 근거한 것이지, 산업혁명과 같은 경제적 계량적 요소로 달성된 것 이 아니다. 즉 근대화는 계량적 요소를 초월하는 것이다(유럽의 시민혁명은 적어도 산업혁명 100년 전에 완성이 되었다)
8.건물이나 철도, 도로와 같은 인프라를 보며 근대화를 가늠하는 것은 매우 유치하다(북한의 천리마 거리도, 세계의 어느거리 보다 훌륭하다, 쇼윈도우 시설이 모든 것을 말해주지 않는다). 즉, 1900년대 일본과 한국의 사진을 통해 근대화를 비교할 수 없다. 일본이 계량적 부분에서 다소 앞섰다 해도, 민도의 부분은 전혀 한국보다 낫지 않았고, 그들의 리더도 근대화의 배설물인 사회진화론의 노예였다. 그리고 100년이 넘은
지금도 비슷한 사회구조틀 안에서 일본인은 살고있다.
9.근대화가 자본주의와 동일한 개념이란 생각을 버려야 한다. 자본주의 맹아론이 조선을 발전시킬게 아니었고, 사회진화론적/ 계량적 발전론이 근대화의 전부가 아니다. 근대화는 먼저 서구가 시민혁명을 통해 그랬던 것 처럼 다양한 가치를 담는 그릇이 사회전반에 형성 되어야 한다.
고로 킨델과 사회진화론을 기본으로 근대화를 정의하신 진주만과 연개소문킹님의 주장은 옳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