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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2-24 21:10
[한국사] 녹주 압록군의 위치 문제
 글쓴이 : 감방친구
조회 : 1,765  

1. 신당서 지리지 가탐도리기 재차 점검

신당서 가탐도리기 해로편 경로에서 도리진을 우리 학계 통설에서는 현 요동반도 남단의 여순에 비정하고 있는데 저는 지난 번 고찰에서 신당서-도서편-성경통지의 교차분석을 통하여

1) 도리진은 산동 포대,
2) 도리진 이후 과정 기착지에 노룡, 창려
3) 도화포는 호로도시(옛 영원주)

를 밝혀서 도리진이 여순이 될 수(거리 기록으로도 될 수가 없음) 없으며 오골강은 과정로의 진왕석교 등과 함께 요하 하류 일대에 위치했음을 입증한 바 있습니다

http://www.gasengi.com/m/bbs/board.php?bo_table=EastAsia&wr_id=160832&sca=&sfl=mb_id%2C1&stx=cellmate&page=7

신당서 가탐도리기의 문제는
1) 가탐당시에 요서 지역에 있다가 이미 폐지가 된 안동도호부를 마치 당시에도 요동성(심양)에 있었던 것처럼 서술
2) 압록강의 위치 묘사가 신당서 고당 전쟁 기록 및 수서, 삼국사기 고수 전쟁 기록과 배치
3) 압록강을 현 압록강으로 만들어놓고도 그 현 압록강에서 신라 경주까지 육로로 700리라고 한 점(서울~부산 직선거리만 해도 1천리가 넘음)

등입니다

또 제가 여러번 신당서 가탐도리기의 평양은 고구려 멸망기 평양이 아니라 고구려 초ㆍ중기의 환도ㆍ국내성 등을 가리키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언급하여 왔는데요

요동성에서 박작 700리, 평양 800리, 평양이 압록강 북쪽에 위치 하는 점 등을 들어서

신당서 가탐도리기 평양과 압록강은 고구려 멸망기 평양과 압록강이 아님을 주장한 것입니다

신당서 가탐도리기 압록강 = 현 압록강
신당서 가탐도리기 평양 = 현 요녕성 환인

신당서&삼국사기 압록강 = 혼하
신당서&삼국사기 평양 = 환인 서북쪽 본계 비정

2. 요사 지리지 녹주 압록군 재차 고찰

渌州 鴨渌軍 節度, 本 髙麗 故國, 渤海 號 西京 鴨渌府, 城髙 三丈, 廣輪 二十里, 都督 神桓豐正 四州事, 故縣三, 神鹿 神化 劔門, 皆廢.  大延琳 叛, 遷 餘黨於上京, 置易俗縣居之.  在者户 二千, 隸東京留守司, 統 州四 縣二.

1) 녹주(淥州) 압록군(鴨淥軍)은 절도를 두었다.

2) 본래 고구려 고국(故國)이며 발해는 서경압록부(西京鴨淥府)라고 불렀다.

3) 성의 높이는 3길이며 너비는 20리나 된다.

4) 신주(神州)•환주(桓州)•풍주(豐州)•정주(正州) 등 4주의 일을 관할하였다.

5) 옛 현은 신록(神鹿)•신화(神化)•검문(劍門) 등 셋인데 모두 폐지되었다.

6) 대연림이 반란을 일으켰을 때 나머지 잔당들을 상경으로 옮겨 역속현(易俗縣)을 두어 거주시켰다.

7) 호구수는 2,000이며, 동경유수사에 예속되었다. 4주와 2현을 관할하였다.

弘聞縣.  神鄉縣.  桓州 髙麗 中都城, 故縣三, 桓都 神鄉 浿水, 皆廢.  髙麗王 於此 剏立 宫闕, 國人 謂之 新國.  五世孫 釗 晉康帝 建元初 為 慕容皝 所敗, 宫室焚蕩.  户七百, 隸渌州, 在西南二百里. 

8) 환주(桓州) 고구려 중도성(中都城)으로 옛 현은 환도(桓都)•신향(神鄕)•패수(浿水) 등 셋인데 모두 폐지되었다. 고구려 왕은 여기에 궁궐을 처음 세웠는데 나라 사람들이 신국(新國)이라고 불렀다. 5대손 쇠(釗 ; 고국원왕)는 진(晉)나라 강제(康帝) 건원(建元) 초년에 모용황(慕容皝)에게 패하고 궁실이 불타버렸다.

9) 호구수는 700이며 녹주에 예속되었는데,
10) 녹주에서 서남쪽으로 200리 떨어져 있다.

豐州 渤海 置 盤安郡, 故縣四, 安豐 渤恪 隰壤 硤石, 皆廢.  户三百, 隸渌州, 在東北二百一十里.

11) 풍주(豐州) 발해가 반안군(盤安郡)을 설치하였는데 옛 현은 안풍(安豐)•발각(渤恪)•습양(隰壤)•협석(硤石) 등 넷인데 모두 폐지되었다.

12) 호구수는 300이며 녹주에 예속되었다.
13) 동북쪽으로 210리 떨어져 있다.

正州 本 沸流王故地國, 為公孫康所併, 渤海 置 沸流郡, 有沸流水.  户五百, 隸渌州, 在西北三百八十里.  統縣一, 東那縣 本 漢 東暆 不而縣地, 在州西七十里. 

14) 정주(正州) 본래 비류왕(沸流王)의 옛 지역으로 공손강(公孫康)에게 병합되었다. 발해가 비류군(沸流郡)을 설치하였다. 비류수(沸流水)가 있다.

15) 호구수는 500이며 녹주에 예속되었다. 서북쪽으로 380리 떨어져 있다. 관할 현은 하나이다.
16) 동나현(東那縣) 본래 후한의 동이(東暆) 부이현(不而縣)땅으로
17) 정주에서 서쪽으로 70리 떨어져 있다.

慕州 本 渤海 安逺府地, 故縣二, 慕化 崇平 乆廢.  户二百, 隸渌州, 在西北二百里.

18) 모주(慕州) 본래 발해의 안원부(安遠府) 지역으로 옛 현은 모화(慕化)•숭평(崇平) 둘이 있는데 오래전에 폐지되었다.
19) 호구수는 200이며 녹주에 예속되었다.
20) 서북쪽으로 200리 떨어져 있다.

신당서 가탐도리기 해로편
自 鴨渌江口 舟行 百餘里, 乃, 小舫泝流 東北 三十里 至 泊汋口, 得渤海之境. 又, 泝流 五百里 至 九都縣城 故 髙麗王都. 又, 東北泝流 二百里 至 神州. 又, 陸行 四百里 至 顯州. 天寳中, 王所都. 又, 正北如東 六百里 至 渤海王城.

가탐도리기 상 평양은 현 환인, 신주(神州)는 현 집안 근방의 혼강시 임강현으로 볼 수가 있는데

요사 지리지의 녹주 압록군 기술은
발해 멸망 후 동단국 시절의 행정지리 정보와 이후 여진과 고려에 의해 만주에 대한 지배력을 상실한 후의 정보가 혼재돼 있습니다

저는 앞서 근 20 개의 집중 소고를 통하여
1) 고려 광종 시기에 고려의 서북계가 태자하를 넘었으며
2) 980 년대~991년의 압록강 안팎 정지 작업 및 성보 축조를 통하여 혼하 상류에 도달했으며
3) 993 강화와 강동6주 할양, 고려의 여진족 소개와 적극적 개척 작업을 통하여
4) 10세기 고려와 요나라는 잉커우~무순~장춘에 이르는 지역을 국경선으로 삼았으며
5) 고려의 북계가 요나라 국서에서 확인되 듯이 발해 상경용천부에 해당하는 하얼빈 근방까지 뻗었다는 것을 고찰하여 결론을 내 보인 바 있습니다

따라서 9 세기 중반 이후부터, 나아가 이미 10 세기에는 고려의 영토가 된 환인, 집안 지역이 요나라 동경요양부 녹주가 될 수가 없습니다

녹주(발해 신주)에 속한 주의 위치와 인구수를 다시 보겠습니다

녹주(발해 신주, 현 혼강시 임강현 비정) 기준

1) 환주
ㅡ 호구수 700
ㅡ 신주 서남쪽 200리
ㅡ 현 환인현 위치에 부합

2) 풍주
ㅡ 호구수 300
ㅡ 신주 동북쪽 210리

3) 정주
ㅡ 호구수 500
ㅡ 신주 서북쪽 380리

4) 모주
ㅡ 호구수 200
ㅡ 신주 서북쪽 200리

녹주에 속한 정주와 모주는 그 거리와 위치 상 현 무순(푸순) 지역, 혹은 그 근방에 해당하며

녹주, 환주, 풍주, 정주, 모주 총 5개 주의 인구가 그 규모에 비하여 지나치게 적습니닺

또한 녹주 압록군이 동경유수사에 예속돼 있는 점을 눈여겨 봐야 합니다

이는 녹주와 녹주 관할 지역이 동경유수사에 직속돼 있을만큼 동경(요양) 지역에 인접해 있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http://www.gasengi.com/m/bbs/board.php?bo_table=EastAsia&wr_id=161558&sca=&sfl=mb_id%2C1&stx=cellmate&page=5

또 녹주 압록군 지리정보를 기술하면서 대연림 사건을 언급하고 있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고 예전의 고찰해서 강조한 바 있는데

대연림의 언급은 대연림의 반란과 흥요국 (1029~1030)이 녹주 압록군 지역과 밀접하다는 것인데

이미 앞에서 여러 글로 고찰한 바 대로
1) 당시 요동은 요나라에게 있어서 착취의 대상이었으며 송나라 문제에 비하여 등한시 된 지역이었다는 것
2) 대연림은 요양, 심양, 보주, 해주(비사성) 등지인데
3) 보주는 잉커우, 해주는 판진시 일대에서 사료 교차 검증 시 나타나므로

녹주 역시 이 근처(요ㆍ심 주변)에서 찾아야 합니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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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방친구 18-02-24 21:11
   
감방친구 18-02-24 21:12
   
감방친구 18-02-24 21:17
   
저는 사실 압록강과 그 북쪽 지류인 동가강을 고구려 말기 당시의 패수였을 가능성을 계속 염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태자하는 뭐가 되느냐?

하니 한 편에 보유하고 계속 따져 볼 뿐입니다
감방친구 18-02-24 21:51
   
제가 하는 작업, 즉 사료 비판 검증은 손가락과 의지만 있으면 할 수 있는 작업입니다

여기에서 도배시러님만이 꾸준히 비슷한 작업을 해오고 계시니 의지가 되는 것이죠
     
도배시러 18-02-24 22:04
   
초보라서 그런거죠 ㅎㅎㅎ
이미 해보신 분들은 열정이 식어서 어렵겠지만,
초보의 가슴속 불길은  이제 타올라가는 중입니다.
          
감방친구 18-02-25 06:30
   
저도 언제까지 갈지 모르겠지만 계속 가 보렵니다
감방친구 18-02-25 06:29
   
가탐도리기는
육로편에서 동남 800리에 평양을
해로편에서 압록강 하구로부터 630리에 고구려 옛 왕도(故髙麗王都)를 제시하여

평양을 고구려의 초기 수도 자리에 가져다 놓고 있어서 그 저의가 매우 의심됩니다

같은 자리를 육로에서는 평양, 해로에서는 옛 왕도라 달리 표현하면서 마치 고구려 말기 평양이 그곳에 있었던 것처럼 독자의 판단을 유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은글슬쩍 사기를 치는 이유는
ㅡ 압록강을 동남으로 밀어내면 평양도 따라 동남으로 밀리고
ㅡ 평양을 동남으로 밀어내면 압록강도 따라 동남으로 밀리게 되므로

요동지역의 역사영토에 대한 당나라의 권리를 뻥을 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가탐 당시의
요서와 요동은 제가 앞서 안동도호부 연혁을 고찰하며 따져본 바와 같이

http://www.gasengi.com/m/bbs/board.php?bo_table=EastAsia&wr_id=161065&sca=&sfl=mb_id%2C1&stx=cellmate&page=7

거란, 고구려 유민 (발해), 또 이어 돌궐까지 대 소용돌이가 7세기 말부터 8세기 중엽까지 불어서

당나라가 제대로 힘을 쓰지 못 했을 뿐만 아니라
이어서 발해의 영역이 된 곳입니다

가탐의 기록은 이러한 시대 상황에서 쭝궈의 돼지같은 욕심과 여우같은 교활함이 바탕됐다 판단됩니다
감방친구 18-02-25 06:31
   
안동도호부의 연혁과 요서 및 요동의 상황

1) 總章元年(668 년) ㅡ 평양성(平壤城)
2) 上元三年(674 년) ㅡ 요동군의 옛 성(遼東郡故城)
3) 儀鳳二年(677 년) ㅡ 신성(新城)
4) 聖歴元年(698 년) ㅡ 안동도독부(安東都督府)로 개칭
5) 神龍元年(705 년) ㅡ 안동도호부(安東都護府)로 명칭 복원
6) 開元二年(714 년) ㅡ 평주(平州)
7) 天寳二年(743 년) ㅡ 요서의 옛 군성(遼西故郡城)
8) 至徳 (756 년 ~ 758 년) ㅡ 폐지
9) 이후 ㅡ 발해가 차지함(尋為勃海大氏所據)
10) 발해 이후(907년 이후 오대십국 시대) ㅡ 거란이 차지하고 동평군을 세웠다가 남경으로 승격함(五代時地入契丹阿保機葺遼陽故城建東平郡尋升為南京)

http://www.gasengi.com/m/bbs/board.php?bo_table=EastAsia&wr_id=161243&sca=&sfl=mb_id%2C1&stx=cellmate&page=6
감방친구 18-02-25 06:34
   
가탐도리기의 저자 가탐은 8 세기 후반에 활동한 사람

가탐(賈耽)
ㅡ 730년 ~ 805년
ㅡ 현종(玄宗) 천보(天寶) 10년(751) 명경과(明經科)에 급제하며 관직에 나옴

즉 가탐 당시에 요동은 당나라 땅이 아니었고 요서 역시 당나라가 힘을 못 썼습니다
     
도배시러 18-02-25 12:52
   
가탐의 안동부 위치가 오락가락하기는 하죠.
          
감방친구 18-02-25 17:50
   
가탐의 평양은 고구려 말기 평양이 아니에요 어쨌거나

http://www.gasengi.com/m/bbs/board.php?bo_table=EastAsia&wr_id=163740&sca=&sfl=mb_id%2C1&stx=cellmate&page=2
비좀와라 18-02-25 10:41
   
압록은 천둥오리를 말하는데 이 천둥오리가 진辰을 말합니다.

다시 진辰은 용龍을 말하는데 그냥 용이 아니라 청룡靑龍을 말하고 청靑을 동양에선 녹綠과 흑黑의 구분없이 사용한단 말이죠.

결국 압록이란 흑룡 또는 청룡과 같은 말입니다. 그리고 신라를 무가巫家에선 동청룡 서백호 북현무와 남주작으로 나뉘는데 동청룡을 신라로 보고 또한 감 방위에 놓는단 말이죠. 감과 곰은 같은 말 입니다.

결국 신라는 압록(=흑룡 / 청룡)에서 발생된 국가로 후일 한반도로 진입 했다는 것을 나라 이름에서 알 수 있단 말이죠. 당연히 흑수말갈은 신라계죠.

그리고 발해 당시의 요동 점유를 인정하면 후일 안녹산의 난이나 황소의 난 그리고 이정기의 치청국과의 관계만이 아니고 장보고와 최치원의 활동 뿐만 아니라 후일의 요와 송과의 분쟁의 대상인 연운 십육주의 위치 또한 불분명 하게 되는 것이죠.

아주 오래 전에 올렸지만 이성계의 집안은 악비 집안과 관련이 있고 악비 집안은 산동성을 기반으로 하는 집안입니다.  그리고 송과 요의 싸움이나 금의 싸움에서 제일 선두에 있던 집안이 바로 악씨 집안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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