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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2-23 19:03
[한국사] 제가 쓴 정안국에 대한 질문의 답 입니다.....오류시 수정 부탁드립니다.
 글쓴이 : history2
조회 : 1,053  

1.정안국은 여진의 나라였는가? 발해유민의 나라였는가? 

2.정안국의 위치는 과연 어디인가? 사학계의 논조대로 현 압록강 유역 북부이었는지 아니면,,,요양-심양 지역 동쪽이었는지?
(다른 대부분의 발해부흥군의 중심지는 요양-심양이다)

3.정안국을 고려는 여직이라 부르고 있는데, 과연 고려는 정안에 대해 동족의식을 가지고 있었는가? 

4.정안국은 백두산의 화산폭발 상황에서도 작게는 50년 길게는 90년을 버티었는데, 농경국가 였을까 아니면 반농반목의 수렵국가 였을까?  

5.서희와 요나라의 담판에서 볼 때, 분명히 요가 강동6주를 할애함은, 여진에 대한 관리를 하라는 의미가 있는데, 이 여진안에 정안국이 포함이 되는가?

6.정안국의 역사는 50년 인가? 아니면 100년인가? 

7.정안국은 우리민족의 역사의 페이지에 있는가, 아니면 여진의 페이지에 있는가? 

8.서경압록부의 위치는 어디이며? 그 당시 압록강은 어디인가? 
  (점차 머리속에서 압록강의 위치가 혼하근처로 옮겨가고 있다)

9.요나라는 왜 만주를 방치해서 밀림을 만들었는가? 
(발해 때는 해동성국이었는데) 

10.요나라는 왜 발해지역에서 농경을 하지 않고, 연운16주 지역과 요동지역에서만 농경을 했는가? 

11.발해와 정안국의 언어는 같았을까?  정안국과 여진의 언어는 같았을까? 정안국과 기타 발해부흥운동 세력과는 언어가 같았을까?  정안국은 기타 발해부흥운동 세력에 동족의식을 가지고 있었을까?

12.발해고에는 분명 '정안국 기사'가 있는데, 정안국은 발해유민의 나라가 아닐 가능성이 있을까?

답)  1.발해유민의 나라  
      
      2.정안국의 위치도 서경압록부 즉....혼하일대가 맞다 
      
      3. 동족의식 보다는 이용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분명 언어가 통했을 것이다 (정몽주의 시 참조)  

      4. 90년이었고, 발해부흥운동은 멈추지 않았다 

       5.정안국이 포함된다...그래서 강동6주를 혼하선까지 확대하여 할양한 것이다 
        그래야 서경압록부를  통제할 수 있다 

       6. 90년이 맞다 

       7.우리민족의 페이지에 있다  

       8.서경압록부는 혼하근처에 있으며 강동6주와 인접한다 

       9.요나라는 연운16주 와 요서에 관심이 많았고, 당시 요는 
 
         만주를 경영할 인원과 재원이 부족했다  

      10.농경을 할 인원은 한족과 발해족인데,,,한족은 연운16주와 요서에서 경작을 했고, 
         
          발해족은 지속적으로 거란에 저항했다.  
          
          그 과정에서 만주의 농업은 퇴보했고, 백두산의 분화도 영향을 주었다 

       11. 발해ㅡ정안국-고려의 언어는 같았다(정몽주의 시 참조) 

       12.정안국은 발해국의 후신이며,,,정안국이 있었던 지역은 끊임없이 거란에 저항했다(혼하 지역)

「발해고성(渤海古城)」 - 정몽주

먼 옛날 발해가 세워졌던 곳  
渤海昔爲國
아직도 그 자취가 남아있구나 
於焉遺址存
당에선 왕위 계승 허용했는데 
唐家許相襲
요나라가 함부로 병탄하였지 
遼氏肆幷呑
우리나라 신하와 백성이 되니 
附我全臣庶
아직껏 그 자손들 이어져오네 
于今有子孫
남은 백성 이 사실 어찌 알리오 
遺民那解此
탄식하며 수레를 멈춰보노라 
嘆息住歸軒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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촐라롱콘 18-02-23 19:40
   
[[6.정안국의 역사는 50년 인가? 아니면 100년인가?]].
.
.
자세히는 모르겟으나.. 정안국 역사를 50년으로 본다면 요의 1차 고려침공 몇 년전까지로 한정한 것일테고

100년으로 본다면, 요나라가 정안국을 멸하고 멸한 지역에 세운 괴뢰정권의 역사까지 포함한 것 아닌가요...???

사실 결과론적으로 보자면 정안국은 요나라의 고려침공을 늦추어준 방파제, 적어도 완충지대의 역할은

충분히 해준 셈이지요! 고려가 국초부터 왕권투쟁, 각지의 호족들과 힘겨루기하고 국가제도를 정비해나가는

국내 내부문제로 인해 안정되지 못한 측면이 컸는데... 다행히 국가가 안정된 성종 시기에 거란의 1차 침입을

맞았으니.... 이전까지는 요나라가 고려에 앞서 정안국, 여진세력을 제압하느라 고려침공이 늦어진 측면이

크지요!
     
감방친구 18-02-23 19:47
   
정안국은 987 거란의 여진 정벌로 요ㆍ심 지역 여진 세력이 대거 붕괴된 시기까지, 그러니까 발해 멸망 후부터이니

발해가 926인가에 망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정안국 90년이니 100 년이니가 어떻게 가능한지?

그리고 발해 부흥운동에 정안국이 속해 있는 것이고
정확한 존속기간은 기성 학계도 확답을 못 하는 사안

또 대씨ㅡ오씨 등 세 개 씨족이 이들 부흥세력을 이끌었는데
중간중간 거란에 의해 파괴, 와해 되어 비계속적이었고
발해부흥세럭은 남경과 상경 지역으로 끌려가기도 했고요
     
감방친구 18-02-23 19:58
   
요ㆍ심 지역에 987 이후 괴뢰정권이 들어설 자리가 없습니다
남경, 상경 등지로 사민됐어요
그 지역 한족, 거란족 주민들과 바꿔치기로요

그 다음에 고려는 980년대 시작한 압록강 안팎의 정지작업과  성보 축조 작업을 여진족을 백두산 북쪽으로 쫓아내면서 991에 완료를 하고요

이는 고려가 거란의 침입을 대비했다고 볼 수 있어요
여진족이 고려에게 거란이 침입할 것이라는 정보를 계속 알렸으니까요

그리고 993 년에 침입
그렇게 10 년 전부터 준비한 고려 대침공을 해놓고서는
아주 싱겁게
ㅡ 강동6주를 할양. 할양도 아니죠. 거긴 여진족이 살고 있어서 거란이 지배하지도 못 했고 골치를 썪던 지역이니

고려는 강동6주를 받아서 애초 거란의 예상보다 훨씬 빨리 여진족 몰아내고 훨씬 넓게 땅을 개척합니다

요나라 신주가 고려와 접경했다고 요사 지리지는 적고 있는데 이곳은 현 철령 동북쪽 수백 리로 현 장춘 서쪽입니다

그리고

대연림의 흥요국은 요심지역을 장악한 게 다예요
history2 18-02-23 19:41
   
제가 적은 정안국 두번째 글에 정안국 80~90년 역사의 소견을 적어보았습니다.
     
감방친구 18-02-23 19:48
   
정안국은 발해 부흥운동기간에 속한 나라로 그 존속기간이 8~90 년이 될 수가 없습니다
감방친구 18-02-23 19:43
   
너무 딱딱 들어맞는 답을 바라시는 거 같은데 저로서는 납득이 안 갑니다

정안국과 발해부흥운동은 제가 40대인데 학창시절 국사교과서에서도 배웠네요

발해 부흥 운동의 성격과 여진족의 관계 등은 히스토리님이 연구 과제를 삼아서 앞으로 탐구해 보시는 게 좋겠습니다
history2 18-02-23 19:52
   
1018년 정안국은 관료인 골수를 고려에 파견한다는 내용이 발해고와 고려사에 등장을 한다. 즉 987년이 정안국의 멸망의 해가 아니였고, 여전히 정안국은 거란에 막혀 고립무원의 상태였지만, 그 명맥을 잇고 있었다는 것이다.  사실 이 무렵은 거란이 매우 강성하였고, 그 마수는 동방 고리에까지 미쳐 거란의 3차의 대침입(고려현종)을 감행하던 때였으므로, 고려로서도 송나라와 기타 반거란적인 이웃 나라들에 일정한 관심을 돌리면서 송나라와 함께 거란을 협공하자는 제의를 한 바 있었다.
정안국의 통치자들은 고려의 이러한 움직임을 통찰하고 1018년에 정안국 관료인 골수라는 사람을 고려로 들여보내어 고리와의 반거란 연합을 실현할 데 대하여 토의하게 하였다.

---저는 정안국의 멸망시점을 1020년 이 후로 보고 있습니다. ^^
     
감방친구 18-02-23 20:05
   
사료 기록을 제시하셔야죠
history2 18-02-23 19:54
   
1029년 즈음 정안국은 망국했다고 생각한다, 그랬기에 또다른 세력이 나타났을 것이고, 정안국이 대연립의 난 이전에 거란의 대항중심세력이었다 대연립의 난 이전에 멸망했다는 추측이 든다. 즉 1018년 골수가 사신으로 왔다가 망명한 것을 고려하면 멸망시기는 대략 1020-1025년 사이가 될 것이다
     
감방친구 18-02-23 20:05
   
그 시기가 거란이 강동6주 빼앗으려고 2차, 3차에 걸쳐서 대규모 침략을 한 시기인데 어디에 정안국이 있어요?
history2 18-02-23 19:55
   
발해고엔 정안국 골수라는 사람이 등장하고,,,,고려사엔 여직인 골수가 등장을 합니다....사실 발해고는 시기적으로 너무 늦지만.....고민할 필요는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감방친구 18-02-23 20:04
   
고려사에는 정안국 사람 골수라고 나옵니다 여직이 아니라
1018에요

그 때까지 정안국이 있었던 게 아닙니다
기성학계도 986~987 대토벌 때 소멸된 것으로 보고 있어요

고려와 거란이 두 나라 사이에 있던 여진인들을 다 소탕하고 압록강을 경계로 국경을 맞댔는데 어디에 있을 자리가 있어요?
감방친구 18-02-23 20:01
   
ㅡㅡㅡㅡㅡㅡㅡ

정안국은 발해 유민들이 압록강 유역에 세운 나라이다. 926년 정월 거란의 기습 공격으로 발해가 멸망하고, 그 땅에 동단국(東丹國)이라는 거란의 괴뢰정권이 세워졌다. 그러나 곧이어 928년 동단국이 요동(遼東)지역으로 옮겨짐에 따라, 발해의 옛 영역의 대부분은 사실상 거란의 지배권 밖에 놓이게 되었다. 이에 따라 발해 멸망 직후부터 각지에서 일어났던 발해 유민의 저항과 활동은 더 격렬해졌다. 그 가운데 압록강 유역은 지세가 험난하고 압록강을 통한 외부와의 교통과 물자공급이 용이하여 부흥운동의 유력한 구심점이 되었다. 초기에 이 지역의 발해 유민 집단은 발해 왕족인 대씨(大氏)에 의해 영도되었고, 옛 발해의 남경남해부(南京南海府) 지역 등을 지배하는 등 상당한 세력을 구축하였다. 대외적으로도 929년부터 936년까지 몇 차례에 걸쳐 발해라는 국명으로 후당(後唐)에 사신을 보내는 등 활발한 움직임을 보였다. 이를 926년 이전의 발해왕국과 구분하여 편의상 ‘후발해국’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왕국의 대외 활동은 그 뒤 954년 7월 발해국의 호족 최오사(崔烏斯 또는 崔烏斯多) 등 30여 인이 후주(後周)에 귀화했다는 기록 이외에는 보이지 않는다. 그러다가 다시 970년 중국의 송나라에 사신을 보내면서, 압록강 유역 발해 유민의 나라의 동향이 재차 국제무대에 나타나게 되었다. 그런데 이때의 나라 이름은 정안국이었고, 왕실은 열씨(烈氏)였다. 936년에서 970년 사이의 어느 시기에 대씨의 후발해국에서 열씨의 정안국으로 왕조가 바뀌었음을 말해 준다. 이러한 면에서 934년(태조 17) 7월에 발해국 세자 대광현(大光顯)이 수만의 무리를 이끌고 고려로 넘어온 사실이 주목된다. 이어 938년에도 발해인 박승(朴昇)이 3,000여 호를 이끌고 고려로 넘어왔다. 이러한 사실은 당시 후발해국이 심각한 내란 상태에 빠져 있었음을 시사한다. 바로 이 무렵에 후발해국의 주도권이 대씨로부터 호족인 열씨와 오씨(烏氏)로 넘어갔다고 짐작된다. 954년에 발해의 호족 최오사 등이 후주에 망명한 사실도 이와 연관되는 것으로 보인다. 열씨가 정권을 잡은 정안국은 970년 송나라와 국교를 맺었다. 송나라는 숙적 요나라를 공략하기 위해 정안국과의 관계에 관심을 기울였다. 그런데 981년 송나라에 보낸 정안국의 국서에 실린 왕의 이름은 오현명(烏玄明)이었다. 이는 왕실이 열씨에서 다시 오씨로 바뀌었음을 말해 준다. 오씨는 발해국 존립 당시부터 대표적인 성씨의 하나였다. 열씨에서 오씨로 왕실이 교체된 시기는 분명하지 않으나, 979년(경종 4) 발해인 수만 명이 고려로 넘어온 일이 있었는데, 이 사건은 정안국 내의 정권교체에 따른 여파로 보인다. 그 뒤 정안국은 송나라와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요나라에 대한 협공책을 모색하였다. 그러나 당시 송나라는 지금의 중국 간쑤성[甘肅省] 방면에서 일어난 서하(西夏)의 침공을 저지하는 데 급급했기 때문에 요나라에 대한 협공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당시 정안국은 자체의 연호를 사용하는 등 독자적인 국가체제를 갖추어 나갔다. 그러나 요나라의 세력이 동으로 뻗쳐옴에 따라 위기를 맞게 되었다. 요나라는 고려에 대한 공격을 기도하면서, 먼저 양국의 중간에 있던 압록강 유역의 정안국에 대해 대규모 정벌전을 벌였다. 983년 10월 요나라는 압록강 일대를 공격해 다음 해 4월까지 작전을 감행하였다. 이 원정은 고려의 북쪽 국경지대에까지 미쳐 고려에도 충격을 주었다. 이 작전은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한 듯하지만, 압록강 중류지역에 위치한 정안국의 안전은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이어 985년 요나라가 재차 대규모 원정을 감행하여, 이듬 해 봄까지 포로 10여만 명과 말 20여만 필을 노획하고 정안국을 멸망시킨 뒤, 그 땅에 4개 주(州)를 설치하여 직접 지배하였다. 이 후에도 압록강 유역 발해 유민의 움직임은 두 차례 더 보이나, 실제적으로 정안국은 986년 소멸되고 이 지역 발해 유민의 부흥운동도 이와 함께 종결되었다.
한규철, 「고려내투·내왕 거란인」 『한국사연구』 47, 1984, 6쪽.
남인국, 「고려전기의 투화인과 그 동화정책」 『역사교육논집』 8, 경북대, 1986, 102쪽.
박옥걸, 「고려시대의 발해인과 그 후예」 『민병하교수정년기념사학논총』, 1988, 184~190쪽.
임상선, 『발해의 지배세력연구』, 신서원, 1999, 124~130쪽.
이효형, 『발해유민사연구』, 부산대박사학위논문, 2004.
金毓慮, 『渤海國志長編』, 華文書局, 1934.
日野開三郞, 「後渤海の建國」 『帝國學士院紀事』 2-3, 1933.
三上次男, 「渤海國の滅亡事情に關する一考察」 『東洋史論叢』, 和田記念, 1951.
和田淸, 「定安國に就いて」 『東亞史硏究—滿洲篇—』, 1955.
감방친구 18-02-23 20:15
   
글을 반듯하게 정리하여 빼려는 경향이 있으신 거 같아요
그러실 필요가 없어요
근거ㅡ논리ㅡ주장
이거만 있으면 됩니다

제가 등단한 작가입니다
20 년 넘게 글 써 온 사람이에요
그런데 역사연구에는 과정적 탐문이 중요하지
깔끔하게 빠지는 글은 훗날을 기약하시는 게 좋습니다
history2 18-02-23 22:22
   
적절한 말씀 감사드립니다...제가 밤에 일해야 하는 직업이라,,,,답문이 늦었습니다...귀찮게 해 드렸습니다....(감방)친구님의 글에 항상 감사를 표하고 싶습니다.....주신 글 잘 읽어보겠습니다.
history2 18-02-23 22:27
   
기존 학계의 의견을 제가 1편에 쓰고 제 의견을 2편에 써 보았습니다.... 골수라는 인물을 토대로 정안국을 재 구성한 것이지여....정안국이 한국 역사의 한페이지를 차지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가득한데,,,사서는 없고 증거는 더 없고 그렇습니다...그래도 오늘 토론을 통해,,,정안국의 위치 및 고려와의 관계 등 많은 깨달음을 얻었습니다....48년의 국가존치기간이 짧다고 여기시는 분들이 많아서,,,,정안국의 기간에 대한 자료를 쭈---욱 찾고 있던중,,,, 80-90년 까지 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을 골수를 통해 얻었지요...물론 사료가 없어서 그 당시 후임왕 이름 한자 얻지는 못했습니다...님 말씀처럼 일본사서까지 더 뒤져서 정안국에 대한 모든 정보를 얻도록 노력하겠습니다....다시 감사드리고 편한밤 되십시여....
     
감방친구 18-02-23 22:34
   
네, 좋은 결과 기대하겠습니다
6시내고환 18-03-05 22:55
   
고려가 이용하지 않고 포용하고 끝내 통일까지 가면 더 좋았을것을...안타깝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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