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나라 혜제(惠帝) 원강(元康) 원년이다.- 응신천황 22년(291, 유례왕8)에 신라의 군사가 일본을 공격하여 명석포(明石浦) 안으로 깊이 들어왔는데, 대판(大坂)과의 거리가 100리였다. 일본 사람들이 강화를 요청하여 백마(白馬)를 잡아 적관(赤關)의 동쪽에서 맹서하였는데, 지금까지도 백마총(白馬塚)이 남아 있다.-상동
신라가 열도를 침략하자 일본인들이 강화를 요청했다는 내용입니다.
-진나라 혜제 영강(永康) 7년이다.- 응신천황 37년(306, 미천왕7) 봄 2월에 아지사주(阿知使主)와 도가사주(都加使主)를 오(吳)나라에 보내어 바느질 잘하는 여자를 구해 오게 하였다. 두 사자는 고구려(高句麗)로 건너가서 오나라로 가려고 하였으나, 길을 잘 몰랐으므로 길을 아는 자를 고구려에서 구하고자 하였다. 그러자 고구려의 왕이 구례파(久禮波), 구례지(久禮志) 두 사람을 붙여 주어 인도해 가게 하였다. 이 때문에 오나라로 갈 수가 있었다. 오왕(吳王)이 공녀(工女)를 보내 주었는데, 형원(兄媛), 제원(弟媛), 오직(吳織), 혈직(穴織) 네 사람이 그들이다.-일본서기
이건 일뽕들이 가장 좋아하는(........)일본서기입니다. 정작 이 일본서기 내용을 잘 읽어보면 고구려의
열도 점령을 암시하는 구절이 보입니다.
고구려를 거쳐서 오나라로 간다라.............당시에는 항해 기술이 좋지 않아 연안 항해를 했으니
연안 항해로 고구려 근처를 지나갔다는 의미인지? 아니면 고구려가 열도 일부에 땅을 마련하고
있었는지 모르겠네요.
아무튼 신라도 열도를 침공할 정도면 고구려, 백제는 더 나아가 열도를 점령했을 수 있다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