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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2-23 12:57
[한국사] 잃어버린 왕국 정안국 2편(개인적인 의견)
 글쓴이 : history2
조회 : 1,153  

1. 학계에서 인정하는 정안국의 연표 

定安國
938년 ~ 986년  (10세기 전반)

926년 발해멸망 
938년 정안국 건국.
970년 송나라에 사신을 보냄.
976년 오현명의 반란으로 오씨정권(오현명)이 정안국 2번째 왕위를 이음
981년 송나라에 다시 사신을 보냄
985년 고려에게 청천강을 통해 외교관계를 맺자고 요청했다.
986년 1월 거란(요나라)의 침입을 받아 오씨정권(오현명) 무너졌다.
987년 정안국 멸망

2. 987년 멸망이라는 통설에 대한 반론
정안국 (938년 ~ 1020년 이상 존재함)

1018년 정안국은 관료인 골수를 고려에 파견한다는 내용이 발해고와 고려사에 등장을 한다. 즉 987년이 정안국의 멸망의 해가 아니였고, 여전히 정안국은 거란에 막혀 고립무원의 상태였지만, 그 명맥을 잇고 있었다는 것이다.  사실 이 무렵은 거란이 매우 강성하였고, 그 마수는 동방 고리에까지 미쳐 거란의 3차의 대침입(고려현종)을 감행하던 때였으므로, 고려로서도 송나라와 기타 반거란적인 이웃 나라들에 일정한 관심을 돌리면서 송나라와 함께 거란을 협공하자는 제의를 한 바 있었다.
정안국의 통치자들은 고려의 이러한 움직임을 통찰하고 1018년에 정안국 관료인 골수라는 사람을 고려로 들여보내어 고리와의 반거란 연합을 실현할 데 대하여 토의하게 하였다. 
≪고려사≫ 세가에 실려 있는 골수의 기록은 너무 간단하여 그가 무엇 때문에, 어떤 자격으로 들어왔는지 도무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이때의 국제 정세로 말하면 정안국 자신은 거란 침략자들을 반대하여 계속 투쟁하는 중이고 거란 침략자들은 정안국 뿐 아니라 고리에 대해서도 계속 침입을 감행하던 때이므로 골수가 고려로 온 것은 반거란투쟁에서 고리와 일정한 연계를 맺으려고 한 것임에 틀림없다. 골수가 고려에 망명하였다는 기록은, 그가 그냥 고려에 정착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골수가 고리를 방문한 결과가 어떻게 되었는지 이와 관련된 기록이 없기 때문에 그 이상의 것은 알 수 없다.

3.정안국의 그 후 (개인적인 생각)

또 정안국이 그 후 어떤 경위를 밟았는지 그 나라가 어느 때까지 존속하였는지도 알 수 없다. 그러나 이상의 남은 기록들만 가지고라도 발해 국가 멸망 후에 그 유민들이 세운 정안국이라는 국가가 적어도 80-90년 동안 거란에 대항하여 투쟁하고 또 존립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거의 100여년의 시간을 존재한 국가라면 당연히 한국사의 한 페이지에 자리잡고 있어야 한다.  또한 정안국이 있었기에 1029년 대연립의 난등 지속적인 발해부흥운동이 이어졌다고 생각한다. 
(1029년 즈음 정안국은 망국했다고 생각한다, 그랬기에 또다른 세력이 나타났을 것이고, 정안국이 대연립의 난 이전에 거란의 대항중심세력이었다 대연립의 난 이전에 멸망했다는 추측이 든다. 즉 1018년 골수가 사신으로 왔다가 망명한 것을 고려하면 멸망시기는 대략 1020-1025년 사이가 될 것이다.)

4.정안국의 한국사 편입에 대한 반대 의견
(제 개인적인 견해는 아닙니다) 

1)발해의 정통을 이었다 주장하지만, 정안국을 세운 열만화는 발해의 일개 호족이었고, 정작 발해 부흥운동의 중심이 되어야할 발해의 마지막 왕 대인선의 아들 대광현은 고려에 귀순을 했다. 
2)발해 멸망 후, 발해는 정안국 이외에도 몇개의 소국이 더 만들어 졌는데(후발해국,흥료국 등) 그들과의 차이점이 없다.  결국은 상해에 세워진 임정과 같은 성격이다. 
3)거란과 전쟁을 하고 외교전을 폈다 해서 그게 과연 비중이 있는 것인지 확실하지 않으며, 한반도의 지리적 정세에 영향력을 주지 못했다. 
4)정안국이 한국사에 정식으로 포함된다면,  두막루, 탐라국 같은 나라 뿐 아니라 수 십개의 다른 소국들도 반영해야 한다. 
즉, 소국에 대한 한국사 편입에 대한 소모적인 논쟁만 반복되게 된다. 

5.기타 발해 부흥운동 

발해 멸망 후에도 그 유민들은 오랫동안 왕실을 부흥시키기 위해 노력하였다. 그런데, 부흥운동 과정에서 발해유민들은 고려에 도움을 요청하기도 하였다. 발해 멸망 후에도, 그 유민들과 고려, 즉 신라와 발해 후손들의 관계가 지속되었음을 의미한다. 1029년 이른바 대연림(大延琳)의 난으로 언급되는 발해 부흥운동이 고려와 거란이 세 차례의 치열한 전쟁을 마치고 고려가 거란의 연호를 쓰고 있던 시기에 일어났다. 대연림은 발해의 왕손이면서 거란에서 동경요양부의 대장군으로 활약하던, 친거란파의 발해유민이었다. 그러던 그가 그 지방 호부사 한소훈(韓紹勳) 등의 실정으로 인해 야기된 민심 동요를 틈타 나라 이름을 '흥요국(興遼國)'이라 하고 연호를 '천경(天慶)'이라 하였다.
 그런데, 대연림의 발해국 부흥운동에서 생각할 수 있는 점은 흥요국과 고려와의 관계이다. 대연림이 끈질기게 고려에 도움을 요청했을 때가 그러했고, 이 사건에서 활약하던 다수의 사람들이 고려에 투화해 왔던 때가 그러했다. 따라서 이 사건은 발해와 고려로부터 나아가 발해와 신라의 관계까지를 생각케 하는 것이었다.
대연림이 무려 5차례나 고려에 사신을 파견하여 도움을 요청하였다는 점이다. 그러나, 고려 왕실은 곽원(郭元) 등의 돕자는 의견을 무시하고 지원 불가쪽으로 결정하게 되었다. 대연림이 고려에 도움을 요청하였던 사실과 운동이 실패한 후 그 유민들이 고려에 대거 투화해 왔던 점은 단순히, 인접 왕조였기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그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고 본다.

6.정안국 부흥운동 실패의 요인 (개인적 소견)

1. 946년의 백두산 분화: 백두산 분화로 인한 기후변화로 만주 일대의 농업생산력이 형편없이 떨어지고, 이로인해 수많은 발해민들이 자발적으로 고려나 거란으로 망명하여, 만주일대 인구의 공백 및 산업생산성의 몰락으로 이어져 정안국이라는 신생국을 지탱하기 어려웠다 

(백두산 분화: 화산폭발 7에 달하는 역사적으로 강력했던 화산 분화 기록이다. 세기 말에 벌어져서 '밀레니엄 분화'라고도 불린다. 날짜는 946년의 10월에서 12월 사이였을 것으로 추정한다. 
고려사 (高麗史)의 세가(世家)에서는 고려 정종 원년(946년)에 ‘이 해 천고(天鼓)가 울리므로 사면령을 내렸다.’고 기록하였다. 일본의 역사서인 흥복사연대기(興福寺年代記)에서는 천경9년(946년) ‘천경의 밤에 하얀 화산재가 눈과 같이 내렸다.’라고 기록하였다.)

2.유목민인 여진계가 만주의 주도권 획득: 만주일대가 급속히 농업환경이 나빠지면서 여진계 유목민족이 흥기했고, 그로인해 농업민족인 발해유민의 공간이 좁아졌다.
(금과 비슷한 시기 건국한, 고영창의 대원국이 황제를 칭하자, 아골타가 이를 인정하지 못하고 분노하여, 고영창이 4개월만에 패망한 것을 볼 때, 이미 만주의 주도권이 농업계인 발해유민에서, 유목계인 여진으로 옮겨 갔음을 볼 수 있다) 

3.동조동근론 확산: 여진계가 점차 힘을 얻게되면서, 동조동근론이 발해-여진을 휩쓸면서 발해부흥운동이 점차 여진의 건국운동(금나라 건국)에 흡수되어 갔다. 

4.안타깝게도 송이나 고려 등 반 거란국가들의 지원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7. 결론....... 개인적 소견

정안국은 80년 이상(938 ~ 1020년 이상) 백두산의 분화로 척박해진 만주에서도 고구려의 정통성을 잇는 왕국으로 존재해 왔다. 이미 중국(송)에서도 정식 국가로 인정을
했고, 고려 또한 거란과의 전쟁으로 소원했지만(정식 국가로 인정을 하지는 못함), '고려-정안'의 관계가 '발해-신라 관계'보다는 훨씬 좋았고 발해-정안국의 유민의 대다수가 망명지로 고려를 택했다는 점에서 분명한 동족의식이 있었다고 생각을 한다.
백두산 분화로 만주의 농업환경이 급격히 파괴되지만 않았다면 민족사적으로 의미있는 왕국이 되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든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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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방친구 18-02-23 13:41
   
당연히 우리 한국사죠
이미 반영돼 있구요
여러 소국들도 지면의 문제일 뿐 다 우리 한국사가 맞습니다
history2 18-02-23 13:52
   
그리고 정안국을 요사에 여직으로 적은 부분은, 백두산 폭발로 만주 지역이 황폐화 되어 농경이 어려워졌음으로 인해, 유목민의 땅이 되었다 생각해서, 여직으로 적은건 아닐지요(농경민인 발해가 머물땅이 더이상 아니다 싶어서요) 사실, 해동성국을 만든 발해의 땅을 그렇게 밀림이 되도록 방치하고, 만주를 고의로 관리를 안한데는 이유가 있지 않을런지요....
     
감방친구 18-02-23 13:55
   
유목은 초원에서 하는 것이죠
만주는 밀림이었습니다
그리고 여진족은 10세기 이후 본거지가 하얼빈이었고 일부는 고려백성으로 살았습니다
금이 건국된 곳도 길림합달령 너머 하얼빈 지역에서였고
여말선초에도 여진족은 여진국이라 하여 그곳에 있었습니다
history2 18-02-23 13:55
   
또 고려가 요-심 지역까지 강동6주 획득 후 갔다는 의견에 어느정도 타당성을 확보한 지금,,,고려와 정안간에 과연 편화무드가 가능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래서 고려도 정안을 이용할 때는 정안으로, 뭐 그렇지 않을때는 여진으로 적지 않았을까요? 그렇다면 고려와 정안의 관계가 우리가 지금 생각하는 것 보단 뭐 그리 좋지 않았을 수 도 있겠네요....
     
감방친구 18-02-23 13:56
   
요사와 고려사에는 정안국이 안 나옵니다
학계에서 통설로서 말하는 정안국 관련 내용은 요사와 고려사에는 모두 여진/여직으로 적혀 있습니다
가난한서민 18-02-23 13:55
   
좋은글 잘봤습니다. 흥요국은 정말 그 상황이 묘사될 정도로 고려에게 원군을 많이 요청했더라구요
거란과 고독한 죽음의 전투 한걸 생각하면 마음이 아파집니다. 여진족이 유목민 이라는 점에 의문점이 있는데 여진족은 발해인들보다 더 오른쪽에 있던 흑수말갈 이라고 하잖아요 그들의 땅엔 숲이 많고, 바다를 등지고 있어서 지리적으로 여진도 발해처럼 반농반목을 했을거라 생각합니다 저는
     
감방친구 18-02-23 13:58
   
여진족은 유목민이 아닙니다
여진족의 전신이 되는 흑수말갈은 수렵민이며 농사도 지었습니다
history2 18-02-23 14:02
   
만주의 주도권을 여진이 발해대신 쥐는데,,,백두산의 화산폭발의 영향이 있다는 생각은 어떠세요???? 아무래도 농경에는 불리한
 환경이 되었으니 말이빈다. 그 때문에 여진이 만주의 주인이 된 건 아닐지요???? 그래도 발해보단 여진이 반농반목수렵족이니 적응에는 더 좋았을 것 같아서요
     
감방친구 18-02-23 14:37
   
만주의 주도권을 뭔 여진족이 쥡니까
요사, 고려사, 금사 안 읽어보셨어요?

금나라 건국 전까지 여진족은 근 100 년 넘게 고려백성으로 살았습니다

금나라 건국 세력도 하얼빈에서 흑룡강 지대에 모여 살며
고려에 복속돼 귀덕장군의 직위를 세습했습니다
history2 18-02-23 14:07
   
그리고 거란이 만주를 너무 쉽게 방치하는 것도 이해가 되질 않구요..... 만주 동부는 타이가 인건 인정하는데, 서부는
 유목민이 거하기 좋은지역이지요.....거긴 거란이 있었으려나....그리고 마지막으로(죄송요) 고려사에 정안이 안나온다고 해서 드리는 말씀인데,,,, 골수(고려에 망명한)도 그럼 여진족으로 판단을 하시나요??? 그리고 학계가  48년으로 규정한 정안국 역사를 저는 80년 이상으로 보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에효 질문이 많아 다시한번 죄송합니다
     
감방친구 18-02-23 14:39
   
지도를 보세요
만주에 산맥들 서쪽에 대흥안령 소흥안령 가운데 길림합달령 용강산맥

만주는 밀림이었고 송화강~흑룡강 지대가 풀밭&삼림이었습니다

금이 건국될 당시에도 주력군이 수천 명 수준이었습니다
     
감방친구 18-02-23 14:42
   
돈이 들어오는 구멍이 요서, 요동, 북쪽의 초원길을 이미 거란의 요가 틀어쥐고 있는 마당이니 그 넓은 만주, 연해주를 소수의 거란지배층이 다수의 발해인과 그 지방민 및 복속 종족을 다스리기에는 경제적으로도 무가치하고 위험부담이 컸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미 파괴된 발해의 도로와 성곽을 중건하기에 돈이 많이 들고
발해 멸망 후 불과 몇 년 사이에 전 국토가 밀림이 돼버린겁니다
history2 18-02-23 14:18
   
죄송합니다....글을 읽고 읽다보니,,,혹시 흥료국,대원국,대발해국등 요-심 지역의 발해부흥 운동은 발해인의 것으로 보는데, 정안국은 여진국의 나라로 보시는 건가요???? 비판하는게 아니라,,,,정안국의 기사가 다 여진으로 다온것으로 고려사에서 확인이 되다보니 그렇습니다.... 그럼 현재 상황이 고려가 강동6주를 획득하며 현 태자하 까지 갔구요(지금의 압록강이 아니지요)....그 동쪽에는 정안 곧 여직이 있구요...그 서쪽에는 발해 부흥군들(뭐 후발해국등)이 있고요...거란은 지금 중국 송나라와 서하 상대하기 바쁘니, 고려에게 두 세력 즉, 여진+정안과 발해잔당의 처리를 맡긴 상황인가요? 강동6주의 고려할양 이라는게....근대 이 의견이 있기는 합니다(물론 압록강의 위치가 달라서 그렇지만)---이것도 고려가 3번 여-요 전쟁의 승리의 댓가지만요....!!!
     
감방친구 18-02-23 14:44
   
당시의 여진은
이미 발해 말기에 여진으로 불린(숙신과 여진의 음가가 같음) 흑수말갈 + 발해인 + 여타 발해 지방민 및 종족 등의 합으로 봄이 옳습니다
     
감방친구 18-02-23 14:46
   
거란의 2차 3차 대규모 침략과 그 후의 도발은
고려로부터 강동6주 지역을 빼앗기 위한 것으로
요사에 노골적으로 나옵니다

이 지역과 요심지역은 금광, 은광, 철광이 산재해 있는 곳입니다
history2 18-02-23 14:51
   
그래도 발해가 해동성국의 지위에 오른건,,,,고구려가 동북아 패자의 자리에 서게된건,,,,,만주의 풍요로운 농토 덕 아닌지요????(지금의 기준 말고, 백두산 화산폭발 이전을 생각해 보세요....) 만주가 사실 4-9세기 까지 농경에 괜찮은 지역이었음은 기후학에서 증명을 해 주고 있어서요...화산 폭발 후 소빙하기 오고 화산재 떨어지고 해서 농업생산성이 급락한 것 아닌지요?
     
감방친구 18-02-23 15:00
   
자국 내에서 농사만 짓고 그걸로 만족하고 사는 나라면
황제니 황후니 제국이 아니죠

농사 짓기 좋은 땅 맞구요

요서ㆍ요동, 초원길을 통해서 교류하여 번성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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