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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2-21 19:07
[한국사] 신미제국 관련글
 글쓴이 : 그만혀
조회 : 867  

석사하면서 영산강 유역고분을 꽤나 공부했었는데요

 옛날 글(논문들을 인용했고, 개인적인 생각을 쓴 글입니다)을  꺼내봅니다


3세기 중후반 몽촌토성과 풍납토성을 축조하며 급성장하던 백제로 인해 금강유역 뿐만 아니라 영산강 토착세력들은 위기의식을 느끼게 되었다. 다음 기사에 의하면 영산강유역의 여러 세력집단은 백제의 남진 추세에 위협을 느껴 282년에 에 사진을 파견하였던 것으로 나타난다.

 

동이마한신미제국은 산에 의지하고 바다를 끼고 살았으며, 유주와의 거리가 4천여 리였는데, 여러 대에 걸쳐 사신을 보내지 않았던 20여 국이 사신을 보내 조공을 하였다.

마한에 속한 신미국이 중심이 되어서 진에 사신을 보낸 것인데, 왜국에서는 침미다례라는 이름으로 알려졌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신미제국이 사신을 보낸 시기인 3세기 후반부터 옹관고분을 축조하는 세력이 등장하였는데, 강봉룡서남해안을 끼고, 노령·소백산맥으로 둘러싸여 있는 전남지방, 그 중에서도 특히 옹관고분을 지배층의 공통 묘제로 쓰고 있던 영산강유역의 옹관고분사회를 신미제국으로 지칭하는 것이 자연스러울 것이라 하였다.

진에 사신을 보내고, 20여 국과 연합하여 위세를 뽐내던 신미국은 4세기 중엽 백제의 침입으로 멸망하게 되고, 이후 영산강 토착세력들은 시종면과 반남면세력이 중심이 되어 중후기 고분사회를 이끌어나가게 된다.

5세기에 백제가 고구려의 침입으로 약화되자 왜와 연대를 하고, 왜계의 횡혈식석실분을 축조하면서 백제의 예속에서 벗어나려고 하였다. 하지만 6세기에 백제의 무령왕·성왕이 22담로제, 5방제를 실시하면서 백제에 서서히 귀속되었고 6세기 중후반이 되면 완전히 귀속된 것으로 추정된다.

영산강 세력이 백제에 귀속되었다고 추정되는 시기에 영산강유역 토착세력의 고분인 옹관고분과 친왜적·왜계의 전기 횡혈식석실분이 사라지고, 사비 백제식의 횡혈식 석실분이 급격하게 나타나는 현상은 고고학적으로 주목할 만하다. 이는 곧 백제가 영산강유역을 완전영역화한 역사적 사실을 반영하는 명확한 증거라 할 수 있다.

영산강유역의 고분 중에서 후기 횡혈식석실분으로 분류될 수 있는 대표적인 사례로는, 나주 흥덕리 및 대안리 4호분, 영암 봉소리 고분, 신안 도창리 고분, 함평 월계리 석계고분 등을 들 수 있겠는데, 이들은 옹관고분사회의 주변부는 물론 중심부를 비롯하여 전략상의 요충지에까지 두루 분포하고 있다. 이들의 축조시기는 6세기 후반 및 7세기로 편년되고 있다. 더욱이 6세기 중반 이후에 축조된 나주 반남면 흥덕리의 횡혈식석실분과 나주 복암리 3호분 횡혈식석실에서 백제 관인이 착용한 것으로 알려진 은제관식이 출토되고 있어 6세기 초·중엽에는 영산강유역이 백제의 영역에 편입되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제가 원삼국시대 고분, 그 중에서도 철제무기에 대해서 전공했는데 2~4세기대 한강유역에서 나오는 토기만 봐도 한강유역이 신미국꺼란 얘기는 하지 못합니다. 백제는 3세기에 이미 백제 자체의 토기 생산체계를 완성했고, 그 고유한 특징이 나옵니다. 

 백제가 중국대륙에 있었다는 것에 대해서 어느정도는 인정하는 사람입니다만, 그렇다고 해서 한강유역이 신미국 꺼라는 것은 아닌  듯 합니다.

 신미제국의 위치를 한강유역으로 보게 되면 신미제국의 영향권에 있다가 신흥강자로 부상한 시종면 반남면 세력의 위치 또한 변경되어야 하는데... 불가능한 일이라고 봅니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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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방친구 18-02-21 19:23
   
저는 사실 신미국이니 침미다례에 대해 잘 모르지만
좋은 글 감사합니다
     
그만혀 18-02-21 19:53
   
ㅎㅎ.. 한 3년전에 발표문으로 썼던 것 같네요
남북통일 18-02-21 19:24
   
흠.........제가 너무 영역을 늘렸군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그만혀 18-02-21 19:55
   
ㅎㅎ ...
history2 18-02-21 19:25
   
세상은 넓고 훌륭한 사람은 많고.....좋은글은 넘치니...... 그저 감사입니다
     
그만혀 18-02-21 19:55
   
아뇨.. 대학원 과제글이에요 ... 지금보면 엉터리죠
history2 18-02-21 19:27
   
* 이 부분이라도 명확히 알아야 겠습니다.

진에 사신을 보내고, 20여 국과 연합하여 위세를 뽐내던 신미국은 4세기 중엽 백제의 침입으로 멸망하게 되고, 이후 영산강 토착세력들은 시종면과 반남면세력이 중심이 되어 중후기 고분사회를 이끌어나가게 된다.

5세기에 백제가 고구려의 침입으로 약화되자 왜와 연대를 하고, 왜계의 횡혈식석실분을 축조하면서 백제의 예속에서 벗어나려고 하였다. 하지만 6세기에 백제의 무령왕·성왕이 22담로제, 5방제를 실시하면서 백제에 서서히 귀속되었고 6세기 중후반이 되면 완전히 귀속된 것으로 추정된다.

영산강 세력이 백제에 귀속되었다고 추정되는 시기에 영산강유역 토착세력의 고분인 ‘옹관고분’과 친왜적·왜계의 ‘전기 횡혈식석실분’이 사라지고, 사비 백제식의 횡혈식 석실분이 급격하게 나타나는 현상은 고고학적으로 주목할 만하다. 이는 곧 백제가 영산강유역을 완전영역화한 역사적 사실을 반영하는 명확한 증거라 할 수 있다.
     
그만혀 18-02-21 19:56
   
아래 3줄은 타 논문과 제 생각을 합친 것 같네요 .. 그런 기억이 납니다
칼리S 18-02-21 19:27
   
님 같은 분이 정상인데, 여긴 좀 어눌한 분들이 다수 있습니다.

신미제국은 백제에 완전히 복속되지 않은 마한으로 통칭되던 조그만 국가들의 조합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죠.
     
그만혀 18-02-21 20:05
   
신미제국은 일단 작은 규모의 나라는 아닐 꺼라 생각하는 입장입니다만..(발굴성과를 신미국 것이라 생각할시) 한자가 안나왔으니 뭐.. 정확히는 알 수 없죠
감방친구 18-02-21 19:28
   
"5세기에 백제가 고구려의 침입으로 약화되자 왜와 연대를 하고, 왜계의 횡혈식석실분을 축조하면서 백제의 예속에서 벗어나려고 하였다. 하지만 6세기에 백제의 무령왕·성왕이 22담로제, 5방제를 실시하면서 백제에 서서히 귀속되었고 6세기 중후반이 되면 완전히 귀속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만혀 18-02-21 20:06
   
오자가 있네요  ㅎㅎ 죄송합니다 과거 데이터 들어가서 c+v만 했는데..
history2 18-02-21 19:28
   
영산강 일대에 왜를 초청하고, 왜식 유물이 나타나는 것은,  백제가 아니라,,,영산강 유역세력이 자발적으로 그리했다 보신 의견 이시네요!
전 왜를 백제가 용병으로 초청했다는 입장이었습니다....아무래도 문주왕 암살 이 후 왕권이 흔들리고, 동성왕 -무령왕 시기에 왜의 용병을 데리고 귀국하는 예도 많고 해서요...
     
칼리S 18-02-21 19:32
   
왜를 초청했다는 게 아니라, 전라도 지역의 마한소국가연맹체가 백제나 가야계의 세력에 대항하는 용도로 왜와 교류를 했다고 보는게 맞죠.

왜는 백제의 영향을 많이 받았지만, 그렇다고 백제의 종속지역도 아니고, 나름 강한 군사력을 가진 집단이었으니 통교를 했다고 보는거죠.
     
감방친구 18-02-21 19:36
   
저는 이것을 서강대 명예교수 김영덕 선생의 주장과 병치해 놓고 보려합니다

이나리야마 쇠칼과 에다후나야마 쇠칼의 명문을 해석하여 광개토태왕과 장수왕의 남정남벌에 여파로 백제가 일본열도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해 분국을 완성했다는 주장을 펼쳐온 분인데요

뭐랄까 우리는 자꾸 고대의 한반도와 만주의 여러 나라의 사정을 너무 현대의 국가적 관점에서 바라보려 하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오해하고 오판하며 고대사가 더욱 미궁에 빠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시각의 전환내지 변혁이 필요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만혀 18-02-21 20:39
   
흠... 분국의 가능성도 있습니다. 하지만 규모는 크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전라남도를 완전히 먹는것도 6세기 무렵인데, 일본.. 이라 큐슈 일부 정도라면 가능성이 있겠네요
     
그만혀 18-02-21 20:09
   
일단 영산강세력과 왜와의 관계는 친밀했을 것으로 보입니다만, 왜계의 횡혈식 석실분은 영산강에서도 잘 나오지 않을 뿐더러 규모도 빈약합니다.
 군사적 동맹관계로써 백제세력을 억제하려고 했다.. 이렇게 보긴 합니다만 왜식 유물들이 워낙 적어서 대규모 군대파견까지는 나아가지 못했다. 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도배시러 18-02-21 19:36
   
문헌연구가 빠진게 아쉽네요. 진과의 조공무역을 보면
삼한 19회, 백제 4회, 고구려 3회 입니다.

나라의 방문수로 따지면 삼한 19*(5~30국), 백제 4*1회, 고구려 3*1회 입니다.
그래서 서진동진의 유물이 가득한곳이 신미제국입니다.

특히 마한을 백제가 정복했다고 주장하는 분들의 특징이 근초고왕 사후에 삼한이 동진에 조공한 기록을 모르더군요.
알고 계신가요 ? 주류사학이 숨긴다고 용쓰는 부분인데...

확인해보세요 http://www.gasengi.com/main/board.php?bo_table=EastAsia&wr_id=161848&sca=&sfl=mb_id%2C1&stx=likone

咸安二年372 春正月辛丑,百濟、林邑王各遣使貢方物。
              六月,遣使拜百濟王 餘句 爲鎮東將軍,領樂浪太守 -B근초고왕(부여 구) ★
太元七年382 九月,東夷五國遣使來貢方物  삼한 5국 방문 ☆★☆
     
감방친구 18-02-21 19:43
   
저로서는 미궁으로 빠져서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역시 예전 활동 유저 홈사피엔스님의 '진왕' 맹주론을 받아들여야 한반도 고대사의 미궁의 길잡이가 보이려나요
          
그만혀 18-02-21 20:15
   
전 요즘 초기백제의 위치에 대해 연구(?)를 하고 있는데요 남한에서는 찾지 못했습니다(?) 물론 1~2세기 대 한성백제인근에서 말각방형의 주거지를 조성하는 세력들이 등장하지만 국가라고 칭하기 어렵습니다.
 초기 백제 이놈들은 도대체 어디있었을까요 ..
               
도배시러 18-02-21 20:22
   
남한 지역에 초기 백제 있을곳은 없죠.
마한이 기록이 없어서 호구로 봤는데, 중국에 장부를 잔득 기록하고 왔으니...
               
감방친구 18-02-21 20:25
   
저로서는 요동 남부로 추정하고 있어요
     
지수신 18-02-21 20:00
   
당시 시점에서 동이5국이면 부여-고구려-백제-가야-신라 이렇게 볼 수도 있지 않나요?

그리고 강단주류에서 그 기록을 굳이 숨기려고 용쓸 필요는 없어보입니다.
          
도배시러 18-02-21 20:08
   
그러면 신미제국의 주인공 유주 장화의 임명을 전후한 본기를 보죠.

武帝 太康元年280 六月 東夷十國歸化;  삼한 10국 방문 [삼국지의 오나라 멸망]
 七月 東夷二十國朝獻  삼한 20국 방문
武帝 太康二年 三月丙申,東夷五國朝獻。삼한 5국 방문
 夏六月,東夷五國內附            마한-진한  5국 방문

武帝 太康三年282 春正月 甲午,以尚書 張華 都督幽州諸軍事。장화 임명

武帝 太康三年 九月 東夷二十九國歸化  삼한 29국 방문
武帝 太康七年286 八月 東夷十一國內附  馬韓等十一國遣使來獻。 마한-진한 11국의 관리가 방문

더 있음..........

진서 본기의 東夷는 삼한으로 한정되어있음.
마한, 진한으로 구분한 이유는 열전에 당시 방문국을 분류한 부분을 차용
     
그만혀 18-02-21 20:21
   
글쎄요 저는 고고학자라서 문헌과는 그리 친근하지는 않습니다만,
4세기 이후에도 삼한소국들이 존재했을 가능성은 높습니다
신라가 경상도 경산지역에 진출하는 것은 5세기가 다되어서이고, 백제가 남방을 전부 먹어치우는 것 또한 5세기~6세기 이후입니다.
 주류학자들이 왜 숨기려고 하는지는 잘 모르겠네요
          
도배시러 18-02-21 20:25
   
고고학은 새로운 유물이 나오면 입장을 바꾸겠지만,
사학하는 분들은 학자라기 보다는 전통을 유지하려는 선비에 가깝죠.
도배시러 18-02-21 19:46
   
그리고 서진 신미제국의 위치는 당나라 시절 백제 도성의 위치와 동일합니다.
문헌비교, 거리비교만해도 정확하게 일치하죠.

대동강 평양 낙랑군 유적은 당대의 문헌이 일치하지 않지만,
신미제국의 위치는 당대와 후대의 위치가 동일하고, 잦은 무더기 교류기록에 맞는 많은 유물도 있습니다.

아마도 문헌기록은 안보고 후대의 선배들이 만든 가이드라인 기준으로
선사고고학적 접근을 한것이 아닌가 싶네요.
     
남북통일 18-02-21 20:07
   
당나라기록뿐 아니라 다른 사료로도 교차검증이 가능한데
거의 일치합니다
삼국유사 등등의 사료들이죠
history2 18-02-21 19:47
   
저는 현재 (감방) 친구님의 댓글도 이해 못하는 상황입니다...비참 흑흑.....진왕 맹주론,,,,이나리애마 쇠칼 다 처음 들어봅니다....언제쯤 비슷한 수준이 될지
도배시러 18-02-21 19:58
   
서진동진과 가끔 교류하면 귀족 고가품인 월주청자를 받게 됩니다.
1회 교류한 왜가 보유한 월주청자의 귀족스럽고 예술적인 모습을 보시면...
풍납토성에 가득한 서민용 생활용 전문, 시유도기가 눈에 차지 않을 겁니다.

1국으로 교류한 백제가 그런 취급을 받을 일은 없어 보이구요.
삼한이 소국 30국, 덤으로 지역의 소부족장에 동네 이장까지 몰려가니 기념품으로 준게 시유, 전문도기 입니다.
     
감방친구 18-02-21 20:06
   
동네 이장 ㅋㅋㅋ
지금 동네 이장 무시하시나여?
우리 아버지 동네 이장 출신이십니다 ㅎㅎㅎ
          
도배시러 18-02-21 20:20
   
지송합니다 ㅎㅎㅎ
               
감방친구 18-02-21 20:24
   
ㅋㅋㅋ
지수신 18-02-21 20:05
   
풍납토성을 소위 신미제국 영역으로 보게 되면
흔히 북방계 묘제라고 하는 서울 강남의 적석총은 어찌 해석하느냐 하는 문제가 가장 커 보이네요.

군사정권 난개발이 다 밀어버려서 지금이야 몇 기 안 남아있지만
그쪽 동네 이름이 석촌동인 이유가 돌무더기가 하도 많아서였는데...
     
도배시러 18-02-21 20:19
   
다른것은 볼거 없구요. 문헌과 유물이 일치하는 부분에 집중해야죠.
서진동진과 잦은 교역을 했다면 그에 걸맞는 유물이 많이 발견되는 곳이 어디인지 찾아야죠 ?
     
그만혀 18-02-21 20:35
   
적석총이 등장하는 이유는 결국 2가지죠
1. 고구려 세력의 남하
2. 고구려 세력의 묘제를 백제가 받아들여 화친을 도모함

1. 같은 경우는 직접적인 남하라기 보다 고구려 내에서 내분이 일어나서 대규모세력이 남하하였고 백제 지배계층이 되었다(사위라던가..)
 한성백제기에 고구려의 내분이라고 볼법한 것은
1) 모본왕의 폐위(53)
2) 차대왕의 난(145)
3) 차대왕의 죽음(165)
4) 발기의 난(197)
5) 봉상왕의 죽음(300)
 
5가지 뿐인데 1,5는 너무 빠르거나 늦고, 2의 경우는 차대왕이 전부 죽였으며 3과 같은 경우도 차대왕의 심복들이 일으킨 난이라 제외 4가 오히려 가능성이 있습니다. 사서에서는 발기가 요동을 지배하고 있었다고는 하지만 발기가 맏이니 평소에 발기를 지지하는 세력들이 상당했을 겁니다. 그런세력들이 발기의 패배이후 남하했을.. (개소리..죠..) 가능성을 저는 가장 높게 보고 있습니다. 시기상으로도 일치합니다.
 적석총이 존재하는 시기는 대략 3~4세기, 그것도 지배적인 묘제라기 보다 토광묘, 초기의 횡혈식 석실분과 공존하죠. 이렇기에 고구려 일부세력의 남하라고 생각한 겁니다.

2. 굳이.. 묘제를 받아들일 필요가...
          
감방친구 18-02-21 20:40
   
그런데 이들 세력이 요서 지역에서 군소 세력화해서 후일 백제와 연대했을, 그러니까 요서백제의 근거가 됐을 가능성은 없을까요? 어제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를 발췌 정리하다가 발기의 난 부분은 빼놓았는데 빼놓으면서 문득 이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다 님의 댓글을 보니 다시 연결되네요

아무튼 고구려 내분사를 정리할 힌트를 주신 거 같아 감사합니다
          
도배시러 18-02-21 20:45
   
백제가 고구려와 분리될때, 고구려인 百家와 함께 나온것을 부정하는게 정상인가요 ?
백제-고구려의 묘제가 언제 갈라졌을가요 ?

가끔보면 백제와 고구려는 한뿌리가 아니라는 식의 글이 종종 보이는데...
그렇게 가정하고 고고학을 하는게 정상인지 궁금합니다.
               
감방친구 18-02-21 20:49
   
예, 그것이 걸리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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