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티
스포츠
토론장


HOME > 커뮤니티 > 동아시아 게시판
 
작성일 : 18-02-20 21:13
[기타] 말갈 그들은 진정 누구인가
 글쓴이 : 관심병자
조회 : 1,287  


https://sites.google.com/site/coreahistory/editorials/editorial-1/0090
▣ 말갈은 고조선의 토착민
  
서천왕 11년(280)겨울 숙신(肅愼)이 침입하여 변방 백성을 죽였다 왕이 여러 신하들에게 말했다 내가 왕이 되었으나 나의 덕은 백성에 이르지 못하고 위엄은 먼 곳에 떨치지 못하여 인근의 적이 우리 강토를 침범하였다 지략과 용맹을 갖춘 장수를 얻어 적을 물리치려 하니 그대들은 마땅한 인재를 천거하라 여러 신하들이 말했다 왕의 아우 달가는 용맹과 지략이 있어 대장이 될만 합니다 왕은 달가를 보내 숙신을 치게 하였다 달가가 적을 기습하여 단로성(檀盧城)을 빼앗고 추장을 죽이고 주민 6백 여 호를 부여 남쪽 오천(烏川)으로 옮기고 육,칠 부락을 항복시켜 부용으로 삼았다 왕이 기뻐하여 달가를 안국군 으로 삼고 서울과 지방의 군사에 관한 일을 맡겼으며 양맥 숙신의 여러 부락을 통솔하게 하였다<삼국사기>

○< 말갈 >은 숙신씨<肅愼氏>이다-隨書
○<말갈>은 그 조상을 숙신(肅愼) 읍루(?婁) 물길(勿吉)로 하는 종족이다-北齊書

고 구려와의 전쟁으로 패망한 수나라는 고구려군중에서도 특히 용맹스런 말갈을 매우 두려워하였다 그들의 실체에 대해 연구가 깊었던 수서에서 말갈을 숙신씨(肅愼氏)라 기록하였으며 북제서 또한 말갈의 조상을 숙신이라 하였다 따라서 삼국사기에 기록된 서천왕 11년 <숙신의 난>이란 <말갈의 난>을 지칭하는 것이다 서천왕의 기록에서 주목되는 것은 숙신을 묘사한 단로성 이다 단로성의 단(檀)은 박달나무 단으로 환웅이 처음 하늘에서 내려올 때 있었다는 신령한 나무이며 일반적인 용도로 폭넓게 쓰여지는 단어가 아니다 로(盧)는 향을 피우는 화로를 뜻하므로 따라서 숙신 즉 말갈 에서는 단군에 제사를 모시는 성이 존재했음을 유추할 수 있다 또한 烏川은 까마귀 강으로서 고구려 벽화에서 볼 수 있는 삼족오는 고구려만의 독특한 문화가 아닌 양맥 숙신 부여의 제부족이 공통으로 까마귀를 중시 했던게 아닌가 한다

○숙신<肅愼>은 제나라와 비스듬히 경계하고 있고 <숙신(肅愼)은 朝鮮에 해당한다> (중국인 傅斯年)

부 사년은 숙신과 고조선을 동일하게 보고 있다 따라서 BC 1000년경 周의 역사를 기록하며 공자의 서경에 처음 나타나는 숙신이란 고조선의 또 다른 명칭이 아닐까 한다 또한 수서와 북제서에 비추어 말갈은 수천 년간 숙신 조선 물길 말갈 등으로 이리저리 다르게 호칭되었을 뿐 중국의 周가 탄생하기 이전부터 이 땅의 광활한 영역에서 수천 년을 넘게 뿌리 내려 살고 있었다 아울러 정치 집단화하지 않았을 뿐 말갈은 고대 삼국 그 어느 나라 보다 깊은 역사와 함께 광활한 영토에 두루 퍼져 활동하였다 고구려 사와 아울러 발해사마저 탐내는 중국이 내세우는 근거 중에 발해는 고구려의 후예가 아니고 말갈의 나라이기에 발해의 역사는 한국의 역사가 될 수 없다는 주장을 내세우고 있다 이 같은 발언의 기저에는 발해와 말갈사를 중국화하겠다는 의도가 내포된 것이다 왜 그들은 말갈을 노리는가 말갈은 한국 학자들만 무관심할 뿐 그들에게는 세계사를 뒤집어 놓을 엄청난 광풍의 역사가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BC 37년 주몽이 골본천에 이르렀다 그곳의 토지가 비옥하고 산하가 준험하여 비류수 가에 초막을 짓고 도읍으로 정하여 국호를 고구려라 하였다 이에 사방에서 소문을 듣고 이곳에 살고자 하는 자가 많았다 그곳이 <말갈 부락과 인접하여 있으므로 해악을 끼칠까 우려하여 물리치니 함부로 침범치 않고 겸손히 복종하였다

말갈은 고구려사의 맨 처음에  등장하며 그들이 멸망할 때까지 천년에 가까운 길고 긴 역사를 함께 하였다 그러나 이 나라의 역사는 무슨 근거인지 철저하게 말갈을 분리한다 말갈은 중국의 사서에서 숙신(肅愼) 읍루 물길(勿吉)로도 나타난다 사가들에 의해 말갈은 또 다시 백돌 불녈 호실 흑수 안차골 등 여럿으로 재 분해된다 고구려가 망하고 발해로 넘어가자 말갈은 다시 여진으로 족명의 변신을 꾀하며 이들 역시 여러 개로 분리된다

수 천 년 한민족의 평화는 진(秦)한(漢)에 의해 깨어지고 흩어졌다 그 흩어졌던 민족은 다시 고구려의 울타리에 모두 하나가 되었다 고구려가 천년의 번영으로 문명을 향해 나갈 때 광활한 영역에서 한민족의 언어와 풍속을 지키며 자유로이 살아가는 종족이 바로 우리가 말하는 말갈이다 그들은 북만주와 경주 인근에 이르기 까지 광대한 지역을 아우르며 선조의 말과 풍속을 하나도 놓지 않은 한민족의 보수적 원형이다 기원을 전후하여 200여년간에 걸쳐 백제와 신라는 무수한 말갈의 침략에 시달렸다 백제 온조 때는 무려 십여회 신라 또한 셀 수도 없는 숱한 말갈의 공격을 받았다 그러나 4세기 전후 고구려가 남진하며 말갈의 공격은 홀연 듯 멈춘다

○지마 이사금은 말갈의 공격으로 신라가 위기에 처하자 백제에 구원을 요청했다 백제가 장수 5인을 보내 신라를 구원하려 하자 <이러한 첩보를 입수한 말갈은>숫적 열세를 우려하여 군사를 돌렸다
○ 백제인 들은 소나를 가리켜 신라의 비장이라 하였고 소나가 지키고 있는 성에는 가까이 가지 말라 명하였다 백제 멸망 후 소나를 아달성으로 보내 북쪽 변방을 방어하게 하였다 봄에 아달성 태수가 백성들로 하여금 아무 날 모두 나가 삼을 심게 하고는 이 명령을 어기지 못하도록 명하였다 <말갈의 첩자가 이를 염탐하고 돌아가 추장에게 보고 하였다>

위의 두 기사로 비추어 말갈은 <신라와 백제의 언어에 모두 능통>하였음을 인식할 수 있다 일제의 침략으로 조국을 등지고 만주에 발을 디딘 사람들을 조선족이라 한다 그들이 만주에 온지 백여 년만에 중국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하물며 고구려와 700년의 세월을 함께 한 말갈이 언어와 풍속에서 삼국의 언어와 전혀 다를 것이라 유추하는 우리의 관념은 한심함의 경계를 넘고 있다 우리가 즐겨 마시는 막걸리가 누구의 음식인가 <쌀로 술을 빗어 마시니 말갈의 풍속과 같다> 글단(契丹)의 풍속을 설명하며 나오는 수서의 한 대목이다 막걸리를 즐기는 말갈과 글단(契丹)  역사란 참으로 미묘하다
  
◈말갈과 마한

신 라 경주와 백제 위례성에 빈번하게 출몰하던 말갈의 위치란 충청 경기 강원  일부가 포함된 한강 북쪽지역이 말갈의 주 활동영역이다 또한 수서에서 말갈은 고구려 북쪽에 있다 흑수부는 특히 강하다 하여 오히려 고구려보다 더욱 광대한 지역에서 폭넓게 분포하고 있음이 확인된다 신라 백제에 무수히 나타나던 말갈은 전쟁의 나라 고구려와 인접하여 서로 사나운 존재들이면서 왜 그들은 단 한번도 서로를 침략하지 않는가 살펴져야 한다

<마한:한반도 중부 이남 지역에 분포한 삼한 중의하나> 이것이 현 사학에 의해 정리된 마한의 강역이다  

삼 국유사에서 마한에는 마읍성(馬邑城)이 있어 마한이라 하였다 그러면 마한의 마읍성은 도대체 어디 있는 성인가 -보장왕 20년 가을에 소정방이 우리 군사를 패강에서 깨뜨려 마읍산(馬邑山)을 빼앗고 마침내 평양성을 포위하였다- 학계의 견해로는 중부 이남에나 있어야 할 마읍산이 언제 고구려 평양으로 이사 갔단 말인가 나라의 도읍이 그 나라 국토의 중간 어디쯤에 위치한다는 일반적 경향으로 보면 한반도 전역이 마한의 경계였다는 말이 된다 삼국지동이전 한(韓)조에서 마한의 <강역은 사천리> 라 하였다 즉 삼국지에서 마한의 강역이란 한반도 중부 이남이 아니라 <고구려의 영역>과 흡사하다

그뿐 아니라 <마한과 고구려의 수도는 동일한 위도에 함께 위치하며 말갈과 마한의 영역은 마치 붕어빵 처럼 겹쳐지고 있다> 이게 도대체 무슨 해괴한 일인가 마한과 말갈 그리고 고구려의 강역이란 낮엔 고구려 밤엔 마한 새벽엔 말갈이 3교대 로 살았다는 말인가 만약 말갈과 말한(馬韓)이 별개의 세력이라면 경주와 백제에 출몰하는 말갈은 이들을 속국으로 거느리고 있는 종주국 마한과의 충돌은 필연적이다 그러나 사서 그 어디에도 말갈과 마한이 충돌하였다거나 마한이 고구려와 전쟁을 벌였다는 기록이란 찾기 어렵다 이것이 뜻하는 바는 무엇인가

영역이 중복되면서 서로 사나운 세력들이 수백 년간 충돌하지 않았다는 것은 결국 동일한 세력이란 것 이외에 어찌 설명될 수 있단 말인가 말갈이 마한의 경계를 침범하여 수시 때때로 한반도 남단을 제집처럼 드나들던 당시 압록강 인근의 말갈이 아파치 헬기를 빌려서 말과 함께 신라 경주에 공중투하되어 전투를 치른다고 설명되는 것이 삼국사기에 나타나는 말갈인 것이다 따라서 본인은 <말갈과 말칸(馬韓)은 동일한 세력>이라 판단한다 수서에서 말갈은 숙신이라 하였고  중국학자 부사년이 숙신은 고조선이라 하였다 그러면 BC 2세기 기자 준이 위만에 밀려 좌우궁인과 함께 바다를 건너 마한을 세울 때 마한의 백성이란 좌우궁인을 제외한 나머지는 그곳의 토착민 <肅愼:고조선>으로 구성되었다는  것은 너무나 자명한 결론이고 숙신은 곧 말갈이기에 <결국 마한과 말갈은 동일한 종족집단인 것이다>

신 라나 백제 고구려가 나타나기 전부터 이 땅에는 수천 년째 뿌리 내려 살고 있던 말갈(肅愼:고조선)이 있었을 뿐이다 말갈 이란 고조선의 토착민을 말함이며 삼천리 방방곡곡에 산재한 무수한 고인돌과 경주와 백제에 나타나는 그 숱한 말갈의 기록은 바로 이땅의 온전한 주인이 말갈(肅愼:조선)이었음을 증언하는 것이다

로마는 라틴인과 사비누스 인에 의해 건설되었다 천년후 로마가 망하자 중국의 사관들은 로마로 달려가 이들을 인도인과 사비누스 인으로 나눠 두 줄로 세웠다 이것이 가능한 일인가

○ 숙신씨(肅愼氏:말갈)는 부여에서 가히 육십일을 간다 동쪽으로 큰 바다에 임하고 서쪽은 구만한국에 접하고 북쪽은 약수(弱水)이다 박달나무로 만든 활(檀弓)이 있다 동북 쪽 산에 돌이 나오고 날카로움은 쇠를 뚫는다 반드시 신에게 기도한 후 장수가 이를 취한다 주 무왕 때 화살과 돌 화살촉을 받쳤다 이에 답하여 사신을 파견하여 하례하였으나 이 후로 천 년이 흘렀다  비록 진(秦)한(漢)이 번창했으나 그들이 되돌아올 기미는 막막하다(晉書)
  
BC 1000년경 역사상 최초의 쿠데타로 천하를 얻은 周무왕의 입지는 매우 불안하였다 그는 천하를 얻었으나 나라를 어찌 경영해야 할지를 몰라 고심했다 조선인 기자에게 찾아가 국가 운영의 묘책(洪範九疇)을  얻기도 하고 자신의 권위를 세우기 위해 고조선의 핵심집단인 말갈의 입조를 끈질기게 부탁하였다 이에  말갈(肅愼)은 마지 못해 화살촉 하나를 개국 선물로 건네주었다 이에 감격한 周무왕은 사신을 파견하여 몇 달이 걸리는 먼길을 찾아 진귀한 선물을 싸들고 말갈(肅愼氏)에 답례하였지만 그 이후로 더 이상 周에서 말갈의 모습을 찾을수 없었고  秦,漢이 차례로 중원을 흔들었지만 천년이 지나도록 내왕이 없다는 말갈에 대한 추억이 晉書에 남겨있다 즉 말갈은 이처럼 강한 지조와 종족의 절개를 지켜내며 경주 인근과 북으로는 대동강 압록강을 넘어 북쪽 아득한 약수에 이르기까지 광대한 영역에서 핏덩이 같은 신라,백제의 탄생을 지켜보며 고구려와는 몸을 섞어 이민족에 대항한 이 땅의 온전한 주인이라는 사실이다
  

말 갈(勿吉)은 고구려의 북쪽에 있고 그 나라의 서북은 글단(契丹)과 접해있다 동이 중 최강이다 나라에는 큰 물이 있으니 넓이가 삼리나 된다 명하여 속말수(速末水)라 한다 나라의 남쪽에는 장백산(종태산)이 있는데 풍속에 몹시도 이를 공경하고 두려워(敬畏) 하여 사람들이 산 위에서 오줌이나 오물을 눌 수가 없어 산을 가는 자는 담을 물건을 가지고 간다 거기에는 곰과 범이 있으나 모두 사람을 해치지 않고 사람 역시 감히 죽이지 못한다(북사)

https://sites.google.com/site/coreahistory/editorials/editorial-1/0090
<iframe name="aswift_0" width="120" height="240" id="aswift_0" frameborder="0" marginwidth="0" marginheight="0" scrolling="no" vspace="0" hspace="0" allowfullscreen="true" style="left: 0px; top: 0px; width: 120px; height: 240px; position: absolute" allowtransparency="true"></iframe>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가생이닷컴 운영원칙
알림:공격적인 댓글이나 욕설, 인종차별적인 글, 무분별한 특정국가 비난글등 절대 삼가 바랍니다.
도배시러 18-02-20 21:22
   
이 문제도 마한 강역 4천리를 개~무시하면 안풀리죠.
韓在帶方之南,東西以海爲限,南與倭接,方可四千里

마한 강역4천리를 개무시 할수밖에 없는 이유는 대동강 평양설 때문이고요.
하응하치 18-02-20 23:07
   
부사년이면 설마 푸쓰녠?;;
도배시러 18-02-20 23:43
   
강원도 말갈설은 그냥 설~입니다. 비교할만한 유물도 없어요.
지금 나온 유물로 퉁친다면 [고조선 = 말갈] 이죠.
 
 
Total 19,972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공지 [공지] 게시물 제목에 성적,욕설등 기재하지 마세요. (11) 가생이 08-20 85389
3232 [한국사] 한국역사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역사1 (3) history2 04-15 1354
3231 [한국사] 중국 래이來夷 족은 어느나라 쪽 사람인가요??? (9) 갓등 03-06 1354
3230 [한국사] 자삭 (8) 아름드리99 02-23 1353
3229 [한국사] 원효 '판비량론' 잃어버린 조각 일본서 또 나… (2) 설설설설설 06-26 1353
3228 [기타] 고구려 기병의 무기와 기병전술 관심병자 07-16 1353
3227 [한국사] 단군의 후손으로 역사를 다시 써야하지 않을까요 (17) 솔루나 08-11 1353
3226 [한국사] 중국인들의 기자의 위키 백과 서술의 문제점 (7) 고이왕 09-25 1353
3225 [한국사] 부흥카페 현재 상황 긴급 보도!! (19) 징기스 11-05 1353
3224 [한국사] 잘몰랐던 사실 / 선조 임진왜란 대비를 철저히 했다 (3) 러키가이 04-12 1353
3223 [한국사] 동양대 김운회교수님 말씀 요약 스리랑 06-05 1352
3222 [기타] 정말 어이없고 심각한게 (8) 인류제국 11-09 1352
3221 [중국] 중국기록에 영가의 난 대한 궁금증이 있습니다 (5) 뉴딩턴 10-18 1352
3220 [한국사] 다시 모습을드러내는 국내최대의 고인돌.jpg 소유자™ 05-24 1352
3219 [한국사] 고대 새를 신성시 했던 한반도인들 (유물 포함) (2) 예왕지인 06-29 1352
3218 [세계사] 일본도vs 조선 환도에 대해서 알아보자 (4) yj12 08-02 1352
3217 [기타] 일본의 민주주의는 원폭과 함께 떨어진 것이죠. 할움 03-28 1351
3216 [기타] 2016년 제1회 동북아역사재단 상고사 토론회 두부국 04-23 1351
3215 [중국] 역대 중국 왕조들에 대한 이해 - 소중국 왕조, 대중국… (2) 사랑하며 11-03 1351
3214 [한국사] [FACT] 역사유튜버 글림킴, 규원사화 원문 번역문 아비바스 11-29 1351
3213 [다문화] 다문화쟁이들은 하나같이 다 똑같다 ㅋㅋㅋ (2) 한비 02-07 1350
3212 [기타] 이등박문이 지한파면 안중근은 매국노요? (1) 유르냐라자 07-23 1349
3211 [기타] 동북아시아의리더 제 2편 (1) 정의사회 10-23 1349
3210 [한국사] 금관가야 추정 왕궁지서 대형 건물지군·의례용 유물… (4) 레스토랑스 11-21 1349
3209 [한국사] 인천에 남은 일제 육군 조병창 ㅡ 역사 박물관으로 (2) mymiky 12-09 1349
3208 [한국사] 고수전쟁, 수나라의 요서와 회원진 (3) 도배시러 03-08 1348
3207 [기타] 1910년 오늘이 경술국치가 시작된 날이었다더군요 (1) 인간성황 08-29 1348
3206 [한국사] 마크 바잉턴 보스톤 대학에서 한국 유사역사학에 대… (3) 고이왕 03-18 1348
 <  621  622  623  624  625  626  627  628  629  6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