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 극우세력과 돈(2017년 8월 10일)
사사카와 재단과 돈
사사카와 료이치(笹川良一:1899~1995)라는 1945년 일제 패망 후 A급 전범으로 체포되었다가 미국의 동아시아 정책 변경으로 석방되어 도박사업으로 큰 돈을 벌었다.
그가 만든 재단이 사사카와 재단(현재명 일본재단:Nippon Foundation)이다. 그는 극우파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인 새역모교과서모임의 회장이기도 하다.
10여년 전 이 사사카와 재단의 자금 100억원이 국내 모 사립대학에 ‘아시아 연구기금’이란 명목으로 지원되어 물의를 일으킨 적이 있었다. 50억원은 또 다른 사립대에 들어갔는데, 당시 사사카와 재단이 뿌린 자금 규모는 300억 정도로 알려졌다.
『한겨레 21』의 정위치는 바로 이런 자금을 받고 아직도 조선총독부 역사관이나 일본 극우파의 역사관을 전파하는 학자들을 추적해 보도하는 것이지 “이것이 진짜 고대사다” 따위의 가치전도적인 제목으로 조선총독부 역사관을 전파하는 역사테러를 자행하는 것이 아니다.
지금 생각하니 그 시절 100억과 50억을 받은 두 사립대 출신들 사이에서 갑자기 일본 유학 열풍이 인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는 자각이 뒤늦게 든다. 물론 그때는 사사카와 자금이 유입되었다는 사실도 전혀 몰랐지만 지금 한국 사회의 현실을 생각하니 이 돈의 효과는 대단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 자금이 국내 우익학자들에게만 흘러들어갔을 것으로 생각한다면 아직도 한국 사회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이다. 한국 사회는 ‘반일하는 척’하거나 죽은 친일파를 비판하면 영웅이 되지만 일본 극우파와 조선총독부 역사관을 진짜로 비판하거나 산 친일파를 비판하면 우익은 물론 짝퉁 좌익까지 총궐기해서 “저놈 죽여라”고 합작하는 사회다. 이 구조를 모르면 계속 속는다.
[추적]‘사회공헌’ 탈 쓴 일본재단과 연세대의 수상한 커넥션
원문보기:
http://m.weekly.khan.co.kr/view.html?med_id=weekly&artid=201509011718071&code=115#csidxf7810d5c7fb608e95837c4fb7505175
대한민국은 정부기관인 동북아역사재단과 한일역사 공동연구위원회의 경우에서 보듯이 대한민국 국고로 중국의 동북공정과 일본 극우파 역사관을 전파한다. 정신은 아직도 일제강점기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뿐인가? ‘하버드 프로젝트’니 『동북아역사지도』 따위 등등 이런 사례는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많다. 그러나 일본이라면 민간이든 정부든 이런 일은 절대 벌어질 수 없다.
일본은 한때나마 제국을 운영해봤기 때문에 제국의 관점으로 사물을 본다. 우리는 아직도 식민지의 관점으로 사물을 본다. 대표적인 사람들이 학자들이고 언론들이다.
고 최재석 고려대 명예 교수께서는 이주한 한가람 역사문화연구소 연구위원에게 “일본 가서 공부하는 것은 좋은데, 절대 역사학 학위 받을 생각을 하면 안 됩니다”라고 신신당부하셨다. 정부돈이든 민간돈이든 일본 돈은 공짜가 없다는 설명이 뒤따랐다. 김현구 씨는 EBS 교육방송에서 자신이 일본 문부성 장학금으로 유학한 경험을 자랑스레 이야기했는데, 서희정이란 분이 그 녹취록을 올려주어 읽어보았다. 다음은 그 일부다.
호사카 교수 “사사카와재단 외 문예춘추사도 자금 유입…위안부 역사 왜곡 연구”
[출처: 고발뉴스닷컴] http://www.goba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2590
“일본이 지금까지 65,000명의 국비 유학생을 유치했습니다. 무슨 말인고 하니 일본정부에서 매년 아시아 각 나라 중심으로 해서 정부에서 돈을 줘서 유학생을 선발합니다. 저도 그런 유학생으로 갔다 온 사람입니다만 이건 세계에서 가장 좋은 장학금이에요. 한 달에 약 우리 돈 200만원씩 주고 등록금 전액 면제입니다. 이것을 연구생 2년, 석사 2년, 박사 3년까지 줍니다. 여러분들 분발해서 일본 문무성 유학생이 되면 가서, 그 돈이면, 저는 그 돈 가지고 결혼을 해서 애들 둘하고 네 식구가 생활하면서 박사과정까지 마칠 수 있었어요. 어떻든 이처럼 이렇게 한 사람들이 65,000명이라고 한 번 상상을 해보세요.”
김현구 씨는 한국 젊은이들에게 열심히 공부해서 일본 가라면서 일본이 “이처럼 인적 물적으로 아시아에 유학생들을 깔아놓은 겁니다”라고도 덧붙였다.
김현구 씨의 와세다대 유학시절 지도교수였던 미즈노는 1세기부터 고대 한국은 일본의 식민지였다고 주장하는 극우파 학자이다. 김현구 씨는 자신의 책에서 미즈노에 대한 자신의 심정을 이렇게 토로한 적이 있다.
「귀국을 앞둔 어느 날 가족들을 데리고 인사차 지도교수 댁을 방문한 적이 있다. 오랜 지도를 받았을 뿐만 아니라 내 학문을 만들어주시고 많은 감화를 주신 분이기 때문에 내게는 부모와 다를 바 없는 분이셨다. 그분도 근 10년 가까이 지도했던 제자의 귀국에 감회가 새로웠던지 밤늦도록 여러 말씀을 해 주셨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일본의 인구는 1억 2천만 명쯤 되는데 일본은 땅덩어리가 작아서 잘해야 7천만 명분밖에는 생산할 수 없기 때문에 결국 5천만 명 분은 밖에서 벌어 와야 한다. 그런데 모든 것이 순조로운 지금은 구미에서 벌어오지만 어느 땐가 그것이 여의치 않게 되면 결국 아시아 쪽으로 눈을 돌릴 것이고 그 경우에 제일의 타깃은 한국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어떻게 하다가 김군과 내가 사제지간이 되었는데 다 같이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양국간에 불행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하는 말씀이다.
일본 사람들은 좀처럼 자기 속에 있는 말을 하지 않는다. 역사발전에서 인간의 의지를 도외시한 면은 있지만 이 말씀은 평생을 역사연구에 바쳐오신 분으로써 일본 역사를 자연환경과의 관계에서 거시적으로 보신 혜안이고 그분이 나에게 주신 ‘혼네’의 선물이었다(김현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