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북한 평양 지역의 고구려 고분군은 이 지역이 고구려의 수도로서의 평양이라는 학계 통설의 주요 근거가 되고 있다
그러나 앞에서 삼국사기와 신당서 등의 기록을 고찰한 바에 따르면
1) 압록강은 혼하
2) 수도로서의 평양은 태자하를 전후한 요동
에 있었다고 볼 수밖에 없어서
학계의 통설에 맞선다
고구려 고분의 분포로서만 보자면
집안ㅡ환인ㅡ평양 (현) 에 이르는 고분 분포와 그 집중지는
고구려 수도의 변천에 대한 학계 통설에 자연스럽게 부합하는 모양새이다
이를 어찌 설명할 것인가
평양과 서북한 지역은 이미 2~3세기부터 고구려계 무덤이 나타나고
특히 왕릉급, 혹은 그에 준하는 수준의 고분은 4~5 세기 이후의 것이 주로 분포한다
이는 고국원왕 시절 모용선비의 미천왕 무덤 도굴과 연관이 있지 않을까 하는 추정을 해 본다
즉 이 시기 이후 무덤을 고구려로서는 후방지역인 서북한 평양에 쓴 것으로 말이다
학계에서는 이미 요서를 거쳐 만리장성까지 물러간 위ㆍ진의 지배력을 요동지역에서 과장하는 경향, 또 모용선비를 힘을 역시 과장하는 경향을 띠어 왔다
하여 요동 지역의 동시대 고분, 고구려의 것과 상사한 무덤들을 모용선비의 무덤으로 보는 견해를 통설화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