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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2-15 10:30
[한국사] 1) 식빠들이 가장 소스라치는 환단고기 책이 위서가 아니라는 증거(여러 사실들이 많아서 나누어 올리겠습니다.)
 글쓴이 : 스리랑
조회 : 1,131  







고조선 팔조금법 3조가 아닌 8조 전체를 보여주는 환단고기


범금팔조(犯禁八條)라고도 하며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 기록되어 있다. 그 기록으로 8조문이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8조 중 3조의 내용만이 한서 지리지 연조(燕條)에 전하며 그 내용은 중고등학교 교과서에서 배운바와 같다.

 

① 살인자는 즉시 사형 에 처한다(相殺, 以當時償殺).

② 남의 신체를 상해한 자는 곡물로써 보상한다(相傷, 以穀償).

③ 남의 물건을 도둑질한 자는 소유주의 집에 잡혀들어가 노예가 됨이 원칙이나, 자속(自贖:배상)하려는 자는 50 만 전을 내놓아야 한다(相盜, 男沒入爲其家奴, 女子爲婢, 欲自贖者人五十萬).



그런데 팔조문이 유일하게 전부 적혀있는 책은 환단고기란 책이다. 22세 색불루 단군은 정국을 안정시키고자 8조금법을 제정하였다. 8조금법은 여덟가지 죄와 각 죄에 대한 처벌을 정한 삼성조 시대의 최초의 성문법이다. 법규의 제정은 강력한 통치 체계를 갖춘 고대국가로서이 면모를 보여주기도 하지만 사회분위기와 경제질서가 그만큼 어수선해졌음을 나타낸다.

 



환단고기 삼한관경본기 번한세가에있는 8조문은 아래와 같다.


1, 사람을 죽이면 그 즉시 죽음으로 갚는다(相殺以當時償殺) :

2, 사람을 상해하면 곡식으로 갚는다(相傷以穀償)

3, 도둑질하는 자는 남자는 재산을 몰수하여 그 집의 종이되고 여자는 계집종을 삼는다(相盜者男沒爲其家奴女爲婢)

4, 소도(성역)를 훼손하는 자는 둔다(毁蘇塗者禁錮)

5, 예의를 잃은 자는 군에 복무시킨다(失禮義者服軍)

6, 게으른자는 부역에 동원시킨다(不勤勞者徵公作)

7, 음란한 자는 태형으로 다스린다(邪淫者笞刑)

8, 남을 속인자는 잘 타일러 방면한다(行詐欺者訓放) 자신의 잘못을 속죄한 자는 비록 죄를 면해 공민이 될 수 있지만 이것을 수치스럽게 여겨 시집가고 장가들 수 없었다(欲自贖者雖免爲公民俗猶羞之嫁娶無所수)



이리하여 백성이 마침내 도둑질하지 않았고 문을 닫고 사는 일이 없으며 부인은 정숙하여 음란하지 않았다. 전야와 도읍을 개간하고 음식을 그릇에 담아 먹었으며 어질고 겸양하는 교화가 이루어졌다. (삼한관경본기 번한세가 상)



지금의 국사 교과서에 나오는 고조선의 8조금법은 바로 이것을 말한다. 환단고기에는 한서 지리지에 빠져 있는 나머지 5개 항목까지 모두 상세히 열거 되어있다. 이 8개 조항은 고대 사회의 법률 제도뿐만 아니라 당시 사회상까지도 알아볼 수 있게 하는 주목할 만한 대목이다. 이것만으로도 단군조선이 이미 고대국가로서 체계와 면모를 완전히 갖춘 문명 국가라는 사실을 여실히 증명하고도 남음이 있다. 




법과 객관적 공권력은 고대국가형성의 기준이다 (Elman R. Service)


Elman R. Service는 1962년에 고대국가형성의 기준으로 법(法)과 객관적 공권력(公權力)을 주장하였다. 즉 법이 있고, 공권력이 있으면 국가가 형성되었다고 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학설은 고대 국가 형성 조건의 정설로 전세계에서 받아들이고 있다. 그래서 중국도 전설 속의 나라로 여겼던 BC 2200년 경의 하(夏)나라, 상(商)나라를 고대국가로 인정하여 중국의 역사를 끌어 올렸다.




Elman R. Service는 국가 형성단계를 네 단계로 설명하고 있다.

떠돌이 유목 사회인 Band 사회 단계, 유목과 정착이 병존하는 촌락 사회인 Tribe 사회 단계, 정착 후 Tribe간에 연합이 이루어져 지도자가 생기는 Chiefdom 사회 단계, Chiefdom 사회가 더욱 확대되어 체제유지를 위한 법과 공권력이 필요한 국가사회인 State 사회 단계이다. 즉 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법과 공권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법이란 오늘날의 실정법과 같은 구체적 법체계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환국시대에 있었던 오훈(五訓)이나 신시 시대에 있었던 오사(五事)나 단군조선 시대에 있었던 오교(五敎)는 모두 체제 유지를 위한 고대사회의 법이었다. 그래서 위 글에도 당시 법을 어긴자는 사형을 시켰고, 연좌제를 적용하여 대대로 그 죄값을 치르도록 한 것이다. 이 법을 6세 단군인 달문이 폐지하라고 한 것이며, 화합을 위해서 감옥에 갇힌 죄수들도 풀어 주라고 한 것이다.



환국의 오훈(五訓)이나 신시의 오사(五事)나 단군조선의 오교(五敎)가 객관적 공권력을 가졌다고 볼 수 없어서 단군조선(고조선)을 고대국가로 인정할 수 없다면, 22대 색불루 단군(BC 1200년 경)때에 확실한 법이 만들어 졌으므로 이 시기 부터라도 고조선을 고대국가로 인정하여 고조선의 역사를 다시 써야 한다. 색불루 단군 때 만들어 진 법이 바로 고조선의 8조금법이다.


환국은 물론이고, 신시 배달국과 단군조선(고조선)에는 체제유지와 법 질서를 위한 확실한 법이 있었다. 고조선은 확실한 고대국가였다.




이두법의 창시자는 설총이 아니라 단군시대 왕문(王文)이다.

  

이두는 한자의 음과 새김을 빌어서 우리말식으로 적어 쓰던 문자이다. 일반적으로 이두법은 신라말의 정치가요 대학자인 설총이 처음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568(진흥왕 29)에 세운 진흥왕 순수비문에도 이두가 나오는데 이것은 설총 이전에 이미 이두문이 쓰였다는 증거이다. 또 향찰표기 작품인 <서동요>, <혜성가>가 진평왕 때, <풍요>가 선덕여왕 때 이미 있었다. 그러므로 설총은 이때 이두를 창제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정리․집대성한 것으로 추정한다. 그러면 이두를 창제한 사람은 누구인가? 이에 대해서 환단고기에서는 창제자가 소개되고 있다. 



누사(婁沙, 43세 왕)가 세상을 떠나자 을미(단기 1468, BCE 866)년에 아들 이벌(伊伐,44세 왕)이 즉위하였다. 병..신(단기 1469 BCE 865)년에 한수(漢水) 사람 왕문(王文)이 이두법을 만들어 올리니 천왕(31세 등올단군)께서 기뻐하시고 삼한에 명하여 시행하게 하셨다. 설총보다 약 1600년 앞선 (BCE 865) 단군조선 때에 만들어 보급되었다. 설총은 왕문이 창안한 이두를 더욱 발전 체계화 한 것이다. 








고죽국은 은의 제후국이 아니라 단군조선의 제후국이다. 


"고죽국은 조선(고조선,단군조선)에서 갈려나간 분계(分系)이다."-《조선상고사》.신채호

고죽국의 건국시기는 《사기·백이열전》의 주(注)에서 인용한 <색은(索隐)>에 “孤竹君是殷汤三月丙寅日所封”이라는 기록은 '고죽후국(孤竹侯国)'을 말한다. 은허 갑골 복사문(卜辞文) 중에도 '죽후(竹侯)'라는 글자가 나온다. 이때가 대략 商나라 탕(湯)왕 18년이므로, 고죽국의 건국시기를 商왕조와 같은 시기인 B.C.1600년으로 보는 것이다.




은나라와 주나라의 교체기 고조선의 제후국인 고죽국


고등의 손자 색불루의 혁명

재위 52년 을미(단기 1048, BCE 1286)년에 우현왕 고등이 훙서(薨逝)하고, 손자 색불루(索弗婁)가 우현왕을 계승하였다. 임금께서 나라를 순수하시다가 남쪽 해성(海城)에 이르러 부로(父老)들을 크게 모아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이때 오가(五加)를 모아 놓고 옥좌를 양위할 일을 함께 의논할 때.. 서우여(徐于餘)에게 정사를 맡기겠노라" 하셨다. 이에 살수(薩水) 주위의 땅 백 리를 분봉하여 섭주(攝主)로 삼고 기수(奇首)라 하셨다.


우현왕 소식을 듣고 임금께 사람을 보내어 멈추시기를 청하엿으나, 임금께서 끝내 듣지 않으시므로 우현왕이 좌우의 사람들과 사냥꾼 수천 명을 이끌고 부여 신궁(夫餘新宮)에서 단군으로 즉위하였다. 이에 임금께서 부득이 옥책(玉冊)과 국보(國寶)를 우현왕에게 전하고, 서우여를 폐하여 서인으로 만드셨다. 임금께서 아사달에 은거하여 그곳에서 최후를 마치셨다. 

이때 백이(伯夷)와 숙제(叔齊)는 고죽국(孤竹國)의 왕자로서 왕위를 사양하고 달아나 동해쪽 물가에 살면서 스스로 밭을 일구어 먹고 살았다. <단군세기(檀君世紀)>




고죽국의 왕자 백이, 숙제가 나라 사람들이 왕으로 추대하려 하였으나, 서로 왕위를 양보하려 백이가 먼저 도망치고 뒤를 이어 숙제가 도망갔다. 훗날 제후국인 주의 무왕이 상국인 은나라를 무너트린 것을 항의하기 위하여 수양산으로 들어가 고사리를 캐어 먹다 굶어 죽었다고 전한다. 훗날 사람들은 이들의 절의와 우애를 기려 형제성인, 청절지사로 일컫고 있다. 하지만 이는 역사적 사실과 전혀 다르다.


고죽국의 왕자 백이, 숙제가 왕위를 사양한 것은 바로 우현왕 색불루 때문이다. 제후인 우현왕 색불루가 항명하여 스스로 제위에 올랐음으로 조선의 21대 소태 단군이 어쩔 수 없이 보위를 물려주고 물러났으니, 바로 이를 항의하기 위한 것이다. 이 시기 고죽국은 조선의 제후국이었음으로 그런 점에 있어 백이, 숙제는 단군조선의 형제성인이요, 청절지사인 것이다. 







은나라 갑골문 기록이 환단고기의 고조선 기록과 일치한다


 

고조선 제후국을 침공하다가 대패한 은나라 왕 무정(武丁,22世)의 귀방 공격 기록

 

은나라의 갑골문에서도 환단고기 단군세기의 기록이 사실임을 입증하는 유물,유적이 발견되었다. 즉 BCE 1291년 단군조선 제21대 소태단군 재위 때 은나라 왕 무정武丁이 ‘귀방(鬼方)’을 쳤다는 기록이 환단고기의 단군세기에 남아 있는데, 과연 은나라의 갑골문에서는 은나라의 귀방 정복 사실에 대한 기록이 나타나서 세상을 놀라게 한 것이다. 환단고기는 이토록 확실한 역사적 근거와 고고학적 근거를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21세 단군 소태) 재위 47년 경인(단기 1043, BCE1291)년에 은나라 왕 무정武丁이 전쟁을 일으켜 이미 귀방鬼方을 물리치고 나서 다시 대군을 이끌고 삭도,영지 등의 나라를 침공하다가 우리 군사에게 대패하여 화친을 청하고 조공을 바쳤다. [단군세기] 671



귀방 : 지금의 중국 산서성 북쪽 내몽골의 음산(陰山)산맥 일대에 살던 족속이다. 은나라 때는 빈(邠) 지역에 살던 주나라 조상인 고공단보(古公亶父)가 이들의 침략을 피해 기산(岐山) 남쪽 위수(渭水) 지역으로 옮기기도 했다.



단군세기의 21세 소태단군 47년 조의 기록이 초기 갑골문 기록에도 똑같이 나타나는 것은 [환단고기]의 사료적 가치와 신빙성을 입증하는 것이다. 




 


중국 하나라의 멸망과 은나라 건국에 관한 환단고기의 단군세기 기록이 입증되다.


 폭군 걸왕


“13세 흘달단군 갑오 16년(B.C1767) 이 해 겨울에 은(殷)나라가 하(夏)나라를 정벌하니 하나라 걸왕(桀王)이 구원을 청하였다. 이에 단제께서 읍차(邑借)인 말량(末良)으로 하여금 구환(九桓)의 군대를 이끌고 가서 싸움을 돕게 하니, 은나라 탕왕이 사신을 보내 사죄하였다. 이에 말량에게 어명을 내려 군사를 되돌리게 하였는데, 하나라 걸왕이 조약을 위반하고 병사를 보내 길을 막고 약속을 깨려 하였다.


이에 은나라 사람들과 함께 하나라 걸왕을 정벌하기로 하여 몰래 신지(臣智) 우량(于亮)을 파견하여 견(畎)의 군대를 이끌고 가서 낙랑(樂浪)의 군사와 합세하여 관중의 빈.기(邠.岐)의 땅을 점령하여 주둔시키고 관제(官制)를 설치하였다.”라는 기록이다.
위 기록에서 우리는 단군조선의 의중에 따라 하나라와 은나라의 판도가 바뀌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위 <환단고기 단군세기>의 기록은 중국의 고대 사서인 한나라 사람 유향이 쓴 <설원 권모(設苑權謀)> 편에 다음과 같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은나라 건국태조 탕왕(성탕)
 

“성탕이 걸왕을 치려 하자 이윤이 말하기를 “청컨대 걸왕에게 바치는 공물을 막고 그의 행동을 살펴보십시오.”라고 했다. 그러자 걸왕이 진노하여 구이(九夷=단군조선)의 군사를 일으켜 쳐들어오자 이윤이 말하기를 “아직 때가 아닙니다. 저들이 아직도 능히 구이九夷의 군사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은 잘못이 우리에게 있기 때문입니다.”고 하였다. 이에 성탕은 사죄하고 다시 공물을 바쳤다.


이듬해에 탕왕이 다시 공물을 끊어버리자 걸왕이 노하여 다시 구이의 군사를 요청했으나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자 이윤이 “됐습니다.”라고 말하자 탕왕은 마침내 군사를 일으켜 잔당을 토벌하니 걸왕은 남소씨의 땅으로 도망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어 위 <단군세기>의 기록이 역사적 사실이라는 것을 입증하고 있다. 

 
이와 같은 설원의 기록은 하은 교체기에 성탕이 포악무도한 걸왕을 내쫓고 은왕조를 세울 수 있었던 것은 두나라 간의 패권 싸움에서 성패의 관건을 쥐고 있던 구이(九夷) 곧 단군조선의 강한 영향력 때문이라는 사실을 명백히 입증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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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리랑 18-02-15 10:48
 
식민사학자들에 의해 왜곡되게 가르쳐지고 있는 우리역사를 올바르게 바로 잡을려는 단체가 이 지구촌에서 어느곳에 있는가?? 기독교에서 우리역사를 바로 잡을려는 활동을 하고 있는가? 아니면 천주교나 불교,유교에서 그런 일을 하고 있는가?

역사의 알맹이는 정신문화, 종교이다. 우리민족의 정신문화는 환국시대의 신교(新敎,以神說敎), 배달국의 제세핵랑(또는 삼랑), 단군조선의 국자랑, 북부여의 천왕랑, 고구려의 조의선인, 백제의 무절, 신라의 화랑, 고려의 선랑(또는 국선, 재가화상), 조선의 선비, 동학(東學)으로 이어졌다.

우리민족의 정신맥을 잇고 있는 단체라면 바로 그곳에서 우리역사를 밝히는 일을 하는 것은 당연하다 할 것이다.
지금도 우리역사가 식민사학자들에 의해 왜곡되게 가르쳐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우리로서는 그냥 가만히 손놓고 지켜보고만 있을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스리랑 18-02-15 11:01
 
환단고기 책을 부정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책을 제대로 읽어보지 않은 사람들이다. 그들은 밥속에 잔돌 몇알이 들어있다면 밥이 아니라 전부 돌이라고 말할 사람들이다.
          
스리랑 18-02-15 11:11
 
환단고기 책은 예로부터 민간에 비장되어 온, 안함로의『 삼성기 상』, 원동중의『 삼성기 하』, 행촌 이암의『 단군세기』, 범장의『 북부여기』, 일십당 이맥의『 태백일사』, 이 다섯 종의 책을 한 권으로 엮은 책이『환단고기桓檀古記』다.



신라 고승高僧 안함로(安含老,579~640)에서 조선조 이맥(李陌,1455~1528)에 이르기까지 거의 천 년 세월에 걸쳐 다섯 사람이 저술한 사서가 하나의 책으로 묶여진 것이다.

이 환단고기(桓檀古記)는 전혀 알려지지 않은 글들을 편집한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삼성기(三聖紀)라는 책은 세조실록에도 그 책 이름이 나온다. 민간에 이미 알려져 있었다는 얘기다.

신라, 백제 전후부터 내려오던 고귀한 우리의 역사 기록을 거반 망라해서 묶어 놓은 책이다. 신라 때부터 마지막 왕조 근세조선 때까지 당대의 최고 지성인 다섯 분이 천년에 걸쳐서 기록한 것이다. 

그런데 환단고기 책을 쓴 사람들을 죽이느니 살리느니 하는 소리를 하는 사람들을 보면 참!! 어이가 없다.
               
스리랑 18-02-15 11:17
 
환빠니 국뽕이니 하는 사람 중, 몇 일 전에 올렸던 다음 내용을 보기를 바란다.

인류사의 여러 경전들을 돌이켜 보라. 수백 수천 년의 세월 속에서 끊임없는 가필과 재편집을 통한 보정 작업 끝에 오늘날의 경전이 되지 않았는가. 주역(周易)은 태호 복희씨로부터 공자에 이르기까지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 완성되었고, 도덕경은 왕필이 덕경과 도경의 본래 순서를 뒤집어 재구성한 것이다.

 

동서양의 고전과 각 분야의 소중한 문화원전 가운데 순수하게 원본 그대로 전하는 것은 거의 없다.

다시 말해서 오늘날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동서양의 종교 경전이나 의학, 불멸의 고전은 반드시 숱한 보정작업을 거쳐서 거듭난 것이다. 이처럼 동서양의 모든 고전은 그 전승과정에서 적잖은 첨삭과 교정이 이루어졌지만 그 누구도 이것을 문제 삼지 않는다.




우리가 잘 아는 사마천의 『사기史記』는 처음에 책 이름이 『태사공서太史公書』였다. 여러 손을 거치면서 다른 사람의 글이 잘못 뒤섞여 들어가고, 몇몇 대목은 망실된 상태로, 수백 년이 지나 『사기』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 뿐만 아니라 판본의 연대조차 확실하지 않은 사본들이 전하지만 오늘날 『사기』를 위서라 말하는 사람은 없다.
                    
스리랑 18-02-15 11:19
 
삼국유사도 초간본은 없고 조선시대 판본만 전한다. 판본들 사이의 차이도 상당하다. 조선 중종(1512년) 때 간행된 정덕본을 기준으로 하여 기존 판본들을 대조하면 연표인 ‘왕력편’에만 5천5백여 글자 가운데 30여 곳이 다르다.


삼국사기도 1981년에 발견된 고려 때 판본을 기존 판본과 비교한 결과 오자誤字가 무려 3백여 개에 이른다. 이처럼 우리 고대사의 근간이 되는 두 사서도 판본 사이에 큰 차이가 있을 뿐 아니라 오자, 탈루, 중복 등 다양한 오류가 있다. 그러나 오늘의 학계에서는 아무도 시비를 걸지 않는다.


동서양의 종교 경전도 다르지 않다. 오늘의 모든 불교 경전을 석가모니가 직접 저술했다고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럼에도 불경은 동서양의 많은 언어로 수없이 번역되었고, 여전히 그 자체로 부처의 진리 말씀으로 받아들여진다.



공자의 가르침이 잘 나타나 있는, 유가의 경전 『논어』는 어떠한가? 처음에 이 문헌은 그 이름이 없었고 누가 지었는지 확실하지도 않았다. 그렇지만 그 누구도 『논어』를 위서라 말하지 않는다. 기독교의 신구약新舊約 성서는 어떠한가? 구약성서를 구성하는 책은 대부분 언제, 어떻게 기록되었는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환단고기를 위서라 주장하는 식민사학자들의 관점으로 만일 동서양 경전과 각 분야의 고전을 재단한다면, 이 숭고한 인류문화 유산은 끝없는 의혹과 시비만 던질 뿐, 진정한 고전이 될 수 없었을 것이다.
가난한서민 18-02-15 14:32
 
사실이라면 놀랍네요 연구해보면 좋곘네요

근데 이 와중에도 나는 우리기록은 부정하고 중국의 갑골문을 맹신하고 있는 이중적인 태도입니다.
도배시러 18-02-15 16:43
 
1. 환단고기가 오늘 설명절 기념으로 출간된 서적이라면...
예로부터 민간에 비장되어 온, 안함로의『 삼성기 상』, 원동중의『 삼성기 하』, 행촌 이암의『 단군세기』, 범장의『 북부여기』, 일십당 이맥의『 태백일사』, 이 다섯 종의 책을 언제 제시할것인가 하는 문제가 있구요.

2. 환단고기가 옛부터 있었다면...
주류사학이 쉴드칠때 사용하는 조선학자들의 고대사 연구자료 제시를 어케할것인가 ?
환단고기의 내용을 이미 보았던 조선시대의 학자들은 왜 그런 개소리를 많이 했는가 ?

3. 고대사 서술의 시대적 문제점이 있는데...
조선시대로 전환할때 중국, 조선 모두 고대사에 대해 이질적인 발언들이 쏟아진다는겁니다.
고대사 연구에 도움이 안되는 개소리가 쏟아지는 시점이란거죠.
어슬프게 연구하고 어슬프게 설을 쏟아내는 시대로 전환합니다.
환단고기가 이 시대 이후에 편집된것이라 크게 사료적 가치는 없으리라 봅니다.
Korisent 18-02-15 17:39
 
전체적으로 보면 분명 문제점이 있죠 하지만 다 판타지는 아니죠 일본서기도 전체적으로 보면 좀이상한 부분이 많아요 그러치만 전부가 판타지는 아니죠. 그런데도 일본서기는 역사자료로 합당하다고 하면서 한단고기는 아예 판타지로 취급합니다.
비좀와라 18-02-15 21:16
 
환단고기와 대척점에 있는 것이 부도지죠.

둘 다 위서 내서지는 환타지 물이라 비하 하지만 환단고기와는 달리 부도지는 이미  문화재위원회에서 진서로 확정 된 사서로 부도지는 딴지를 못 걸고 규장각에 처 받아 놓았다가 이를 들은 전 해군장성이 들어닥쳐서 영인본을 돌려서 부도지의 내용을 알 수 있게 된 반면에 환단고기는 저런 축복을 받지 못했기에 지금도 까 이고 있는 것이죠.

저 쪽 사람들 하는 행동을 보면 정말 말이 안되는 짓 거리 많이 합니다.

일단 환단고기는 읽어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유목민이 중심이 된 역사서 입니다. 거기에 나오는 12환국은 지금도 유목민족으로 남아 있고요. 반면에 부도지는 치우를 중심으로 서술된 역사서 입니다.

유목민족을 황제족이고 치우계열은 동이계열이죠. 황제를 카이저스라 발음하고 케사르라고 적는다고 합니다. 이 게 신라는 거서간과 같은 것으로 신라는 유목민인 황제 계열 이죠. 그리고 조선을 테사르라 발음 하는데 이는 케사르와 같은 말로 조선과 황제는 같은 말이라 하죠.

반면에 부도는 치우를 중심으로 기술되어 있는데 치우는 원래 바이칼 지역에서 있다가 흑수를 거쳐서 지금의 절강성의 장강지역에 이른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흑수를 지금의 아무르(흑룡강)이라 주장하나 거기서 절강성과는 너무 멀죠. 그래서 흑수를 전라도 여수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죠. 여수역시 흑수라는 말과 같음요. 여수에서 만국 박람회가 열린 것은 의미가 있는 일 입니다.

절강성에 도착한 치우는 장강을 따라서 사천성 까지 올라간다고 하는데 실제로 장강 일대에 치우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음요. 거기서 황제와 황제의 부인인 누를 만나게 되는 것이죠. 그리고 황제족과 치우족 간의 전쟁이 벌어지는데 많은 사람들이 주장하는 하남성과 하북성이 아니라 투루판 분지에 싸운 것이죠.

이 싸움의 원인은 다룬 것이 누와 치우 그리고 황제와의 치정문제 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누로 누는 인간에서 처음 직물 짜는 법을 알려진 여신으로 거미가 거미집을 짓는 모습을 보고 직물 짜는 법을 알게 됬다고 하며 당시 사천성에는 엄청난 자연 자생의 뽕 밭에 조성되어 있었고 결국은 비단을 만드는 법을 창안한 여신입니다.

이 것을 처용가나 견우와 직녀의 설화로 남아 있는 것이죠. 황제나 치우 둘다 악인 일 수도 있고 선인 일 수도 있으며 더 나아가 누 역시 마찮가지로 결국은 누구의 후손이라는 정체성을 가진 자의 의견이라는 것이죠.

추석은 신라의 한가위 풍습에서 나온 것인데 이 명절에 길쌈대회를 열고 상을 주었다는 대목에서 신라는 누의 후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누는 여신으로 마고와 같은 존재죠. 단군역시 남성이라고 하나 단군왕검은 단군왕곰과 같은 말로 큰곰이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큰곰은 별자리에서 나오듯이 여성이죠.
     
도배시러 18-02-15 21:43
 
부도지
신라 때 영해 박씨의 선조인 박제상(朴堤上, 363~419)의 저술로 알려진 『징심록(澄心錄)』의 15지(誌) 가운데 맨 처음에 실린 지(誌)의 이름으로, 파미르고원으로 추정되는 마고성의 황궁씨로부터 시작한 1만 1천여 년 전의 한민족 상고사를 기록한 문헌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부도지 [符都志]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도배시러 18-02-15 21:57
 
부도지 목차
I 조화(造化)의 시대
1 장 마고(麻故)의 시대 - 부도지 1 장, 2 장, 3 장, 4 장
제 1 부 도입에 앞서… / 제 2 부 신화에의 접근
2 장 부도(符都)의 시대 - 부도지 5 장, 6 장, 7 장, 8 장, 9 장, 10 장
제 3 부 부도(符都)의 시대 / 제 4 부 오미(五味)의 화(禍)가 말하는 의미는…
제 5 부 한국(桓國)시대
II 교화(敎化)의 시대
3 장 배달국 시대 - 부도지 11 장
제 6 부 : 환웅(桓雄)씨 시대
4 장 임검(壬儉)씨 시대(조선 시대) - 부도지 12 장, 13 장, 14 장, 15 장, 16 장
제 7 부 임검(壬儉)씨 시대
5 장 오행(五行)의 화(禍) - 부도지 17 장, 18 장, 19 장, 20 장, 21 장, 22 장, 23 장, 24 장
제 8 부 : ‘오행(五行)의 화(禍)’가 주는 의미 / 제 9 부 한사군의 허구
III 치화(治化)의 시대
6 장 잃어버린 부도의 법 - 부도지 25 장, 26 장
제 10 부 잃어버린 부도의 법
7 장 삼한에서 삼국으로 - 부도지 27 장
제 11 부 열국시대로
8 장 잃어버린 역사 - 부도지 27 장
제 12 부 한사군의 허구

원문 및 번역본 - 번역자의 견해와 해석 원문이 짬뽕이니 주의하셔야 합니다.
http://cris.joongbu.ac.kr/download/%EB%B6%80%EB%8F%84%EC%A7%80-%EB%B0%95%EC%A0%9C%EC%83%81.pdf
장진동 18-02-16 00:12
 
환단고기 기록중 천문기록 확인했더니만 실제로 세차운동이 있었다고 하던데
꼬마러브 18-02-16 01:02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숙종 때 지어진 진서임이 확인듼 <규원사화>와 많은 부분에서 내용이 다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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