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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2-15 08:25
[몽골] 내몽골의 독립이야기
 글쓴이 : 고이왕
조회 : 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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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1944년에 만들어진 주사위 놀이판 ‘대동아공영권 일주(雙六大東亞共榮圈めぐり)’를 보면서 이야기를 시작하자. 이 놀이판은 일본이 서구 제국주의 세력으로부터 아시아 각지를 해방시키고, 이들 해방된 아시아 국가들이 “대동아공영권”을 구성했다는 제국주의 일본 지배집단의 주장을 시각적으로 잘 보여주는 프로파간다이다. 지난 회에는 놀이판 왼쪽 위에 그려져 있는 수바스 찬드라 보스의 자유 인도 임시정부에 대해 살폈다. 오늘은 놀이판 가운데 위쪽 부분을 본다.

도쿄역에서 출발한 플레이어들은 5칸을 나아가서 한반도 경성에 도착하고, 여기서 두 칸을 더 나아가 만주국에 도착한다. 만주국 다음에는 1940년대에 난징에 수립된 왕징웨이(汪精衛)의 난징 국민정부가 있다. 만주국에서 난징 국민정부로 가는 길은 두 갈래로 나뉘어 있다. 비행기를 타고 곧장 남쪽으로 향하는 길과, 베이징과 장자커우(張家口)를 거치는 길이다. 

만주국에서 3칸 나아가면 삼각형 칸이 있다. 이 지점에는 “사막이 있으므로 만주로 되돌아갈 것(砂漠のため滿州へもどる)”이라는 설명과 함께 사막을 걷는 여행자가 그려져 있다. 운 좋게 이 삼각형 칸에 걸리지 않고 한 칸 더 나가면 장자커우라고 쓰인 동그라미가 있고, 그 옆에는 양떼를 모는 몽골인이 그려져 있다. 이 놀이판이 만들어진 1944년 당시, 장자커우는 내몽골의 정치가 뎀치그돈로브 덕왕(德王)이 일본의 힘을 빌려 수립한 ‘몽강연합자치정부(蒙疆聯合自治政府)’의 수도였다

1941년, 뎀치그돈로브는 중화민국-몽골인민공화국-만주국-일본 사이에서 지위가 애매했던 몽강연합자치정부를 ‘몽골자치국(蒙古自治國)’이라는 이름으로 바꾸어 달라고 일본 측에 요청했다. 그러나 일본 측은 중화민국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국(國)’이라는 글자를 쓰면 일본이 만주국에 이어 또 하나의 괴뢰국가를 만든다는 이미지를 중화민국 측에 줄 수 있으므로 대신 ‘방(邦)’이라는 글자를 사용하라고 답했다. ‘국’과 ‘방’ 모두 ‘나라’라는 뜻이므로, 몽골식으로 읽으면 ‘몽골인이 자치하는 나라’라는 뜻이 되어서 뎀치그돈로브의 불만을 달랠 수 있다고 일본 측은 생각한 것이다


이리하여 1941년, 내몽골인의 준(準)독립국 ‘몽골자치방(蒙古自治邦)’ 정부가 탄생했다. 한인(漢人)의 중화민국으로부터 독립을 꾀했던 내몽골인들이 일본의 힘을 빌려 몽강연합자치정부니 몽골자치방이니 하는 준독립국을 수립한 사실은 일본 측에 잘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대동아공영권 일주’ 놀이판에는 이러한 이름이 보이지 않는다. 왜일까? 

애초에 일본 측은 동부 내몽골 지역을 중화민국에서 떼어내기 위해 내몽골 독립세력에 힘을 빌려주었다. 하지만 1937년 중일전쟁이 시작되면서 중화민국 전체를 복속시키는 것이 목표가 되자, 내몽골 지역을 중화민국에서 떼어내는 것은 도리어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는 데 혼란을 초래한다고 판단하기 시작했다. 자신들이 이용했던 내몽골 독립세력이 이제는 거추장스러운 존재가 된 것이다. ‘대동아공영권 일주’ 놀이판에 ‘몽골자치방’이라는 이름이 보이지 않는 데에서, 필자는 1940년대 당시 내몽골 세력에 대한 일본 측의 이러한 냉담한 태도를 읽는다. 

‘대동아공영권 일주’ 놀이판이 만들어진 1년 뒤인 1945년 8월, 일본은 태평양 전쟁에 패하고 소련군과 몽골인민공화국군은 몽골자치방을 점령한다. 뎀치그돈로브는 동족인 몽골인이 세운 몽골인민공화국으로 망명했지만, 공화국 측은 그를 1950년 9월에 중화인민공화국으로 추방한다. 몽골자치방에 관여했던 뎀치그돈로브 등의 내몽골인은 ‘전범(戰犯)’으로서 처벌받았고, 이 지역에는 내몽골자치구가 세워졌다. 중화민국·중화인민공화국, 제정 러시아·소비에트연방, 일본 등의 강대국에 휘둘리고 동족인 몽골인민공화국에서 버림받은 뎀치그돈로브는 20세기 전기에 내몽골인이 처한 곤란한 상황을 상징한다.

1911년, 신해혁명이 발발하고 대청제국이 붕괴된다. 같은 해인 1911년 12월29일, 외몽골 지역의 거점이었던 현재의 울란바토르에서 보그드 칸이 독립을 선언한다. 자신들은 만주인 황제에게 충성하여 대청제국에 복속되었던 것이므로, 한인이 주도하여 수립된 중화민국에는 속할 이유가 없다는 논리였다



 

보그드 칸은 내몽골 지역의 몽골인들에게도 독립국 수립에 참여하도록 요청했다. 이에 응하여 많은 내몽골인들이 울란바토르로 향하거나 자신들의 거점에서 독립·자치 운동에 돌입했다. 군센노로브 같은 내몽골 정치인은 애초에 대청제국을 존속시키자는 입장이었지만, 대청제국이 붕괴된 뒤에는 일본에 차관을 빌리는 등 일본 세력을 이용하여 내몽골인의 독립을 지향하는 방향으로 전환했다.

“지난 몇 년간, 학교를 세우고 군대를 훈련시키고 실업을 진흥한 것은 모두 몽골민족의 독립을 위한 준비활동이었다. 이제 청조(淸朝)가 멸망하고 민국이 나타났으며 외몽골은 독립했다. 지금이야말로 우리가 행동에 나설 절호의 기회다”(中見立夫 <滿蒙問題の歷史的構圖> 151쪽). 그러나 이러한 시도가 결실을 맺지 못하자, 군센노로브는 위안스카이(袁世凱)의 베이징 정부에 투항한다



 

중간에 독립의 뜻을 꺾은 군센노로브와는 달리, 끝까지 독립을 위해 싸우다가 전사한 바보쟈브 같은 사람도 있었다. 보그드 칸이 독립선언을 했지만, 신생 중화민국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이에 맞서 신생 보그드 칸 정권은 1912년 11월3일에 러시아와 협정을 맺어 외몽골 지역의 독립을 인정받는 한편, 몽골 민족 전체를 통합하기 위해 1913년 1월부터 내몽골 지역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 선봉에 선 장군들 가운데 한 사람이 내몽골 출신의 바보쟈브였다. 그의 주변에서는 ‘대륙낭인(大陸浪人)’이라 불리는 일본인들이 유·무형으로 그의 활동을 지원하고 있었다. 

바보쟈브의 운명을 결정한 것은 러시아였다. 러시아는 1912년 7월 제3차 러일협약을 체결하여 내몽골을 동서로 분할하고, 1915년 5월25일에는 보그드 칸 정권 및 중화민국과 캬흐탸 조약을 체결했다. 이 조약을 통해 러시아는 외몽골 지역에 대한 중화민국의 종주권을 인정하고, 중화민국은 보그드 칸 정권의 자치를 인정했다. 이에 따라 보그드 칸 정권은 내몽골 공격을 중단했지만, 바보쟈브는 중화민국군과 전투를 계속하다가 1916년 10월8일에 전사했다. 

1930년대에 동부 내몽골 지역을 조사한 어떤 연구자는, 바보쟈브를 로빈 후드 같은 존재로 그리는 가요를 내몽골인들이 부르고 있었다는 사실을 보고했다. 바보쟈브의 큰아들 간주르쟈브는 일본의 힘을 빌려 몽골독립군을 결성했으나, 일본이 패망한 뒤 소비에트군의 포로가 되었다. 바보쟈브의 부하들은 일본 세력을 등에 업은 그리고리 세묘노프의 부대에 편입되어 시베리아 내전에 휘말리게 된다. 세묘노프는 몽골 부리야트인의 혼혈이었다. 시베리아 내전에 대해서는 이 연재의 제2회 ‘시베리아에서 온 편지’에서 다루었다. 

한편, 1917년의 혁명으로 제정 러시아가 멸망하자, 구러시아 영토 내에서는 혁명 주체인 소비에트의 적군을 제정 러시아의 백군 및 이를 비호하는 열강들이 공격하는 내전이 발생했다. 보그드 칸 정권을 비호하던 러시아 세력이 사라지자, 중화민국은 1919년에 외몽골을 무력 점령했다. 그러나 내전 중 백군 측에서 활동하던 운게른 슈테른베르그라는 사람이 1920년에 외몽골을 침입하여 중화민국군을 몰아내고 자신의 왕국을 만들었다. 하지만 슈테른베르그는 광기에 사로잡힌 사람이었고, 몽골인들은 그의 학정에 시달렸다. 담딘 수흐바타르 등이 건립한 몽골인민당 세력은, 소비에트 적군의 도움을 받아 1921년에 그를 몰아내고 몽골인민공화국을 수립했다. 


그리고 1945년 8월, 미국이 두 차례 원자폭탄을 투하하자 일본은 15일에 무조건 항복했다. 그러나 소비에트는 “8월 폭풍 작전”이라는 이름으로 15일 이후에도 만주와 태평양 지역에서 일본군과의 전투를 계속하여 내몽골 지역을 점령했다. 허를러깅 처이발상 총리의 몽골인민공화국 측은 내몽골 지역을 병합하려는 의도를 지녔던 것으로 보이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뎀치그돈로브 일가는 몽골인민공화국으로 망명했지만, 뎀치그돈로브 자신은 중화인민공화국 측에 넘겨졌고 그의 큰아들 돌고르수렌은 일본의 스파이로 몰려 1952년에 몽골인민공화국에서 처형되었다. 

오늘날, 중화인민공화국, 러시아, 일본 등에서 내몽골인의 독립·자치 운동은 일본의 힘을 빌린 ‘괴뢰’적인 활동으로 간주되고는 한다. 이러한 평가에 대해, 뎀치그돈로브의 일생을 추적한 모리 히사오(森久男)는 이렇게 말한다. 

“기존에 몽골인 이외의 역사가들에 의해 기록된 책에서 몽골인의 정치행동은 중국인의 시점에서는 애국적이거나 매국적, 러시아인의 시점에서는 친소련적이거나 반소련적, 일본인의 시점에서는 친일적이거나 반일적이라는 식으로 구분되어 왔다. (중략) 과연 그들은 일본인의 앞잡이가 되기 위해, 또는 사회주의 조국 소련이나 항일의 대의를 위해 정치활동에 참가한 것일까? 몽골인은 이민족의 정치지배를 위한 도구가 아니다. 몽골인은 자민족의 생존을 확보하기 위해, 또는 스스로의 정치적 권리를 획득하기 위해 정치활동에 참가한 것이다”(<德王の硏究>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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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 히사오의 위와 같은 말은, 제국주의 일본을 포함한 주변 강대국의 편의에 의해 농락당하고, 동족인 외몽골인에게도 일본의 스파이로 몰린 내몽골인의 심정을 간명하게 표현한 것으로 필자에게는 읽힌다. 그리하여, 여기까지 글을 쓴 필자는 이 말을 되뇌게 된다. “왜 이것은 독립운동이 아니란 말인가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701062114005&code=210100#csidx0190acf6a2e4bce8b475723d6d72a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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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story2 18-02-15 13:29
 
쿠르드족도 이용만 당하고 이번에도 버려졌지요. 그나마 쿠르드는 거주지의 대부분을 그들이  가지고 있지만. 내몽골은  한족의대량 이주로 이젠  독립독립은 물건너가 보이니 어쉽네요 ㅡㅡㅡ만주도 이젠 한족이 90%를 넘어가니
Vanguard 18-02-15 14:48
 
이젠 내몽골의 인구 대다수가 한족이라 독립은 영영 물 건너갔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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