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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12-20 21:36
[중국] 위서지리지와 낙랑군 조선현 한현도의 수수께끼
 글쓴이 : 도배시러
조회 : 1,899  

■ 위서지리지 평주
平州〈晉置。治肥如城。〉領郡二  縣五 戶九百七十三  口三千七百四十一
遼西郡〈秦置。〉領縣三 戶五百三十七  口一千九百五
肥如〈二漢、晉屬。有孤竹山祠、碣石、武王祠、令支城、黃山、濡河。〉  
陽樂〈二漢、晉屬,真君七年併令支含資屬焉。有武歷山、覆舟山、林榆山、太真山。〉  
海陽〈二漢、晉屬。有橫山、新婦山、清水。〉

北平郡〈置。〉領縣二 戶四百三十  口一千八百三十六
朝鮮〈二漢、晉屬樂浪,後罷。432延和元年 徙朝鮮民 於肥如,復置,屬焉。〉  
昌新〈前漢屬涿,後漢、晉屬遼東,後屬。有盧龍山。〉

여기서
朝鮮〈二漢、晉屬樂浪,後罷。432延和元年 徙朝鮮民 於肥如,復置,屬焉。〉
조선현(朝鮮縣), 두 한(漢)과 진(晉)에서는 낙랑군(樂浪)에 속했으며 후에 폐하였다. 
연화(延和) 원년(432년)에 조선현(朝鮮) 사람을 비여(肥如)로 옮겨 다시 설치하여 속하게 하였다.

● 그리고 조선현의 한현도 사망일
경화시보(京華時報) 등에 따르면 베이징시 문물국은 최근 다싱(大興)구 황춘(黃村)진 싼허좡(三合庄)촌 일대 고대 무덤군 발굴 작업(사진) 중 북조(北朝) 시대의 묘 2기를 발견했다. 이중 한 무덤에서 나온 벽돌모양 묘비에는 무덤에 묻힌 이가 ‘韓顯度’(한현도ㆍ중국어 한셴두)이며, 원적이 ‘낙랑(樂浪)군 조선현’이라는 명문(銘文)이 새겨져 있었다. 무덤 주인공은 원상(元象) 2년 사망했다. 원상은 동위(東魏) 효정제 원산견의 2번째 연호로 서기 539년이다. 베이징시는 톈안먼(天安門) 광장에서 남서쪽으로 20여㎞ 떨어진 이 곳을 재개발하던 중 1,000년 이상 된 무덤 129기가 발견되자 지난해부터 발굴 작업을 해 왔다.


■ 수서 지리지 
北平郡. 舊置平州. 統縣一, 戸二千二百六十九. 盧龍. 舊置北平郡, 領 新昌 朝鮮 二縣.
後齊省朝鮮入新昌 북제 550~577
북제 때에 (북평군)조선현을 없애고 신창현에 편입하였다.


20171220_205801.jpg
.

후한서 군국지에 따르면 우북평~낙랑군의 거리는 2,700리

낙양-우북평 2,300 낙양-요서 3,300 요서-낙랑군 1,700 이다.

낙랑군을 2,700리 서쪽으로 이동시킨 것인데...  이런 경우가 있었나 ?  (무궁화 3천리....)


대체 왜, 언제 낙랑군 조선현이 북평군으로 이동한 것일까 ?


낙랑군 조선현 한현도의 무덤 발견에 따른 시나리오는 ?

1. 조선현은 원래 진시황이 만든 북평군에 있었다.
2. 조선현은 동쪽에서 서쪽으로 교치되었다. 언제 ? 너무 멀리 이동한거 아닌가 ?
3. 북위가 북평군 조선현을 요서군에 옮겨 설치하였으나, 한현도 가족은 이동하지 않았다 ?
4. 요서군 비여현에 조선현이 설치된적이 있는가 ?
5. 북위가 432년 북평군 조선현 사람을 비여로 옮기려다 사단이 나서 옮기지 못하니
한현도가 북평군에 쭈욱 거주했고 ~539... 북제550~ 때에 북평군 조선현이 사라졌다 ?
6. 낙랑군 수성현도 같이 이동했기에 秦築長城之所起 진장성 축성이 시작된 곳이라 하는가 ?
7. 한현도는 왜... 북평군 조선현을 낙랑군 조선현이라 했는가 ?


시대별 지리지를 아무리 보아도 어렵네요.
북경 부근의 북평군에 조선현이 있었다는것은 유물과 문헌이 명백한데...

북평군 조선현은 언제부터 그 곳에 있었는가 ?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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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배시러 17-12-20 22:23
   
감방친구 17-12-20 22:37
   
이거 당시에 아주 떠들석 했던 게 기억납니다
각 역사커뮤니티에서 쟁론이 활활했구요

그런데 제 개인적인 생각은
진한 영족이니 요동 조선인 하는 식으로
말그대로 원적지를 표기한 것이 아닐까 하는 것입니다
한현도의 조상이 낙랑군 조선현 출신이다 하는 것이죠
그것이 한 당시의 낙랑이든 교치된 후의 낙랑이든 말이죠

아무튼 참 어렵습니다
     
도배시러 17-12-20 22:48
   
북위서지리지를 보면...
북평군 조선현에서 잘 살고있는 조선현 사람을 요서 비여현으로 옮겨서 비여에다가 조선현을 만듭니다.
말인즉슨... 낙랑군 조선현이 북평군에 이전부터 존재했다는 것인데... 시작 시점을 못 찾겠어요.
밥밥c 17-12-20 23:01
   
사실 낙랑군 조선현 사람들을 비여현으로 옮겨살게 했다는 것이기는 하죠.

 하지만 북위시절에도 낙랑군은 여전히 있습니다.

그리고 딱히 옮겼다는 구절도 없지요.

 인구수만 줄어들었는데, 1000명.


낙랑군(樂浪郡), 전한(前漢) 무제(武帝)가 설치하였고 두 한(漢)과 진(晉)에서 락랑(樂浪)이라 했으며 후에 고쳤다가 폐하였다. 정광(正光) 말년에 다시 설치하였다.

5. 영주(營州)

 ④ 낙랑군(樂浪郡)
낙랑군(樂浪郡), 전한(前漢) 무제(武帝)가 설치하였고 두 한(漢)과 진(晉)에서 락랑(樂浪)이라 했으며 후에 고쳤다가 폐하였다. 정광(正光) 말년에 다시 설치하였다. 련성(連城)에서 다스린다.
다스리는 현은 2개이고 가수수는 219이고 인구수는 1008명이다.
1) 영락현(永洛縣), 정광(正光) 말년에 설치하였다. 조산(鳥山)이 있다.
2) 대방현(帶方縣), 두 한(漢)에 속했고 진(晉)에서는 대방군(帶方郡)에 속했으며 후에 폐하였다가 정광(正光) 말년에 다시 속하였다.
樂浪郡, 前漢武帝置二漢晉曰樂浪後改罷正光末復治連城.
領縣二, 戸二百一十九, 口一千八.
永洛, 正光末置有鳥山. 帶方, 二漢屬晉屬帶方後罷正光末復屬.

http://history-backup.tistory.com/307 (위서지형지 5-4 )
     
밥밥c 17-12-20 23:02
   
이전을 보면 낙랑군 영락현에는 대략 203명 살았으니, 나머지 한현인 대방현에는 약 800명

 살았죠.

 이전(한나라)에 있었던 낙랑군의 조선현을 없에고나니 기존의 한나라때의 현은 한개도 없고

 영락현, 대방현으로 딱 2개 신설했습니다.  아담하기도 하구여.

 위치를 옮겼다기 보다는 기존의 현명을 다른이름으로 바꾼것이죠.( 영락현)



 ⑤ 낙랑군
낙랑군(樂浪郡), 천평(天平) 4년에 설치하였다.
다스리는 현은 1개이고 가구수는 49이며 인구수는 203이다.
1) 영락현(永樂縣), 흥화(興和) 2년에 설치하였다.
樂浪郡, 天平四年置.
領縣一, 户四十九, 口二百三.
永樂, 興和二年置.
     
도배시러 17-12-20 23:21
   
영주 낙랑군은 525년 정광말년에 복치 됩니다.

궁금한것은 연화원년 432년 이전의 북평군 조선현이죠. 한현도의 거주지
          
밥밥c 17-12-20 23:35
   
낙랑군 영락현이 북평현이였다는 기록은 수서지리지에 있기는 해요.

 북평이면 인근이라 크게 다를 것도 없지요.

 1. 기주(冀州)

② 상곡군(上谷郡)

5) 영락현(永樂縣). 옛날에는 북평현(北平)이라고 하였는데, 후주(後周)가 이름을 고쳤다. 랑산(郎山)이 있다.

https://sites.google.com/site/coreahistory/books/geography/suso (수서지리지,기주 )
도배시러 17-12-20 23:49
   
수서지리지
영락현(永樂縣)은 낙랑군(樂浪郡)에 속하였고,...
영락현(永樂縣). 옛날에는 북평현(北平)이라고 하였는데, 후주(後周)가 이름을 고쳤다. 랑산(郎山)이 있다.
======>
 북평현(北平) : 후한서 군국지,  기주(冀州)  중산국 북평현(北平)
 中山国 高祖置。雒阳北1400一千四百里。十三城,户九万七千四百一十二,口六十五万八千一百九十五。
  〖卢奴〗 〖北平〗有铁。 ..........

기주(冀州)  : 전국시대 연-제-조의 접경지대.
     
밥밥c 17-12-21 00:40
   
그런데 수서지리지에서 기주는 이전의 유주입니다.

 인근지역의 용어인데, 기주와 유주는 서로 붙어있어서 서로 혼용이 가능합니다.

 수나라때의 기주는 한나라때 유주입니다 .;;;;;;
밥밥c 17-12-20 23:59
   
처음부터 인근지역일 수 밖에 없었죠.

 주류사학에서는 하북성동부에서 한반도로 갔다가, 다시 하북성 동부로 다시온다고 하지만 처음부터 요서지방인
 
 하북성 동부에 있었다고 봐야죠.

 왜냐하면 사마천의 사기에서는 위만조선의 왕검성을 공격했으므로 왕검성 인근에 낙랑군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 왕검성은 후한서의 기록상 요서군과 동일한 거리에 있었습니다 . 이름은 요동속국.

사기(史記)에서 말하기를 왕험(王險)인데 위만(衞滿)이 도읍한 곳이라고 했다.




  ⑪ 요동속국(遼東屬國)
遼東屬國, 故邯鄉, 西部都尉, 安帝時以為屬國都尉, 别領六城, 雒陽東北三千二百

六十里. 昌遼, 故天遼, 屬遼西.[1] 賔徒, 故屬遼西. 徒河, 故屬遼西. 無慮, 有醫無
慮山. 險瀆,[2] 房
료동속국(遼東屬國), 옛 감향(邯鄉)이며, 서부도위(西部都尉)가 (다스린다). 안제

(安帝) 때에 속국(屬國)으로 도위(都尉)를 삼았으며 별도로 6개의 성을 다스린다.

 락양(雒陽)에서 동북쪽으로 3260리 떨어져 있다.

1) 창료현(昌遼, 교려, 창려), 옛 천료(天遼)이며 요서(遼西)에 속했다.[1]
2) 빈도현(賔徒, 빈종), 옛 요서(遼西)에 속했다.
3) 도하현(徒河), 옛 요서에 속했다.
4) 무려현(無慮), 의무려산(醫無慮山)이 있다.
5) 험독현(險瀆),[2]
6) 방현(房)
[1] 何法盛 晉書 有青城山. 하법성(何法盛)의 진서(晉書)에 청성산(青城山)이 있다고 했다.
[2] 사기(史記)에서 말하기를 왕험(王險)인데 위만(衞滿)이 도읍한 곳이라고 했다.

http://history-backup.tistory.com/305 (후한서지리지, 요동속국)
밥밥c 17-12-21 00:04
   
이 요서군이 수서지리지에 가면 다시 요서군에 들어가 있게 됩니다.( 한나라의 요서군이

시간이 흘러 흘러 수나라의 요서군....)

 단순한 돌림노래죠.



) 류성현(柳城縣). 북위(北魏)에서 영주(營州)를 화룡성(和龍城)에 설치하여 건덕군(建德郡) 기양군(冀陽郡) 창려군(昌黎郡) 료동군(遼東郡) 낙랑군(樂浪郡) 영구군(營丘郡) 등을 다스렸고



⑥ 요서군(遼西郡)
遼西郡. 舊置營州, 開皇初置總管府, 大業初府廢. 統縣一戸七百五十一
柳城. 後魏置營州於和龍城, 領 建德 冀陽 昌黎 遼東 樂浪 營丘 等郡, 龍城 大興 永樂 帶方 定荒 石城 廣都 陽武 襄平 親昌 平剛 柳城 富平 等縣. 後齊唯留 建德 冀陽 二郡. 永樂 帶方 龍城 大興 等縣, 其餘並廢. 開皇元年唯留 建德一郡 龍城一縣, 其餘並廢. 尋又廢郡, 改縣為龍山, 十八年改為柳城. 大業初置遼西郡. 有 帶方山 秃黎山 雞鳴山 松山. 有 渝水 白狼水.
료서군(遼西郡). 옛날에 영주(營州)를 설치하였는데 개황(開皇) 초에 총관부(總管府)를 두었고, 대업(大業) 초에 폐하였다. 다스리는 현은 1개이고 가구수는 751이다.
1) 류성현(柳城縣). 북위(北魏)에서 영주(營州)를 화룡성(和龍城)에 설치하여 건덕군(建德郡) 기양군(冀陽郡) 창려군(昌黎郡) 료동군(遼東郡) 낙랑군(樂浪郡) 영구군(營丘郡) 등을 다스렸고 룡성현(龍城縣) 대흥현(大興縣) 영락현(永樂縣) 대방현(帶方縣) 정황현(定荒縣) 석성현(石城縣) 광도현(廣都縣) 양무현(陽武縣) 양평현(襄平縣) 신창현(新昌縣) 평강현(平剛縣) 류성현(柳城縣) 부평현(富平縣) 등을 다스렸다. 북제(北齊)는 오직 건덕군(建德郡)과 기양군(冀陽郡)을 남겨놓고 영락현(永樂縣) 대방현(帶方縣) 룡성현(龍城縣) 대흥현(大興縣) 등을 다스렸는데 그 나머지는 모두 폐하였다. 개황(開皇) 원년에 오직 건덕군의 룡성현만을 남겨놓고 그 나머지는 모두 폐하였고 또한 군도 폐하였으며 현을 룡성현으로 바꾸었다가 18년에 류성현으로 고쳤다. 대업 초에 료서군을 설치하였다. 대방산(帶方山)과 독려산(秃黎山)과 계명산(雞鳴山)과 송산(松山)이 있다. 유수(渝水)와 백랑수(白狼水)가 있다.

https://sites.google.com/site/coreahistory/books/geography/suso
밥밥c 17-12-21 00:17
   
가장 중요한 것은 북주시절( 북위의 장안점령시절, 수나라 직전)의 금석문에 조선은

  '밀운에서 건국하였다.'고 나오기 때문입니다.

전부 이 인근의 지명. 밀운은 본래 유래가 밀운산에서 나옵니다.



朝鮮(조선)이 건국을 하고 孤竹(고죽)이 임금이 되었다. 땅은 高柳(고류)라


 호칭하고 산은 密雲(밀운)이라 이름하였다.

http://www.gasengi.com/main/board.php?bo_table=EastAsia&wr_id=130355&sca=&sfl=wr_name%2C1&stx=%EB%B0%A5%EB%B0%A5c&sop=and


 그리고 위서지리지에 보면 이 '밀운'이 '어양군'이였죠.

 아래에서의 그 '어양군'입니다.
2. 안주(安州)
① 밀운군
밀운군(密雲郡), 황시(皇始) 2년에 설치하였다. 제휴성(提㩗城) 에서 다스린다.
다스리는 현은 3개이고 가구수는 2231이며 인구수는 9011명이다.
1) 밀운현(密雲縣), 진군(真君) 9년에 방성(方城) 을 병합하여 속하였다.
2) 요양현(要陽縣), 전한(前漢)에서는 어양(漁陽)에 속했고, 후한(後漢)과 진(晉)에서는 파하였으나 뒤에 다시 속하였다. 도화산(桃花山)이 있다.
3) 백단현(白檀縣), 밀운군을 다스리는 곳이다.
密雲郡, 皇始二年置治提㩗城.
領縣三, 户二千二百三十一, 口九千一十一.
密雲, 真君九年併方城屬焉. 要陽, 前漢屬漁陽, 後漢 晉 罷, 後復屬. 桃花山. 白檀, 郡治.

http://history-backup.tistory.com/307

 북주는 본래 북위라 어양군이 어디인지 모를 수가 없습니다.


 처음부터 연나라의 수도와 상당히 붙어 있을 수 밖에 없었죠.
     
도배시러 17-12-21 00:41
   
高柳(고류)는 서쪽의 代 ~ 안문의 사이에 끼어 있는 지명입니다.
밥밥c 17-12-21 00:32
   
지리지를 다시 분리해서 합쳐보면 하나는 산서성에 연경이 있었으며, 다른 하나는 하북성에 있었는데

 연경이 북쪽으로 올라와서 조선과 서로 맞물리는 상황에 가깝게 될 수 있는 것이죠.

 위의 '거짓 어양'이 전국시대때 연나라가 커지면서 조선과 서로 맞물리게 될 수 있습니다.

 이때 동호가 중산국이고 중산국이 붕괴되면서 생기는 현상이면 딱히 이상할 것도 없구여.


 북평현(北平) : 후한서 군국지,  기주(冀州)  중산국 북평현(北平)
 中山国 高祖置。雒阳北1400一千四百里。十三城,户九万七千四百一十二,口六十五万八千一百九十五。
  〖卢奴〗 〖北平〗有铁。 ..........

기주(冀州)  : 전국시대 연-제-조의 접경지대.

http://www.gasengi.com/main/board.php?bo_table=EastAsia&wr_id=161392

 그래서 이전 댓글에 중산국을 .
     
도배시러 17-12-21 00:43
   
후한 중산국은 연-조의 아래에, 제나라의 북쪽에 위치합니다.
심백강 박사가 주장하는 보정시 부근이죠.
          
밥밥c 17-12-21 00:46
   
현재 주류사학에서 그렇게 말하기는 합니다.

 그런데 사실상 연나라를 기준으로 남쪽 삼면은 본래 조나라, 한나라, 제나라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실제 중산국은 기록상 백적(白狄)으로서 적족입니다.

 북방민족으로 기록합니다. 남쪽에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절대 전국7웅과 연계가 없습니다.

 적족은 이 전국7웅위에 있는 오히려 산융에 가깝습니다.

 게다가 춘추전국시절 내동있었습니다. 최소 500년이상입니다.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354363&cid=40942&categoryId=33403

( 두산백과, 중산국, 맨 윗줄)
               
도배시러 17-12-21 01:06
   
좋은 내용이지만... 후한의 중산국과 시간갭이 과다함
                    
밥밥c 17-12-21 01:10
   
후한시절의 중산국이 아니라 중산국은 본래 전국시대때 사라집니다.

 기록상 조나라에 의해서 멸망했다고 적혀있는데, 이로 인해서 조나라는 아무런

 이득이 없었죠.

 그런데, 뜬금없이 연나라가 커집니다.
도배시러 17-12-21 00:45
   
432년 이전에 존재했던 북평군 조선현의 설치시점은 여전히 오리무중....
     
밥밥c 17-12-21 00:56
   
이전에 이미 만리장성 쌓는 곳에 있었는데, 그곳은 수성현이 보장해주죠.

 북위 이전의 낙랑군이 있었던 진나라때의 낙랑군에는  수성현과 조선현이 있었습니다.

 이때 수성현은 만리장성을 쌓았던 곳인데 이미 이곳은 전국시대때의 지명이 '무수'였죠.

 본래 '무수'가 진시황때 '수성'으로 바뀌는 것이고 , 다시 한나라때 '수성'.



1.3.    낙랑군

낙랑군(樂浪郡), 한국(漢)에서 설치하였다. 6개의 현을 다스린다. 가구수는 3700이다.

1)      조선현(朝鮮縣), 주국(周)이 기자(箕子)를 봉한 땅이다.

2)      둔유현(屯有縣).

3)      혼미현(渾彌縣).

4)      수성현(遂城縣), 진국(秦)이 쌓은 장성이 일어난 곳이다.[2]

5)      누방현(鏤方縣).

6)      사망현(駟望縣).

樂浪郡, 漢置. 統縣六, 戶三千七百. 朝鮮, 周封箕子地. 屯有. 渾彌. 遂城, 秦築長城之所起. 鏤方. 駟望.

http://history-backup.tistory.com/436( 진서지리지 1.평주, 낙랑군)
          
도배시러 17-12-21 01:10
   
무수武隧는 2가지가 있습니다. => 武强 무강, 遂城 수성 입니다.

보정시 부근의 무수는 무강이 되고요. 상곡의 무수는 수성현이 됩니다.
               
도배시러 17-12-21 01:15
   
대개  후한/서진 冀州 안평국 武遂 가 遂城현이 되었다고 하지만.. 당나라때 무강이 됩니다.

두우의 통전은
기주 안평국 무수, 무강을  長城之所起 라고 하고요.
상곡군 무수를 수성현 秦筑長城之所起 라고 표기합니다.
                    
밥밥c 17-12-21 01:21
   
네. 그렇죠

무수에 대해서는 본래 만리장성과 연관성이 있는데, 정확하게 딱 만리장성의 시작점이라

 하기에는 조금 애매하죠.

 하지만 아무리 다르게 보아도 하북성북부라는 점에 대해서는 크게 다르지는 않다고

봐야겠죠.

게다가 후한서,진서,북위서,수서를 관통하면 공통점은 최소한 있게 됩니다.

결국 돌림노래라는 것이죠.
          
도배시러 17-12-21 01:19
   
암튼 진서지리지의 낙랑군 수성현 설명에서 수성현이 북평군으로 교치되었을 가능성은 있습니다.
               
밥밥c 17-12-21 01:23
   
문제는 주류사학에서는 진나라때 교치되었다는 이야기 자체도 없어요.

 본래 위의 주제는 북위시절 교치되었다는 것인데,

 실제로는 그렇지도 않다는 것이죠.

 진나라때 교치되었을 가능성이 있다면 , 오히려 후한시절 교치되었을 가능성이 있으며

 후한의 지리지를 보면 다시 교치 되었을 가능성은 거의 없게 됩니다.

 왕검성이 이미 요서에 있었기 때문이죠.
                    
도배시러 17-12-21 01:35
   
후한때에 교치되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요서 비여현에서 유성현으로 가는 행정도로가 파괴되어 200년간 막혀 있었으니...
막힌 시점은 광무제 가짜-낙랑정벌 혹은 모본왕의 병주 태원 점거 이후...
                         
밥밥c 17-12-21 01:39
   
어쩌면 그럴 수 있다고 봅니다 .

그런데 후한이라면 오히려 낙랑군이 앞으로 당겨진 시점이겠죠.

 당시에 협상을 했으니 .....
                    
도배시러 17-12-21 03:44
   
위만의 왕험성 위치는 험독현, 의무려산 부근입니다.
대릉하 동쪽이 요동군, 서쪽은 요서군

왕검성은 동천왕의 평양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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