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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12-15 15:55
[한국사] 안동도호부의 연혁 및 설치 이후의 국제 정세
 글쓴이 : 감방친구
조회 : 2,594  

가탐도리기를 중심으로 하여 고구려 각 성과 하천의 위치, 특히 평양과 압록강의 위치를 찾는 작업을 서툴지만 꾸준히 해오고 있습니다.

이 작업은 고구려 서북계 영토의 변천과 한사군의 위치 비정 및 그 교치상에 밀접한 탐문입니다.

이 게시글에서는
안동도호부의 변천과 그 시기상을 정리하였습니다
이를 토대로 고구려 각 성 및 하천의 위치를 추정해 가고자 합니다.


1. 가탐도리기 曰 “안동도호부는 한나라 양평성, 영주 동쪽 500 리”

<신당서 지리지 가탐도리기>

營州入安東道
營州西北百里曰松陘嶺, 其西奚, 其東契丹距. 營州北四百里至湟水. 營州東百八十里至燕郡城. 又經汝羅守捉, 渡遼水至安東都護府五百里. 府, 故漢襄平城也. 東南至平壤城八百里, 西南至都里海口六百里, 西至建安城三百里, 故中郭縣也, 南至鴨淥江北泊汋城七百里, 故安平縣也. 自都護府東北經古蓋牟新城, 又經渤海長嶺府, 千五百里至渤海王城, 城臨忽汗海, 其西南三千里古肅慎城, 其北經德理鎮至南黑水靺鞨千里

營州東百八十里至燕郡城. 又經汝羅守捉, 渡遼水至安東都護府五百里. 府, 故漢襄平城也.

1) 영주 ---> 안동도호부 : 동쪽 500 리
2) 안동도호부는 한나라 양평성


2. 가탐도리기의 저자 가탐은 8 세기 후반에 활동한 사람

가탐(賈耽)
ㅡ 730년 ~ 805년
ㅡ 현종(玄宗) 천보(天寶) 10년(751) 명경과(明經科)에 급제하며 관직에 나옴


3. 안동도호부의 교치와 그 연혁

<신당서 지리지>

總章元年, 李勣平髙麗國, 得城百七十六, 分其地為都督府九, 州四十二, 縣一百, 置安東都護府於平壤城以統之, 用其酋渠為 都督 刺史 縣令. 上元三年, 徙遼東郡故城, 儀鳳二年又徙新城. 聖歴元年, 更名安東都督府, 神龍元年, 復故名. 開元二年, 徙于平州, 天寳二年, 又徙于遼西故郡城. 至徳後廢. 土貢, 人葠. 有安東守捉. 有懷逺軍, 天寳二載置. 又有保定軍.

<독사방여기요>

遼東舊都司城。東至鴨綠江五百六十里,南至旅順海口七百三十里,西至山海關一千一十五里,西北至大寧廢衛八百六十里,東北至故建州衛七百九十里。自都司至山東布政司二千三百三十里,至江南江寧府三千四百里,至京師一千七百里。

《唐書》:貞觀十九年,伐高麗,克遼東城,以為遼州。又克蓋牟城,以為蓋州。後又置都督府九,又置安東都護以統之《通典》:總章元年,李平高麗,得城百七十六,分其地為都督府九,州四十二,縣一百,置安東都護於平壤城以統之,用其酋渠為都督、刺史、縣令。上元二年,徙都護於遼東故城。儀鳳二年,又徙新城。聖歷元年,更名安東都督府。神龍元年,復曰都護。開元二年,徙於平州。天寶二年,又徙於遼西故郡城,領羈縻州十四。至德後廢。尋為勃海大氏所據。五代時,地入契丹,阿保機葺遼陽故城建東平郡,尋升為南京。

1) 總章元年(668 년) ㅡ 평양성(平壤城)
2) 上元三年(674 년) ㅡ 요동군의 옛 성(遼東郡故城)
3) 儀鳳二年(677 년) ㅡ 신성(新城)
4) 聖歴元年(698 년) ㅡ 안동도독부(安東都督府)로 개칭
5) 神龍元年(705 년) ㅡ 안동도호부(安東都護府)로 명칭 복원
6) 開元二年(714 년) ㅡ 평주(平州)
7) 天寳二年(743 년) ㅡ 요서의 옛 군성(遼西故郡城)
8) 至徳 (756 년 ~ 758 년) ㅡ 폐지
9) 이후 ㅡ 발해가 차지함(尋為勃海大氏所據)
10) 발해 이후(907년 이후 오대십국 시대) ㅡ 거란이 차지하고 동평군을 세웠다가 남경으로 승격함(五代時地入契丹阿保機葺遼陽故城建東平郡尋升為南京)


4. 학계 주류설(통설)에 근거한 안동도호부의 설치와 그 폐지 시기까지의 국제 정세

1) 668년
평양에 안동도호부 설치
당장 설인귀
규모 9도독부(都督部)·42주(州)·100현(縣)
통치 도독ㆍ자사ㆍ현령 등을 고구려인들에게 위임
계획에 그치고 운영하지 못 함

2) 670년
검모잠을 위시한 고구려 유민과 신라가 연합한 대당 투쟁으로 인하여 신성으로 교치

3) 676년
나당 전쟁에서 패한 당은 도호부를 요동성으로 교치

4) 677년
보장왕에게 요동도독(遼東都督)의 직책을 주고 조선군왕(朝鮮郡王)에 봉하여 요동으로 보내 자치를 허락하게 됨에 따라 도호부가 다시 신성으로 교치됨

5) 696년 5월에 거란족 수장인 이진충(李盡忠)과 손만영(孫萬榮)이 영주도독의 가혹한 통치에 불만을 품고 반기를 들었고, 이들은 유주(幽州, 지금의 베이징)까지 공격하여 당나라에 큰 타격을 주었지만, 이듬해에 겨우 평정되었다. 영주에 함께 거주하던 대조영 집단도 이들에 동조

6) 697년
영주(營州)가 거란인들의 공격으로 함락되자 당의 안동도호부 유지가 어렵게 되었고 더욱이
거란ㆍ해ㆍ고구려 유민이 연합한 반란이 실패하자 고구려유민(말갈)은 영주를 탈출하여 만주가 아니라 고구려 중심지였던 요동으로 몰려듦
거란의 반란은 700 년 경까지 계속돼 당나라는 동북지방에 대한 통제 및 지배력 상실

7) 698년
대조영은 당의 토벌군을 천문령에서 격파
발해(대진) 건국

8) 699년
안동도호부를 안동도독부로 강등
고덕무를 안동도독에 임명

9) 704∼705년경
다시 도호부로 재승격
부치를 714년에 평주(平州)로, 다시 743년에는 요동군으로 옮김
그 임무는 설치 당시의 고구려유민에 대한 감시로부터 말갈족 견제로 변경
 차차 도호부 자체의 실권을 평로절도사(平盧節度使)에게 빼앗기게 되었음

10) 712년
당나라는 거란과 해(奚)를 공격하였지만 실패하고 오히려 침공을 받음

11) 713년
당은 거란 문제를 해결하고자 705 년 이후로 발해와 관계 개선 노력
당나라 대조영을 발해군왕(渤海郡王) 및 홀한주 도독으로, 아들 대무예를 계루군왕에 책봉

12) 716년
거란은 돌궐에 복속되어 당과 계속 국지전을 벌여옴
묵철가한 말기에 돌궐이 쇠약해지자
거란, 당에 항복
당은 영주를 이 때에 비로소 회복
이후 돌궐이 세력을 회복하자 다시 돌궐에 복속

13) 720년 9월
당, 발해에 거란 합동 토벌 제의하나 발해가 거절

14) 722년
흑수말갈, 발해에 위협을 느끼고 처음으로 당과 교섭

15) 726년
당나라 흑수주도독부를 설치하고 감독관을 파견(흑수말갈 포섭)
발해 무왕, 흑수말갈 토벌

16) 727년
일본과 국교수립
당ㆍ신라ㆍ흑수말갈 연합에 맞서서
발해ㆍ거란ㆍ돌궐ㆍ일본과 연합

17) 728년
당과 흑수말갈 다시 결탁
당에 숙위로 간 발해 태자 대도리행 의문사

18) 732년 9월
발해 장군 장문휴(張文休)를 보내 등주(登州)를 공격(수군 2만 5천)
승리

19) 733년
발해 거란, 돌궐과 연합하여 하북 지방을 공격
패배

20) 758년경
안록산(安祿山)의 난을 계기로 최종 폐지

21) 762년
당나라 발해군왕에서 발해국왕으로 승격하여 책봉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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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방친구 17-12-15 15:59
   
감방친구 17-12-15 16:21
   
3(신당서, 통전의 원문)과 4(백과사전의 설명)이 다소 상이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4의 9)에서 요동군으로 도호부를 다시 옮겼다 돼 있는데 사서 원문에는 요동군이 아니라 요서의 옛 군성, 또는 요서의 옛 성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요서의 옛 성이라 하면 막연해도 요서군에 속한 성 가운데 하나일 것이고
신당서의 요서의 옛 군성 (遼西故郡城)을 따르자면 영주와 치소가 있던 유성이 유력해 보입니다
그러나 옛 군성이라는 표현에서 확신이 들지 않습니다

분명한 것은 요동이 아니라 요서라고 당대 사서는 명확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감방친구 17-12-15 16:31
   
714 년 이후로는 안동도호부가 요동으로 돌아온 기록이 없습니다
716 년에 영주를 회복했다고 하는데 영주는 요서군 유성에 있었습니다
학계 통설에서 현 조양시를 요서군 유성현이자 영주로 비정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가탐도리기의 가탐이 활동한 시기로 볼 때에
1) 영주가 지금의 조양이 아니었거나
2) 가탐이 당시의 안동도호부 실제 위치를 무시하고 이전 시기 요동의 위치(앙평성)로 잡고 있거나
3) 1)과 2)의 이유로 춘추필법을 발휘해 가탐 당시에 안동도호부 동쪽(가탐이 안동도호부가 있다고 한 양평성조차도)이 더이상 당나라가 영토가 아니었음(발해 영토)에도 마치 여전히 당나라 영토인 것처럼 묘사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여러 문제는 이어서 계속 고찰해 갈 것입니다
감방친구 17-12-15 16:38
   
뿐만 아니라 가탐 당시의 영주(와 안동도호부)는 한마디로 개털 나가리 쭉정이 신세였습니다
감방친구 17-12-15 16:43
   
상기 3의 9)와 10)은 요동도사와 그 관리지역의 연혁을 설명하면서 신당서와 통전을 인용한 후에 독사방여기요에서 그 후의 사실을 덧붙인 내용입니다

발해가 차지하고 그후에 요가 차지했다는 내용의 대상은 요동도사가 관리하는 요동지역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버섹 17-12-17 12:29
   
699년 안동도호부를 도독부로 강등시킨 건 발해의 건국 때문인 것 같습니다.
이후 대장군 이해고를 파견하지만 대조영에게 대패해서 돌아오자, 714년 신성에 있던 안동도호부를
평주(하북성 노룡현)로 옮기게 됩니다.
고구려의 구토에서 화북지방으로 후퇴한 것인데, 이때부터 안동도호를 고구려 왕족이 아닌
당 현종의 자식이 맡게 되죠...하지만 궁을 나서지는 않았다는 것으로 봐서 명칭 뿐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는 안동도호부의 성격이 변화한 것인데, 이전에는 고구려 유민들을 잘 통치할 목적이었는데, 이때부터 발해에 대한 경계라는 개념으로 변화된 것입니다.
안동도호로 임명된 영왕이 평로군 절도대사를 겸임한 것이 그 증거이죠.

안동도호부는 743년에 대릉하와 능양하 사이의 요서고군성으로 옮겨지는데, 이는 안동도호부가 통할하던 부민의 대부분이 고구려 유민이 아니라는 것을 뜻하죠.
고구려 유민 출신의 대조영이 발해를 건국한 마당에 인접한 지역에 고구려유민을 모아 둔다는 것은 환란을 자초하는 꼴인데 그러지는 않았을 테니까요.
     
감방친구 17-12-17 12:40
   
말씀 감사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이것 때문에 며칠 골치 앓고 있습니다

가탐도리기의 안동도호부는
위치가 여러 차례 교치돼 유명무실해졌음에도 불구하고
이리저리 사서를 비교해 보니
요동성에 있다고 하며 썰을 풀고 있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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