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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12-12 06:34
[한국사] 산동반도 등주에서 고구려 가는 코스 고찰
 글쓴이 : 감방친구
조회 : 3,544  

일 마치고 쉬다가 도배시러님이 내주신 숙제를 뒤늦게 보고는 날밤 샜네요

애초에 저는 '登州東北海行'을 오해했습니다
이 것을 "등주에서 동북 방향 바닷길"로 이해를 했습니다
그래서 이는 서북을 동북으로 잘못 적은 게 아니냐1), 동북이면 위치며 거리며 다 엉망이 되는데 실제로는 등주에서 연안을 따라 시계방향으로 도는 바닷길이었을 것2)이고 이렇게 봐야 위치며 거리가 이치에 맞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 가정에서 1)은 틀리고 2)는 맞다는 것을 날밤을 새면서 확인을 했습니다

'登州東北海行'는 '登州海行入髙麗渤海道'을 설명하기 위한 글의 첫 도입부입니다

즉 登州東北海行는  "등주에서 동북 방향 바닷길"이 아니라 "등주에서 동북(지역)으로 가는 바닷길"로 해석을 해야 하는 것이죠

가탐도리기에서 우리와 관계된 것은
ㅡ 영주에서 안동도호부로 가는 (육지) 길
ㅡ 등주에서 고구려ㆍ발해로 가는 바다 길
입니다

즉 등주에서 배를 타고 고구려ㆍ발해 지역으로 가는 경로를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동북은 뱃길의 나아가는 방향이 아니라 등주에서 목적지로 삼은 고구려ㆍ발해의 위치인 것이죠

이 경로를
ㅡ 신당서 가탐도리기
ㅡ 성경통지
ㅡ 장황의 圖書編
ㅡ 독사방여기요
를 교차하여 고찰하였습니다


1. 신당서 가탐도리기

登州海行入髙麗渤海道

登州東北海行 過 大謝島 龜歆島 淤島 烏湖島 三百里, 北渡烏湖海 至馬石山東之都里鎮 二百里.

東傍海壖. 過 青泥浦 桃花浦 杏花浦 石人汪 橐駝灣 烏骨江 八百里, 乃南傍海壖.

2. 장황의 圖書編

沙門島爲解宋寨界 單山爲黃縣界 桑島爲馬停寨界 龜島爲昌邑縣界 歆末島爲壽光界 都里鎭爲蒲臺界 靑島爲利津界 黃島爲賓州界 直沽口爲寶低縣界 塔山爲盧龍衛寨界 南半洋山爲昌黎縣界 計一千二百里,抵遼東北半.

3. 성경통지

桃花島

新唐書地理志登州東北海行過大謝島龜歆島烏湖島三百里至都里鎮二百里東傍海壖過青泥浦桃花浦杏花浦

金史地理志興城縣有桃花島 按桃花島即桃花浦明初海運泊船于此今在寧逺州城南

1-S 가탐도리기의 경로

1) 300 리
등주(登州) ~대사도(大謝島) ~ 구흠도(龜歆島) ~ 어도(淤島) ~오호도(烏湖島)

2) 200 리
북쪽으로 오호해(烏湖海)를 건너서 마석산(馬石山)의 동쪽에 있는 도리진(都里鎮)

3) 800 리
도리진 ~ 청니포(青泥浦) ~ 도화포(桃花浦) ~ 행화포(杏花浦) ~ 석인왕(石人汪) ~ 탁타만(橐駝灣) ~ 오골강(烏骨江) ~ 오골강 인근 남쪽의 해연(海壖)

4) 총 1,300 리

등주 ~ 오골강 인근 남쪽 해연(해안)

2-S 도서편의 경로

沙門島(解宋寨) ~ 單山(黃縣) ~ 桑島(馬停寨) ~ 龜島(昌邑縣) ~ 歆末島(壽光) ~ 都里鎭(蒲臺) ~ 靑島(利津) ~ 黃島(賓州) ~ 直沽口(寶低縣) ~ 塔山(盧龍衛寨) ~ 南半洋山(昌黎縣) ~ 遼東北半.

計一千二百里

3-S 성경통지의 경로 (신당서 지리지를 인용하고 있으므로 가탐도리기와 같습니다)

登州 ~ 大謝島 ~ 龜歆島 ~ 烏湖島 ~ 都里鎮 ~ 青泥浦~ 桃花浦 ~ 杏花浦

먼저 가탐도리기와 도서편의 코스는 출발지가 등주, 목적지가 동북(도서편의 요동)인 점, 그리고 그 총 거리가 1,300 리로 같습니다

그렇다면 같은 경로를 나타냈다고 봐도 좋을 텐데요 경로상의 지명이 모두 일치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다행히 도서편 경로에 가탐도리기와 일치하는 게 있습니다

가탐도리기의 龜歆島가 龜島와 歆末島도로 나타난 것으로 볼 여지가 있습니다

중간 기착지는 都里鎭으로 같습니다

출발지와 목적지. 중간 기착지, 그리고 총 거리가 같다면 동일 경로를 나타내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도서편에 경로상에 위치한 섬들이 속한 것으로 표시된 지명을 독서방여기요에서 찾아봤습니다

1) 解宋寨, 黃縣, 馬停, 昌邑, 壽光, 蒲臺, 利津, 賓州, 寶低
ㅡ 모두 산동에 속한 지명이었습니다
ㅡ 蒲臺(포대)의 경우 독서방여기요에서 찾을 수 없었는데 1420년에 익도(益都)를 점거하여 반란을 일으켰던 명나라의 당새아라는 인물이 산동 포대 사람인 것에서 포대가 산동에 속한 지명인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즉 도리진은 산동에 있다는 말이죠)

2) 盧龍, 昌黎
ㅡ 너무 유명한 지명인데요 북직, 즉 지금의 하남ㆍ하북에 속한 지역입니다

즉 가탐도리기 경로와 출발지, 목적지, 중간기착지, 총 거리가 같은 도서편의 경로는 등주에서 출발하여 시계방향으로 산동ㆍ하북의 해안을 따라 요동으로 나아가고 있음이 확인되었습니다

다음은 성경통지의 경로입니다. 성경통지의 경로는 신당서를 따르고 있으므로 가탐도리기와 동일한 경로입니다 그런데 포인트는 거기가 아니라 그 다음의 금사 지리지를 인용한 부분입니다

金史地理志興城縣有桃花島 按桃花島即桃花浦明初海運泊船于此今在寧逺州城南
금사 지리지에 의하면 흥성현에 있는 것이 도화도이며 도화도, 즉 도화포는 명나라 초기에 이곳까지 배가 오가며 정박하였다.
지금 영원주의 성 남쪽에 있다

영원주는
지금의 랴오닝 성 후루다오 시(葫蘆島市), 즉 호로도 시는 임둔 태수장 봉니가 발견된 곳으로 금주(진저우) 시 근방입니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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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방친구 17-12-12 06:45
   
이 고찰 내용을 가탐도리기 <영주에서 출발하여 안동도호부로 가는 길>과 비교해 보십시오

"영주(營州) 서북쪽 100리는 송형령(松陘嶺)이라고 하고 그 서쪽은 해(奚)이며 그 동쪽은 거란(契丹)이 떨어져 있다. 영주(營州)에서 북쪽으로 400리를 가면 황수(湟水)에 이르고 영주(營州)에서 동쪽으로 180리를 가면 연군성(燕郡城)에 이른다. 또한 (연군성으로부터 동쪽으로) 여라수착(汝羅守捉)을 지나서 료수(遼水)를 건너면 옛날 한국(漢)의 양평성(襄平城)이었던 안동도호부(安東都護府)에 이르기까지 500리이다. (안동도호부에서) 동남쪽으로 평양성(平壤城)까지 800리이고, (안동도호부에서) 서남쪽으로 도리해구(都里海口)까지 600리이며, (안동도호부에서) 서쪽으로 옛 중곽현(中郭縣)이었던 건안성(建安城)까지 300리이며, (안동도호부에서) 남쪽으로 압록강(鴨淥江) 북쪽에 있는 옛 안평현(安平縣)이었던 박작성(泊汋城)까지 700리이다."
도배시러 17-12-12 06:57
   
수고하셨습니다 ^^
     
감방친구 17-12-12 06:59
   
ㅎㅎㅎ 아이고 덕분에 식겁했네요 ;;
          
도배시러 17-12-12 07:03
   
학구열이 대단하십니다.
               
감방친구 17-12-12 07:11
   
이렇게 되면
오골성, 박작성, 평양성 등 모든 위치가 다 바뀌네요
               
감방친구 17-12-12 07:13
   
안동도호부 서남쪽 600 리 도리해구와 등주에서 뱃길로 500 리 거리의 도리진은 같은 곳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따르는데 어떻게 보세요?
                    
도배시러 17-12-12 07:15
   
차근차근 공부해야죠. 성급하게 결론 내리고 오류가 발생하면 공부하기 싫어집니다. ㅋ
                         
감방친구 17-12-12 07:16
   
맞는 말씀이세요 ㅎㅎ
                         
도배시러 17-12-12 07:24
   
우선은 직선거리가 가능한 등주에서 200KM 반경을 설정하고
다시 직선거리 600리 보다 작게 200KM반경을 설정해서 안동도호부를 추정해야죠.

등주는 직선거리, 도리진에서 안동도호부는 육로, 우회로라서 포장도로 기준으로
예상되는 위치를 추적하면서 고민해야할듯 합니다.

둘다 지리지에 나오는 리수*0.4 보다 작게 설정해서 접근해야 합니다.
당시에 헬기나 비행기를 사용했다는 주장은 근본이 틀려먹은 발상이니 말이죠.
                    
감방친구 17-12-12 09:27
   
도리해구는 도리진이 있는 해구 (만) 으로 본다면 어떻겠는가

도리진이 있는 포대현은 황하 하구 쪽으로 보이는데

이는 더 찾아봐야겠다

같은 위치로 볼 경우 고구려가 너무 서쪽으로 움직여서 감당이 안 된다
도배시러 17-12-12 07:02
   
앞으로 공부할 내용인데, 미리 살펴주셔서 감사합니다
감방친구 17-12-12 07:08
   
감방친구 17-12-12 07:51
   
자, 다음은 오골강에서 압록강까지가 문제인데
도리진에서 오골강 800 리인데
1)오골강에서 압록강 1,000 리라는 말인지
2)도리진에서 압록강까지 1,000 리라는 말인지 헷갈리게 한다

그러나
이미 오골강이 거리와 위치 상 요하 입구의 여러 강 가운데에 하나로 보이고
거기에서 다시 1,000 리 바닷길을 간다고 하기에는 경유지로 거론 된 지역이 적으며
현 압록강으로 보고자 하여도 그 사이에 혼하, 태자하 등의 강들을 거론하지 않았으며

수ㆍ당의 고구려 침공기에서
오골성과 압록강, 평양성이 가까우며
박작성이 압록강, 평양성과 가까운 것에서
오골강과 압록강이 가까운 것이 나타나므로

2) 가 적합한 해석이라 생각한다

즉 오골강과 압록강 당은포구의 거리는 200 리인 것이다
     
감방친구 17-12-12 07:53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 근거

1. 612 년 수나라 육군의 침공 및 패퇴로 본 위치

A
수나라 육군 ㅣ압록강 ㅣ살수 ㅣ 평양성
(서) --------------------------> (동)

B
압록강-----------------살수
(서) -----450 리-----(동)
※ 기록에는 수나라 패잔병들이 하루밤낮을 뛰어서 도망쳤다고 돼 있다 근 200km를 하루에 이동하는 게 가능한가?

2. 645, 648 년 당 태종 침공으로 본 위치

C
오골성 ㅣ 압록강 ㅣ 평양성

D
압록강 ㅣ 살수 ㅣ 평양성 ㅣ 패수

E
박작성 ㅣ 압록강 ㅣ 평양성
(박작성은 압록강 북쪽)
     
감방친구 17-12-12 07:55
   
그리고 이상한 일이지만
오골강과 압록강의 오골과 압록은 음가 상이 다소 유사하다
감방친구 17-12-12 08:32
   
감방친구 17-12-12 10:20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

영양왕 23년(612년)

좌익위대장군(左翊衛大將軍) 내호아(來護兒)가 강회(江淮)의 수군을 실은 수백 리에 달하는 선단을 이끌고, 바다를 통하여 패수(浿水)로부터 들어오니 평양과의 거리가 60리였다.
감방친구 17-12-12 10:52
   
보장왕 4년(645년)

여름 4월, 이세적이 통정(通定)에서 요수를 건너 현도에 이르렀다.

영주도독 장검이 오랑캐 병사를 거느리고 선봉이 되어 요수를 건너 건안성(建安城)으로 내달아 우리의 병사를 물리치고 수천 명을 죽였다.

5월, 성(비사성)이 함락되어 8천 명의 남녀가 죽었다. 이세적이 요동성 아래까지 진격하였다.

황제는 요수를 건너고는 다리를 철거하여 군사들의 결심을 굳게 하고 마수산(馬首山)에 진을 쳤다. 황제는 직접 수백 명의 기병을 거느리고 요동성 밑에 가서, 군사들이 흙을 지고 참호를 쌓는 것을 보았다.

이세적이 대답하였다.
“건안성은 남쪽에 있고 안시성은 북쪽에 있는데, 우리의 군량은 전부 요동에 있습니다. 이제 안시성을 지나서 건안성을 공격하다가 만약 고구려인들이 우리의 군량 수송로를 차단하면 어찌 하겠습니까? 먼저 안시성을 공격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안시성만 함락되면 당당하게 북을 울리며 행군하여 건안성을 빼앗을 수 있습니다.”
     
감방친구 17-12-12 10:57
   
요수 건너에 현도
요수 건너에 건안성
요수 건너에 마수산
요수 건너 마수산 근처에 요동성
요수 건너 건안성 북쪽에 안시성

그런데 신당서 지리지 가탐도리기에 의하면 건안성은 안동도호부(요서의 옛성) 서쪽 300 리에 있다고 했다
     
감방친구 17-12-12 11:12
   
구당서 고려전

태종은 요택(遼澤)에 이르러 조서를 내려 이르기를 “지난날 수나라 군대가 요수(遼水)를 건넜으나 그때는 하늘이 돕지 않아 종군하던 사졸들의 해골이 산야에 두루 흩어져 있으니 진실로 애석하고 탄식할 일이다. 백골을 덮어 주는 도의는 참으로 무엇보다 우선되어야 하니 명령으로 모두 거두어들여 매장하도록 하라.”하였다. 국내성(國內城)과 신성(新城)의 보병과 기병 4만 명이 와서 요동을 도왔으나 강하왕 도종이 기병 4천 명을 거느리고 되받아쳐서 크게 격파하고 1천여 급의 머리를 베었다. 태종은 요수를 건넌 뒤 조서를 내려 교량을 철거하게 함으로써 사졸들의 결의를 굳게 하였다. 태종은 요동성(遼東城) 아래에 이르러 사졸들이 흙을 져서 구덩이를 메우는 것을 보았다.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 보장왕 4 년(645 년)

5월, 성(비사성)이 함락되어 8천 명의 남녀가 죽었다. 이세적이 요동성 아래까지 진격하였다. 황제는 요동의 늪지대에 이르렀는데, 진흙이 2백여 리나 펼쳐져 있어 사람과 말이 통과할 수 없었다. 장작대장(將作大匠) 염입덕(閻立德)이 흙을 퍼부어 다리를 만들었으므로, 군대가 행군을 멈추지 않고 늪지대 동쪽으로 통과할 수 있었다. 우리 임금이 신성과 국내성에 있는 4만 명의 보병과 기병을 동원하여 요동을 구원하려고 하니, 강하왕 도종은 4천 명의 기병으로 이에 대항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군사들은 모두 병력의 차이가 너무 크므로 도랑을 깊이 파고 보루를 높이 쌓으며, 황제가 올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였다

황제는 요수를 건너고는 다리를 철거하여 군사들의 결심을 굳게 하고 마수산(馬首山)에 진을 쳤다. 황제는 강하왕 도종을 위로하여 상을 주고, 마문거의 직급을 몇 단계 올려 중랑장(中郞將)으로 삼았으며, 장군예의 목을 베었다. 황제는 직접 수백 명의 기병을 거느리고 요동성 밑에 가서, 군사들이 흙을 지고 참호를 쌓는 것을 보았다.
     
감방친구 17-12-12 11:16
   
결국
수ㆍ당 시대의
요수는 현 대릉하이고
요택 역시 대릉하 하류의 늪지대 200 리이며
마수산은 의무려산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인다
          
도배시러 17-12-20 03:02
   
한서지리지 요서군 栁城, 馬首山在西南. 參栁水北入海.
유성현 마수산 馬首山

조양이 유성현이라면... 한서지리지 유성현에 마수산이 있으니
조양 = 마수산, 요수=대릉하가 되버리네요
          
도배시러 17-12-25 01:45
   
수나라때에 4진 중에 북진 의무려산에서 제사를 지내기로함.
그래서 수나라 이후에 의무려산의 인지도가 올라갔으리라 봅니다.
     
감방친구 17-12-12 11:29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
보장왕 4년(645년)

여름 4월, 이세적이 통정(通定)에서 요수를 건너 현도에 이르렀다.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
영양왕 23년 (612 년)

唯於遼水西 拔我武厲邏 置遼東郡及通定鎭而已
오직 요수 서쪽의 무려라를 빼앗아 요동군과 통정진을 두었을 뿐이다
감방친구 17-12-12 11:39
   
삼국사기(는 중국사서를 교차검증 하여 수록한 내용이 많으므로 중국 사서 또한)의 수ㆍ당의 고구려 침공 기사에 나오는 하천 중심 지형은 다음과 같다


요택 ㅡ 요수 ㅡ 마수산 ㅡ 압록강 ㅡ 살수 ㅡ 평양 ㅡ 패수
(서)-------------------------------------------------------(동)(북)--------(남)

오골성 ㅡ 압록강 ㅡ 평양
    ( 방위 알 수 없음)

박작성 ㅡ 압록강 ㅡ 평양
(박작성은 압록강 하구에서 북쪽에 위치)
감방친구 17-12-12 11:42
   
가탐도리기 근거

오골강(대릉하~요하 일대)과 압록강 당은포구 거리 200 리
(서/북) -------------------------------------- (동/남)
     
장진동 17-12-12 15:20
   
님 허벌라게 고생 많으십니다
이왕 글올리시는거 청동기 산동반도에서 한반도 북부까지 짱깨들이 발굴하다 쪽팔려서 묻어버린 것까지 쭈악 까발려 주세요
---화이팅!!---
          
감방친구 17-12-12 15:56
   
ㅎㅎㅎ 아이고 저도 좀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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