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계통의 연구는 결국 독립어 쪽으로 방향이 잡히는 듯 하다. 그간 알타이어족으로 위치 지으려는 많은 노력들에도 불구하고, 알타이어족 자체가 폐기되는 흐름을 돌이키기에는 역부족으로 보인다.
어떤 언어의 계통을 확립하려면 세 가지 점에서 대응관계를 확립해야 한다.
첫째, 어휘의 대응관계다. 특히 스와디쉬 챠트를 기본으로 하는 기초 어휘의 대응관계가 성립하지 않으면 안 된다.
둘째, 음운의 대응관계가 확립되어야 한다. 세월이 흐르고 음운도 달라지겠지만, 그 변화에는 일정한 방향성이 존재할 수밖에 없고 대응관계가 세워진다.
셋째, 통사적, 문법적 대응관계가 성립되어야 한다.
우리말과 가장 가까워 보이는 일본어는 그 통사적 일치에도 불구하고, 확고한 음운대응의 수립에 실패하였으며 기초 어휘는 전혀 대응되지 않는다. 일본어에는 분명 단순한 차용을 넘어선 한국어와 공통되는 언어의 기층이 존재한다. 한국어에도 일본어의 기층이 존재함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두 언어의 주된 세력은 별개의 언어로 보인다. 일본어는 해양문화의 영향이 크고 그 문화의 기반이 주력임이 확실해 보인다.
서로 국경을 맞대고 싸워왔던 초원의 유목민들과 비교해도 어떤 대응관계를 세우기에는 부족하다. 우리말의 알타이어 요소들은 일부 기층으로 존재하거나, 광범위하고 장기적인 접촉에 의한 차용관계인 것 같다.
이제 한국어도, 일본어도 고립된 독립어로 봄이 옳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 상고음운학의 발달과 금석문의 발굴ㆍ해독, 그리고 <삼국사기지리지>의 이표기 및 개명 지명 연구들을 통해 고대 한국어의 많은 부분이 해명되고 있다.
그간 신라어가 한국어의 중심으로 주장해 왔으나 최근의 연구는 삼국의 언어가 의외로 유사하다는 것이다. 특히 북한은 이기문 등의 신라어 중심론을 민족 분열 책동으로까지 비난하며, 삼국의 언어는 비슷했고 오히려 고구려어가 한국어의 중심이 되었다고 한다.
북한의 정치적인 스탠스는 배제하여야 하겠으나, 그 주장은 음미할 부분이 있다. 삼국통일 이후 고려의 성립까지 250년 정도가 소요되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이다. 그 시간에 신라의 언어 장악력은 얼마나 되었을까? 경주를 중심으로 한, 지역적으로 고립된 중앙 권력이 백제나 고구려의 예전 지배 지역의 기층언어를 대체할 수 있었을까? 그럴 수도 아닐 수도 있다. 북한은 그럴 수 없다는 입장이다. 개성의 언어는 백제어와 고구려어의 퓨전일 가능성을 부정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개성 지역의 언어가 신라어로 대체되었음을 부정할 수 있는 근거도 없다.
개성과 서울이 현대 한국어의 중심이 된 것은 확실하다. 개성이나 서울 모두 고구려와 백제가 오랫동안 지배하였던 지역으로 두 언어의 영향력이 작지 않았다. 신라가 통일 후 250여년을 지배하는 동안 그 영향력도 결코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삼국의 언어가 얼마나 차이나는 지도 불확실한 상태에서 더 이상의 주장은 아집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