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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11-23 00:16
[한국사] 사도세자가 미치게 된 과정
 글쓴이 : 레스토랑스
조회 : 3,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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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꼬이떡밥 17-11-23 00:45
   
왕의 책무로 인한 스트레스를 자식에게 푼 결과..

정실인 정성왕후에게서 태어났다면

정조는 무지 이뻐했을겁니다.

자신의 출신이 미천한데 자식 또한 미천하게 태어났으니 못 마땅했지요
     
mymiky 17-11-23 01:09
   
부모는 제 자실을 이뻐하는 법입니다.

선조도 어린 시절 광해군은 좋아했고,
영조 또한 어린시절 사도는 좋아했습니다.
영화 사도에서도, 어린시절 아들 줄려고 영조가 손수 책도 만들고 하는게 나오죠..

거기다, 사도와 동복누나인 화평옹주를 이뻐한거 보면,,
모친(영빈)이 미천하다고 그가 낳은 자식을 싫어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애초에,, 영빈은 영조가 가장 총애했던 후궁이였고요..

다만,, 화협옹주는 아들을 기다리던 영조에게 영빈이 4번째도 딸(화협)을 낳아서,,
엄청 실망했던 건 사실이고.. 그때문에 고추 못 달고 나온 괘씸죄에 걸린 것은 있지만..
그녀조차 시집가서 일찍 요절했을때는 영조가 슬퍼했습니다.

기본적으로 영조는 자기 자식들을 다 사랑했었는데
딸들이야 왕위 계승에서 먼 존재들이니, 그런데로 좋게 지냈지만..

사도는 영조의 유일한 아들이였기에,, 포기할수 없는 존재였죠..

영조 본인부터가 완벽주의 성향이 있었고, 성격이 꼼꼼하던 사람인데.
거기다 후계자를 40세에 얻어서,, (당시 조선왕들 수명이 47세정도였으니..)

마음이 급하니.. 세자의 조기교육을 서둘렀고,
그 결과 너무 아들을 어릴때부터 혹독하게 트레이닝(?)하며 잡아 족치는게
사도가 빗나간게 일조했지요..

아들이, 자랄수록 자신의 기대에 부흥하지 못하니까, 더 화내고, 짜증내고
꼴도 보기 싫고, 아드놈이라고 하나 있는게, 변변찮으니.. 나라의 장래가 걱정이고,,
걱정이 많아지니, 더 얄미워 죽겠고,

뭐, 아무튼,, 두 사람은 너무나 다른 성향의 부자관계였고,,
사도의 우울증과 정신병에도 영조가 한몫한거죠..

사도도 스트레스를 동물(닭)같은거 잡아 죽이는걸로 풀다가
사람들을 칼로 베면서 카타르시스가 느껴졌는지? 점차 살인으로까지 발전했고,,

세자의 광기를 궁안 사람들이 쉬쉬하다가,,
결국 어머니인 영빈마저 아들을 포기하고, 총명한 손자를 밀어주기로 하고
영조에게 사도의 비행을 고발하고, 부모는 아들을 포기하게 됩니다.

손자의 정통성을 위해, 죄인의 자식이 되면 곤란하기에..

사고사(-뒤주에 가둬 놓았는데, 영조가 깜빡하고 안 풀어줬더라,,)로 처리되고
정조는 큰아버지(추존 진종) 밑에 양자로 들어가게 된거죠..
뭐꼬이떡밥 17-11-23 02:29
   
인간사를 보면 약간은 그 이해할수 없는 부분들이 나옵니다

가령 아들은 쥐잡듯이 미워해도 그 아들의 아들인 손자는 끔찍히 위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게
주로 완벽주의자 에게서 나오는 성향인데 인물의 관대함이 뒤늦게 나마 생겨서 아들은 뭘 잘해도 못마땅하지만
그 손자는 뭘 못해도 이뻐보이는 경우입니다

영조가 완벽주의자 라고 해도 정실부인에게서 태어났다면  왕후의 관리와 영향이 지대했겠지요
입적을 했다한들 자신이 낳은 아들을 위하는것과 남의 자식을 키우는것은 천지 차이 이지요

결국 어머니인 영빈마저 아들을 포기하고, 총명한 손자를 밀어주기로 하고
영조에게 사도의 비행을 고발하고, 부모는 아들을 포기하게 됩니다. <<< 이부분이 가장 핵심적이죠

정실부인인 왕후에게서 낳았다면 절대 왕후가 세자를 저렇게 되게 놔두지 않을껍니다

무술이 에게서 태어난것 조차도 왕이 되는데 왕후의 자식을 그것도 세자를 왕이 죽이다니요. 천부당 만부당이죠
     
mymiky 17-11-23 03:05
   
정실부인 소생인 경우를 예를 들자면,,

1) {정성왕후가 영조의 사랑을 받아, 임신을 해야함}

- 그러나! 영조의 정실부인인 정성왕후는 영조의 사랑을 못 받았던 인물입니다.
평생 소박당했던 왕후인데. 심지어 왕비가 죽어갈때도 무관심 했던 영조임..

왕비가 죽던날, 화완옹주의 부마가 같은날 죽었는데,
와이프 장례식 쌩까고, 신하들 만류에도 불구하고,
딸집에 사위 장례식 갔던 사람이 영조임-.-;;

일단, 이 부부의 가정생활부터가 안 좋았음.

2) {정성왕후가 자기 배로 낳은 자식을 제손으로 길러야 함.}

-그러나!  왕족같이 고귀한 신분의 사람들은, 엄마가 안 키웁니다.

왕실행사때나 잠시보고 제각자 자기 궁에서
개인별로 따로 밥먹고, 씻고 자고, 그런 생활을 해요..

일반 평민들처럼 부모랑 자식이 한집에 오손도손 부대끼며 살지 않습니다.
안부인사 할때만, 정해진 시간에, 예법대로 생활하지..

사도가 2살때 동궁생활을 시작 했는데, 이것도 빠르긴 했지만,
보통 6-7세 때부터 보모들과 내시들이 뒤에 붙어서, 각자 생활하니..

딱히, 정성왕후 소생이였다고 해도, 다르진 않았을겁니다.

[[오히려 현실적으로 쓰자면.. 적자이기 때문에,
영조가 더 기대에 차서, 더 가열차고 빡세게 아들을 굴렀을 가능성이 높을테지요-.-;;]

3) {외가가 세자의 배경이 되어줌으로써, 영조가 사도를 못 죽이도록 했을 것이다.}

- 그러나! 사도처럼, 싸이코 광기를 드러내며, 사람들을 자기손으로
칼로 썰고 다닌 세자가 조선 역사상 전무후무 하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영조가 뒤주에 가둔 날에도, 너 하나 죽어서 이 나라 종사가 바로 이어질수 있다면,
난 그리 하겠다고 하거든요..

왕후에게서 낳았다고해도,,
본인의 상태가 지나치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어차피..
사도의 경우엔, 적자냐? 서자냐?는 별로 상관이 없습니다.
적서를 떠나, 왕실의 [유일한 후계자] 타이틀 더  중요했기에..

=영조또한 무수리에게 태어났으나, 왕이 된 것은,,

숙종의 세 아들중에, 경종과 연잉군만이
성인기까지 성장했으며, 경종이 아들이 없는 이상,,
그 동생인 연잉군이 차기 대권 1순위였기 때문입니다.

= 사도의 경우, 혜경궁 홍씨에게서 본 정조와 후궁들에서 난 서자들이 3명 있었습니다.

이미 왕실에는, 사도를 대체할만한 후보자들이 있었고,
결정적으로, 정성왕후가 사도보다 더 일찍 죽었습니다.

적자라도 하더라도,, 엄마가 먼저 저 세상으로 갔으니.. 별로 다를게 있었을까? 싶네요..

사도가 죽을때, 정성왕후의 집안도, 혜경궁의 집안도, 계비로 들어온 정순왕후 집안도
그를 도와주고 자시고 할게 없었습니다.

아무리 사도가 적자라 하더라도,,
- 그런 정신이 온전치 못한 미친놈에게, 나랏일을 맡길수는 없기 때문이죠..

정성왕후의 소생으로 태어났다고 해도,,
외척들은 싸이코 세자보다, 정상인 세손에게 기대를 거는게 당연합니다.

실제로,, 혜경궁 집안이 그러했듯이요..정신나간 사위보다 외손인 정조편을 들었죠..

사도는 이미, 거기서 틀린겁니다.
비좀와라 17-11-23 03:45
   
영조가 정조를 예뻐 했다고요?

홍국영이 정조의 측근이 된 이유가 영조가 정조를 박대해서 이를 방지하고 정조를 잘 보위해서 인데요?

영조가 도대체 언제 정조를 예뼈 했다는 거죠.

그냥 장조(사도세자)가 미친 것이 아니라 영조가 미친 것 이라니 까요.
     
mymiky 17-11-23 03:58
   
영조가 정조를 박대했다니요? -.-;;

영조가 얼마나 총명하고 야무진 손자를 예뻐했는데..
사도는 하라는 공부도 안하고, 커갈수록 삐뚤어 졌지만..

정조는 다행히 학문을 좋아하는 스타일이라,, 영조 입맛에도 맞았거든요..
눈치껏 할아버지 밑에서 납짝 엎드리며 공손히 공부하는 모습을 잘 보여주기도 했고요..

또, 혜경궁이 낳은 아들이라, 사도의 세아들 중에, 정조만이 유일한 적손자인데,,
그런 정통성 있는 손자를 왜 박대한다는건지??

홍국영이 정조의 측근이 된 이유는, 어린시절 세손의 스승이였고(가정교사)
수업시간마다 그를 만나니, 친해졌고, 그때 홍국영은 젊은 관료이기도 하고
패기넘치던 시절이라, 둘이 죽이 잘 맞았죠..

봉건시대 왕족에게는 친구란 개념이 없고,
어디까지나 군신관계이지만.. 뭐, 개인적으로,, 친했던건 맞아요..

젊은 정조에게 홍국영은 순수하게 룰모델이자,
똑똑하고, 공부잘하고, 말빨세고, 능력있는 큰 형님같은 사람이였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정조의 총애를 믿고 오만방자하게,
홍국영이 권력욕이 생기면서 이것저것 간섭하자 정조는 숙청시켜 버렸죠..

참고로,, 현대 정신학계에선..

영조는 깐깐한 편집증 환자/
사도세자는 조울증과 분노 조절장애과 경계성 장애?를 가진 것으로 추측함..

결론만 말하면,
(원인은 아버지때문이긴 하지만.. ) 사도는 진짜 똘아이였고.. 

영조는 성격이 괴팍하지만,, 본인의 일은 잘했음.. 왕으로써 업적도 많고,,

아들을 늦게봤고,, 그래서 조급해서 아들을 너무 몰아붙인게 안타까움..
본인이 80까지 살줄 알았으면,, 그렇게 안 키웠을거 같긴하지만..

글쎄.. 영조 성격자체가 꼬장꼬장해서,, 알았어도 달라질수 없을지도-.-??
          
mymiky 17-11-23 04:21
   
영조의 걱정

( 자기가 빨리 죽고, 어린 세자가 보위에 올라
닳고 닳은 신하들에게 휘둘려서, 정치를 잘 못할까봐 불안함)은..

결국엔, 손자대가서 정조가 하게 됨.

영조가 마흔에 사도를 보았는데,
정조 또한 38세때 후계자가 될 순조를 낳음.

다행히, 영조는 벽에 똥칠할때까지 장수해서, 손자인 정조가 잘 계승했지만

정조는 8살배기 꼬마를 남겨두고, 40대에 죽음..
(요절은 아님.. 당대 평균 수명대로 죽었는데..당시로썬 아들을 너무 늦게 낳음;;)

그 옛날 영조가 우려한 모습, 그대로 현실화됨..

순조는 어릴때 왕이 되어서, 신하들에게 잘 휘둘렸고,,

본인 성격마저,, 다혈질로 유명했던 이씨 조상님들보다,
조용하고, 행동이 참했다던 생모 수빈박씨를 닮았음..

학문은 좋아했지만.. 정치적인 카리스마 같은건 부족했던 모양임..

결국엔, 순조때부터 세도정치 고고씽...
               
촐라롱콘 17-11-23 20:13
   
mymiky님의 좋은 댓글 잘 읽었습니다.

님의 견해에 대부분 동의하면서....다만 바로 위 댓글의 오류 하나만 언급하자면....

순조가 즉위한 나이는 8세가 아닌 11세입니다.(1790년생으로 1800년 즉위)

8세에 즉위한 이는 순조 다음에 왕위를 이은 순조의 손자 헌종입니다.

비교적 똘똘했던 순조의 아들인 효명세자(익종으로 추존)가 헌종을 남기고
요절하는 바람에.....
도나201 17-11-23 12:20
   
당시 사회상을 봐야 할것 같네요.
숙종의 당시 상황으로 인한 희빈장씨의 중인계층의 왕비를 인정하지 못한 상위계급 또는 기존계급.
즉. 인조를 득위하면서 발생한 공신계열의 기득권을 탈취하지 않으려는 정치적모임,
희빈장씨를 앞세워서 공신계열을 타파하려는 움직임.
이때 사회상은 몇가지 경험을 하게 됩니다.
임란이후 중인계층 특히 상인계층의 가파른 신분상승은
기존 땅을 위시로한 공신계열과 맥을 달리 하고 있었읍니다.

근데 문제는 숙종이후 공신계열측에서 내세운것이 바로 영조입니다.
초기영조의 정치를 살펴볼필요가 있었읍니다.

즉, 토지에 대한 피지배층의 불만해소가 첫목표였다라는 것입니다.
두가지 의미를 가지는데
\
상인계열의 중인층과 피지배계층의 농민계열의 차가 심해졌다라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상인계열의 이득이 농민계열의 숫자를 감소하기에 충분햇다라는 것이죠.

상인계열은 특히 인력에 대해서 농민계열보다는 더많이 필요하면서 이에 대한 보수가 더나앗을것으로 추정됩니다.
특히 보부상의 득세가 한몫하고

후에 이런 상인계층의 권력적결합 및 귀속되면서 권력의 양상이 달라지게 됩니다.
이후 급속한 농민계급의 급속한 몰락이 예정되고 있엇고요.

즉 당시 사회상이 아직 상인계급의 주류로 등장하는 것을 막으려고 했다라는 것입니다.
영조의 정치가 평세를 누린것도 상인계급의 물류 유통이 굉장히 원할히 돌아갔던것이 큰이유였을 것입니다.

즉 이문제는 정치적인 문제라기 보다는 이들사이에서 껴있는 영조에게 힘을 준사람이 누구 였는가가가 중요합니다.

상인계급과 농민계급의 공존을 목표로 한것에 대한 억압적 사상에 굉장히 휘둘리게 되었죠.
아마도 영조자체도 농민계층을 더 생각한 입장이였을 것입니다.

그런 입장에서 사도세자의 행적은 거의 상인계층과의 협의를 통해서 정치적목표를 이루려고 햇다라는 것이죠.

후에 정조는 이부분에 있어서 상인계층의 육성을 논하면서 영조의 균형적인 관리는 습득했다고 보는 것이 옳다고 보여집니다.

여기서 문제는 과연 혜경궁홍씨는 정치적인 목표가 있었느냐 하는것이 주요 쟁점으로 부각됩니다.
사도세자와 혜경궁홍씨 관계가 좋지 못한 이유는 바로 정치적인 바탕 근본사상이 전혀 달랐을것으로 생각됩니다.

영조의 사도세자박해는 혜경궁홍씨를 받아드므로 인해서 더욱 심해졌고 이에 대해서 사도세자도 상당한 난관에 빠집니다.

가장 이상한 것이 왜.. 100여명이상 살해한 사람이 가장 주변에 있는 자신의 처를 죽이지 못했는가 하는 의문이 듭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혜경궁홍씨가 가장 비밀의 문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되어집니다.
     
mymiky 17-11-23 19:28
   
{음모론}에 불과합니다.

[사도세자가 상인계층과 협의를 통해서 정치적 목표를 이루려고 했다???]

사도세자가 상인계층과 결탁하려고 했다는 증거는 일절 없습니다.
(역대 조선왕들 중에, 상인계층과 협의를 했던 왕들도 없지만..)

한때, 사도가 소론세력과 결탁해서, 노론을 밀어주던 영조와 사이가 나빴다는 가설이 유행했던 적이 있었지만..

그조차, 사도의 대리청정은 말 그대로 얼굴마담에 불과했지.. 여전히 영조의 영향력 아래 있었기 때문에,
소론과 결탁하고 말고할게 없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결론만 말하자면,,
-사도는 생전에 아버지 영조와 정치적 입장을 달리한적이 없습니다. 한번도요-
그럴만한 처지가 못 되었기 때문이죠.

또한, 기존에 알려진 것처럼, 노론과 사도가 사이가 나쁘지도 않았습니다.

아마, 그런 인식이 대중들에게 심어진건,,
선과 악의 구도로 -노론:사도-를 묘사한 드라마나 노론 메이슨설을 퍼트린
이덕일이 쓴 책들 때문일겁니다.

사도와 혜경궁의 사이가 좋지 못한 이유가
정치적인 바탕의 근본사상이 전혀 달랐기 때문이라는 말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영조의 사도에 대한 박해는, 며느리 때문이 아닙니다.
혜경궁이 사도와 결혼한게 고작 12살인데, 윗 글에서도 알수 있듯,,

영조는 사도를 4살부터,, 어린시기부터 엄격하게 다그쳤습니다.
혜경궁이 시집오기도 전의 일이죠..

그건, 영조 개인의 성격이 그러했고, 영조의 훈육 방법의 문제지..
혜경궁이 뭘 어찌 해서 그런게 아닙니다.

가장 주변에 있는 자신의 처를 죽이지 못한게 이상하다는데? -.-

왜 혜경궁을 죽여야 한다는 건지? 모르겠네요;;
혜경궁은 양반집 규수이고, 자기의 정실 입니다.

만만한 아랫것들을 다루는 것과는 차이가 날수밖에 없죠.
아랫것들이야 죽여도 뭐랄 사람은 없지만, 혜경궁은 그들과 전혀 다른 신분이니까요..

물론 사도의 말년엔,  한번 흥분하기 시작하면,  자제하기 어려워했던 기록이 있습니다.

그래서, 자기 후궁(박빙애) 도 때려죽이고,
옷 갈아입히던 궁녀나 내시들도 죽이고 그랬으니까요.

혜경궁은 죽지는 않았지만,, 흥분한 사도를 말리다 맞은적이 있는데,
한중록에 세자가 바둑판으로 머리를 내리친 적이 있다고
그때, 눈에 맞아 눈알이 빠져나올듯 아팠다고 쓰기도 했습니다.

일부 드라마에서 그려지는 것처럼,
혜경궁이 세자와 정치적 입장이 다르고 말것도 없었고,,
그건 걍 드라마의 재미를 위한 것일뿐..

팩션을 사실처럼 받아들이면 안됩니다.
그래서, 드라마로 역사를 보면 곤란함-.-;;
이미, 방송국들마다  정통사극 안 만든지도 오래되지만..
(그러니까 기황후 같은게 나오지 ㅉㅉㅉ)

혜경궁 홍씨는,

겉은 화려하지만,, 속은 병들어가던 허울좋은 세자에게 시집와
그 사람이 점차 광폭하게 변해가는걸 지켜본게 죄라면 죄겠죠..
          
촐라롱콘 17-11-23 20:21
   
심지어 영조의 계비 정순왕후 김씨가 사도세자를 죽게 만든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주장도 있는데(심지어 드라마에서도 그렇게 묘사되더군요) 정말 말도 안되는 주장이지요!^^

정순왕후가 왕비가 되던 해가 1759년으로, 사도세자가 죽던 임오화변이 있던 1762년에서
불과 3년 전 밖에 안되며.... 왕비가 되던 해의 정순왕후의 나이는 불과 15세에 불과했습니다.

영조가 이후 더욱 노쇠해지고, 정조가 성인이 되던 무렵이면 몰라도....
10대 중후반의 어린 왕비가 무슨 대단한 정치력이 있다고 사도세자를 죽게 만들었다는 것인지....

더군다나 이후 정조에 대해서도 훗날 정조가 자신의 친정오빠들을 귀양보내기 전까지는
정조에 대해서도 호의적인 자세를 일관되게 유지했던 것이 정순왕후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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