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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11-16 09:53
[한국사] 53000명 vs 18000명 4차 평양성 전투
 글쓴이 : 레스토랑스
조회 : 2,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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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93년 음력 1월9일

4차 평양성 전투

 

왜군은 1592년 말,

음력 10월10일에 있었던 진주성 전투에서 패배하여 전라도 진출이 무산되고

음력 12월 11에 독성산성에서 권율의 부대에게 패배하여

경기도의 지배력이 약화되는 등

개전 초기 몇달간 유리했던 전황이 뒤집혀

전체적으로 불리한 상황에 처해졌다


한편 명나라에서도 대대적인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요동 부총병 조승훈의 원군 선발대가

별다른 성과도 없이 패퇴하자,

명의 조정에서는 대규모의 파병이 필요하다고 판단하였다

마침 보하이의 난을 무사히 제압한 요동 주력군에

경략 송응창이 최고 사령관,

제독 이여송을 현장 사령관으로 임명하여

43000명의 병력을 파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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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력 12월 25일 이여송이 이끄는 요동군 주력부대가 압록강을 건너

도원수 김명원, 평안우방어사 김응서, 평안좌방어서 정희현이 이끄는 조선군 8천과

서산대사와 사명대사가 이끄는 승병 2천2백과 합류하였다

그 병력이 자그마치 5만3천에 육박하였다

 

평양성에 주둔하고 있던 왜1군의 고니시 유키나가는

조명연합군의 남하에 부담을 느껴 황해도 각지의 왜군 부대에게 지원을 요청하였으나

모두 거절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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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왜1군의 사기는 떨어졌고 고니시는 급히 평양성을 요새화하고

평양성 옆의 모란봉에 조총부대 2천을 주둔시켜

수성 준비를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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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3년 음력 1월6일

조명연합군은 서쪽에서부터 공격을 시작하여

차례로 보통문, 칠성문, 모란봉을 공격하였다

순변사 이일이 이끄는 함구문을 공격하였다

 

이때 명군 부총병 오유충과 조선 승군이 거짓으로 패퇴하는척하다가

역공을 가하여 왜군에게 큰 피해를 주었다

하지만 함구문을 공격하였던 조선군은 매복으로 인해 큰 피해를 입고

진짜로 패퇴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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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력 1월7일

왜군은 3천의 병력을 동원하여

명군의 

좌군 부총병 양호, 중군 부총병 이여백, 우군 부총병 장세작의 각 진영을 공격하였으나

명군은 이를 모두 무리없이 물리쳤다

이후, 명군은 진영을 보통문 앞으로 전진 배치하여

조선군의 기병대로 유인작전을 펼쳤으나 왜군은 속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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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력 1월8일

앞선 이틀간 탐색전을 마친 조명엽합군이 총 공세를 가하였다

명군의 각종 화포를 이용한 엄청난 포격에 힘입어

명군 부총병 조승훈과 조선 순변사 이일이 조선군 8천을 이끌고 함구문을,

명군 부총병 장세작이 칠성문을,

명군 부총병 양호가 보통문을,

명군 부총병 오유충과 사명대사가 모란봉을 각각 공격하였다

 

이때 오유충은 적의 탄환을 맞고도 전투를 계속 지휘하였고,

이여송 역시 타고 있던 말이 피격하여 죽었음에도

전투를 이어나가 연합군의 사기를 높였다

 

연합군이 외성과 읍성을 차례로 함락하고

중성으로 압박해오자

왜군은 풍월정에 토굴을 쌓아 올려

최후의 저항을 하였다

 

이로 인해 양군의 피해가 극심해지자

이여송은 군을 철수시켰다

이후 고니시 유키나가와의 협상을 하여 왜군을 공격하지 않겠다 하였고,

이를 믿고 왜군은 밤을 이용하여 평양성을 탈출하였다

 

하지만 이여송은 즉시 명군 참장 이녕에게 왜군을 추격하라 하여

왜병 328명을 베었다

조선군 역시 독자적으로 추격하여

황해도 방어사 이시언이 왜병 60명을

황주 판관 정화가 왜병 120명을 베었다

 

고니시 유키나가는 이 전투로 인하여 자신의 동생과 사촌을 잃는 등 개인적인 피해와 더불어

왜1군 역시 만 여명이 넘는 병력을 잃어

본래 개전 초기의 1만8천이 넘던 병력이 한양에 도착했을 땐 6천6백으로 줄어있었다

 

평양성에서의 3번의 실패 끝에 가져온 쾌거였다

 

선조는 평양성을 탈환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음력 1월18일 의주를 떠나 남하하기 시작하였다

 

이 전투에서 명군은 그 명성대로 엄청난 전투력을 보여주어

전투에 큰 도움이 되었으나,

전투가 끝난 이후 평양성에 들어와

조선백성 1만여명을 베어 수급으로 챙겼고

버려진 시신이 대동강에 가득하였다고 한다

 

이를 보고 받은 명 조정은 조사관을 보내 진상을 규명하려 하였으나

그 의지는 미비하였고,

조선 조정 역시 이를 탐탁치 않게 여겼으나

명군의 도움을 받는 입장이라 차마 항의하지 못하였다

결국 진상규명은 흐지부지 되고 말았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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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 17-11-16 10:04
   
아무리 명나라를 무시해도 그 규모와 전투력에 있어 조선에 엄청난 도움이 됐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무고한 조선 백성들을 죽인 건 정말 너무하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역시 전쟁이 나면 안 됩니다. 당하는 건 힘없는 백성들뿐..
후리더 17-11-16 18:25
   
당시에 전공이 적다고 평양부민 1만명을 죽였죠
이런건 잘 말 안하고 넘어가더군요
진실게임 17-11-16 18:34
   
전공이 적다고 1만명을 죽였다는 건 이상하네요.

명군이 왜군처럼 신체 일부를 잘라다 조정에 보내는 것도 아닐텐데, 더 많이 벤다고 전공이 늘어날 리 없잖아요.

명군도 같은 시스템이었다는 건가요? 아니면 옛날 동아시아에서는 조선군 포함 모두가 그런 식으로 전공을 증명했다든가...??
     
촐라롱콘 17-11-16 20:13
   
명나라나 조선은 적군의 수급을 베었지요....!!!

훗날 정유재란 당시 이순신장군이 명나라제독 진린에게 일본군 수급을 양보한

경우에서도 보듯이~~~

조선에 출병한 일본군 입장에서... 아니 보고받는 히데요시 입장에서

베어낸 조선군-명군들의 수급을 배를 탈 수 있는 부산을 비롯한 남해안일대까지 운반하고

배에다 싣고 바다건너 일본까지 운반하기에는 무게-부피, 운송비 측면에서 많은 비용과 노력이

소모되는지라... 가볍고 부피가 적은 귀와 코로 대신한 것이지요....!!!

물론 일본군이 전공의 근거로 삼을 목적으로 히데요시에게 가져다 바친

귀와 코의 태반은 조선-명의 전투원보다는 비전투원인 조선 민간인들의 것이지만....
촐라롱콘 17-11-16 20:39
   
[[왜1군 역시 만 여명이 넘는 병력을 잃어
본래 개전 초기의 1만8천이 넘던 병력이 한양에 도착했을 땐 6천6백으로 줄어있었다]]
.
.
.
1593년의 4차 평양성 전투에서만 일본군 1만여명이 전사했다는 것은 사실과 다른 것 같습니다.

코니시의 제1군은 일본군들 가운데 맨 처음 조선에 상륙하여 부산진-서평포-다대포-동래성-밀양-상주

충주-임진강-1차 평양성 전투까지 치르며 평양에 이르렀고....

이후 평양에서만 하더라도 조승훈이 이끄는 명군과 2차, 이원익이 이끄는 조선군과

3차전투까지 치렀는데....

18,000명의 병력이 6,600명으로 줄어드는 과정에서 4차 평양성 전투에서만 1만여명이 전사했다면

앞서 벌어진 수많은 전투에서 1군의 누적 전사자수가 고작 1,500명 내외라는 계산이 나오는데

상식적으로 신빙성이 상당히 떨어진다고 봅니다.

코니시의 1군이 평양에 이르렀을 당시에 이미 군세가 1만에도 미치지 못했다는 기록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물론 부산에서 한양을 거쳐 평양에 이르는 과정은 강행군의 연속이라... 평양에 이르기까지의

누적 전사자가 8,000명 이상 발생했다기보다는, 상당수 부상병-낙오병-점령지 잔류병들이

1군의 평양성공략에 맞추어 평양에 도착하지 못한 숫자가 더욱 많을 것입니다!

물론 낙오병-부상병-잔류병들의 상당수는 1차 평양성전투 이후에 합류했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이후에도 2,3차 평양성전투를 치르고, 큐슈출신들이 대부분인 1군 소속 일본군들이 생전 처음

접하는 혹독한 조선의 겨울추위에서 비롯된 상당수 전투불능자들까지 감안하면...

4차 평양성 전투를 앞두고 전투가능한 1군의 총군세는 1만을 크게 넘는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만 3일동안의 4차 평양성 전투에서의 일본군전사자 숫자는 1,300여 명 수준으로

알고 있으며, 이외에 조선군-명군에게 포로로 잡힌 이들이 1,000명 가까이 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요행히 포위망에서 벗어나기는 했지만 평양~한양으로 철수하는 과정에서 부상병들의 상당수가

아사-동사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따라서 결론적으로 살펴보자면 전사자-포로-동사자-아사자를 전부 포함한다 하더라도

 4차평양성전투와 평양에서 한양으로 철수하는 과정에서 손실된 총병력수가 4,000명 이상을

넘지는 못할 것입니다.
국산아몬드 17-11-16 21:16
   
명의 활약은 저게 다죠
뭐꼬이떡밥 17-11-16 22:06
   
전공을 올리기 위해 수급을 벱니다..

명군의 경우... 자신의 전공을 올리기 위해 민간인의 수급도 베어버린건데.
명군은 명왕에게 전과를 보고해야 하기 때문이죠.

명왕이 평양성에 올것도 아니고.
군감만 눈감아 주면
적 1만명을 베었다는 전공이 양민1만을 베에서 적2만을 베었다
라는 전공이 됩니다
일반 무사에서 부터 부풀리기가 이루어지면 저렇게 어이없는 일이 발생하지요
또한 목을 베면서 약탈도 해야하니까요 

그럼 품계도 올라가고 공적도 올라가지요.

전사자 1만은...
전사1만이 생기면 전투 수행이 불가능해집니다.
1만이 죽을 만큼 치열했다면 부상자는 얼마나 많이 나오겠습니까...

그냥 군감이 눈감아주고 전공 부풀리기였을 겁니다

일본에서 가장 치열했다는 가와나카지마 전투의 양쪽 사상자가 40여 프로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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