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티
스포츠
토론장


HOME > 커뮤니티 > 동아시아 게시판
 
작성일 : 17-11-11 00:02
[한국사] 7000명 vs 15700 1차 금산 전투
 글쓴이 : 레스토랑스
조회 : 839  

http://image.fmkorea.com/files/attach/new/20171110/486263/789752372/832742142/a6ca6118373fb5e0eb020015fc49e1f9.JPG

1592년 음력 7월10일

1차 금산 전투

 

음력 7월8일

전라도의 공략을 위해 전주성을 향하던

고바야카와 다카카케가 이끄는 왜6군은

웅치고개는 뚫는 것까지는 성공하였으나 피해가 심하여 후퇴하였고,

이치고개 역시 쉽사리 뚫지 못하다가

도바야카와가 어떠한 급보를 전해듣고서는 철수를 시작했다

 

고바야카와가 전해들은 급보.

의병장 고경명과 전라병사 곽영의 연합부대가

금산성을 노리고 있다는 보고였다



http://image.fmkorea.com/files/attach/new/20171110/486263/789752372/832742142/5f798a8820e5b64f5133e7cfcf755c35.JPG

고경면.

서인의 유력자였던 그는 1591년 동래부사에 제직 중이었으며,

같은해 서인의 대표격 인물 중 한 명인 정철의 건저의 사건으로 인하여

서인이 몰락할 때 관직을 내려놓고 낙향한 인물이다

 

그는 전쟁이 발발하고 조정이 급히 파천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분개하여 의병을 모집하여 의병대를 만들었다



http://image.fmkorea.com/files/attach/new/20171110/486263/789752372/832742142/99b983892094b5c6d2fc3736e15da7d1.JPG

 음력 7월 9일

고경명이 이끄는 의병대는 무사히 전라 병사 곽영의 관군과 합류하여

금산성을 포위하였다

의병대의 6000과 관군 1000이 합쳐 약 7000여명의 부대였다

 

왜군은 산발적으로 성을 빠져나와 조선군과 교전을 벌였으나

그 규모는 미미했으며

양군 모두 큰 성과 없이 9일이 지나갔다



http://image.fmkorea.com/files/attach/new/20171110/486263/789752372/832742142/4ee1899d14ee9efb22e05b6332dd740e.JPG

음력 7월10일

왜6군이 전주성 공략을 포기하고 웅치와 이치에서 모두 철수한 사실을 접한

전라 병사 곽영은 고경명에게

불필요한 전투를 피하고 자신들 역시 철수하자고 건의하였다

 

하지만 고경명은 곽영의 철수 제의를 거부하고 부대에게

공격을 명하였다

 

고바야카와는 의병대와 관군의 진영을 살핀 후

관군의 수가 훨씬 적다는 사실을 간파하여

곽영의 부대를 집중공격하였다

곽영의 조선군은 얼마지나지 않아 붕괴하였으며

곽영은 그대로 후퇴해버리고 말았다

 

고경명은 의병대 역시 후퇴하여야 한다는 부하의 말을 무시하고

계속해서 공격을 지시했다

결국 고경명이 전사하며 의병대 역시 완전히 무너졌고

막내아들 고인후 역시 전사하였다

 

남은 부대는 고경명의 장남 고종후가 수습하여 후퇴하였으며,

부대를 재정비한 이후 금산성으로 돌아왔을 때는

왜6군은 이미 성을 버리고 철수한 이후였다

 

고종후는 자신의 부친과 동생을 비롯한 조선군의

장례를 치른 후 남은 의병대를 이끌고 금산성을 떠났다


고경명은 훗날 임진사충신으로 추대되어 그 명예를 높였으며

그의 행동은 고바야카와의 철수를 유도하여

 결과적으론 전주성을 구한 것이 되었지만,

직접적인 전주성 방어작전(웅치,이치 전투)에 불참한데다가

쓸데없는 전투로 병력을 분산, 괴멸시켰다는 비판은 피할 수 없었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가생이닷컴 운영원칙
알림:공격적인 댓글이나 욕설, 인종차별적인 글, 무분별한 특정국가 비난글등 절대 삼가 바랍니다.
자기자신 17-11-12 02:38
   
일본군도 사기가 많이 떨어졌다고 하네요 이전투에서 의병들도 저항이 만만치 않았다는 소리죠
 
 
Total 19,980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공지 [공지] 게시물 제목에 성적,욕설등 기재하지 마세요. (11) 가생이 08-20 85695
2484 [한국사] 마한이 한성백제에게 먹힌 이유 마마무 06-01 1212
2483 [한국사] 조선시대 희대의 간신, 역적 김자점 (3) 레스토랑스 11-10 1212
2482 [한국사] 임나와 가야는 같은 용어인가? 2 두가지 입장 정리(문… (1) history2 04-10 1212
2481 [한국사] 1853년, 조선에 처음 온 미국인 (조지 클레이턴 포크) … mymiky 06-03 1212
2480 [기타] [임진왜란41] 이게 진짜 진주성 전투다.(황진vs일본 역… (2) 관심병자 12-05 1212
2479 [중국] 임나는 가야가 아니다 기믹한야기 11-26 1212
2478 [한국사] 발해의 통설 영토로 본 방의 개념 위구르 08-09 1212
2477 [한국사] 신라의 대륙영토, 영해군사와 청해진 (2) 파스크란 07-04 1212
2476 [다문화] 자라나는 어린이에게 하고픈 말이 있습니다. (2) 필립J프라… 05-04 1211
2475 [한국사] 노답 인간이 많네요 과학적인 연구결과를 증명해도 … (23) 연개소문킹 02-23 1211
2474 [기타] 황족 흥영군 이우왕자 관심병자 08-26 1211
2473 [한국사] 한국전쟁의 숨은 Boss (2) history2 04-15 1211
2472 [기타] 인도땅 지명과 한국의 지명 비교 조지아나 01-13 1210
2471 [한국사] 고구려 평양성(장안성) 입지의 절대적 조건 (13) 지수신 04-25 1210
2470 [한국사] 대한민국에는 대한민국을 위한 역사학자가 없다. (1) 스리랑 01-05 1210
2469 [한국사] 임둔태수장(臨屯太守章 ) 봉니(封泥)의 발견에 대하… (7) 지누짱 04-27 1210
2468 [한국사] 仇台의 정체는 무엇인가? 1 지수신 07-12 1209
2467 [북한] 김정은이 받은 선물 목록을 보니...금술잔,비단,낙타… (1) 돌통 05-14 1209
2466 [북한] 김일성의 항일투쟁중 올기강 전투.. 돌통 06-23 1209
2465 [기타] 문왕, 고구려 유민 이정기에게 전략물자인 말을 공급… 관심병자 07-17 1209
2464 [기타] 안녕하세요 (2) 슬퍼하지마 03-01 1208
2463 [한국사] 유사역사학은 어떻게 대중에게 다가갔는가? (5) 고이왕 06-19 1208
2462 [기타] 유라시아에 흩어져 있는 단군의 흔적 관심병자 07-26 1208
2461 [한국사] 삼한과 진왕의 수수께끼 (3) 감방친구 07-28 1208
2460 [한국사] 낙랑 관련 삼국사기 사료의 교차검증 19건 (1) 도배시러 08-14 1208
2459 [기타] 인하대 고조선연구소 동북공정 왜곡 대응 연구소로 … 인류제국 01-29 1208
2458 [세계사]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1) 가이눈팅 05-20 1208
 <  641  642  643  644  645  646  647  648  649  65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