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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11-07 07:56
[한국사] 백제의 예씨는 가야계??
 글쓴이 : 고이왕
조회 : 996  

* 이 글의 내용은 《백제와 금강》에 실린 강종원 저 〈백제 대성귀족의 형성과 금강유역 재지세력〉에서 발췌한 것임을 미리 밝힙니다.


 

예군 묘지명 덮개


(전략) 예씨에 대해서는 그동안 주목하지 않았으며, 성씨에 대해서조차 의문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최근에는 예식진(禰寔進)이라는 인물의 묘지가 알려지면서 사료적 가치가 부각되어 소개되었다. 특히 예씨는 출자가 웅천인(熊川人)으로 기록되고 있어 웅진지역과의 관련성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중략)


먼저 예식진의 경우 묘지의 내용에 따르면, 출자(出自)는 백제 웅천인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조부(祖父)는 좌평 예다(譽多), 부(父)는 좌평 사선(思善)으로 조부로부터 대대로 좌평의 직을 지낸 고위귀족이었던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이 내용이 사실이라면 그의 가문은 백제에서 유력한 귀족가문이었으며, 재지기반은 웅천 즉, 웅진지역으로 추정할 수 있다. 그런데 예씨는 『삼국사기』 백제본기에는 전혀 등장하지 않으며, 신라본기 문무왕 10년 7월조에 예군(禰軍)이라는 인물, 그리고 『구당서』 소정방전에 예식(禰植)이라는 인물이 확인된다.


예식은 대장(大將)으로 기록되고 있는데, 660년 사비도성이 함락될 당시 북방성인 웅진성으로 피신한 의자왕을 비롯한 태자, 그리고 많은 고위귀족들을 데리고 사비성으로 와서 항복한 인물이다. 이때 예식은 단지 대장으로 보이는 기록이 『삼국사기』 권5 신라본기5  태종무열왕 7년 7월조에 보이고 있다. 내용을 보면, 의자왕과 태자, 그리고 웅진방령군 등이 웅진성으로부터 항복해 왔다는 것이다.  이들 내용을 비교해 볼 경우 소정방전에 보이는 대장 예식이 바로 의자왕과 함께 항복해온 웅진방령군의 책임자인 웅진방령(熊津方領)일 것으로 보는 견해가 일반적이다. 그런데 이 웅진방령인 예식이 예식진과 동일인물로 추정된다. 예식진이 당에 건너가 짧은 시일에 대장군의 지위에 오를 수 있었던 점은 바로 백제에서 일정한 공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다. 이는 충분히 설득력이 있는 견해라고 하겠다.


이 외에도 예씨로 예군(禰軍)이라는 인물이 보이고 있다. 670년에 백제인들의 봉기를 염려하여 대아찬 유돈을 웅진도독부에 보내 화친을 청한 일이 있었다. 이때 도독부에서는 거절하면서 사마(司馬) 예군(禰軍)을 보내어 신라의 내부를 염탐하게 한 일이 있었는데, 신라에서 예군을 붙잡아 두었다가 문무왕 12년인 672년 신라 사신과 함께 당시 억류하고 있었던 당의 포로들과 예군을 당에 보냈던 것이다. 그런데 이미 예군은 왜에 사신으로 간 기록이 확인된다. 『선린국보기』에 의하면, 이때 예군은 백제 좌평을 칭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들 기록을 통해 볼 때 예군이라는 인물은 당의 웅진도독부 사마의 직을 띠고, 동시에 백제의 구관등인 좌평을 칭하면서 당의 백제고토 지배에 참여하여 신라와 왜 등에 특정한 임무를 띠고 파견되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이와 같이 예씨는 백제멸망기에 활동한 내용이 일부 확인되고 있는데, 그들이 칭한 관등을 통해서 볼 때 상당한 정치적 위상을 가진 유력한 귀족세력이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그런데 예씨가 웅진지역에 재지기반을 가진 유력한 귀족세력이었다고 한다면 웅진천도 이후 기록에 나타나고 있지 않은 점이나 예식진의 주보나 부가 좌평의 직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대성귀족의 반열에 들지 못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 활동상이 전혀 기록되고 있지 않은 점은 의문이다. 이는 예식진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다만 예군의 경우에는 웅진도독부체제 하에서 백제의 구관료층으로 주도적인 활동을 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예씨가 칭하고 있는 좌평의 관등이 백제멸망 이전에 국가로부터 공식적으로 수여된 것인지에 대해서는 별도의 검토가 필요하다.


특히 예군의 경우 좌평의 직은 백제멸망 이후에 칭한 관등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되며, 예식진의 조부와 부가 띠고 있는 좌평의 관등 역시 그 사실성을 확인할 길이 없다. 오히려  예식진이 당에 건너간 이후 자신의 가문을 격상시킬 목적으로 부회하였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는 백제말기 좌평의 관등이 남발되고 있는 사실과 부흥운동기에 다수의 인물이 자칭 또는 타칭 좌평을 칭한 사례가 참고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예를 들자면, 의자왕 17년 왕서자 41인의 좌평임명이라든지, 또는 660년 9월 부흥운동기에 귀실복신이 은솔의 관등을 띠고 있었으나 그 해 10월에는 좌평의 관등을 띠고 있으며, 사람들이 복신과 여자진을 높여서 "좌평 복신 좌평 자진"이라고 하였다는 점 등이 그것이다.


다만 흑치상지의 가문이 대대로 달솔을 지냈다는 사실과 비교해 볼 때 웅진방령일 가능성이 높은 예식진의 존재를 통해 백제말기 예씨세력의 정치적 성격을 추정해 볼 수 있는데, 만일 대대로 좌평을 지냈다고 할 경우 상당한 정치적 위상을 지닌 귀족가문이었을 가능성은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대성귀족이 한성기에 이미 그 존재가 확인되지 있거나 재지기반이 형성된 점으로 볼 때 예씨의 경우에는 전혀 그 존재가 확인되지 않아 웅진지역의 토착세력으로 이해하기에 곤란한 점이 있다.


다만 예씨와 굳이 관련지어 본다면, 이(爾)씨의 존재가 확인될 뿐이다. 『일본서기』 신공기 46년조에 보면 백제가 탁순을 보내 왜와 통교를 맺는 내용이 보인다. 이때 왜인 가운데 겸인(傔人)으로 이파다(爾波多)가 보이는데, 탁순인과 함께 백제에서 파견된 것으로 기록되고 있다. 그렇지만 당시 가야에서 왜의 활동을 백제의 활동으로 볼 경우 이 인물을 가야인 내지는 백제인으로 볼 여지가 있는 것이다. 또한 『일본서기』 신공기 62년조의 백제기 내용 가운데 백제에 귀부해 온 가야인 가운데 가라국왕을 포함해 이문지(爾汶至)라는 인물이 보인다. 가야지역은 근초고왕대 백제와 정치적 예속관계가 형성되었는데, 가야인이 백제에 귀부해 올 수 있었더 것은 그 때문이었다고 하겠다.


이들 2인의 경우 1인은 왜인, 1인은 가야인으로 기록하고 있지만 실제는 모두 가야인이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 경위 爾(이)가 禰(니)와 음상사한 점에서 관련이 있다고 할 경우 예씨는 가야계 귀화세력이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겠다. 이에 필자는 예씨를 가야계로서 언젠가 공주지역에 정착한 세력일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자 한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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