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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11-05 13:09
[한국사] 탄금대 전투
 글쓴이 : 레스토랑스
조회 : 1,000  

http://image.fmkorea.com/files/attach/new/20171105/486263/789752372/826963474/99b983892094b5c6d2fc3736e15da7d1.JPG

1592년 음력 4월 28일

탄금대 전투

 

3일전인 음력 4월 25일 있었던

상주전투가 허망하게 패전하고 경상도가 완전히 적의 손에 넘어갔다

도순변사 신립은 조선 팔도의 마지막 희망이었다

 

도순변사 신립,

자타공인 조선 최강의 맹장으로 칭송받던 그는

북방에서 여진족과의 싸움에서 엄청난 활약상을 쌓아왔으며,

조선 건국이래 최고의 위협이었던 여진족 니탕개의 난도

큰 공을 세우며 진압하는 등 선조의 총애도 한 몸에 받던 장수였다

 

1591년, 왜의 침공 분위기가 조선을 무겁게 짓누를때

비변사와 신립은 조선 수군을 폐하고 육군을 집중 육성하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유는 왜구들은 수전에 강하고 육전에 약하다는 이유였다

흐르는 역사를 모두 알고 있는 현대인들은 이는 완전히 잘못 짚은 것을 알고 있지만

당시 비변사와 신립의 판단은 정당했다

을묘왜변 당시, 판옥선이 아닌 맹선을 주력으로 사용하던 조선 수군은

재빠른 왜구들의 선박들을 따라잡지 못했으며, 소규모 교전에서도 계속해서

피해를 강요받았었다

하지만 왜구들이 상륙했을때는 조선육군이 왜구들을 압도하였었다

후에 개발된 신형 전함 판옥선 역시 흥양왜변에서 별다른 성과를 보이지 못한 것이

이런 판단에 더욱 부채질을 가하였다

따라서 비변사와 신립은 수군을 폐하여야 한다고 주장하였지만

당시 전라좌도 수군절도사 이순신의 극렬반대로 인해 겨우 무산되었다

 

이렇듯 신립의 전략 전술에 대한 시각은 순변사 이일보다도 못한듯 보였지만,

그 무력만큼은 조선 최고임은 그 누구도 부정하지 못하였다

허나, 이번의 상대는 한낱 왜구들이 아닌 10년여간의 경험을 쌓은 노련한 왜군이었다



http://image.fmkorea.com/files/attach/new/20171105/486263/789752372/826963474/9edb31e0f2544c152d33b0b4391ed372.JPG

1592년 음력 4월 28일

탄금대 전투

 

3일전인 음력 4월 25일 있었던

상주전투가 허망하게 패전하고 경상도가 완전히 적의 손에 넘어갔다

도순변사 신립은 조선 팔도의 마지막 희망이었다

 

도순변사 신립,

자타공인 조선 최강의 맹장으로 칭송받던 그는

북방에서 여진족과의 싸움에서 엄청난 활약상을 쌓아왔으며,

조선 건국이래 최고의 위협이었던 여진족 니탕개의 난도

큰 공을 세우며 진압하는 등 선조의 총애도 한 몸에 받던 장수였다

 

1591년, 왜의 침공 분위기가 조선을 무겁게 짓누를때

비변사와 신립은 조선 수군을 폐하고 육군을 집중 육성하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유는 왜구들은 수전에 강하고 육전에 약하다는 이유였다

흐르는 역사를 모두 알고 있는 현대인들은 이는 완전히 잘못 짚은 것을 알고 있지만

당시 비변사와 신립의 판단은 정당했다

을묘왜변 당시, 판옥선이 아닌 맹선을 주력으로 사용하던 조선 수군은

재빠른 왜구들의 선박들을 따라잡지 못했으며, 소규모 교전에서도 계속해서

피해를 강요받았었다

하지만 왜구들이 상륙했을때는 조선육군이 왜구들을 압도하였었다

후에 개발된 신형 전함 판옥선 역시 흥양왜변에서 별다른 성과를 보이지 못한 것이

이런 판단에 더욱 부채질을 가하였다

따라서 비변사와 신립은 수군을 폐하여야 한다고 주장하였지만

당시 전라좌도 수군절도사 이순신의 극렬반대로 인해 겨우 무산되었다

 

이렇듯 신립의 전략 전술에 대한 시각은 순변사 이일보다도 못한듯 보였지만,

그 무력만큼은 조선 최고임은 그 누구도 부정하지 못하였다

허나, 이번의 상대는 한낱 왜구들이 아닌 10년여간의 경험을 쌓은 노련한 왜군이었다



음력 4월 26일

 

북방에서부터 따라온 신립 장군 직속의 정예 궁기병대와 한양에서 지원받은 병력이 도합 8천

남하하며 꾸준히 모병한 병졸의 수가 대략 8천

총합 1만 6천의 대군이 충주에 도착하였다

이는 당시 조선이 전쟁 발발 초기 수십일 안에 가용할 수 있는 최대의 병력이라 하여도

 과언이 아니었다

 

종사관 김여물이 지형이 험한 조령(문경새재)에서 싸울 것을 권했으나

신립은 자신의 기병대가 충분히 활약할 수 있도록,

산세가 험한 조령이 아닌 충주성 옆의 평야지대인

달천 평야를 격전지로 선정하였다

 

그가 이런 결정을 내린 이유는 기마대의 활약을 기대한 것도 있지만,

조령(문경새재) 이외의 진격로 역시 왜군의 위협을 받고 있었으므로

그로서는 최대한 단기간에 고니시 유키나가의 군세를 깨부수어

방어작전에 시간을 크게 할애하지 않고,

다른 왜군 부대를 요격하려 하였기 때문이다

근세시대의 기마병과 일반 보병의 전력비는 약 3:1

대부분의 병력이 보병이었던 왜군과 비교해보면

겉으로 보기엔 조선군의 우세였다

 

일반적이라면, 그리 틀린 판단은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결국 틀린 판단이었다

 

달천평야는,

질척질척한 논두렁이었다

 

거기다가 왜군이 조령을 넘었다는 보고를 올린 군관을

그냥 처형해버렸다는 기록 또한 존재한다

왜군이 다른 진격로를 통하여 충주로 진입하여

포위될 것을 걱정하던 자가 저질렀다고 보기엔 이상한 일이었다

 

이는 상주전투에서 이일이 어쩔 수없이 농민을 처형한것과는 대비되는

이해할 수 없는 처사였다

 

거기다가 자신의 선배이자, 상주에서 왜군과 직접 마주친

순변사 이일의 조언을 싸그리 무시한다

이일은 북도 제승방략제를 재정리하는 등 전략 전술에도 조예가 깊었고

 실력 또한 자신과 비등하면 비등했지

결코 부족한 자가 아니었던 만큼 결코 이일의 조언은 무시할 수 있는 조언이 아니었다

 

그 실력과는 별개로,

굉장히 거칠고 오만했다는 신립의 성격이 증명된 것이다



http://image.fmkorea.com/files/attach/new/20171105/486263/789752372/826963474/550e568c9a5aa7f3b346a5fe60310a83.JPG

음력 4월 28일

한반도의 정규군과 일본의 정규군이 맞붙은

몇안되는 대규모 회전이자,

조선군이 시도한 몇 안되는 대규모 회전인 역사적인 전투가 시작했다

 

신립은 자신의 기마대를 좌우로 펼친 반월진으로

고니시의 군세를 포위섬멸하려 시도하였다

 

1차 돌격으로 1천의 기마대가 고니시의 군세를 덮쳤으며,

고니시의 군세는 기병대의 돌격에 결국 후퇴를 감행하였다

 

신립은 이 기세를 몰아 고니시의 군세를 섬멸하려 하였다

그는 눈 앞의 7천의 고니시부대만이 적의 주력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전장의 좌우에서 소 요시토시와 마츠라 시게노부의 매복병이 등장하였다



http://media.fmkorea.com/files/attach/new/20171105/486263/789752372/826963474/36055d121d50097cc5d7d9b30f45c209.GIF

신립은 2차 돌격을 통해

적부대를 뚫으려 시도하였으나,

그렇지 않아도 돌파력이 약한 궁기병대인데다가

질척질척한 땅에 의해 돌격력이 순식간에 저하되었고

결국 조총병들의 사격에 의해 큰피해를 강요받는다

 

신립은 결국 충주성으로 후퇴하려 하였지만,

아리마 하리노부가 이끄는 별동대가 이미 성을 점령한 이후였다



http://image.fmkorea.com/files/attach/new/20171105/486263/789752372/826963474/252e3f4656c3d557b4ff424a2bc13570.JPG

이후의 전투는 일방적이었다

조선군은 북쪽으로 하염없이 밀려 탄금대에 도달했으며

신립은 마지막에 수십의 왜병을 도륙하였으나 끝내 전사하였으며,

종사관 김여물 역시 전사하였다

 

신립의 1만 6천의 부대는 전멸했다

군사학상에서 말하는 30%의 전투불능이 아니다

99%의 병력이 전사한, 말그대로의 전멸이었다

 

선교사 루이스 프로이스의 기록에 의하면

"조선의 상급병사들은 매우 용감하고 대담했다. 조선의 장수 하나를 생포하였는데, 석방을 약속하자

오히려 자신의 목을 베라 하였다. 결국 그 요구에 응하여 목을 베었다"

라고 한다

이 장수는 충주목사 이희립으로 추정된다

 

신립의 부대가 너무 빨리 궤멸되는 바람에 북상 중이던

 전라도의 병력은 합류조차 하지 못하였다

 

조선의 최종방어선이 무너졌고,

조선의 희망 역시 무너졌다

 

낙담에 빠진 선조와 조정은 결국 몽진을 택하게 된다

기나긴 7년 전쟁이 시작하게 된 결정적인 전투였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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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창 17-11-05 13:28
   
신립은 그냥 단순 무인일 뿐이지...군을 이끌만한 장군감은 못되었죠.
군은 싸움 잘한다고 이끄는 게 아니라...전략 전술에 밝아야 이끄는 거...
촐라롱콘 17-11-05 13:38
   
그런데 신립과는 불과 며칠 상관 사이에 한양에서 출발했던 이일은 온갖 잡병들 머릿수만 채워

그러고도 겨우 300명을 채울까말까한 상태로 경상도 상주를 향해 출발해야 했는데....

신립이 한양에서부터 무려 8,000명을 이끌고 충주로 남하했다는 기록은 상당히 의문이 갑니다.

물론 신립의 위세가 이일보다는 격이 좀 더 높은 도순변사의 위치이고, 국왕인 선조와는 사돈지간이라

더욱 총애를 받았다고는 하지만.... 따라서 이일보다는 상대적으로 더욱 많은 군관과 병력을 동원했겠지만...

제가 알기로는 신립이 한양에서부터 데리고 갈 군관 80명도(충청도 현지에서 모병한 충청군들을 인솔할 목적

의) 겨우 숫자 채워서 충주로 내려갔을만큼 상황이 안좋았다고 알고 있어서요....!!!
     
자기자신 17-11-06 02:42
   
농민들까지 동원된 병력이예요 한마디로 급하게 부랴부랴 모은것죠
ultrakiki 17-11-05 15:33
   
징비록에 써있는데로

유성룡이 걱정한 이유가 있지요.
뭐꼬이떡밥 17-11-05 15:53
   
정말 저렇게 싸웠다면 까일게 아니라 ....

역적이라고 봐야지요...

옆에 충주성 후방에 강이라면.

당연히 충주성의 농성군과 연계해서  충주성이 공격당할때 뒤에서 기병으로 왜군 본진이나  후방의 예비군을 치는 계략을 가졌어야.

그렇게 하는것만으로도 조총의 숫자를 분산시켜 충주성의 농성이 쉬웠을것임.

또한 충주성이 함락된다 하더라도 남한강에서 다시한번 적과 대치해 시간을 벌수 있었음.

저런 절술을 썼다면 정말... 제가 알고 있는 그 누구보다도 어리석은 전술이네요

조선의 무다구찌 렌야 임... 그나마 전선에서 죽어서 다행
astraea 17-11-05 16:08
   
삼포왜란등을 거치면서 진관체제에서 제승방략으로 조선의 방어전술이 바뀌면서 임진왜란때 결국 어마어마한 피해를 입게되었죠.
싸그리 모은 병사들이 탄금대전투에서 한번에 전멸해버리니 더이상 일본이 북진하는데에있어 걸림돌이 없어져버려서...
그나마 전라도군이 늦어서 신립의 본대와 합류못한게 훗날 불행중 다행으로 적용됐죠.
포미 17-11-05 19:32
   
인간은 누구나 잘 하는 것으로 일을 하려고 합니다.

신립은 말보다 말타는 걸 먼저 배운다는 여진족의 공격을 기마로 싸워 이긴 장수입니다.

조총이란 새로운 전술을 접한 적도 없고요.

뭐랄까......?

그렇게 될 수 밖에 없어서 그리 된 거라고 밖에는.......
관심병자 17-11-06 10:11
   
지금 기준으로 보면 배수의 진을친 신립의 전략적 유연성이 부족했다고 할수있겠지만,
당시 사람들 기준으로서는 신립의 판단이 틀렸다고만은 할수 없습니다.
근대의 한국전쟁때도 중공군의 반격에 미군은 다시 수도 서울을 내주고 뒤에서 유리한 위치에 방어선을 형성하려 했었는데, 한국군과 한국정치인들이 이에 반발하며 수도를 사수하기를 원했습니다.
결국 미군이 한국의 요청을 받아들여 엄청난 화력을 쏟아부어서 중공군에게 서울이 다시 넘어가는것을 막았었죠.
근대의 수도에 대한 한국인의 정서도 이런데 몇백년전의 정서도 크게 다를바 없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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