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이순신은 일본 대마도방면에서의 일본군의 침입을 가장 먼저 발견할 수있는
경상좌수영의 수사가 아니라...
부산방면에서는 상당히 떨어진 오늘날의 여수에 위치한 전라좌수영의 수사였기 때문에
이순신 독단으로 일본군들이 부산에 상륙하기 전에 막아내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규모로 보더라도 적어도 당시 경상-전라-충청의 삼도수군 주력군들이 모두
부산앞바다 인근에 대기하고 있어야 일본군들의 상륙을 저지할 수 있었을 겁니다.
이순신이 아무리 명장이라지만...그도 명량해전을 제외하고는 언제나 일본수군보다 우세한
전력과 유리한 전장에서 일본군과 수전을 벌였습니다.
훗날 정유재란 초기 결과적으로는 코니시의 이간책이기는 했지만..
코니시와 앙숙인 가토키요마사가 조선에 들어오는 날짜와 경로를 코니시측이
조선측에 정보를 흘리기도 했지만...
물론 적의 이간책임을 의심해서 이순신이 출정하지 않은 측면이 가장 크지만
무엇보다도 예상되는 전장 자체가 이순신이 판단하기에는 유리하지 않았던 측면도
있습니다.
군대 다녀온 분들이니 다 아실 겁니다
ㅡ 명령ㆍ지휘체계의 기능상실
ㅡ 지휘자의 무능과 불충
ㅡ 전투자원들의 전투경험 전무, 오랜 평화
ㅡ 조선군 대부분이 농민
ㅡ 일본군은 오랜 내전으로 전투 및 살육 경험 풍부
ㅡ 즉 전투공포에 둔감
ㅡ 일본군의 대규모 기습적 침략
ㅡ 조총부대를 상대한 전투경험 전무
임진왜란 초기 한반도 남부의 전투는,
현대로 치면 민방위, 예비군, 경찰들로 정규군과 싸운격입니다.
한반도는 옛부터 중원과 북방의 몇만 몇십만의 병력과 교전했었지 남쪽에서는 겨우 해적떼들과의 전투만 했으니 당연히 남쪽엔 제대로된 병력을 배치할리가 없었습니다.
명이 개입한후,
명군이 왜군을 얕보다 크게 깨지고 현상유지만 하려고 할적에 앞장서서 왜군과 싸워 격파하고 다닌것이 조선군입니다.
임진왜란은 조선이 승리한 전투입니다.
2차대전 소련은 독일에 비해 몇배나되는 치명적인 인적, 물적 손실을 입었지만 소련이 승리했다고 기념하고 자축합니다.
왜 우리는 이기고도 우리측 피해도 컷으니 패전처럼 생각하며 이겨도 이긴게 아니라는 이상한 논리가 떠돌아다니는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