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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11-03 13:05
[한국사] 진한(辰韓)의 위치에 대한 단서
 글쓴이 : 감방친구
조회 : 1,192   추천 : 0   비추천 : 0  

저는 요새 고려사, 요사 등 여러 사서에서 압록강, 내원성, 보주성 등을 찾아보는 것을 일삼아 하고 있는데요

그러던 차에 진한의 위치를 알려주는 단서가 될 기록을 발견했습니다.

저는 요서지역의 변한, 만주의 진한, 한반도의 마한의 삼조선설을 내심 고수하고 있고 이곳에서 조금씩 피력해 왔습니다.

또 이와 함께 주체가 동호로 비정되는 BC 8~7세기 하가점상층문화의 주체가 실은 부여와 관련이 있다고 보고 이 시기 이후에 흉노의 동진ㆍ남진, 중원계 세력의 북진ㆍ동진에 따라 이 두 세력이 각축을 벌이면서부터 한ㆍ위만조선 전쟁에 이르기까지 그 여파가 변한의 와해, 하가점상층세력의 와해 및 동진(부여)을 야기했고 나아가 한반도에 새롭게 삼한이 재배치 되게 한 결과로 이어졌다고 개인적으로 추정해온 처지입니다.

그러던 차에 다음의 기록을 발견했습니다. 물론 이미 아시는 분도 계시겠지만 옮겨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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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遼史』卷38 志8 地理志2 東京道 辰州, 奉國軍

辰州, 奉國軍. 節度. 本高麗蓋牟城. 唐太宗會李世勣攻破蓋牟城, 卽此. 渤海改爲蓋州, 又改辰州, 以辰韓得名. 井邑騈列, 最爲衝會. 遼徙其民於祖州. 初曰長平軍. 戶二千. 隸東京留守司.

진주(辰州) 봉국군(奉國軍). 절도사를 두었다. 본래 고구려[高麗]의 개모성(蓋牟城)이다. 당(唐) 태종(太宗)과 이세적(李世勣)이 모여 개모성을 격파한 곳이 바로 이곳이다. 발해가 고쳐서 개주(蓋州)가 되었다가 또 진주(辰州)라고 고쳤는데, 진한(辰韓)에서 이름을 얻었다. 마을들이 나란히 줄지어 선 가장 요충지가 되었다. 요(遼)가 그 백성들을 조주(祖州)로 옮겼다. 처음에는 장평군(長平軍)이라 하였다. 호수는 2,000이다. 동경유수사(東京留守司)에 예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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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辰州) 봉국군(奉國軍). 절도사를 두었다. 본래 고구려[高麗]의 개모성(蓋牟城)이다. ~ 발해가 고쳐서 개주(蓋州)가 되었다가 또 진주(辰州)라고 고쳤는데, 진한(辰韓)에서 이름을 얻었다."

이 지역에 대한
요나라의 지리정보는 발해의 지리정보를 바탕한것이고
발해는 고구려의 것을 바탕했다 볼 수 있지요.

개모성은 학계에서 소위 통설로써 중국 요령성 심양시에 비정하고 있습니다.
http://m.terms.naver.com/entry.nhn?docId=565819&cid=46656&categoryId=46656

우리가 아는 진한은 남동한, 즉 경상남북도 지역인데 어찌 수천리 떨어진 심양 지역의 행정지명을 진한에서 따서 진주라 할 수 있겠습니까?

게다가 개주라 했다가 진주라 한 것은 발해인데 당시 발해는 신라와 대척 관계요 신라의 본신이 진한인 것을 모를 리 없을텐데 말이지요

辰, 또는 辰韓은 마한의 辰王과 마찬가지로
만주ㆍ한반도라는 동일 정신문화권에서
마치 춘추시대의 주나라/주왕 같은 의미를 지녔다 추측해 볼 수 있고,

또 무엇보다 심양 지역에 남한의 진한과는 또 다른 진한이 그보다 이른 시기에 존재했을 가능성을 충분히 열어놓고 있는 기록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 지역(고구려ㆍ발해), 그 시대 사람들(발해유민)들이 그 지역이 진한이었다 알고 또 여기고 있었다고 볼수밖에 없지요.

또 이 단서는 다음의 사실(실물)자료와 연결됩니다.
바로 8세기 고구려, 백제 유민의 묘지명 문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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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진 묘지명
扶餘貴種辰韓令族
부여귀종 진한영족
朝鮮貴族
조선귀족

천남산 묘지명
遼東朝鮮人
요동조선인
東明之裔寔爲朝鮮
동명지예식위조선
(동명의 후예가 참으로 조선을 세웠구나)

부여융 묘지명
百濟辰朝人
백제진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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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이는 신라본기의 기록과도 연결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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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사기 제1권 신라본기 제1 시조 혁거세 거서간

朝鮮遺民 分居山谷之間 爲六村 一曰閼川楊山村 二曰突山高墟村 三曰觜山珍支村[或云干珍村] 四曰茂山大樹村 五曰金山加利村 六曰明活山高耶村 是爲辰韓六部

조선(朝鮮)의 유민들이 산골에 나뉘어 살면서 여섯 개의 마을을 이루고 있었다. ~ 이것이 진한(辰韓) 6부가 되었다.

38년(기원전 20) 봄 2월

마한왕의 꾸짖음에 호공이 답한 말 가운데에

我國自二聖肇興 人事修 天時和 倉庾充實 人民敬讓 自辰韓遺民 以至卞韓樂浪倭人 無不畏懷 而吾王謙虛 遣下臣 修聘

우리나라에 두 분의 성인이 출현하면서, 사람은 바르게 되고 하늘은 온화하여, 창고가 가득 차고, 백성들은 서로 공경하고 겸양하니 진한의 유민들로부터 변한ㆍ낙랑ㆍ왜인에 이르기까지 우리를 두려워하지 않는 자가 없습니다.

“辰韓遺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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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는 진한의 위치와는 전혀 다른 곳에서 출자한 고구려와 백제유민이 진한의 영족, 진한조선인(물론 이는 예전에 제가 이곳에 쓴 바가 있습니다만 朝가 조선을 뜻하는 게 아니라 조정, 국체를 뜻한다고 볼 여지도 있습니다만 묘비명에 그런 식으로 쓴 다른 예를 근거로 들어야 할 것이며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진이라는 글자는 부정할 수가 없지요)을 그 근원으로 자처하고 있다는 것은 심양의 진주와 함께 의미심장하다 아니 할 수 없습니다. 고구려와 백제는 모두 부여의 별종이면서 애초에 저 요ㆍ심지역에서 남만주 지역에 이르는 곳에서 갈려나온 나라인데 요사 지리지는 발해 사적을 근거로 그곳을 진한이었다 적고 있으니까요.

신라의 경우도 신라의 바탕이 조선유민이며 그 국초에 나라 안의 진한유민을 언급하고 있는데 유민의 유자가 흐를 류자가 아닙니다만 남을 류자가 그 뜻까지 포괄해 쓰임으로 애초에 그 지역이 진한이라 이름된 것이 요ㆍ심의 진한에서 이주ㆍ망명해온 원조 진한인(중국 진나라가 아니라. 이 기록은 중국사가의 견해로밖에 볼수 없을 정도로 이치와 거리가 있다)들에게서 비롯된 것임을 추정할 수 있지요. 진한ㆍ변한이 애초에 이주ㆍ망명인들에게 마한이 땅을 떼어주면서 형성되었으니까요.

또 세심히 보셔야 할 것이 제가 예전에 쓴 글에서 어느 분이 辰韓遺民은 그저 신라사람, 신라국인을 이르는 말이고 거기에 대대로 살던 조선인들을 이르는 말이다ㅡ라고 주장하셨는데 그 분은 논리적 상상을 확장시키지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ㅡ 진한ㆍ변한이 이주민들에게 마한이 땅을 떼어주고 세금을 받으면서 형성된 사실
ㅡ 신라(서라벌/사로국)은 진한에 속한 나라로 진한지역의 여러 나라 가운데에 맹주국으로서 마한왕을 서한왕(즉 신라왕은 동한왕)이라 이르고 맥국, 옥저 등으로부터 남한왕이라 지칭된 사실로 미루어
ㅡ 또 호공이 한 발언의 문맥을 살펴보면 단순히 자국인을 진한유민이라 이른 게 아니라 당시에 신라의 지배적 영향력 하에 있던 신라국인은 물론이거니와 진한의 여러 소국들을 이르는 것으로 해석하는 게 보다 타당합니다

심양 등지, 즉 만주에 진한辰韓이 자리한 사실이 후에 발해가 그 국호를 대진국으로 삼은 근거, 금나라가 그 국호를 대금국으로 삼은 근거가 되리라 저는 보는 바입니다.

진은 신과 그 음이 같으며 진한을 신한이라고 쓰기도 했던 바가 있고,

조선은 조를 아ㅅㆍ로 풀이할 시 아쉰으로 독음이 가능하고
이는 여진ㆍ만주어에서 금을 애쉰/아쉰/아이쉰으로 한다는 사실과 부합됩니다.

여기에서 다소 비약하여

ㅡ 징키스칸이라는 이름이 진국왕에서 왔다
ㅡ 완안과 왕건, 왕기얀(여진어로 왕), 왕검은 모두 같은 말이다

하는 전원철 박사의 주장에 수긍이 가는 바입니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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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방친구 17-11-03 13:31
   
요서의 변한에 대해서는
발조선, 람국 등을 근거로 추정하고 있습니다만

발은 맥, 백, 막, 박, 불, 부여 등과도 연관되므로 아직은 더 나아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즉 변한의 세력이 하가점상층 및 하북성과 요서 등지에서 활동한 예ㆍ맥 세력이고 또 이들이 후에 남한의 변한세력(가야문화는 부여와 관계가 깊습니다)의 주체요 또 부여와 관계된다는 정도에서 일단 멈추어 있습니다

요서의 변한 세력 일부가 만주 진한지역으로 이동해 정권을
탈취해 진한의 본좌를 자처하다가 이어서 그 자리에 부여가 세워졌거나 부여가 진한을 자처했다 정도에서 추정이 멈춰 있던 상태였습니다
도배시러 17-11-03 16:47
   
앞서 서진동진과 삼한의 교역을 소개 했습니다.
이때 진한 사람들이 서진을 방문 했는데... 삼국사기 신라본기에는 그 내용이 언급되지 않습니다.
서울의 신미제국에서 여러 소국이 모여서 출발했는데, 사로국은 없었다는 말이 됩니다.

추정 3
1. 사로국의 위치는 서울에서 거리가 떨어진 남단이나 북단이라서 오기 힘든 위치
2. 진한은 사로국보다 더 강력한 국가가 있었기에 사로국을 조공대열에서 제외시킴.
3. 마한의 통제를 거부한 사로국은 조공대열에서 제외됨.
     
감방친구 17-11-03 17:41
   
삼국사기는 고ㆍ백ㆍ신을 중심으로 적다보니 여타 공존 발전단계의 소국들의 활동은 수록되지 않았으리라 충분히 생각할 수 있습니다

중국과 일본의 기록에서 그 단편을 모아 취합해 간다면 우리 고대사의 윤곽과 내용이 뚜렷해지고 풍부해지리라 생각합니다

신미제국은 백제가 전라도 지역을 완전 장악하는 4~5세기 이전까지 그곳에 존재한 마한의 잔여세력으로 보여집니다

http://egloos.zum.com/saso8888/v/9947170
          
도배시러 17-11-03 18:29
   
신미제국은 마한의 가장 왕성한 시기를 표방하죠.
서진동진과 잦은 조공무역이 그것을 의미합니다. ~ AD382
삼국시대에 중국과의 조공무역이 가장 왕성했던 시기는 고구려-북위 시절이죠.
하지만 마한의 조공무역 횟수는 고구려 장수왕 다음으로  많죠. 20회

아래 송-고려의 교역에 따른 비용이 어마어마하다고 기록된 글을 보았습니다.
조공무역이라는게 쉬운 일은 아니라 생각되네요.

후손들이 역사기록을 안남겼다고 개무시할까봐 중국인의 손을 빌어 기록을 남긴거죠.
중국과의 거래유물도 많이 남겼지만... 후손들은 백제꺼라 우기는 상황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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