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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10-24 22:28
[세계사] 금나라,청나라를 한국사에 편입해도 될까요???
 글쓴이 : 성물세라핌
조회 : 2,756  

[松漠紀聞]

女眞即古肅愼國也東漢謂之挹婁元魏謂之勿吉隋唐謂之靺鞨
여진즉고숙신국야, 동한위지읍루,원위(북위)위지물길,수당위지말갈.

여진은 옛 숙신족이다.
후한은 읍루라 칭했으며,탁발위는 물길,수당시대에는 말갈로 불리어졌다.

其屬分六部有黑水部即今之女眞
기속분육부,유흑수부,즉금지여진

그 부족은 6부족이며,흑수말갈이 있었으며 여진은 흑수말갈의 후신이다.

唐太宗征高麗靺鞨佐之戰甚力
당태종정고려,말갈좌지,전심력

당태종이 고려를 칠때,말갈족을은 전력으로 당나라를 도왔다.(전투에 온힘을 다했다.)

아니.. 말갈(여진)이 한민족이라고 동질성을 느꼇다면. 왜 이민족인 당나라를 도와서 고려를 쳤을까요??

그리고 제일 중요한 부분

女眞酋長乃新羅人號完顏氏完顏猶漢言女眞以其練事後隨以首領讓之
여진추장내신라인,호완안씨. 완안유한언 "왕"야. 여진이기연사,후수이수령양지.

여진족 추장은 신라인이다.
성은 완안씨이며. 여진어로은 왕기얀이라고 한다.

[金史]

金之始祖諱函普初從高麗來 
금지시조휘함보초종고려래.

금 시조 김함보는 고려에서 왔다.

이러한 기록들이 실재(在)해 있고

뭐 사실은 사실이니 부정은 할수없지만.

단지 소수 지배권력층들이 신라인,고려인의 핏줄이다. 라고 해서

금나라,청나라를 한국역사로 편입한다는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고 봅니다.

그렇게 따지면

동쪽의 일본도 천황가는 본디 백제계핏줄이 짙은데

고대일본역사도 한국사의 연장선이 되는겁니까???

소수의 지배층들이 신라인,고려인 이라는것은 인정합니다.

사실이니까요.

하지만 금나라는 대다수가 漢人들이였고

소수가 여진족이였습니다. 그리고 대다수의 여진족들은 스스로가 한반도와의 연을 그리 중요치 생각하지도 않았습니다.

아주 극히 일부분만이 한국과의 유대감을 느낄뿐이죠.

현재

아키히토 텐노가 한국과의 유대감을 느끼고

자기 자신이 무령왕의 자손이라 말하며

최근 코마진쟈(고구려신사) 까지 참배했으니

전 일본인들이 한국인의 부류에 들어가는것은 아닙니다.

극히 일부분만이 유대감을 느낄뿐입니다.
그밑 대다수 사람들은 별 관심도 없고 신경도 쓰지않습니다.

그리고 동질성을 느끼고 같은민족이라 인식한다면

왜 내내 싸우기만 했을까요?

당시 당나라가 고구려를 칠때

상당수의 말갈족들은 당나라를 도왔습니다.

물론 일부 말갈족들은 고구려편에 붙었고요.

말갈족들은 단지 고구려의 부용세력이였을뿐.

같은민족은 더더욱 아니였다 이말입니다.

물론 유전적으로는 유사하기는 합니다만.

현재 만주족들은 잔존해있고. 

만주족들에게 너희 금나라 청나라는 한국역사다. 라고 하면 어떨까요???

매우 기분이 좋지 않을껍니다.

금청사가 한국역사다.

이건 삐뚤어진 민족주의 이며 국수주의에 불과합니다.

매우 위험한 사상이죠.

후에 이 사상이 군국주의,제국주의로 이어지게 되는겁니다.

결국 일본 군국주의,중국 중화주의랑 다를바가 없게 되죠.

역사를 주관적으로 보지말고,객관적으로 봣으면 하고

일부 소수의 기록들이 몇줄나와있다고 해서 이 기록들만 발췌해

금청사는 한국사다. 라고 주장하는것은 중국놈들이 고구려는 중국역사다 라고 주장하는거와 다르지않습니다. 한국판 동북공정이죠.

금나라는 제2남북국시대고

청나라는 제3남북국시대라 주장하는 사람도 몇몇 보이던데.

이건 마치 환빠와 다를바가 없습니다.

아니. 고구려,발해도 훌륭하고 위대한데

뭐가 아쉬워서 금,청까지 한국사에 편입하려 하는지???

금나라,청나라를 한국사에 편입하기보다는

오히려 한국고대사를 연구해서 잊혀진 역사를 복원하는게 중요한게 아닐까요?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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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배시러 17-10-24 22:39
   
역사적 민족개념에서 속지주의는 무의미 합니다.
고구려 민족 = 말갈, 여진, 예맥
신라 민족 = 연,제,조의 유민... 고조선 유민
백제민족 = 부여의 예맥족
마한, 가야 = 부여족 이외

말갈족이 고구려 민족의 구성원이 아닌가요 ?
     
성물세라핌 17-10-24 22:44
   
말갈족들이 고구려,발해의 민족 구성원은 맞습니다만

부용세력이며 지배당한 세력이죠.

그렇다면..

일본제국 민족의 구성원은 조선인,북중국인,남중국인,대만인,오키나와인 다 포함됩니다만?

예맥족들이 다수의 말갈족을 지배하고 억압한게 고구려입니다.

말갈족들은 피지배민족이며 늘 고구려에게 이를 갈았겠지요.

식민지시대에 조선인들이 일본놈들보며 이를 갈았듯이 말이죠.

속지주의를 따지는게 아닙니다.

고구려를 실질적으로 다스린건 예맥족이며
그외 다수 피지배계층들은 말갈인들이였죠.

그렇기에 고구려는 한국사이고,금나라는 만주사 입니다.

지배계층이 다르기때문이죠.

고구려는 예맥족이

금,청은 소수의 만주족들이 다수의 한족들을 지배했기때문에 만주역사 입니다.
          
도배시러 17-10-24 22:47
   
금나라 지배계층은 신라인이라면서요 ?
               
성물세라핌 17-10-24 22:52
   
이것은 성격이 좀 다릅니다.

금나라 지배계층이 신라인이 아니라 신라系입니다.

신라혈통이죠.

완벽한 신라인 그 자체는 아니라 봅니다.

게다가 여진족들은 스스로 한민족과의 동질성을 느끼지도 느낄필요도 없었습니다.

왜냐면 그들은 정통성을 내세우기 위해서 신라를 띄워줘야했고

결국 신라는 이용하는 카드에 불과한겁니다.

신라인이 아닌 신라계고.

단지 여진어를 쓰는 신라계일뿐.

그렇게 따지만 한국계 미국인은 어느나라 사람일까요?

미국인이겠죠?

단지 혈통만 한국피만 흐르는거지. 국적은 그나라사람인겁니다.

신라인,신라계 구분좀 하셨으면해요.

물론 위의 기록들 발췌해 보더라도

신라인 이라고 표기는 되어있지만. 신라계 라고 표기하면 이상하지 않나요?

실제적으로

신라계 여진인 이였지. 완벽한 신라인이 아니였지요.
          
도배시러 17-10-24 22:53
   
발해의 지배층은 고구려인이네요
               
성물세라핌 17-10-24 22:54
   
네. 맞습니다.
도배시러 17-10-24 22:56
   
고구려 800년? 기간에 말갈을 고구려 지배층이 차별했다는 기록은 못 봤습니다.
대무신왕때 백인종 괴유를 중용하것은 보았구요.
중국에서 난리로 피난온 사람들을 내치는 경우도 없었습니다.
그렇게 800년을 함께 하면 역사민족이 되는것 아닐까요 ?
     
성물세라핌 17-10-24 22:58
   
800여년간 함께 했다고 할지라도.

말갈은 단지 고구려의 부용세력이였을뿐. 그이상 그이하도 아니였습니다.

그렇다면 왜 송막기문에서는 말갈족들이 당나라군대에 합세해 왜 고구려를 쳤을까요?

말갈족들은 힘있는자에게 붙는 박쥐와 같은 존재들입니다.

현 좆족들과 마찬가지죠.

고구려지배층들이 차별하지 않았다. 이러한것은 고구려가 나라를 다스리는 방법일뿐.

아 근데 의문인게 왜 800년이죠?

고구려역사는 700년인데 말이죠???
성물세라핌 17-10-24 22:56
   
결론은 고구려,발해는 명명백백히 한국역사이며

금나라,청나라는 명명백백히 만주역사 입니다.
     
도배시러 17-10-24 22:58
   
발해도 고구려계 지배층이라고 중국이 우기면요 ? 금나라는 신라계 지배층이고...
          
성물세라핌 17-10-24 23:00
   
현재.

고구려,백제(부여) 후손들이 명백히 한반도 땅에 실존해있는데.

중국이 우겨봐야 별 효과도 없습니다. 중국놈들의 억지에 불과하죠.

또,

현재,만주족들이 아주 미미하게나마 현존하고있습니다.

만주족들이 아예 없다면 모를까 눈을 부릅뜨고 살아있는데.

중국은 지금 어거지로 속지주의 역사관으로 우기는겁니다.
성물세라핌 17-10-24 23:01
   
중공 떼놈들은 자기네땅에 일어난 모든역사를 민족이 달라도 같은 쭝화민족이다 라고 우기는게 습성이라..

단지 그들의 어거지 논리일뿐.

그렇다 해서. 우리도 금청사 한국사로 편입하자. 이건 아닙니다;;

만주역사로 봐야한다는 것이지요.
     
도배시러 17-10-24 23:03
   
발해, 금나라를 동일하게 볼수도 있습니다.
애매하면 분리하지 말고 묶어서 대응하는게 대외적으로 유리한 처신입니다.
          
성물세라핌 17-10-24 23:07
   
금나라 지배층에 발해인들이 상당수 있는것도 사실입니다.

대표적으로 장호 라는 사람이지요.

그리고 여진인,발해인들이 금나라의 실권을 장악한것과 지배계층인것도 사실입니다만.

그렇다해서 금사를 발해의 연장선상으로 묶어볼수는 없습니다.

신라,발해 남북국시대라면

고려,금 제2남북국 시대가 되는건가요???

발해도 분명 지배계층이긴하나. 발해는 망한 망명세력들일뿐.

최상위계층은 여진족들입니다.

신라계 여진인 들이죠. 그리고 그들은 분명히 여진어를 썼습니다.

발해인들은 옛 고구려어 썼거나 아니면 고구려어,여진어를 병행해 썼겠죠.
               
도배시러 17-10-24 23:11
   
고려-금나라, 국경선 분쟁에 통역이 있었나요 ?
꼬마러브 17-10-24 23:07
   
1. 말갈족을 한국사에 포함시키지 않으면, 고구려 발해의 역사를 설명하기가 힘들어짐.

상당수의 말갈족이 당나라편에 섰다는 것은 무엇에 근거했는지 모르겠지만, 고구려가 수,당에 맞서 싸울 때 말갈족은 필사적으로 고구려를 도왔습니다. 일부 말갈족이 아니라 거의 대부분이지요. 게다가 말갈족은 이후 발해 건국의 일원으로서 수천년동안 우리와 역사를 같이 해왔습니다. 이것은 주류, 비주류 할 것 없이 인정되는 통설입니다. 특히 금사에 따르면, 아골타는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女眞渤海同本一家" (여진인과 발해인은 같은 조상에서 나왔다.)

그리고 이것은 사실을 증명합니다. 실제로 말갈족은 우리 역사에서 수천년동안 함께 해온 중요한 종족이니까요. 조상이 같다는 아골타의 말은 엄연히 사실인 겁니다.

2. 그렇다면 반대로, 청나라 이전의 여진족 역사를 중국사에 포함할 수 있는가?

후금이 산해관을 넘어 명나라를 격파하고 중원을 차지한 이후로는, 확실히 중국사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이전의 여진족 역사도 중국사에 포함시킬 수 있을까요?
유전적으로도 여진-만주족은 중국인보다는 우리와 더 가깝습니다.

칭키스칸이 중국인이고 금,청사가 중국사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일본제국의 역사를 우리 역사라며 찬양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여진족의 역사를 우리 역사에 편입시키지는 못하더라도, 중국사에 편입시키는 것은 더더욱 말이 안 된다는 소리입니다.

그리고 현재 만주족은 민족정체성을 잃고 그냥 중국인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렇다면 그 명분은 우리나라가 가져야 합니까? 중국이 가져야 합니까?

동북공정의 논리는 만주족, 한족, 조선족 모두 하나의 중화민족이며, 그들의 역사도 모두 중국사라는 겁니다. 고구려도, 발해의 역사를 왜곡하는 것도 이러한 논리에 기받하고 있습니다.

이 상황에서 우리는 어떻게 행동해야 될까요?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방어만 할 수는 없습니다. 공격이 곧 방어입니다.

급하게 먹은 음식은 체하기 마련입니다. 주변민족이 역사를 자국에 편입시키려는 독재국가중국의 동북공정은, 필시 스스로 모순에 걸려들어 분열하고 말 것입니다.
     
성물세라핌 17-10-24 23:18
   
왕기얀아골타가 "여진(직)발해동본일가" 라 한것은 단순한 립서비스 일수도 있습니다.
왜냐면 정통성을 내세우기 위해서죠. 그러나 다른 의미로 보면 전혀 틀린말도 아닙니다.
그리고 위에 송막기문에서 말갈족들은 당나라군대를 도왔기도 하고요.
물론 재야,강단 할것없이.
말갈족들은 고구려와는 뗄래야 뗄수없는 관계다 라는것은 사실입니다.인정합니다.
역사적으로 볼때 말갈,예맥족들은 한집안인것도 사실이죠.
하지만 언제나 피지배층,부용세력들은 말갈족들이였습니다.
그래서.정통성을 내세우고자 여진발해동본일가 라고 주장한게 아닐까 싶네요.

그리고

만주족들 현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만주사로 따로 떼어서 분류하자는 것이지요.

왜 고구려,발해는 뒷전이면서

엉뚱하게 금청사에 신경쓰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군요.

만약 만주족들이 한민족과 유대를 중히느끼고,게다가 섞여서 동화되면 그나마 금나라는 한국역사라고 말할 명분은 있지만.

만주족들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않아요.

만주족들은 한국인들을 증오하죠.물론 중국인도 증오하고요.
          
꼬마러브 17-10-24 23:20
   
금나라를 중국사도 한국사도 아닌 만주사로 떼어서 분류자자는 건... 고구려랑 발해도 만주사로 따로 떼어서 분류하자는 소리 아닙니까?
               
성물세라핌 17-10-24 23:23
   
아니 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고구려,발해는 엄연히 한민족의 역사죠;;;

그리고 금나라,청나라는 만주역사죠;;

한민족,만주족 엄연히 살아있지않나요??

만주족이 없다면 모를까; 엄연히 존재하는데;;;;
굿잡스 17-10-24 23:09
   
한규철 교수의 1994년 논문
밑에 글은 일부 발췌한것

---

금나라에서 발해부흥운동이 없었던 원인은 무엇인가? 이에 대하여 劉肅勇은 금나라가 발해유민을 다스리는 통치술이 뛰어 났기 때문이었다고 한다.30) 그러나, 요나라의 통치술이 결코 금나라보다 못했다고 단정할만한 어떠한 근거도 없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이러한 설명은 납득하기 어렵다. 금나라에 맹안모극제가 있었던처럼 거란에도 남북원제가 있었다. 거란이 발해유민을 통제키 위해 실행했던 동단국의 요양 이동과 같은 강제 사민정책은 강력했다. 금나라에서도 발해인들에 대한 사민책이 있었다고는 하나,31) 이것은 어디까지나 거란에서처럼 발해유민의 부흥운동에 대한 대처였던 것은 아니다. 금초에 있었던 발해인에 대한 화북·산동으로 사치는 고영창의 대발해국이나 고욕의 난에 가담하였던 발해 세력, 또는 후발해 조정에 있던 무리가 아니었나 한다. 당시의 발해인이 고영창 세력이었을 가능성은 대발해국 당시 고영창이 금나라와 협상하면서 ‘황제’를 고집하다가 금에 의해 참살되었던32) 사정에서 찾을 수 있다. 또한 올야 정권의 후발해 조정과 연결된 세력이었을 가능성은 금나라를 건국한 세력과 올야 정권은 일정하게 같은 ‘일가’이면서도 금나라 조정에서는 누구보다도 강력한 견제세력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금나라에서의 발해인 사치라는 의미는 거란초의 발해유민 사치와는 그 의미가 자못 다르다고 할 수 있다. 거란과 이민족의 입장에 있던 발해의 부흥운동에 대비한 것이 거란의 사치정책이었다면, 금나라에서의 그것은 ‘일가’안에서의 반대세력을 소개시키기 위한 정책이었다는 차이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금나라 조정에서 여진과 발해가 ‘본동일가’였음에도 불구하고, 발해인을 특별히 구별하였던 것은 거란내에 있었던 고영창 등의 발해유민 세력이거나 후발해 조정안의 지배층과 변방의 피지배 여진의 관계에서 비롯된 것이다.
 
요컨대, 발해와 여진의 역사적 관계에서 금나라에서 발해유민의 부흥운동이 일어나지 않았다고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즉, 여진이 세운 금나라는 발해와 일정하게 ‘본동일가’로 볼 수 있는 것이기에, 금나라는 한편으로 발해의 민족적 정통성을 계승한 왕조였기 때문이다.

http://www.gasengi.com/main/board.php?bo_table=EastAsia&wr_id=137345&sca=&sfl=wr_subject%7C%7Cwr_content&stx=%ED%95%9C%EA%B7%9C%EC%B2%A0&sop=and



왜 여직(진)발해본동일가(女直渤海本同一家)라고 했을까?

http://www.gasengi.com/main/board.php?bo_table=EastAsia&wr_id=88992&sca=&sfl=wr_subject%7C%7Cwr_content&stx=%ED%95%9C%EA%B7%9C%EC%B2%A0&sop=and
     
성물세라핌 17-10-24 23:24
   
만주족들은 엄연히 존재하고 있습니다.

단지 유전적으로 같다고 해서. 기록이 있다해서. 백날 동본일가라 한들.

뭐가 달라지겠습니까?

그렇게 따지면 일본역사도 한국역사에 편입해야지요?
          
굿잡스 17-10-24 23:31
   
만주족들은 엄연히 존재하고 있습니다. >

만주족과 여진족은 다름.

만주족은 17세기에 요동일대의 거주민과 몽골등을 합쳐 나온 명칭.

그에 반해 여진족은 기본 우리 발해국 아래에 있던 세력 안에서 나온 명칭임.
               
성물세라핌 17-10-24 23:37
   
흠...
요동일대,남만주일대의 거주민들은 결국 여진의 후신이 아닌가요?

그냥 지역명사를 붙여서 만주족이라 하는것입니다.

영국을 uk라 하듯이요.

만주족도 통합민족체 인듯 하군요.

그렇다 해도 주요세력들은 구여진족들입니다.

숙신->읍루->물길->말갈->여진->만주 순으로 그들은 줄곧 존재해 왔고

현재도 중국 곳곳에 소수로 미미하게나마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애시당초 그들은 한민족과 동거동락하였지만.

결국 유전적으로 가장흡사한 이민족이였을뿐.

그 이상,그 이하도 아니죠.

별종이라는 겁니다.
                    
꼬마러브 17-10-24 23:40
   
숙신 = 조선
읍루 = 우지 = 옥저
물길=말갈=맥예=예맥
여진에서 '진' 자는 고조선을 뜻함
만주족은 금나라 멸망 이후 여러 종족들이 섞인 짬뽕 민족
                    
굿잡스 17-10-24 23:40
   
흠...
요동일대,남만주일대의 거주민들은 결국 여진의 후신이 아닌가요? >

왜 여직(진)발해본동일가(女直渤海本同一家)라고 했을까?

http://www.gasengi.com/main/board.php?bo_table=EastAsia&wr_id=88992&sca=&sfl=wr_subject%7C%7Cwr_content&stx=%ED%95%9C%EA%B7%9C%EC%B2%A0&sop=and

윗 링크를 읽어 보길 바라군요.

거란 지배아래의 숙여진(발해인) +거란 지배 밖의 생여진(독자적 발해후신국+소수

흑수말갈)
                         
촐라롱콘 17-10-25 00:39
   
요나라 영역 내의 숙여진과 발해인은 엄연히 구별되는 존재입니다.

그리고 아골타의 여진발해본동일가라는 립서비스는 요와 북송과의 전쟁중일때만

유지되었고, 금나라가 북중국에 확고히 뿌리를 내린 이후에 발해인들은

맹안모극제에서 축출되었으며, 발해인 대부분이 산동지역으로 강제이주당하여

한족과 비슷한 수준으로 취급되었습니다.

반명 숙여진인들은 금나라 말기까지 여진의 당당한 일원이었고.. 그뿐만 아니라

금나라가 멸망시킨 요나라의 거란인들까지도 맹안모극제의 구성원으로 포섭했습니다.

금나라 내부의 북방민족 출신 가운데 오직 발해인들만이 철처한 차별을 당했습니다.

또한 금나라 시기를 거치면서 발해인들은 정체성 자체가 소멸하게 됩니다.
                         
굿잡스 17-10-25 01:15
   
여진이란 발해유민과 흑수말갈의 복합민족 정도로 언급함이 타당하리라 생각한다.20) 말갈의 종족계통을 다원적으로 보고, 지역명에 의미를 두어 속말말갈의 발해 건국세력을 ‘송화강지역 고구려변방인’으로 해석할 수 있다면,21) 여진 역시 이와 같은 맥락에서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발해시대에는 흑수말갈의 작은 범위의 주민들이 발해가 멸망하고서 갑자기 대거 남하하여 압록강과 두만강유역의 주인공이 되었다는 것은 역사적 계기성이 결여된 견해라는 것이다. 아무튼, 소수 흑수인의 남하를 인정할지라도,22) 이들이 번성하여 곧 여진이 되었으며, 금나라의 주인공이 되었다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한다. 금나라 이전 주민들의 발해유민과 흑수인들의 역사적 변화상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금나라의 주민이 되었던 다수의 주민들은 발해유민이 다수를 차지하였다는 것이다. 고려 태조대부터 있었던 발해유민의 고려망명이 차지하는 숫자는 전 만주를 흑수인들의 나라로 만들 정도는 아니었다는 것이다. 여진으로 불리는 다수의 사람들이 발해유민이었다는 사실은 熟女眞과 生女眞의 분류기준에서도 설명이 가능하다. 즉, 거란에 부속되었던 여진은 熟女眞이었고, 그렇지 않았던 여진이 生女眞이었다는 위의 ꡔ金史ꡕ 기록을 믿는다면(사료C-5), 발해유민들의 거란화 정도에 따른 생여진과 숙여진의 구별이었다고 할 수 있다. 결국, 초기의 여진은 흑수말갈로부터 출발하였다 할지라도, 발해멸망 이후의 여진은 다수가 발해유민을 지칭하는 종족명이었다는 것이다. 여진의 종족계통과 관련하여 여진의 시조 函普의 출자를 언급하는 경우도 많다. 즉, 위의 ꡔ金史ꡕ에 의한다면(사료C-5), 函普는 高麗人 또는 高句麗 遺裔 등으로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23) 그러나, 함보가 어디 출신이었느냐 하는 문제가 여진의 종족계통론의 결정적 근거가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단순히 여진의 힘을 결집하였던 한 통치자의 출신문제와 관련이 있는 정도로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진의 종족계통에 관한 문제는 오히려, 지배 집단의 출신 문제보다 지역사적 입장에서 접근하는 것이 보다 합리적인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렇다 하더라도, 함보의 출자문제는 여진의 종족계통과 그 실상을 파악하는데 있어 일정한 의미를 갖는다. 이것은 또한 여진과 발해와의 관계를 설명하는 데도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함보가 고려로부터 왔다는 위의 ꡔ금사ꡕ 기록은 여진의 고려 및 고구려적 계통설을 뒷받침하는 중요한 자료가 된다는 사실이다. 특히, 三上次男이 주장하였던 함보의 고구려 유예적 성격에 의미가 더 있지 않은가 한다. 이와 같은 설명은 곧 여진과 발해가 ‘本同一家’였다는 의미와도 통하고, 발해의 고구려적 성격과도 부합하기 때문이다. 또한, 女眞의 실상과 관련하여 後渤海와 定安國의 관련성도 생각해야 한다

-高麗 來投·來往 女眞人 ―渤海遺民과 관련하여

사치에 대해서는 위에 언급한 내용을 다시 확인하길.(이전의 거란의 사치와

금나라 내부안의 정치적 알력의 양상과는 다른 성격으로 구분)

그리고 이런 3대 희종의 반발해적 정책이 발해인들의 반발을 불러와서 결국 제거되어

옹립된게 발해계 해릉. 

물론 금나라 100여년 기간동안 금황실 외척으로 무려 발해계 황후가 4명이나

포진해 있었고 이런 희종 이후에도 발해계 해릉뿐 아니라 금나라 전성기를 이끈

세종 역시도 발해인 주도의 황위 옹립등 말기까지도 발해계 황제가 등장하는데

일부 기록만을 단순 대입해서

이게 단순히 아골타의 발해인 립서비스에 토사구팽이였다??



따라서 금나라에서의 발해인 사치라는 의미는 거란초의 발해유민 사치와는 그 의미가 자못 다르다고 할 수 있다. 거란과 이민족의 입장에 있던 발해의 부흥운동에 대비한 것이 거란의 사치정책이었다면, 금나라에서의 그것은 ‘일가’안에서의 반대세력을 소개시키기 위한 정책이었다는 차이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금나라 조정에서 여진과 발해가 ‘본동일가’였음에도 불구하고, 발해인을 특별히 구별하였던 것은 거란내에 있었던 고영창 등의 발해유민 세력이거나 후발해 조정안의 지배층과 변방의 피지배 여진의 관계에서 비롯된 것이다.
 
요컨대, 발해와 여진의 역사적 관계에서 금나라에서 발해유민의 부흥운동이 일어나지 않았다고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즉, 여진이 세운 금나라는 발해와 일정하게 ‘본동일가’로 볼 수 있는 것이기에, 금나라는 한편으로 발해의 민족적 정통성을 계승한 왕조였기 때문이다.
                         
굿잡스 17-10-25 02:03
   
금나라의 국무총리까지 오른 발해계 장호(북송 멸망 후 북경 중도 건설 총지휘자)

장호의 자는 호연이고 요양 발해인이다. 본성은 고씨이고, 동명왕의 후손이다. 증조의 이름은 패이고, 요나라 조정에서 일했으며 장씨로 성을 바꾸었다.
 
- 금사 -
 
 
 
장호는 고구려 동명왕의 후손으로 태조, 태종, 희종, 해릉왕, 세종의 5대를 섬겼다. 태조가 요동을 평정할 때 계책을 올렸고 이 공으로 승웅어전문자로 임명되었다. 그는 뛰어난 관료적 능력을 보였다.
 
 
 
전각의 당사가 일어나면서 대성이 한 때 비게 되자 호는 6부의 일을 모두 맡았다. 장부서류가 모두 기재되고 보류된 처리 건이 없어 사람들은 장호의 재능에 감복하였다.
 
- 금사 -
 
 
 
희종 때 전각이 당사를 일으켜 조정이 마비 되었지만 장호는 6부의 장부와 서류에 대한 결재를 완벽하게 해내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뛰어난 행정능력 때문에 장호는 금 조정의 인정을 받고 촉왕에 봉해지고 좌승상이 되기에 이르렀다.
 
세종 때 장호는 인재를 추천하라는 명을 받고 흘석열지녕 등을 추천하였는데 이들은 모두 명신이 되었다. 세종 초에 과거제 폐지론이 있었는데 이때 장호는 "제왕이 문학을 사용하지 않은 자가 있었는가?" 라는 세종의 질문에 "진시황입니다." 라고 대답하여 과거제 폐지를 막기도 하였다.
 
말년에 장호가 병이 들자 세종은 장호에게 입궐하더라도 절을 하지 말고 전각의 계단 동쪽에 마련된 자리에 앉아도 좋다고 하였다. 만약 보고할 것이 있으면 나중에 와서 보고해도 좋고 그래도 건강이 좋지 않으면 결재는 장호의 집에서 받도록 할 것이니 매일 상서성에 나오지 않아도 좋다고 할 정도로 편의를 봐주었다. 이는 장호에 대한 세종의 총애를 알 수 있게 해준다.
 
장호가 죽자 세종은 정사를 하루동안 중단하였고 문강이란 시호를 내렸다. 1194년에 세종의 묘정에 배향되었고 1201년에 연경궁에 초상이 그려졌다.


그외 장호의 아들 장여림에 장현소, 장여필 외 고씨등의 황실 주요 요직등에

발해인들의 활약상은 초기부터 발해계 해릉와 세종 및 장종등

거의 금나라 전성기 전역을 관통하면서 나오는 상황.
꼬마러브 17-10-24 23:48
   
숙신 = 조선 [발음은 '주신'으로 추측]

읍루 = 옥저 [발음은 '우지'로 추측]

물길=말갈=맥예=예맥 [발음은 '모허'일 것으로 추측]

여진에서 '진' 자는 고조선을 뜻함
그래서 여진족이 세운 나라 이름이 金나라인 것임. (金=jin)
이는 발해의 국명인 '대진국'의 진 과 같음.
(진국, 진한, 진왕 등의 '진'과도 같음. 진은 바로 조선을 뜻함. 대조영이 국호를 대진국이라고 한 것은 스스로 고조선의 후예임을 말한 것임.)

그리고 만주족은 금나라 멸망 이후 여러 종족들이 섞인 짬뽕 민족 (현재는 그냥 중국인..)
     
꼬마러브 17-10-24 23:56
   
참고로 여진의 만주어 발음은 '주선'임

주선은 만주어로 사람이라는 의미

청 태종은 이렇게 말함.

"我国原有满洲, 往往称为珠申. 夫珠申号, 乃席北超墨尔根之裔, 实与我国无涉"

- 우리 만주는 자주 주선이라 지칭되었다. 그런데 이 주선이라는 호칭은 '席北超墨尔根'의 후예들을 지칭하는 것으로 우리와 관계가 없다

https://www.google.co.kr/amp/s/kknews.cc/zh-my/history/8mjnjm4.amp

주선=조선=주신=숙신="진"
     
감방친구 17-10-25 09:15
   
김운회 교수 견해를 따오신 거 같은데 그걸 이리 확신에 차서 말할 단계는 아니라고 봅니다
굿잡스 17-10-25 01:22
   
唐太宗征高麗,靺鞨佐之,戰甚力
 
당태종정고려,말갈좌지,전심력
 
당태종이 고려를 칠때,말갈족을은 전력으로 당나라를 도왔다.(전투에 온힘을 다했다.)

>>>???

그리고 이거 본인이 해석한 것임?? 아님 어디서 가져 왔는지??

뭔 해석을 이딴 식으로 하는지?????


이게 고당 전쟁시기 당에 대항한

주필산 전투에서 (고구려를) 보좌(佐)하려고 함께 참석한 말갈 합하여 고구려 15만 대군의

기록이구만. 초반 1차 전투에서 고연수와 말갈 일부가 생포당해서 이후 말갈 3천이 구덩이에 파묻치는

기록.


 주필산 전투 전황

http://www.gasengi.com/main/board.php?bo_table=EastAsia&wr_id=84008&sca=&sfl=wr_subject%7C%7Cwr_content&stx=%EA%B3%A0%EC%97%B0%EC%88%98+15%EB%A7%8C&sop=and
도배시러 17-10-25 01:45
   
唐太宗征高麗,靺鞨佐之,戰甚力
당태종정고려,말갈좌지,전심력

당태종이 고구려를 정벌할때, 말갈은 고구려의 좌측(좌군, 고구려 심복)에 있었고 전력을 다해 전투에 임했다.
=> 그래서 말갈 3천인을 생매장 ?
정욱 17-10-25 06:38
   
기자.외만조선이 한국역사라면 연.요.금.청 도 한국역사입니다.
감방친구 17-10-25 09:20
   
이 글  게시자의 문제는
연식이 얼마나 되었는지는 모르겠으나
ㅡ 앎이 적고
ㅡ 감정이 앞서고
ㅡ 사실에 대한 분별력이 적고
ㅡ 남이 기끈 힘들여 설명해 줘도 말귀를 못 알아 먹는 것

여진ㆍ만주사 문제를 논하는 이곳의 여러 유저들이 단순히 국수주의, 상상적 민족주의에 빠져서 이러는 거 같소?
제발 남의 글을 찬찬히 읽고 충분히 따져본 다음에 의견을 적으세요
성물세라핌 17-10-26 06:05
   
제가 이부분에 있어서는 앎이 부족한건 맞으나

제가 봤을떄, 아니 주류사학계가 이글 보면 얼마나 어이없어 할까요??

자기 생각도 아닌 남의 논문을 들고와서 백날 떠들어봐야 뭐하는것이냐 이말이죠.

아니 솔직히, 여진족은 여진족이지 왜 국수주의자,민족주의자들은 영토 뻥튀기도 모자라, 중국을 따라해서 한국판 동북공정을 하려는지 모르겠군요..

중국넘들이 모든 민족은 중화민족이다 라고 하는거랑 뭐가 달라요?

여진족도 한민족의 부류? 아니 한민족과 핏줄이 같다?

뭐요? 여진발해동본일가? 장난합니까??

이건 단순히 립서비스에 불과하고 본디 여진족은 숙,생여진으로 나뉘어져있는데

여진을 통합한 부족이 생여진 부락중 하나인 완안(왕기얀)부락입니다.

거기서 아골타가 정통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지리적으로 또 문명적으로 뛰어난 고려를 끌어들였겠죠.

왜냐면 여진족들은 족보가 빈약하며 미개했기때문에. 자신들의 정통성을 내세우기 위해서라도

족보세탁,족보금칠히 필수불가결이였겠죠.

그래서 신라 김함보를 거론한겁니다.

금사가 한국역사다?? 정말 말도 안되는군요. 학계에서 이 말씀 해보시죠? 매장당할께 분명할텐데 말이죠!

그리고 금나라가 발해의 연장선상이며 금,고려가 제2남북국시대다?

차라리 임나일본부,한반도한4군이 더 설득력있게 보이는군요.
     
꼬마러브 17-10-26 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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